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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티나 경당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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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편집]
건물[편집]
장식[편집]
프레스코화[편집]
각주[편집]
외부 링크[편집]
천지창조 외 – 시스티나성당 의 모든 것 1. 미켈란젤로의 천장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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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티나 성당의 미켈란젤로 천지창조 순서와 최후의 심판 어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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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창조 순서 알아보기(Genesis 1508~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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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티나 성당의 미켈란젤로 천지창조 순서와 최후의 심판 어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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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 있는 이 유명한 그림, 사진 찍으려면 일본에 허락받아야 한다 | 위키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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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티나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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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티나 경당(라틴어: Aedicula Sixtina)은 바티칸 시국에 있는 교황의 관저인 사도 궁전 안에 있는 경당이다. 시스티나 성당으로도 알려져 있으나,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건축 양식이 타나크에 나오는 솔로몬의 성전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전하며,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산드로 보티첼리 등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이 그린 프레스코 벽화가 구석구석에 그려져 있다. 그 가운데서도 미켈란젤로는 교황 율리오 2세의 후원을 받으면서 1508년에서부터 1512년 사이에 성당의 천장에 12,000점의 그림을 그렸다.
시스티나 경당은 1473년에서 1481년 사이에 기독교의 오래된 옛 대성당(Cappella Magna)을 복원했던 교황 식스토 4세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 기간에 피에트로 페루지노, 산드로 보티첼리, 도메니코 기를란다요를 포함한 화가 무리는 모세와 그리스도의 생애를 묘사한 프레스코화 벽판 시리즈를 만들었다. 그 그림들은 1482년에 완성되었으며, 1483년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기념 미사 때 식스토 4세에 의해 축성되었다.[1]
식스토 4세의 치세 이래, 시스티나 성당은 교황이 종교적·직무상의 활동을 하는 장소로서의 소임을 해 왔다. 이곳은 전 세계의 추기경들이 모두 모여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종교적 의식인 콘클라베를 여는 장소로 이용되고 있기도 하다.
역사 [ 편집 ]
시스티나 경당은 교황을 선출하는 장소로서 유명하다. 보다 일반적으로는 교황이 직접 미사를 집전하는 성당으로 활용하고 있다. 15세기 후반 교황 식스토 4세의 시대 때, 바티칸에 거주하는 성직자들과 공무원들, 특출한 평신도들을 포함해서 약 200명으로 구성된 법인체가 조직되었다. 그 당시에는 교황의 일정표에 의해 모든 성당이 회합하도록 규정된 50개의 교회 행사들이 있었다.[2] 이러한 50개의 교회행사 가운데 35개가 미사였으며, 그 가운데서도 8개의 미사는 주로 성 베드로 대성전으로 대표되는 대성전들에서 거행되었는데, 여기에는 수많은 회중이 참석하였다. 이 중에는 교황이 직접 집전하는 예수 성탄 대축일 미사와 부활절 미사도 포함되었다. 다른 27개의 미사는 좀 더 규모가 작고 크게 알려지지 않은 장소에서 거행되었으며, 이를 위해 마조레 성당(Cappella Maggiore)이 사용되었는데, 이 성당은 나중에 시스티나 성당으로 재건되었다.
마조레 성당은 교황과 그의 수행원들이 날마다 전례를 위해 이용하였으며 또한 다른 성당들과 비교하여 대성당(大聖堂)이라는 명칭을 갖게 되었다. 교황 식스토 4세의 재위 당시 이 성당은 교황 니콜라오 5세의 성당으로 프라 안젤리코가 장 식하였다. 기록에 따르면, 마조레 성당은 1368년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트레비존드의 안드레아가 교황 식스토 4세에게 보낸 서한에 따르면, 지금의 성당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고자 기존의 마조레 성당을 헐었을 당시 이미 벽이 기울어진 폐허 상태였다고 한다.
마조레 성당이 있었던 자리에 세워진 지금의 성당은 교황 식스토 4세를 위해 바치오 폰델리가 설계하였으며,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조반니노 데 돌치의 감독 아래 1473년에서 1481년에 걸쳐 건설되었다. 지금의 성당 넓이는 원래 있었던 옛 성당을 거의 유사하게 따라 한 것으로 보인다. 완공되고 나서, 성당 내부는 보티첼리, 기를란다요, 페루지노, 미켈란젤로 등 르네상스 전성기의 유명한 화가들이 그린 프레스코화들로 치장되었다.
시스티나 성당에서의 첫 번째 미사는 1483년 8월 15일인 성모 승천 대축일에 치러졌으며, 축성한 다음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하는 의식이 이루어졌다.
시스티나 성당은 오늘날까지도 그 기능을 유지하고 있으며, 특별히 교황이 여행 중이 아니라면 교황의 일정에서 중요한 의식이 있으면 그것을 치르는 장소로 제공되고 있다.
시스티나 성당에는 상설 성가대도 있으며, 이 성가대를 위해서 수많은 성가가 작곡되었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곡으로는 알레그리가 작곡한 《하느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Miserere Mei Deus)》가 있다.
교황 선출 [ 편집 ]
이 부분의 본문은 이 부분의 본문은 콘클라베 입니다.
시스티나 경당의 주된 기능 가운데 하나는 추기경단이 선종한 교황의 자리를 계승할 인물을 선출하기 위한 비밀 선거 장소로 제공되는 것이다. 콘클라베가 소집되면, 지붕에 굴뚝을 설치하여 신호로 연기가 피어올라 교황의 선출 여부를 외부에 알린다. 새 교황이 선출되었을 경우, 콘클라베 때 사용한 투표용지들을 화학 첨가물과 같이 불에 태우면 하얀 연기가 나타난다. 만약 후보자가 2-3분의 1 다수보다 적은 표를 얻으면 추기경들은 투표용지들을 젖은 짚 또는 화학 첨가물과 함께 불에 태워 검은 연기를 피워 올린다. 이것은 아직 새 교황을 선출해내지 못했다는 것을 뜻한다.[3]
또한 콘클라베를 진행하는 동안 추기경들을 위해 미사를 드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하인들의 수발을 통해 음식과 취침 장소 지원이 순조롭게 진행된다. 콘클라베는 서구 대이교까지 도미니코회에서 관리하는 산타 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성당에서 열렸으나, 1455년부터는 바티칸에서 열렸다.[4]
한때 콘클라베 기간에 각 추기경 후보자들이 모두 동등한 명예를 갖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표시로서 좌석 위에 뚜껑 모양의 차양이 있었다. 새 교황이 자신의 선출을 수락하면 곧바로 교황으로서 새 이름을 결정하는데, 이때 다른 모든 추기경은 좌석에 붙은 줄을 잡아당겨 차양들을 일제히 내린다. 교황 성 비오 10세에 의해 개정되기 전까지는 어느 교황에 의해 추기경으로 임명되었는지를 나타내려고 추기경마다 차양의 색깔을 다르게 했다. 교황 바오로 6세 때부터는 차양들을 폐지하였는데, 바오로 6세가 재위하면서 추기경들의 수가 벽 앞에 두 줄로 앉아야 할 정도로 많이 늘어난 데다가 차양이 뒷줄에 있는 추기경들의 시야를 방해한다는 지적 때문이었다.
건물 [ 편집 ]
시스티나 성당의 외관
외관 [ 편집 ]
시스티나 경당은 높은 직사각형 벽돌 건물이며, 그 외관은 중세나 르네상스 시대의 다른 수많은 이탈리아 성당들의 공통적인 건축 구성을 지녔거나 세세한 장식 없이 수수하다. 시스티나 경당에는 특별히 외관에 출입구가 없기 때문에 항상 교황궁 안에 있는 내실을 통해서 출입하며, 외관의 전체적인 모습은 교황궁 안에 있는 채광정이나 근처에 있는 창문들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 내부 공간은 세 층으로 분리되어 있는데 가장 아래층은 웅장한 형태의 둥근 천장이 있는 지하로 몇 개의 실용적인 창문들과 바깥의 안뜰과 통하는 문간이 있다.
