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5 윌렘 드 쿠닝 여인 The 153 Latest Ans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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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렘 드 쿠닝 (1904~1997)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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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렘 드 쿠닝 (1904~1997)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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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근준(이정우) | leftovers of the contemporary | 2004- : 윌렘 드 쿠닝의 «여인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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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근준(이정우) | leftovers of the contemporary | 2004- : 윌렘 드 쿠닝의 «여인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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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 5위 [윌렘 드 쿠닝_여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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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 5위 [윌렘 드 쿠닝_여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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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 5위 [윌렘 드 쿠닝_여인3]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 5위 [윌렘 드 쿠닝_여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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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 5 윌렘 드 쿠닝 / 여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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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 5  윌렘 드 쿠닝 / 여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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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 쿠닝 – 여인Ⅰ(WomanⅠ 1950-52) <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안산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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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 쿠닝 – 여인Ⅰ(WomanⅠ 1950-52) <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안산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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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졌던 ‘1840억원짜리’ 작품, 37년 만에 대중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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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졌던 '1840억원짜리' 작품, 37년 만에 대중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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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표현주의의 위대한 거장 윌렘 드 쿠닝 WILLEM DE KO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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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표현주의의 위대한 거장  윌렘 드 쿠닝 WILLEM DE KOO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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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 쿠닝作 「여인」,올 세계최고 120억에 팔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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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5월 01일 윌렘 드 쿠닝의 «여인 I»

«여인 I(Woman I)»

1950-1952년

캔버스천에 목탄과 에나멜과 유채

192.7 x 147.3 cm

[임근준의 20·21세기 미술 걸작선: 윌렘 드쿠닝 VS 프랜시스 베이컨] 윌렘 드 쿠닝의 «여인 I»

1953년 3월 시드니재니스갤러리에서 윌렘 드쿠닝(Willem de Kooning, 1904 -1997)의 개인전이 개막했을 때, 미국현대미술계는 크게 술렁였다. 과감한 붓놀림으로 캔버스 화면에 폭력을 행사한 거처럼 뵈는 ‘여인(Woman)’ 연작이, 형상을 다룬 새로운 추상표현주의였던 탓이었다. 잭슨 폴락(Paul Jackson Pollock, 1912-1956)의 전면추상화—특히 1947년부터 1950년 사이에 제작된 이른바 ‘액션 페인팅’ 작품들—를 회화의 최종적 진보 형태로 간주하던 당시의 어떤 암묵적 합의를 정면에서 부정한 셈이었고, 이 새로운 국면의 도래에 관해 평론가와 미술사학자들은 앞 다퉈 저마다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비고: 1952년 잭슨 폴락이 소속 화랑을 시드니재니스로 옮겨 개인전을 열었던 터라, 자연 비교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여인’ 연작은 상당한 속도감을 과시하는 야만적이고 성마른 붓놀림으로 가득했고, 마치 물감으로 범벅이 된 바탕에서 어떤 형상이 솟아오르거나, 혹은 ‘눈속임의 재현’이 될 생각이 없는 어떤 여성의 형상이 재차 (추상화 형태의) 바탕으로 통합되는 것만 같았다. 색상도 상스러울 정도로 화려해서, 예전에 봤던 명상적 성격의 유럽풍 추상화 경향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훗날 페미니스트 평론가들은, ‘악명 높은 바람둥이 남성 화가의 회화적 강간 범죄 현장을 목도한 것만 같다’는 불쾌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1926년 배편으로 미국에 밀입국한 드쿠닝은, 1940년대 뉴욕의 추상표현주의 화단에서 점차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네덜란드 로테르담 태생 중년 화가의 그림에선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 애쉴 고르키 등을 모방한 티가 역력했다. 이 사람이 미술계에서 화가로 존중받게 된 것은, 1948년 여름 거장 요제프 알버스(Josef Albers)의 초청으로 블랙마운틴칼리지에서 학생을 가르치면서부터다. 1950년-1951년 양해 동안은 예일대학교 미대에도 출강했고, 또 1950년엔 16명의 동료 추상표현주의 화가들과 함께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공개 항의 서한—“진일보한 미술”을 적대시한다는 비난을 담은—을 보내기도 했다.