경당의 본 공간 내부를 측량한 결과 길이 40.9미터(134피트), 너비 13.4미터(44피트)로 나오는데, 이는 구약성경에 적힌 솔로몬의 성전과 같은 규모이다.[5] 이에 더하여, 20.7미터(68피트)까지 솟아있는 아치형 천장도 있다. 건물의 측면마다 아래에 여섯 개의 긴 아치형 창문들이 있고, 양끝에는 두 개의 창문들이 있다. 이 중 몇몇은 아직도 접근하기에는 쉽지만, 지금까지 줄곧 굳게 봉쇄되어 있다. 아치 천장 위의 3층에는 근위병들을 위한 고급 사관실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 구역은 벽에서 솟아오른 아치로 떠받치고 있으며, 건물을 둘러싸고 있다. 계속해서 경당의 아치 천장에 물이 스며드는 원인으로 통로가 지적되어 그 위에 지붕을 씌웠다.
침전물과 석조 건축의 갈라진 금 때문에 부득이 매우 큰 부벽으로 건물을 보강해 외벽을 떠받치게 한 마조레 성당의 영향을 받아 시스티나 경당에도 역시 그와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다른 건물들이 추가로 지어져 시스티나 경당의 외양은 계속해서 많은 변화를 거듭하였다.
내부 [ 편집 ]
건물 대다수의 내부 비율을 측정은 하였지만, 완벽하게 들어맞는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하지만, 성당의 전체 비율은 명확하기 때문에 오차가 몇 센티미터 이상을 넘지 않는다. 측정 결과 건물의 폭은 건물 길이의 1/3이며 건물 높이는 건물 길이의 2/3 정도라고 나온다. 이 비율을 유지하려고 건물 양측에 창문을 여섯 개씩 배치하였으며, 건물 양쪽 끝에는 창문을 두 개씩 배치하였다. 성당을 나누는 칸막이는 원래 제대 벽에서 중도까지 있었다가 바뀌었다. 당시 옛 로마의 유산들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 풍토를 반영하듯이,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은 비례를 정확하게 규정짓는 것이 특징이었다.
성당의 천장은 아치형 창문들의 기공 점 높이에서 벽들을 둘러싸는 반원통형의 둥근 천장이다. 천장은 가장 낮은 높이에서 각 창문 사이에 있는 얕은 벽기둥들에서 솟아오른 일련의 큰 삼각 궁륭들로 나뉘는 각 창문 위에 있는 작은 아치 천장들에 의해 가로로 나뉜다. 원래의 천장은 피에르마테오 라우로 데 만프레디 다 아멜리아의 디자인에 따라 밝은 파란색을 배경으로 황금빛 별들이 드문드문 그려졌다. 바닥 포장은 대리석과 유색 석재로 무늬 장식을 한 형태를 띤 오푸스 알렉산드리눔으로서 내부 분할의 초기 비율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정면 현관문에서부터 난 행렬용 길은 종려주일과 같이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마다 교황이 이용하였다.
시스티나 성당은 미노 다 피에솔레와 안드레아 브레뇨, 조반니 달마타가 대리석으로 만든 칸막이 또는 격자에 의해 두 구획으로 분리되어 있다.[6] 원래 성당 내부는 제대 쪽 지성소 안에 있는 교황 전용 기도실에서 시중드는 사람들과 순례자들과 로마 시민 모두에게 똑같은 공간이 제공되도록 만들어졌다. 그런데 교황을 수행하는 사람들의 수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칸막이가 이동되어 평신도들을 위한 공간이 줄어들게 되었다. 격자 위에는 화려한 촛대들이 한 줄로 늘어져 있다. 그리고 옛날에 화려하게 금박이 입혀졌던 철문이 있었던 자리에는 나무로 된 문 하나가 자리 잡고 있다. 또한, 격자를 만든 조각가들은 돌출한 성가대석(Cantoria)도 만들었다.
라파엘로의 태피스트리 [ 편집 ]
이따금 치르는 특별히 중요한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옆벽들에는 원래 라파엘로가 시스티나 성당을 위해 디자인한 태피스트리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러나 1527년의 로마 약탈 당시 독일 용병들에 의해 불태워지거나 약탈당하여 유럽 전역에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라파엘로의 태피스트리들에는 복음서들과 사도행전에 나오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의 생애에 있었던 사건들이 묘사되어 있었다.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태피스트리 여러 개를 다시 모아 한 세트로 짜맞추어 1983년에 시스티나 성당에 다시 전시하였다. 열 개의 태피스트리 가운데 표준 크기의 예습 밑그림들은 ‘라파엘로의 밑그림’이라는 이름으로 현재 영국의 런던에 소재해 있다.[7]
장식 [ 편집 ]
시스티나 성당의 벽은 세 단으로 분배되어 있다. 아랫부분은 금은 색으로 수 놓인 프레스코 양식의 벽지로 장식되었다. 가운데 부분은 벽 전체에 《모세와 생애》와 《그리스도의 생애》를 담은 두 그림이 서로 보충해주고 있다. 이 그림들은 1480년 교황 식스토 4세의 명령에 따라 기를란다요와 보티첼리, 페루지노, 코시모 로셀리 등에 의해 그려진 것들이다. 윗부분은 두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창문들의 아래쪽에는 모세와 그리스도의 생애들을 그린 그림들과 때를 같이해서 교황들을 그려놓았다. 창문들의 윗부분에는 미켈란젤로에 의해 《그리스도의 선조들》을 담은 반원들이 그려져 있는데, 천장화를 위한 계획 일부분으로 알려졌다.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는 교황 율리오 2세의 의뢰에 따라 미켈란젤로가 1508년에서 1511년까지 그린 것으로 《천지창조》, 《하느님과 인류의 친교》, 《하느님의 은총을 잃은 인류의 타락》 등 아홉 점의 그림이 쭉 이어져 있다. 아치형 천장을 지지하는 커다란 삼각 궁륭들에는 하느님이 인류의 구원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줄 것이라는 성경의 예언과 고대 그리스·로마 문학에 등장하는 남녀들이 그려져 있다.
1515년, 라파엘로는 교황 레오 10세로부터 벽체의 하단부에 전시할 태피스트리 열 점을 그리라는 주문을 받았다. 레오 10세는 식스토 4세의 의뢰로 전시된 15세기의 프레스코화들 바로 밑에 라파엘로의 태피스트리들을 전시하려고 생각하였다. 당시 스물다섯 살이었던 라파엘로는 상당수의 부유한 후원자들이 있는 피렌체에서 이미 안정적으로 정착한 예술가였다. 그러나 야망이 있었던 그는 교황청의 후원을 받고 싶어했다. 라파엘로는 로마의 포부와 정렬에 매혹되었다.
라파엘로는 자신의 실력을 미켈란젤로와 비교할 호기로 보았으며, 그를 채용한 레오 10세는 태피스트리들을 거는 것을 율리오 2세의 천장화에 대한 자신의 응대로 보았다. 라파엘로가 선택한 주제들은 사도행전의 내용에 밑바탕을 둔 것이었다. 작업은 1515년 중반부터 시작되었다. 태피스트리들의 크기가 너무 컸기 때문에 제작은 브뤼셀에 있는 피테르 반 앨스트의 공장에서 직조공들의 손 아래 4년 동안 행해졌다.
교황 율리오 2세는 그가 후원하던 미켈란젤로에게 열두 사도들을 그릴 것을 주문했을 때, 미켈란젤로의 복잡한 도안이 그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기는 했지만, 구성은 일관적인 도상학 양식을 잘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 그림들은 나중에 《마지막 심판》으로 제대 위의 벽을 장식하라는 의뢰를 받은 미켈란젤로에 의하여 파괴되었다(1537-1541). 마지막 심판을 그리려면 부득이 모세와 그리스도의 생애에서 빌린 두 이야기를 말소해야 했으며, 대신 몇몇 교황들과 그리스도의 선조들의 그림을 배치하였다. 창문들 가운데서도 두 개가 봉쇄되었으며, 라파엘로의 태피스트리 두 점은 여분이 남았다.
프레스코화 [ 편집 ]
벽화들은 피에트로 페루지노, 산드로 보티첼리,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코시모 로셀리, 루카 시뇨렐리 등 15세기 당시 유럽에서 가장 존경받았던 화가들에 의해 그려졌다. 주제들은 사실(史實)에 바탕을 둔 종교적 이야기들로 엄선되었으며, 중세의 발상에 따라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전까지의 삶, 모세와 그리스도의 탄생 그리고 그리스도 기원 이후 등 세계 역사상 일어났던 세 가지 중요한 사건들 형식으로 나누었다. 화가들은 구약과 신약 또는 모세의 율법에서 비롯된 전통과 기독교 사이의 연속성을 강조하였다.
벽에는 1481년 7월에서 1482년 5월까지 약 11개월이라는,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에 그림이 그려졌다. 각 화가는 가장 먼저 본보기 프레스코화 제작이 필요하였다. 본보기 프레스코화들은 직권에 의해 검열을 받았으며 1482년 1월에 평가받았다. 초반에 프레스코화들은 양호했지만, 예술가들에게 남은 열 가지 이야기들을 완성하라는 명령이 내려진 1481년 10월 전까지였다.
성당 그림들의 진행 순서는 성경에서 구약과 신약 두 시대로 구분되는 척도가 되는 모세와 그리스도의 삶으로 구성되었다. 이야기는 제대 벽에서 시작해 – 프레스코들은 불과 30년 후에 미켈란젤로의 마지막 심판에게 자리를 양보하였다 – 벽을 길게 계속 따라 입구 벽에서 끝이 난다. 프레스코화들 위에는 교황들을 묘사한 초상화들이 그려졌으며, 나중에 그 아래에 커튼으로 묘사한 그림들로 채워졌다. 두 시대의 개별 장면들은 예표론 형식으로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구약과 신약의 전체 맥락으로 이해되는, 모세가 장차 올 그리스도를 위해 준비하는 듯한 모습을 그려넣었다.
모세와 그리스도의 삶을 그린 프레스코화들은 구약과 신약 간 일치를 단순히 설명하는 것을 넘어서 정치적 중요성을 지니고 있었다. 식스토 4세는 꼼꼼하게 프레스코화들의 순서를 착상하여 이를 통해서 하느님이 모세를 거쳐 그리스도를 통해서 베드로에게, 궁극적으로는 지금의 교황에게 최고의 권위를 내렸다는 것을 설명하는 도구로 사용하였다. 프레스코화들 위에 있는 교황들의 초상화는 하늘이 내린 권위라는 점을 강조하는 데 한층 도움이 되었다.
프레스코화 가운데 두 점의 중요한 그림이 있는데, 페루지노가 그린 《성 베드로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시는 그리스도》와 보티첼리가 그린 《코라에 대한 심판》이다. 두 그림은 모두 최초의 그리스도인 로마 황제이자 교황에게 서로마 영역의 정치적 권한을 넘긴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개선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개선문은 교황의 권한은 황제로부터 양도받은 것이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식스토 4세는 따라서 자신의 지위인 교황이 구약과 신약을 통틀어서 하느님의 인정을 받은 동시에 로마 제국의 합법적인 상속자라는 점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성 베드로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시는 그리스도》 [ 편집 ]
성당의 북쪽 벽에 있는 페루지노의 벽화 가운데 《성 베드로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시는 그리스도》는 15세기 최고의 프레스코화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았다. 이 장면은 마태오 복음서 16장에서 그리스도가 하늘나라의 열쇠를 베드로에게 주었다는 내용을 참고한 것이다. 여기서 하늘나라는 18절에 나오는 교회를 가리키는 말이며, 열쇠는 바로 이러한 그리스도의 교회를 열고 닫을 수 있는 권한을 가리킨다. 즉 모든 권한을 상징한다. 본문에서 예수는 베드로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맡겼을 뿐만 아니라 이를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허락하였다. 그림을 보면 그리스도는 사도들과 시민이 지켜보는 광장의 한가운데 서서 한쪽 무릎을 꿇은 성 베드로에게 하늘나라의 문을 여는 열쇠를 엄숙하고 경건하게 건네주고 있다. 이들 두 사람을 에워싼 유다(그리스도의 왼편에서 다섯 번째)를 비롯한 다른 사도들과 페루지노의 자화상(오른쪽 가장자리에서 다섯 번째)을 포함해서 당시 페루지노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 뒤에는 넓은 광장이 보이고 그 광장 뒤편에는 육각형의 솔로몬의 성전이 보인다. 그 옆에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개선문을 상기시키는 문이 양쪽에 서 있다.
넓고 긴 광장 중간에는 어른과 어린이들이 스케이트를 타는 듯 놀고 있으며 건물 뒤편에는 멀리 보이는 산과 하늘의 구름이 드넓은 공간을 느끼게 펼쳐져 있다. 그림의 배경에는 페루지노의 치밀한 기하학적 구도와 투시도의 세밀한 계산이 깔렸다. 자세히 살펴보면 광장은 수많은 금빛 평행선과 수직으로 나뉘어 있고 그리스도와 성 베드로를 감싸는 중심선을 비롯한 수많은 수직선과 수평선은 사원의 정문 입구에 보이는 두 인물의 머리 위에서 만나는 원근법과 소실점을 이룬다. 통일된 효과를 위한 여러 개의 대기 원근법이 넓은 공간과 정확하게 균형 잡힌 인물들, 섬세한 하늘, 눈에 보이는 먼 풍경들을 기하학 선상에 모두 포함했다. 이 그림의 내용은 그리스도가 직접 성 베드로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맡기는 행위를 통해 교황이 처음부터 전체 교회에 대한 수위권을 물려받았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8]
보티첼리는 11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모세의 일생》, 《그리스도의 유혹》, 《코라[9]의 형벌》이라는 세 점의 벽화를 그렸다. 모세의 일생을 다룬 프레스코화는 《그리스도의 유혹》 반대편에 자리 잡고 있는데, 이 두 그림은 ‘유혹’이라는 주제로 상호 연관되어 있다. 이 그림은 젊은 모세가 출애굽기(탈출기)의 다양한 일화를 일곱 개로 통합해 4열의 대각선에 하나의 풍경화로 담아내고 있다.
그림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순서가 전개된다. 노란 옷을 입은 모세가 히브리 사람을 학대하는 데 분노해 이집트 사람을 죽이는 장면[10], 모세가 이집트와 가나안사이의 지역인 미디안으로 달아나는 장면[11], 모세가 우물에서 물을 길어 양 떼에 먹이려는 미디안의 제사장 르우엘 또는 이드로[12]의 딸들을 방해하는 양치기들과 싸우는 장면[13], 모세가 르우엘(이드로)의 딸들을 도와 우물에서 물을 길어 양떼들에 먹이는 장면[14],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 아래에서 하느님의 계시를 듣는 장면[15], 이집트에서 사백삼십년동안 노예로 살아오면서 탄압을 당했던 히브리 사람들을 약속받은 땅으로 이끄는 장면[16] 등이다.[17]
역시 보티첼리의 작품으로, 이 프레스코화는 하느님이 지정해 준 지도자 모세와 아론에 대해 코라의 선동에 설득된 히브리 사람들의 반란과 그 후의 선동자에 대한 하느님의 처벌을 묘사한 세 가지 이야기를 재현한 것이다. 코라는 모세를 시기하여 그의 권위에 대항해 정권을 잡으려고 했다가 하느님의 진노를 샀다. 모세의 권위는 하느님이 준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다탄과 아비람과 함께 땅에 삼켜지고 말았다.
그림에서 코라의 무리는 다시 자신들을 이집트로 데려가 줄 새로운 지도자를 요구하며, 모세에게 돌을 던지며 협박하고 있다. 여호수아가 그들 사이에 서서 온몸으로 막고 있다. 중앙 부분은 아론의 아들과 레위의 아들이 경쟁적으로 제물을 바치고 있다. 모세의 기도로 말미암아 향로들이 흔들리며 땅바닥에 떨어지고 있다. 그림의 왼쪽은 땅이 갈라져 모반자들을 삼키는 장면이며, 코라의 천진난만한 두 아들은 처벌을 면해 구름 위에 떠 있다. 개선문의 중심부에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모세와 아론을 제외하고 그 누구도 그 영광을 가져갈 수 없다.”라는 글귀가 비문으로 새겨져 있다. 이처럼 이 프레스코화는 하느님이 임명한 지도자에게 거스르는 이는 벌을 받으리라는 경고를 담고 있다.[17] 이 경고는 또한 그림 속에서 아론을 푸른 예복에 교황의 삼층관과 비슷한 푸른 황금빛 모자를 쓴 모습으로 묘사함으로써 당대의 정치적 주장이 포함되어 있다. 요컨대 교회에 대한 교황의 최고 권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경고성 메시지를 담은 것이다. 즉 교황의 지도력은 그리스도가 성 베드로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건네준 것에 기원하며 모든 교회 가운데 첫째 가는 지위를 보장받은 것이므로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았다는 것이다. 페루지노는 보티첼리의 프레스코화 바로 맞은쪽에 교황 지상주의 교리의 중요 요소로 이 그림을 그렸다.