드쿠닝이 문제작 «여인 I(Woman I)»을 그리기 시작한 때는 1950년 6월, 이미 나이 마흔하고도 일곱이었다. «발굴(Excavation)»(1950)이란 (의미심장한) 전면추상화를 완성한 직후, 그는 야심찬 회화 실험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추상이 된 화면에 다시 여성 누드의 형상을 소환하는 새로운 방법을 개척한다는 게 목표였다. 틀에 고정하지 않은 캔버스 천을 작업용 패널에 붙이고 거친 필치로 그림을 그려나갔지만, 한 차원 더 높은 밀도의 화면을 얻기 위해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 종이에 미리 그린 수정본을 캔버스에 핀으로 고정해 다음 단계를 조심스레 예측하고, 또 과감히 테레빈유로 기존의 그림을 지우고 새로 물감을 처바르길 반복했다. 목탄으로 최종적 표구 과정에서 잘라낼 구획을 재설정하는 일도 잦았고, 잡지에서 오려낸 여성의 입술을 그림에 붙였다 떼어내기도 여러 번이었다. (비고: 드쿠닝은 여성의 벌린 입에서 강렬한 페티시를 느꼈다.)

1952년 1-2월경 작가는 거의 만족스러운 단계에 도달했다고 느꼈다. 하지만 자신이 기대했던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판단한 화가는, 제 분에 못 이겨 그림을 작업대에서 떼어냈다. 2년 가까이 공을 들인 «여인 I»을 망작으로 간주해 판지 따위를 쌓아놓은 복도 한구석에 던져버린 그는, 새로 ‘여인’ 연작 석 점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신작을 보러 작업실을 찾은 미술사학자 마이어 샤피로(Meyer Schapiro)가 ‘이 그림엔 아무 문제도 없다’며 «여인 I»을 호평하자, 화가는 다시 용기백배해 지우고 덧그리기를 재개했고, 1952년 6월 중순경 드디어 ‘완성’을 선언했다. (그럼에도, 12월 다시 한 차례 수정 작업을 벌였다.)

모신(mother goddess)의 원초적 형상인 듯, 화면을 가득 메우고 선 정면의 여성은 풍만한 가슴을 자랑하지만, 성적 매력보다는 공포에 가까운 숭고를 야기한다. 1988년 화가는 제 작품 속 여성상에 관해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내가 그린) 여성들은 모든 시대의 모든 우상으로 그려졌던 여성 특유의 것(the female)과 씨름해야 했다. 어쩌면 내가 그 특정 문제에 빠져,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게 내게 해준 건 하나다. 당시 몰두하고픈 문제는 그 형상뿐이었기에, 구성, 사전 계획, 관계, 빛 — 선, 색, 형에 관한 모든 실없는 이야기는 제거됐다. / 지금 그 여성상을 보면,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는 것처럼 맹렬해 뵈지만, 특정한 감정을 취하는 일엔 관심이 없었다. 당시 나는, 우상(idol)과 신탁의 사제(oracle)를 생각하며, 그 모든 우스꽝스러운 걸작성(all the hilariousness of it)을 초월할 계획에 사로잡혀 있었다.”

페미니스트 평론가 캐롤 던컨(Carol Duncan)은 이 우상적 여성상을, 남성의 거세 공포를 자극하는 현대판 고르곤(Gorgon)으로 해석했는데, 그에 따르자면 드쿠닝의 작업은 여성 괴수와 영웅적 남성기의 회화적 한판 대결이 되는 셈이다. (비고: 고르곤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뱀으로 된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세 명의 자매—스텐노, 에우리알레, 메두사—를 일컫는다.) 공포를 야기하는 여성성을 다뤘다는 점에서, 피카소의 대표작 «아비뇽의 처녀들(Les Demoiselles d’Avignon)»(1907)과 비교하는 이도 적잖았다. 미술평론가 아서 단토(Arthur C. Danto)는, 화가의 서거 직후 발표한 글 “윌렘 드쿠닝: 그 우스꽝스러운 걸작성에 관해(Willem de Kooning – The Hilariousness of It)”에서, «여인 I» 이후의 작업을 “녹아내린 피카소”라 불렀다. ///

추신) «여인 I»에서 남상하는 ‘여인’ 연작은 모두 일곱 점이다: 1952년에 «여인 I»을 최종 완성하기 전, «여인 II»가 마무리됐고, 이어 1953년까지 다섯 점—«여인 III» «여인 IV» «여인 V» «자전거와 여인» «여인 VI»—이 완결됐다. (비고: «여인 VI»는, 1953년 3월 개인전을 개막한 이후, 추가로 제작한 그림이다.)

추신2) 1953년 3월 ‘여인’ 연작을 공개한 이후, 드쿠닝은 현대회화의 총아로 대접받았다. 평론가 해롤드 로젠버그(Harold Rosenberg)—‘액션 페인팅’이란 개념을 정립해 훗날 추상표현주의로 불리는 창작 경향을 처음으로 옹호하고 나선 인물—는 술병을 들고 작업실에 놀러오기를 일삼았고, 미술계 인사들의 방문도 끊이지 않았다. 또 같은 해 여름엔 화상 리오 카스텔리와 일리아나 소나밴드 부부가 자신들의 이스트햄튼 별장에 드쿠닝 부부를 초청해 작업하도록 주선했는데, 바캉스 기간 동안 (로젠버그만큼이나) 자주 들러 작업 전개를 구경한 이가, 바로 잭슨 폴락이었다. (비고: 이스트햄튼을 미국현대미술가들의 프로방스로 일군 장본인이 잭슨 폴락과 그의 부인 리 크래스너였음을 상기하자면, 이는 다소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이후 폴락은, 이미지가 금기인지 아닌지 헷갈려 하는 수많은 추상화가 가운데 한 명으로 퇴행하는 모습을 보였고, 1955년 단 두 점의 그림을 그린 뒤 1956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다.

추신3) «여인 I»부터 «여인 VI»까지의 작업에서 주로 갈필을 구사했다면, 1960년대 초반에 다시 시작한 ‘여인’ 연작에선 보다 기름지고 매끄러운 붓질로 승부를 걸었다. 대가의 반열에 오른 화가는, 1963년부터 거침없이 내달리는 기운생동의 붓질로 녹아내리는 형체의 살색 여성상을 화폭에 구현하는 마술적 비르투오조를 과시했고, 1972년까지 다시 그것을 전면 추상의 풍경으로 펼치는 작업을 전개했다. 이렇게 추상에서 형상을 거쳐 추상으로 변환하는 과정을 두 차례 반복하자, 추상은 물질로만 보였고, 형상도 물질로만 보였다. 장장 20년의 전성기를 누린 현대화가는 드쿠닝이 유일하다.

*<퍼블릭아트> 2013년 4월호 게재 원고.

**미교열 원고입니다. 퍼옮기지 마시길 부탁합니다. (링크와 RT는 환영합니다.)

도판1.

«여인(Woman)»

1950년

판지에 유채와 오려낸 종이 접착

37.5 x 29.5 cm

*«여인 I(Woman I)»의 습작이 되는 소품이다.

도판3.

«여인 IV(Woman IV)»

1952년-1953년

캔버스천에 목탄과 에나멜과 유채

149.9 x 117.5 cm

도판4.

도판5.

«여인, 색하버(Woman, Sag Harbor)»