《유혹을 당하시는 그리스도》 [ 편집 ]
이 그림은 보티첼리가 시스티나 성당에 교황 식스토 4세를 위해 그린 3점의 프레스코화 가운데 마지막 프레스코화로, 마태오 복음서에 기술된 그리스도가 악마에게 유혹을 당하는 세 부분의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그림에서 악마는 은수자로 둔갑해 있지만, 그리스도는 그가 오른쪽 위에 있는 진짜 모습을 드러날 때까지 멀리 내쫓고 있다. 그림의 전경은 성전 앞에서 유다인들이 고대의 관습에 따라 매일 제물을 바치는 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많은 사람이 동물과 식물들을 제물로 바치고 있고, 제사장이 피로 가득 찬 의식의 잔을 받고 있다. 유다인들의 희생 제사는 인류의 구원을 위해 죽음으로써 자신의 몸을 스스로 바쳤던 그리스도의 수난을 암시해주고 있다. 배경의 왼쪽 맨 위에 있는 산꼭대기에서는 그리스도가 돌을 빵으로 만드는 것을 시도하고 있고, 오른쪽에서는 세 명의 천사가 성찬을 위해 탁자를 준비하고 있다.[17]
미켈란젤로의 회화 [ 편집 ]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은 원래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금빛으로 빛나는 별들이 그려져 있었다. 1508년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는 교황 율리오 2세로부터 천장을 다시 칠하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작업은 1508년에 시작하여 1512년 11월 1일에 완료되었다. 그 후 미켈란젤로는 교황 바오로 3세의 의뢰를 받아들여 제대 위에 1535년부터 1541년까지 마지막 심판을 그렸다.[18]
자기가 의뢰받은 작업의 엄청난 규모에 미리 겁을 먹은 미켈란젤로는 율리오 2세가 접촉을 해온 처음부터 사양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는 자신이 화가라기보다는 조각가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자신의 능력 밖의 일인 그런 대규모 작업이 맡겨진 것은 정적들이 자신을 나락에 떨어뜨리려는 수작이라고 의심하였다. 미켈란젤로에게 있어 이 작업은 지난 수년간 대리석을 조각하는 것에만 몰두했던 기존의 작품 활동에서 탈피하는 것이었다.
미켈란젤로가 표현한 영감의 원천은 쉽게 결정된 것이 아니다. 교황과 아우구스티노회의 신학자들로부터 성경의 내용에 대해 많은 조언을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미켈란젤로가 조수들의 도움 없이 혼자서 자기 손으로 직접 작업을 했다고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몇몇 특정 그림들만 그가 그린 것으로 보인다.
천장 [ 편집 ]
이 부분의 본문은 이 부분의 본문은 시스티나 경당 천장화 입니다.
아담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하느님의 손.
1504년 시스티나 경당의 천장에 거대한 균열이 생기고 오래된 장식이 훼손되기 시작하자 천장을 새로 장식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1508년 5월 10일 교황 율리오 2세는 미켈란젤로에게 의뢰하여 천장을 새로 칠하는 작업을 맡겼다. 미켈란젤로는 4년에 걸쳐 비범한 재능을 발휘하여 이 거대한 천장화를 그렸다.[19]
시스티나 성당 천장 중앙에는 창세기의 장면을 프레스코로 재현한 아홉 점의 그림이 띠 형태로 그려져 있는데, 다섯 점은 크기가 조금 작다. 똑같은 생김새에 동적인 자세를 취한 남성 누드(이누디)가 각 모서리에서 작품들을 둘러싸고 있다. 이들은 모조 청동메달을 받치고 있는데, 메달들에는 사무엘기와 열왕기의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이 작품의 제작 순서이자 내용에 따른 연대기적 순서에 따르면, 첫 번째 여섯 작품은 빛과 어둠의 분리, 별의 창조, 땅과 바다의 분리, 아담의 창조, 하와의 창조, 원죄로서, 창세기 속 몇 가지 일화를 보여준다. 나머지 세 작품은 노아의 이야기로, 노아의 희생과 노아의 방주, 노아의 만취이다. 천장 중앙에서 하나의 띠를 형성하는 이 작품을 둘러싼 양 측면에는 일곱 명의 예언자와 다섯 명의 여사제의 그림이 있다. 예언자들과 여사제들 사이 천장과 벽이 만나는 곳의 삼각형 공간과 루네트에는 아브라함부터 성 요셉에 이르는 예수의 선조들을 그렸다. 그리고 사방의 펜던티브에는 청동뱀, 하만의 형벌, 다윗과 골리앗, 유딧과 홀로페네스를 그려 구세주의 언약을 암시하는 구약성경의 네 장면을 나타냈다.[20]
앞쪽 절반이 완성된 후, 시스티나 경당 천장화는 성당이 봉헌된 성모 승천 대축일을 기념하여 1511년 8월 15일에 부분적으로 공개되었다. 그리고 1년 후인 1512년 11월 1일 모든 성인의 축일에 마침내 천장화 제막식이 거행되었다.[21]
이 부분의 본문은 이 부분의 본문은 최후의 심판 (미켈란젤로) 입니다.
세련된 교양인이자 예술품 수집가였던 교황 바오로 3세는 미켈란젤로에게 시스티나 경당의 제대 위에 웅대한 《최후의 심판》을 그려줄 것을 주문하였다. 그래서 시스티나 경당의 천장화 작업을 마친 지 24년이 지난 1536년에 미켈란젤로는 다시 시스티나 경당의 장식을 맡게 된다. 새 프레스코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원래 있던 페루지노와 다른 화가들의 작품 세 점과 그 자신이 천장화를 마무리하면서 1512년에 그린 두 점의 루네트화를 없애야 했다. 미켈란젤로는 장엄한 장면과 잊을 수 없는 인물들을 골라 ‘심판’이라는 주제를 표현하였는데, 부분적으로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얻었다. 《최후의 심판》은 1541년에 완성되었다. 미켈란젤로는 맨 왼쪽 루네트를 그리고, 이어 순서에 따라 밑으로 내려가면서 프레스코를 그렸다. 최후의 심판이 모습을 보인 지 4년 뒤엔 1545년에 바오로 3세는 트리엔트 공의회를 소집하였다.[22]
미켈란젤로의 마지막 심판 상세도.
구성을 도식화하면 이 작품은 나란히 놓인 세 개의 띠로 이루어졌으며, 꼭대기의 두 루네트에는 날개 없는 천사들이 그리스도의 수난 당시 사용된 도구들을 들고 있다. 맨 아래 띠 왼쪽에는 종말 이후 죽은 이들의 부활이, 오른쪽에는 영원한 벌을 선고받는 이들의 영혼을 나르는 카론의 배와 이들을 심판하는 미노스가 있는 지옥이 그려졌다. 가운데 띠 중앙에는 심판의 나팔을 든 일곱 대천사들이 있고, 왼쪽에는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영혼들이, 오른쪽에는 지옥의 불로 떨어지는 영혼들이 그려졌다. 마지막으로 맨 위쪽 띠에는 성모 마리아 옆에서 구원자들의 무리에 둘러싸인 위엄있는 심판자로서의 모습을 한 그리스도가 있다.[23]
각주 [ 편집 ]
천지창조 외 – 시스티나성당 의 모든 것 1. 미켈란젤로의 천장화
천지창조 외 – 시스티나 성당의 모든 것 1. 미켈란젤로의 천장화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
2018년의 독일, 스위스, 프랑스의 알사스 지방, 베네룩스 3국
자동차 여행을 다녀온 뒤 원래 잡았던 계획은
2019년 40일 정도의 이탈리아 자동차 여행이었다.
그런데 세상만사가 내 마음먹은 대로 되면 얼마나 좋을까?
여러 가지 일로 여행은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올해, 2020년에도 여행은 아예 미룰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 사태가 이탈리아를 맹폭 중이라
여행은 아예 꿈도 꾸지 말아야 할 것 같다.
그러나 그대로 물러설 수는 없는 일,
2021년에라도 기회가 되면 추진하려고 하다 보니
여행지에 관한 정보라도 미리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 부활절을 맞았다.
사실은 내가 직접 찍어 놓았던 유럽 이곳저곳의 성화들을 모티브로 해서
부활절 동영상 앨범을 만들려고 하다가 그만 시점을 놓치고 말았다.
이왕 그렇게 된 것,
인터넷으로 르네상스 이전인 중세부터 있었던 화가들의 그림으로부터
하나하나 수집해서 미술 사조에 따른 분류작업을 하기 시작했는데
워낙 방대한 것이라 결코 짧은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르네상스 화가들의 작품들을 화가 별로 하나하나 정리해나가던 중
마주친 것이 바로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
르네상스의 거장 미켈란젤로의 그 유명한 천장화 ‘천지창조’와
제단 뒤편의 벽화인 ‘최후의 심판’이 있는 바로 그곳이다
이탈리아 여행을 하려면 절대 빠뜨릴 수 없는 로마와 바티칸.
그중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곳이 시스티나 성당이 된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바티칸에서도 유일하게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는 곳,
들어가서는 말 한 마디도 뻥끗해서는 안된다는 곳,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그림들이라고 일컬어지는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과 천지창조가 그려져 있는 곳.
말로만 알고 몇 가지 단편적인 그림들만 머릿속에
얼기설기 얽혀 있는 그곳을 자세히 알고 싶었다.
이 예배당의 성화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싶었다.
나중에 가더라도 그 그림들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은 천지차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준다는 의미 외에도
혹시라도 시스티나 성당에 가는 사람들이
이 글을 읽고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서이기도 하다.
그래서 남은 결과가 지금부터의 내용들이다.
두 번에 나누어서 싣기로 한다.
여기에서는 시스티나 성당의 연혁에 대해서는 짧게 줄이고
주로 시스티나 성당에 그려진 성화들 위주로 소개할 생각이다.
1477년부터 1480년, 교황 식스투스 4세 (Sixtus IV 재위 1471~1484)가
옛 예배당이었던 카펠라 마그나(대예배당)를 재건하는데
그의 이름에서 따와서 시스티나 성당이라고 이름 붙여진 것이다.
길이 40.23m 폭 13.41m 높이 20.73m로 솔로몬이 지은
옛 예루살렘 성전과 같은 크기라고 한다.
이곳에서는 현대에도 가톨릭교회의 종교행사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가 열리는데
교황의 선출 의식인 콘클라베(Conclave)가 바로 그것이다.
전체적인 구조를 알기 위해서 일단 바티칸 박물관 홈페이지에서
버츄얼 투어를 하면서 몇 장을 스크랩해서 가져와 본다.
시스티나 성당에는 동쪽의 출입문을 통해서 들어가게 된다.
출입문을 들어가면 아래 사진과 같은 광경이 펼쳐진다.
천장과 모든 벽면에 빈 틈이 없이 채워진 프레스코화로
눈을 어디에 고정시켜야 될지 모를 정도이다.
예배당의 가운데를 나눈 칸막이를 지나서 안으로 더 들어가면
이런 광경이 된다.
이 모든 그림들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걸까?
원래 조각이 본업이었던 미켈란젤로가 어떻게 해서
자기의 주전공인 조각 제품이 아니라 부전공 격인 회화 작품,
그것도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미술작품 중 하나라고 일컬어지는
‘최후의 심판’과 ‘천지창조’를 한 공간 안에 남길 수 있었는가?
정면인 제단 뒤편인 서쪽 벽에 그려진 그림이 바로
누구나 그 이름을 들어 봤을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이다.
우측인 북쪽 벽에는 예수님과 관련된 그림들,
남쪽 벽에는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의 일생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고개를 들면 눈에 들어오는 천장화가 바로 ‘천지창조’이다.
시스티나 성당의 재건 당시에는 이 천장에는
르네상스 화가 피에르 마테오 다 아멜리아가
별이 빛나는 하늘을 그려 놓았다고 한다.
미켈란젤로는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요청을 받고
1508년부터 1512년까지 4년에 걸쳐 원래의 그림이 있던 천장에
프레스코화 ‘천지창조’ 등 현재 남아 있는 그림들을 그린 것이다.
출입문 쪽을 뒤돌아보면 역시 성화로 채워져 있다.
시스티나 성당의 그림 중 천장화를 먼저 보기로 한다.
이 장면 하나하나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천장화에 직접 설명을 붙여보았다.
천장화의 중심 부분은 9개의 구획으로 나뉘어 있다.
이 아홉 개의 구획에는 구약성경 창세기의 몇 장면이 그려져 있는데
그 장면들을 하나하나 뜯어서 파란색으로 제목을 붙여본다.
최후의 심판이 있는 서쪽으로부터
창세기에 나오는 천지창조의 몇 가지 과정과
노아와 대홍수와 관련된 사건까지…
천지창조의 아홉 가지 그림의 4면 바깥으로 그려진 그림들은
역시 구약성경에 나오는 선지자 7명과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5명의 무녀이자 예언가들이다.
네 귀퉁이의 펜던티브(Pendentive)에는
구약성경(한 곳은 외경이지만)에 나오는 네 장면을 그려 놓았다.
그리고 다시 그 외곽으로는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 상의 선조들과 가족들이 그려져 있다.
먼저 중심에 있는 아홉 개의 그림을 보자.
처음 세 그림은 천지의 창조,
다음 세 그림은 인간의 창조와 섭리,
다음 세 그림은 홍수를 통한 인간의 심판이다.
그런데 9개의 그림은 하나씩 번갈아가며
좌우로 긴 그림과 짧은 그림이 교대로 나온다.
짧은 그림은 짧은 대신 그림마다 네 귀퉁이에
이그누도(Ignudo : 나체의 젊은 남자)들을 배치하고
동그란 원(메달리온 Medallion)에 성경의 장면을 그려 넣어서
각 그림의 길이의 밸런스를 맞추어 놓았다.
중앙 1 ‘빛과 어둠을 나누심’
창세기 1장 4절~5절, 천지창조의 첫째 날의 장면이다.
4.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5.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미켈란젤로는 이 그림을 단 하루 만에 완성했다고 하는데
위에서 설명한 대로 짧은 그림이라서
네 귀퉁이에 젊은 남자의 나체인 이그누도(Ignudo)와
두 개의 메달리온이 있다.
사진 상 거꾸로 보이는 메달리온은
아들 이삭을 번제의 제물로 드리려는 순간의 아브라함(창세기 22장)이고
아래의 메달리온은 승천하는 엘리야(열왕기하 2장)이다.
다음의 두 그림은 성경의 순서와는 뒤바뀌었는데
미켈란젤로가 왜 그렇게 했는지는 잘 모를 일이다.
중앙 2. ‘ 해와 달과 별을 만드심’
창세기 1장 16절
‘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하나님의 오른손은 해를, 왼손은 달을 가리키고 있다.
중앙 3. ‘땅과 바다를 만드심’
창세기 1장 9절~10절
9.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0.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조의 셋째 날, 하나님이 물과 뭍을 나누는 장면이다.
위의 두 번째 장면과 시계열 상의 순서가 바뀌었다.
사진 상 오른쪽 메달리온에는 다윗왕의 아들로 반란을 일으킨
압살롬이 자신의 자랑거리였던 긴 머리카락이 나무에 걸려
매달려 있는 장면(사무엘하 18장)이다.
왼쪽은 지워졌거나, 미완성인 작품이다.
중앙 4. ‘아담을 만드심.’
창세기 1장 27 절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2장 7절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천지창조의 그림 중 가장 극적인 장면이라고 일컬어지는 네 번째 그림
‘아담의 창조’이다.
하나님의 오른손과 아담의 왼손이 닿아 생기가 전달되는 장면인데
성경에는 ‘그 생기를 코에 불어넣으시니…’라고 되어 있다.
중앙 5. 하와(이브)를 만드심.