1964년

나무판에 목탄과 유채

203.2 x 91.4 cm

*1963년 뉴욕에서 스프링스(이스트햄튼 인근)의 새 작업실—호숫가에 위치한—로 이사한 화가는, 수변 환경에 조응해, 보다 분방하고 유려한 화풍을 일궜다. 백색 밑칠 위로 녹아내리듯 유동하는 물감이 이 시기 화면에 등장한 특징이다. 이 작업은 일명 ‘문짝 회화(door painting)’ 가운데 하나로, 작가는 작업실 신축에 사용하려고 주문한 문짝들이 (생각처럼 견고하지 못해) 마음에 들지 않자 그 위에 그림을 그려버렸다. 이 연작은 1964년 시작해 1966년까지 지속됐다. 도판2.윌렘 드쿠닝(Willem de Kooning, 1904 -1997)«여인 I(Woman I)»1950-1952년캔버스천에 목탄과 에나멜과 유채192.7 x 147.3 cm1953년 3월 시드니재니스갤러리에서 윌렘 드쿠닝(Willem de Kooning, 1904 -1997)의 개인전이 개막했을 때, 미국현대미술계는 크게 술렁였다. 과감한 붓놀림으로 캔버스 화면에 폭력을 행사한 거처럼 뵈는 ‘여인(Woman)’ 연작이, 형상을 다룬 새로운 추상표현주의였던 탓이었다. 잭슨 폴락(Paul Jackson Pollock, 1912-1956)의 전면추상화—특히 1947년부터 1950년 사이에 제작된 이른바 ‘액션 페인팅’ 작품들—를 회화의 최종적 진보 형태로 간주하던 당시의 어떤 암묵적 합의를 정면에서 부정한 셈이었고, 이 새로운 국면의 도래에 관해 평론가와 미술사학자들은 앞 다퉈 저마다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비고: 1952년 잭슨 폴락이 소속 화랑을 시드니재니스로 옮겨 개인전을 열었던 터라, 자연 비교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여인’ 연작은 상당한 속도감을 과시하는 야만적이고 성마른 붓놀림으로 가득했고, 마치 물감으로 범벅이 된 바탕에서 어떤 형상이 솟아오르거나, 혹은 ‘눈속임의 재현’이 될 생각이 없는 어떤 여성의 형상이 재차 (추상화 형태의) 바탕으로 통합되는 것만 같았다. 색상도 상스러울 정도로 화려해서, 예전에 봤던 명상적 성격의 유럽풍 추상화 경향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훗날 페미니스트 평론가들은, ‘악명 높은 바람둥이 남성 화가의 회화적 강간 범죄 현장을 목도한 것만 같다’는 불쾌감을 토로하기도 했다.1926년 배편으로 미국에 밀입국한 드쿠닝은, 1940년대 뉴욕의 추상표현주의 화단에서 점차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네덜란드 로테르담 태생 중년 화가의 그림에선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 애쉴 고르키 등을 모방한 티가 역력했다. 이 사람이 미술계에서 화가로 존중받게 된 것은, 1948년 여름 거장 요제프 알버스(Josef Albers)의 초청으로 블랙마운틴칼리지에서 학생을 가르치면서부터다. 1950년-1951년 양해 동안은 예일대학교 미대에도 출강했고, 또 1950년엔 16명의 동료 추상표현주의 화가들과 함께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공개 항의 서한—“진일보한 미술”을 적대시한다는 비난을 담은—을 보내기도 했다.드쿠닝이 문제작 «여인 I(Woman I)»을 그리기 시작한 때는 1950년 6월, 이미 나이 마흔하고도 일곱이었다. «발굴(Excavation)»(1950)이란 (의미심장한) 전면추상화를 완성한 직후, 그는 야심찬 회화 실험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추상이 된 화면에 다시 여성 누드의 형상을 소환하는 새로운 방법을 개척한다는 게 목표였다. 