창세기 2장 21~22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깊이 잠든 아담과 아담의 옆구리로부터 나오는 하와…
역시 네 귀퉁이에는 이그누도가 그려져 있고
좌측의 메달리온은 열왕기하 10, 11장의
바알 선지자들을 죽이는 장면으로 보이고
오른쪽은 선지자 나단이 다윗왕의 간음과 살인을
책망하는(사무엘 하 12장) 장면이다.
중앙 6. ‘타락과 추방’
창세기 3장
이 그림은 두 가지 장면으로 구분된다.
하나는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에 빠져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려는 장면이요
또 하나는 그 결과 에덴동산으로부터 추방되는 장면이다.
성경의 본문은 여기에 옮기지는 않지만
인간의 원죄가 발생하는 장면이 바로 이 장면인 것이다.
그림에서 뱀은 뱀의 하반신과 인간의 상반신을 하고 있다.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한 이후
남자는 평생에 수고하고 얼굴에 땀을 흘려야 그 소산을 먹을 수 있는 벌,
여자는 임신하고 자식을 낳는 고통과 남편에게 다스림을 받는 벌을 받게 된다.
뱀은 사람과 원수가 되고 사람들에게 머리를 상하는 벌을 받는다.
중앙 7. ‘노아의 번제’
이 그림도 시계열 상 다음의 그림과 순서가 뒤바뀌어 있다.
창세기 8장 20절~22절
20.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21.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22.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대홍수가 지난 후 노아는 하나님께 번제를 드린다.
이 그림에도 네 귀퉁이에는 이그누도를 배치하고
메달리온을 두었다.
왼쪽 메달리온은 바알 신상을 파괴하는 장면(열왕기하 10장, 11장)
오른쪽은 우리아의 죽음(사무엘하 11:15)
이스라엘 역사상 최고의 영웅 다윗왕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의 목욕하는 모습을 보고 궁으로 불러 간음을 하고
밧세바가 임신을 하자 전방에서 블레셋과 싸우던
남편 우리아를 불러서 동침시켜서 비밀을 유지하려 하나
충성된 장수 우리아는 전쟁 중의 군인이 그럴 수 없다고 하여
다윗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다시 전쟁터로 나간 우리아는 다윗이 우리아의 상관 요압에게
내린 비밀 지시로 최전방에 나가 싸우다 전사한다.
나중에 다윗의 비가 된 밧세바는 솔로몬 왕을 낳는다.
저 위에 나단 선지자에게 책망받는 다윗왕이 그려진 메달리온은
이 간음의 결과인 것이다.
중앙 8. ‘대홍수’
창세기 6장~8장
사람들의 죄악과 노아의 방주 제작에 이은 대홍수의 장면이다.
이 그림에서 노아의 방주는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모양이 아니라
집 모양의 방주인 것이 특이하다.
홍수의 예언에 대해서 비웃음으로 조롱했던 사람들이
막상 홍수가 시작되니 여러 가지 모양으로 발버둥 치고 있다.
중앙 9. ‘ 노아의 술 취함과 수치’
창세기 9장 20절~27
20.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21.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22.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23.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24. 노아가 술이 깨어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25.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26. 또 이르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27.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대홍수 후 포도주에 취해서 벌거벗고 잠이 든 노아.
세 아들 중 그 수치를 까발개버린 함을 저주하여
그 형제들의 종이 되리라고 하고
허물을 덮었던 두 아들 셈과 야벳을 축복한 노아…
역시 네 귀퉁이의 이그누도 와 두 개의 메달리온.
왼쪽 메달리온은 이스라엘의 요람 왕의 죽음(열왕기하 9장).
오른쪽은 요압이 아브넬을 기습하여 죽임.(사무엘하 3장)
지금까지의 그림들이 천장 중앙의 아홉 구획에 그려진
창세기의 천지창조와 관련된 그림들이다.
다음은 중앙의 아홉 구획을 둘러싼 일곱 명의 선지자들과
로마 신화에 나오는 다섯 명의 Sibyl (무녀 또는 여 예언자)들이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일곱 명의 선지자들을 여기에 그린 이유는 알겠는데
이방의 종교인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신전에서
이방의 신들을 섬기는 무녀를 여기에 그린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은 어떤 형태로든 새로운 구원자가 오심을 예언한 이유로
이곳에 그려졌다고 한다.
아래의 빨간색의 글로 표시한 그림들 중
네 귀퉁이의 그림들을 제외한 그림들이다.
동쪽 출입문 위에 배치된 사람이 선지자 스가랴.
구약성경 39권 중 마지막에서 두 번째인 스가랴서의 기자이다.
스가랴는 ‘여호와께서 기억하신다’라는 뜻이다.
스가랴서 9장 9절에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라고 쓰여 있다.
구원을 베푸시는 왕, 즉 메시아의 예언자로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님의 예언자로서
이 성당의 천장화에 등장하는 것이다.
바벨론 포로 시절 바벨론에서 태어나 바사(페르시아) 왕
고레스(키루스 2세)의 본국 귀환 조치로 본국인 유다로 돌아오고
할아버지 잇도의 뒤를 이어 제사장이 되었다.
스가랴에서 시계방향으로 다음이
델포이의 시빌(Sibyl : 라틴어 Sibylla 시빌라)이다.
시빌이란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신탁을 받는 여 예언자 또는 무녀를 말한다.
이곳의 델포이 시빌은 트로이 전쟁(BC 11세기)의 이전의 신화적인 시빌로서
델포이의 아폴로 신전의 무녀 피티아(BC 8세기)보다
시기적으로 이른 것으로 되어 있다.
선지자 이사야
구약성경 이사야서의 기자로 대선지자 네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이사야라는 이름은 ‘주께서 구원하신다’라는 뜻이다.
총 66장에 달하는 이사야서는 선지서 중에서 가장 방대한 예언을 담고 있다.
메시아의 출현을 가장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예언한 선지자이기도 하다.
이사야서 7장 14절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사야서 9장 6절~7절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서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11장 1절~4절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11장 10절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이 외에도 많은 예언이 있으나 이 지면에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쿠마에의 시빌(Cumaean Sibyl)
나폴리 근교를 본거지로 했던 시빌로서 구원자의 출현을 예언했다고 한다.
그 내용이 로마의 시인 버질(비르겔리우스)의 에클로그(Eclogue)에
기록되었다고 하는데 아첨꾼들에 의해 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로
비정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 구원자는 나중에 기독교도들에 의해 예수님과 동일시되었다는 것이다.
선지자 다니엘
구약성경 대선지자 중 한 사람인 다니엘서의 기자이다.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의 유다 1차 침략 시(BC605)에
포로로 잡혀간 젊은이로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꿈을
해몽한 공으로 바벨론 온 지방을 다스리는 관리가 되었다.
세 친구와 함께 바벨론의 우상을 섬기지 않은 죄로
풀무불에 던져졌으나 죽지 아니하였다.
바벨론이 바사에게 멸망한 후 총리 세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가
다시 전국을 다스리는 총리가 되었으나
모함에 빠져 사자굴에 던져졌음에도 살아난다.
다니엘서의 후반부는 예언으로 채워져 있다.
리비아의 시빌
이집트 서부 사막의 시와(Siwa) 오아시스에 있는
제우스-아몬 신전의 무녀이다.
포세이돈의 딸인 라미아의 딸이라고 한다.
알렉산더가 이집트를 정벌했을 때 이 무녀로부터
그가 위대한 정복자로서 이집트를 지배하게 된다는
예언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출입구 맞은편 최후의 심판 위에 자리한 선지자는
구약성경 요나서의 주인공인 선지자 요나이다.
요나의 그림에는 물고기가 등장한다.
요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당시의 앗수르(앗시리아)의 수도
니느웨로 가서 (사람들이 회개하도록) 외치라는 사명을 받았으나
그 명령을 거역하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다가
폭풍을 만나서 배가 파선할 지경에 이른다.
제비뽑기 끝에 바다에 던져졌으나 큰 물고기에 삼켜져서
밤낮 삼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다가 회개하여
육지로 토해진다.
다시 니느웨로 가서 니느웨 백성들을 회개시킨다.
선지자 예레미야
구약성경 예레미야서와 예레미아 애가의 기자로서
‘눈물의 선지자’로 불린다. 대선지자 중 한 사람이다.
유다 백성들의 우상숭배와 죄악으로 큰 재앙이 임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눈물로 기도한 선지자이다.
예레미야서에 기록된 메시아에 대한 예언은 23장에 나온다.
23장 5절~6절
5.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다윗의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6.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받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 것이며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페르시아의 시빌
페르시아의 시빌은 바빌론의 시빌, 또는 히브리의 시빌이라고도 한다.
알렉산더 대왕의 위업을 예언했다고 하며
노아의 후손이라고도 한다고 되어 있다.
선지자 에스겔
대선지자 중의 한 사람으로 에스겔서의 기자이다.
에스겔은 BC 597년 바벨론의 예루살렘의 침공 시에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갔다.
유다 왕국의 멸망을 예언하며 회복을 외쳤지만 결국 유다는
바벨론의 3차 침공으로 BC586년에 멸망하고 만다.
바벨론에서도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을 주장한다.
열방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성전의 회복, 회복된 예루살렘, 이스라엘의 회복 등을 통해
새로운 질서가 올 것이라고 선포한다.
에리트라이의 시빌(Erythraean Sibyl)
에게해의 이오니아에 있는 에리트라이(Erythrae)의 시빌이다.
에리트라이 시빌은 한 사람 이상이며
적어도 한 사람은 바벨론의 남쪽 갈대아 출신이라고 한다.
에리트라이 출신의 고대 그리스 작가 아폴로도루스에 따르면
그 고향 출신인 시빌이 트로이 전쟁과 트로이의 멸망을
예언했다고 한다.
에리트라이 시빌의 예언은 아크로스틱(여러 행의 첫 글자를 모아서
하나의 뜻이 되도록 하는 시)을 사용했다고 하며
그의 예언 중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 십자가’라고
함으로써 구세주를 예언했다고 한다.
선지자 요엘
구약성경 요엘서의 기자이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음과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을 강조한다.
유다는 영원할 것이며 예루살렘도 대대로 존재할 것이라고 하였다.
천장화 중 네 귀퉁이에 있는 그림들은 구약성경(외경 포함)에 나오는
이스라엘 민족이 기적적으로 구원을 받는 순간에 대한 그림들이다.
출입문 위의 그림은 골리앗의 목을 베는 다윗과
외경 유딧서에 나오는 유딧(유디트)이 아시리아(앗수르)의 장군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고 난 장면이다.
다윗이 골리앗을 물맷돌로 때려눕히고 목을 베는 장면(사무엘상 17장)
이스라엘의 소년 다윗과 블레셋의 거인 장군 골리앗의 이야기는
워낙 유명한 이야기라 여기에서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어 쟁반에 담고 가는 유딧(유디트).
구약성경의 외경 유딧기에 나오는 이야기로
아시리아(앗수르, 앗시리아)의 임금 네부카드네자르(느부갓네살)의
대장군 홀로페르네스를 보내 배 툴리아 성읍을 공격했는데
이 성에 살던 젊은 과부 유딧이 시녀와 함께 적진에 찾아가서
위계로 술에 취한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었다는 이야기이다.
많은 서양화가들의 그림의 소재가 된 사건인데
오류가 하나 발견된다.
유딧기에 아시리아의 왕이라고 나오는 네부카드네자르는
아시리아의 왕이 아니고 유다 왕국을 멸망시킨 바벨론의 왕인 것.
서양화가들의 그림에서 목이 잘린 사람의 그림이 나오는 것은
열이면 열 모두 다윗과 골리앗, 또는 세례 요한,
아니면 유딧과 홀로페르네스가 그 소재라고 보면 된다.
출입문 맞은편 최후의 심판이 그려진 벽과 천장 사이의 두 귀퉁이에는
모세와 놋뱀의 이야기와 하만의 처형이 그 소재이다.
모세와 놋뱀
모세와 놋뱀의 그림은 구약성경 민수기 21장의 사건을 그린 것이다.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으로 가는 도중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그마한 위기나 불편이 있으면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한다.
대부분의 경우 하나님은 이런저런 방법으로
백성들의 원망을 해결해주셨는데 이 경우에는 다르다.
놋뱀 사건은 에돔 땅을 우회하여 먼 광야 길로 우회하려고 하자
백성들이 먹을 것도, 물도 없는 곳으로 인도해서 죽게 하려는가,
그리고 이제껏 광야에서 내려주신 만나와 메추라기를
하찮은 음식이라고 싫다고 모세에게 불평을 하는 데서 비롯된다.
에에 진노하신 하나님이 불뱀을 보내서 많은 자가 물려 죽었다.
백성들이 모세에게 자신들이 범죄함을 시인하여
모세가 백성들을 위해서 기도한 결과,
하나님께서 주신 해결책이 놋뱀을 만들어서 뱀에 물린 자들이
놋뱀을 보면 살 수 있게 하신 것이다.
놋뱀은 구원의 관점에서 흔히 예수님의 십자가에 비견되기도 한다.
하만의 처형
에스더서 7장의 이 이야기는 기독교인이면 누구나 잘 아는 이야기이다.
유다인 포로의 후예인 고아 처녀 에스더는 사촌 오빠인 모르드개의 주선으로
바사(페르시아) 왕국의 왕 아하수에로(크세르크세스 1세)의 왕비가 된다.
당시의 총리대신이었던 하만은 자기에게 절을 하지 않는 모르드개로 인하여
모르드개의 민족인 유다인을 모두 죽일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된다.
모르드개로부터 이 일을 알게 된 에스더는 유명한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말을 하며 왕에게 나가기를 결심한다.
당시 아하수에로 왕의 절대 권력은 워낙 강해서
왕에게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왕께 나아가는 경우 죽이는 것이 법이었다.
왕이 금 규(왕이 손에 쥐는 홀)를 내미는 경우에는 살 수 있었다.
비록 왕비이지만 왕에게 부름을 받은 지 삼십 일이 된 에스더도
부름을 받지 않고 왕에게 나아가는 경우 목숨이 위태롭기는 마찬가지였다.
죽을 각오를 하고 왕에게 나아간 에스더를 왕은 받아들였고
잔치에 왕과 하만을 초대한다.
왕은 이전에 모르드개가 반역의 음모를 발견하여 반역을 막은
역대 일기를 보고 하만에게 명령하여 모르드개를 높이게 한다.
왕과 하만은 에스더가 초대한 잔치에 참여하고
잔치에서 상황은 역전되어
모르드개를 매달려고 하만이 준비한 장대에 오히려 하만이 달려 죽는다.
죽음을 각오한 에스더가 온 유다 민족을 살린 것이다.
천장화에서 위에서 올리지 못한 가족 부분은 그 아래 벽화의 제일 윗줄
예수님의 조상의 그림과 관련이 있어서 아래에 같이 올린다.
먼저 벽의 제일 상단에 그려져 있는 예수님의 조상들을 보기로 한다.
이 조상들은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에 따른 그림들이다.
이 그림들은 모두 천장 바로 아래, 벽의 최상단에
반원형의 구도로 그려 넣었다.
미켈란젤로는 1508부터 1512년 4년 간 천장화를 그린 후
24년이 지난 1536년부터 1541년까지 교황 바오로 3세의 명으로 벽화인
‘최후의 심판을 그렸다.
원래 미켈란젤로가 천장화를 그리면서 그렸던 예수님의 족보 상
제일 처음에 나오는 아브라함부터 이삭, 야곱, 유다의 그림과
그다음의 베레스, 헤스론, 람이 그려진 그림 위에
최후의 심판의 제일 위의 두 그림-십자가와 고난의 도구들-을
덧칠해 그려 넣었다.
따라서 족보 중 가장 위의 7대의 그림은 없어져 벼렸다.
그러나 당시의 그림을 필사한 것이 남아 있어서 그 모습은 볼 수가 있다.
조상 1 : 아브라함, 이삭, 야곱, 유다 (마태복음 1:2)
조상 2 : 베레스, 헤스론, 람 (마태복음 1:3)
8 대부터인 아비나답부터 마지막 4대를 빼고는 남쪽과 북쪽 벽을 번갈아가며,
그리고 마지막 4대는 출입구 위인 동쪽 벽에 그려 내었다.
조상 3 : 아미나답 (마태복음 1: 4 )
조상 4 : 나손 (마태복음 1: 4)
조상 5 : 살몬, 보아스, 오벳 (마태복음 1: 4 ~5 )
조상 6 : 이새, 다윗, 솔로몬 (마태복음 1:5~6)
다윗과 솔로몬은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왕이다.