틀에 고정하지 않은 캔버스 천을 작업용 패널에 붙이고 거친 필치로 그림을 그려나갔지만, 한 차원 더 높은 밀도의 화면을 얻기 위해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 종이에 미리 그린 수정본을 캔버스에 핀으로 고정해 다음 단계를 조심스레 예측하고, 또 과감히 테레빈유로 기존의 그림을 지우고 새로 물감을 처바르길 반복했다. 목탄으로 최종적 표구 과정에서 잘라낼 구획을 재설정하는 일도 잦았고, 잡지에서 오려낸 여성의 입술을 그림에 붙였다 떼어내기도 여러 번이었다. (비고: 드쿠닝은 여성의 벌린 입에서 강렬한 페티시를 느꼈다.)1952년 1-2월경 작가는 거의 만족스러운 단계에 도달했다고 느꼈다. 하지만 자신이 기대했던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판단한 화가는, 제 분에 못 이겨 그림을 작업대에서 떼어냈다. 2년 가까이 공을 들인 «여인 I»을 망작으로 간주해 판지 따위를 쌓아놓은 복도 한구석에 던져버린 그는, 새로 ‘여인’ 연작 석 점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신작을 보러 작업실을 찾은 미술사학자 마이어 샤피로(Meyer Schapiro)가 ‘이 그림엔 아무 문제도 없다’며 «여인 I»을 호평하자, 화가는 다시 용기백배해 지우고 덧그리기를 재개했고, 1952년 6월 중순경 드디어 ‘완성’을 선언했다. (그럼에도, 12월 다시 한 차례 수정 작업을 벌였다.)모신(mother goddess)의 원초적 형상인 듯, 화면을 가득 메우고 선 정면의 여성은 풍만한 가슴을 자랑하지만, 성적 매력보다는 공포에 가까운 숭고를 야기한다. 1988년 화가는 제 작품 속 여성상에 관해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내가 그린) 여성들은 모든 시대의 모든 우상으로 그려졌던 여성 특유의 것(the female)과 씨름해야 했다. 어쩌면 내가 그 특정 문제에 빠져,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게 내게 해준 건 하나다. 당시 몰두하고픈 문제는 그 형상뿐이었기에, 구성, 사전 계획, 관계, 빛 — 선, 색, 형에 관한 모든 실없는 이야기는 제거됐다. / 지금 그 여성상을 보면,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는 것처럼 맹렬해 뵈지만, 특정한 감정을 취하는 일엔 관심이 없었다. 당시 나는, 우상(idol)과 신탁의 사제(oracle)를 생각하며, 그 모든 우스꽝스러운 걸작성(all the hilariousness of it)을 초월할 계획에 사로잡혀 있었다.”페미니스트 평론가 캐롤 던컨(Carol Duncan)은 이 우상적 여성상을, 남성의 거세 공포를 자극하는 현대판 고르곤(Gorgon)으로 해석했는데, 그에 따르자면 드쿠닝의 작업은 여성 괴수와 영웅적 남성기의 회화적 한판 대결이 되는 셈이다. (비고: 고르곤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뱀으로 된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세 명의 자매—스텐노, 에우리알레, 메두사—를 일컫는다.) 공포를 야기하는 여성성을 다뤘다는 점에서, 피카소의 대표작 «아비뇽의 처녀들(Les Demoiselles d’Avignon)»(1907)과 비교하는 이도 적잖았다. 미술평론가 아서 단토(Arthur C. Danto)는, 화가의 서거 직후 발표한 글 “윌렘 드쿠닝: 그 우스꽝스러운 걸작성에 관해(Willem de Kooning – The Hilariousness of It)”에서, «여인 I» 이후의 작업을 “녹아내린 피카소”라 불렀다. ///추신) «여인 I»에서 남상하는 ‘여인’ 연작은 모두 일곱 점이다: 1952년에 «여인 I»을 최종 완성하기 전, «여인 II»가 마무리됐고, 이어 1953년까지 다섯 점—«여인 III» «여인 IV» «여인 V» «자전거와 여인» «여인 VI»—이 완결됐다. (비고: «여인 VI»는, 1953년 3월 개인전을 개막한 이후, 추가로 제작한 그림이다.)