조상 7 : 르호보암, 아비야 (마태복음 1:7)
이스라엘은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 왕부터 남북으로 분열되어
북쪽은 이스라엘 왕국, 남쪽은 유다 왕국이 된다. (BC931년)
이스라엘 왕국은 앗수르(앗시리아)에게 멸망당하고(BC 722년)
유다 왕국은 바벨론(바빌로니아)에게 멸망당한다.(BC586년)
조상 8 아사, 여호사밧, 요람(마태복음 1: 7~8)
조상 9 웃시야, 요담, 아하스(마태복음 1: 8~9)
조상 10 히스기야, 므낫세, 아몬(마태복음 1:9~10)
조상 11 : 요시야, 여고냐, 스알디엘 (마태복음 1:10~12)
마태복음의 1장의 기록에서는 요시야 왕이
여고냐와 그의 형제들을 낳은 것으로 기록되었고
여고냐는 바벨론에 잡혀간 것으로 되어 있다.
역대상 3장 15~17절에는 요시야 왕의 아들들이 요하난,
여호야김, 시드기야, 샬롬이고
여호야김의 아들들이 여고냐와 시드기야이다.
열왕기하 24장과 역대하 36장의 기록에서는
요시야왕의 아들은 여호야김 왕, 그 아들은 여호야긴 왕이다.
여호야긴 왕이 바벨론으로 잡혀간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니
여호야긴 왕과 여고냐는 동일인물이다.
아마도 마태가 마태복음의 족보를 쓰면서 아브라함~다윗,
다윗~바벨론 유수, 바벨론 유수~예수님의 대수를
각각 14대로 맞추다 보니 여호야김 왕이 누락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솔로몬 왕의 아들 르호보암부터 여고냐까지는
유다 왕국의 왕이었다.
조상 12 스룹바벨, 아비훗, 엘리아김(마태복음 1:12~13)
조상 13 아소르, 사독(마태복음 1: 13~14 )
조상 14 아킴, 엘리웃(마태복음 1: 14)
조상 15 : 엘르아살, 맛단(마태복음 1: 15)
위의 개략도에서 보듯 조상 15와 16은 출입구 위벽에 그려져 있다.
조상 16 : 야곱, 요셉(마태복음 1:15 ~16 )
가족도
위에 정리한 개략도의 표시한 대로 대로 조상 5부터 조상 12까지의
반원형의 조상 그림 위의 천장에는 삼각형의
spandrel(공복: 아치 천장과 기둥이 이루는 삼각형 면)에
아이들이 포함된 가족들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 그림들에 대해서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의견이 갈리는 모양이다.
한 견해는 각 조상들의 가족들의 그림이라고 하기도 하고
또 하나의 견해는 두 그림을 제외하고는 아기 예수님의 가족이
헤롯왕의 학살을 피해서 애굽으로 가는 여정의 그림이라고 한다.
살몬, 보아스, 오벳의 위 스팬드럴에 그려진 가족화 (가족 1)
위의 두 번째 의견에서는 이 그림이 아들 사무엘을 위해서
옷을 만드는 어머니 한나의 모습이라고 한다.
이새, 다윗, 솔로몬 위의 스판드렐.
르호보암, 아비야 위의 스판드렐
아사, 여호사밧, 요람 위의 스판드렐
웃시아, 요담, 아하스 위의 스판드렐
히스기야, 므낫세, 아몬 위의 스판드렐
스룹바벨, 아비훗, 엘리아김 위의 스판드렐,
요시야, 여고냐, 스알디엘 위의 스판드렐
시스티나 성당의 그림들은 세월이 지나면서 탈색되고 노후화되어서
1979년부터 1994년까지 복구작업을 벌여서
원래의 모습에 가깝게 재현되었다.
이상으로 미켈란젤로가 그린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모두 둘러보았다.
최후의 심판을 비롯하여 사방을 두르고 있는 벽화는 다음 편에 올린다.
계속합니다.
다음 블로그 ‘옛정자 그늘.’
http://blog.daum.net/oldpavilion
파빌리언
* 본 글의 사진과 내용들은 신구약성경(개역개정판)과
바티칸 박물관 홈페이지의 시스티나 성당,
위키피디아 영어판, Wikiart, 기타 사이트 등을 참고해서
재구성, 정리한 것임을 알려 드립니다.
시스티나 성당의 미켈란젤로 천지창조 순서와 최후의 심판 어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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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바티칸 시국에 가면 관광객들이 꼭 방문하는 곳 중의 하나가 바티칸 박물관이다. 박물관 자체도 볼거리가 많지만 바티칸 박물관은 시스티나 성당과 연결이 되었다.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을 가득 채운 미켈란젤로의 세계 최대 천장화가 있는 곳으로 신에 대한 존경심을 담아 성경에 나온 일화들을 천장 벽화로 표현한 것이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이다.
천지창조 그림의 탄생 배경
평소 자신을 조각가로 여긴 미켈란젤로였고 그림을 한 번도 그려 본 적이 없는 미켈란젤로였는데 성당에 그림을 그린 이유는 1508년 시스티나 천장에 금이 가기 시작하자 보수 공사를 위해 교황은 건축가 브라만테에게 천장 보수공사를 의뢰한다. 그러자 미켈란젤로의 명성을 시기하여 조각이 아닌 그림을 그리도록 추천한 인물이 바로 브라만테였다. 미켈란젤로는 그의 질투로 그림을 그리게 됐다. 처음에 미켈란젤로는 거절하지만 교황 율리우스 2세의 고집을 꺽지 못했다. 결국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를 그리게 됐다.
그러나 공포감이 들 정도로 무서운 높이의 천장에 불편한 자세로 그림을 그렸던 미켈란젤로는 떨어지는 물감에 맞고 등에 욕창이 생기는 등 곤욕을 치렀고 그 와중에 교황은 계속 찾아와 그림의 완성을 재촉하니 천장화 속에 율리우스 교황 2세를 그린 후 미켈란젤로는 그림으로 손가락 욕을 하며 복수를 했다.
천지창조 그림 속 교황 율리우스 2세
4년의 작업 기간 동안 둘 사이의 애증은 계속됐고 마침내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완성한다. 한 번도 그림을 그린적이 없는 조각가 미켈란젤로가 처음으로 그린 그림이 세계 최고의 회화작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천지창조 순서 알아보기(Genesis, 1508~1512)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벽화 중 가장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그림의 가장 중요한 9가지 내용으로 구성된 천장 한가운데 그려져 있는 그림이다. 창세기의 중요 9장면을 그려놓았다.
시스티나 성당 9개의 천지창조 장면
시스티나 성당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 세계 최대의 벽화로 성서의 천지창조 순서를 반대로 그려 놓았다고 한다.
1. 빛과 어둠의 창조 2. 해와 달과 땅의 창조
3. 땅과 물의 분리 4. 아담의 창조 : 하느님이 아담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찰나를 묘사한 찰나의 이미지 5. 이브의 창조
6. 아담와 이브의 추방
7. 노아의 변제 8. 대홍수 9. 술에 취한 노아
최후의 심판 ( 1535~1541년)
미켈란젤로 나이 60세에 교황 파울루스 3세가 다시 한번 천장화를 의뢰하고 미켈란젤로가 6년 동안 그려서 완성한 것이 최후의 심판이다.
시스티나 성당 제단 위 벽에 그린 최후의 심판 그림
초반에 미켈란젤로는 벽화의 사람들을 모두 나체로 그렸다. 그로 인해 논란이 일자 그 후 다시 옷을 입혔다는 일화가 있다.
최후의 심판
최후의 심판은 크게 5 부분으로 구분되는데 천상계, 튜바 부는 천사들, 죽은 자들의 부활, 승천하는 자들, 지옥으로 끌려가는 무리들로 테마가 구성되어 있다.
최후의 심판은 인간의 형상을 한 약 400명의 존재들을 표현한 걸작이다.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예술적 능력을 신이 부여한 것으로 여기며 계속 그림을 그렇고 그림 그리는 동안 장화를 계속 신고 있다 보니 살과 붙은 장화로 살점이 뜯겨나갈 만큼 죽을 때까지 그림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출처 선녀들 17회 일부, 방구석1열, 세계테마여행]반응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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