추신2) 1953년 3월 ‘여인’ 연작을 공개한 이후, 드쿠닝은 현대회화의 총아로 대접받았다. 평론가 해롤드 로젠버그(Harold Rosenberg)—‘액션 페인팅’이란 개념을 정립해 훗날 추상표현주의로 불리는 창작 경향을 처음으로 옹호하고 나선 인물—는 술병을 들고 작업실에 놀러오기를 일삼았고, 미술계 인사들의 방문도 끊이지 않았다. 또 같은 해 여름엔 화상 리오 카스텔리와 일리아나 소나밴드 부부가 자신들의 이스트햄튼 별장에 드쿠닝 부부를 초청해 작업하도록 주선했는데, 바캉스 기간 동안 (로젠버그만큼이나) 자주 들러 작업 전개를 구경한 이가, 바로 잭슨 폴락이었다. (비고: 이스트햄튼을 미국현대미술가들의 프로방스로 일군 장본인이 잭슨 폴락과 그의 부인 리 크래스너였음을 상기하자면, 이는 다소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이후 폴락은, 이미지가 금기인지 아닌지 헷갈려 하는 수많은 추상화가 가운데 한 명으로 퇴행하는 모습을 보였고, 1955년 단 두 점의 그림을 그린 뒤 1956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다.추신3) «여인 I»부터 «여인 VI»까지의 작업에서 주로 갈필을 구사했다면, 1960년대 초반에 다시 시작한 ‘여인’ 연작에선 보다 기름지고 매끄러운 붓질로 승부를 걸었다. 대가의 반열에 오른 화가는, 1963년부터 거침없이 내달리는 기운생동의 붓질로 녹아내리는 형체의 살색 여성상을 화폭에 구현하는 마술적 비르투오조를 과시했고, 1972년까지 다시 그것을 전면 추상의 풍경으로 펼치는 작업을 전개했다. 이렇게 추상에서 형상을 거쳐 추상으로 변환하는 과정을 두 차례 반복하자, 추상은 물질로만 보였고, 형상도 물질로만 보였다. 장장 20년의 전성기를 누린 현대화가는 드쿠닝이 유일하다.도판1.윌렘 드쿠닝(Willem de Kooning, 1904 -1997)«여인(Woman)»1950년판지에 유채와 오려낸 종이 접착37.5 x 29.5 cm*«여인 I(Woman I)»의 습작이 되는 소품이다.도판3.윌렘 드쿠닝(Willem de Kooning, 1904 -1997)«여인 IV(Woman IV)»1952년-1953년캔버스천에 목탄과 에나멜과 유채149.9 x 117.5 cm도판4.1953년 여름, 화상 리오 카스텔리와 일리아나 소나밴드 부부가 자신들의 이스트햄튼 별장에 드쿠닝 부부를 초청해 작업하도록 주선했다. 당시 일레인 드쿠닝(일레인 프리드)은 남편과 별거 중이었지만, 초청엔 함께 응했다.도판5.윌렘 드쿠닝(Willem de Kooning, 1904 -1997)«여인, 색하버(Woman, Sag Harbor)»1964년나무판에 목탄과 유채203.2 x 91.4 cm*1963년 뉴욕에서 스프링스(이스트햄튼 인근)의 새 작업실—호숫가에 위치한—로 이사한 화가는, 수변 환경에 조응해, 보다 분방하고 유려한 화풍을 일궜다. 백색 밑칠 위로 녹아내리듯 유동하는 물감이 이 시기 화면에 등장한 특징이다. 이 작업은 일명 ‘문짝 회화(door painting)’ 가운데 하나로, 작가는 작업실 신축에 사용하려고 주문한 문짝들이 (생각처럼 견고하지 못해) 마음에 들지 않자 그 위에 그림을 그려버렸다. 이 연작은 1964년 시작해 1966년까지 지속됐다. Mikka_L | 2013/05/01 18:47 # by _ art | 트랙백 | 덧글( 2 )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 www chungwoo.egloos.com/

TOP 5 윌렘 드 쿠닝

“몇몇 화가나 비평가가 ‘여인’시리즈를 안 좋게 말합니다.그런데 그건 그들의 문제 일 뿐 내 문제는 아니에요.

나는 스스로 추상 화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이비지 같은 것들을 추상적인 이미지로 만든다는건 어찌보면 이상한 일이에요.

그런데 요즘은 모든 그림을 추사오하냐, 추상화가 아니냐로 분류합니다.

추상적인 이미지를 안 그리는 것이 더 이상한 게 돼 버렸어요.

그래서 내가 하고싶은 것을 하기가 두렵습니다”

-윌렘 드 쿠닝

그림을 사고팔 때에 그림을 누가 가지고 있다가 어던 경로를 통해 내놓았는지를 알 수 있는 ‘소장 기록’은 그림을 사고 팔 때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이 그림은 참으로 뛰어난 소장 기록을 갖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거래에 얽힌 사람들이 대단하다는 것은 이 그림의 자가가 대단하다는 사실을 의미하는것이기도하다. 이 그림은 드 쿠닝의 개인사 및 당시 사회 분위기와 얽힌 많은 감정이 들어있으며, 전후의 불안과 긴장감, 공포와 희열이 섞인 다이나믹한 시대 상황이 느껴진다. 시대를 잘 반영하면서도 작가의 개인사와 내면이 솔직하게 표현되어있는 그림이라 드 쿠닝의’여인’ 시리즈는 아주 높은 평가를 받는다. 드 쿠닝의 ”여인’ 시리즈는 총 6점이 있는데 이 작품만 유일하게 개인 컬렉터 손에 있다. 그래서 이 그림이 약 1442억만원이라는 엄청난 가격에 팔릴 수 있었던 것이다.

드 쿠닝 – 여인Ⅰ(WomanⅠ 1950-52)

ㅣ서영숙의 미술세상ㅣ

서영숙 안산환경미술 협회 회장

작업을 하는 작가라면 늘 고민하는 순간이 있다.

지금 작업을 마칠 것인가? 좀 더 진행해야 하는가?

윌렘 드 쿠닝(Willem de Kooning 1904~97)은 네덜란드계 미국 화가로서 잭슨 폴록과 더불어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대표 작가이다.

동시대 작가 중 유일하게 인물을 작품의 주제로 삼았던 그는 처음에는 남성을, 그다음에는 여성 인물을 그렸는데, 유기체적이고 생물 형태를 들쭉날쭉한 선으로 표현한 섬세하면서도 역동적인 추상화를 그렸다.

1948년에 첫 개인전을 열었던 그는 1950년대 거칠고 강력한 화법을 통해 여성을 악마적, 성적 대상으로 재형상화한 <여인> 연작을 통해 세계 미술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여인> 연작은 상당한 속도감을 과시하는 야만적이고 성마른 붓질로 가득하며, 마치 물감으로 범벅이 된 바탕에서 어떤 형상이 솟아오르거나, 어떤 여성이 바탕에 재현 되는 것만 같다. 색상 또한 상스러울 정도로 화려해 유럽풍의 추상화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여인Ⅰ>은 1950~1952년 3년에 걸쳐 그린 작품으로서, 틀에 고정하지 않은 캔버스 천을 작업용 패널에 붙이고 거친 필치로 그림을 그리며, 종이에 그린 수정본을 캔버스에 핀으로 고정한 후, 다음 단계를 예측하고, 과감하게 테레핀유로 기존의 그림을 지우고 새로운 물감을 바르기를 반복하고 최종적으로 목탄으로 잘라낼 구획을 설정해 완성하였다.

1952년 작가는 거의 완성 단계에 도달했다고 느꼈으나 기대에는 미치지 않았던 작품을 제분에 못 이겨 작업대에서 떼어내 복도 판지를 쌓아 놓은 한구석에 던져 버렸다. 그런데 신작을 보러온 미술사학자 마이어 사피로가 이 작품엔 아무 문제가 없다며 호평하자, 작가는 용기백배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여 작품을 완성했다.

<여인Ⅰ>의 화면을 가득 메우고 선 정면의 여성은 풍만한 가슴을 자랑하지만, 성적 매력보다는 공포에 가까운 숭고를 이야기한다. 드 쿠닝은 말하길 “아름다운 여인을 그리려고 해도 계속 그리다 보면 어느새 추한 인상으로 변한다”라고 고백했다. 이는 실수가 아닌 일부러 실제의 모양을 일그러뜨리고 여러 번 지우고 덧칠하는 과정을 통해 대상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자 한 작가의 고뇌가 담긴 작품이다.

그는 한 작품을 완성하는데, 수년의 시간이 걸렸으며 심지어 전시회 작품 출품 직전까지도 붓을 놓지 못했다고 한다.

<여인Ⅰ>은 아무리 보아도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가 추구한 것은 아름다움은 아닌듯하다 물론 완벽함 또한 아니다. 그가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그의 작품은 이 세상 어디에도 모든 것을 100% 만족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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