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길로 이어지는 울타리 문을 통과했다. 오르락내리락 몇 번 하다가 길을 만나게 된다. 사람 사는 마을인가 싶게 뭐가 없고, 한적하다. 길을 따라 쭉 걷다 보니, 길 끝에서 갑자기 론세스바예스가 나타났다. 생각지 못한 등장! 전초전 없었다. 근처 집이나 뭐도 없다가 갑자기 훅 들어왔다. 그래서 갑자기 기쁘다. 요새처럼 버티고 서있는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 매력 있다. 사랑한다.
몇몇 사람들이 알베르게 앞에서 두리번거리며 서있다.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기도 한다. 누군가 왼쪽으로 돌아가야 문이 있을 것 같다고 한다. 그때 누군가 문을 열고 나왔다. 30대로 보이는 남자가 담배를 태우러 나왔다. 한국 사람이다.
“안녕하세요? 거기가 입구예요?”
문을 열고 나온 사람한테 입구가 어디냐고 묻다니! 그는 한국말에 자동 반응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덕분에 헤매던 사람들이 입구로 모였다.
“여기 입구에서 진흙을 닦고 들어가셔야 할 거예요. 아까 관리하시는 분들이 말해줬어요.”
그러고 보니, 수돗가가 입구 바로 옆에 있었다. 아까부터 한 여인이 정성스럽게 등산화를 닦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나 보다. 나도 곁에 서서 기다렸다가 진흙을 닦아냈다. 다른 사람들은 그냥 툭툭 털고만 들어갔다. 몰라서겠지? 나도 그 얘기를 안 들었다면 그냥 털고만 들어갔을 것이다.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 내부에서 본 풍경
드디어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 문을 열었다. 바닥에 작은 돌들이 깔렸다. 전형적인 유럽식 바닥! 높은 천장과 큰 내부 규모, 아늑하고 세련됐다. 조명도 세련된 것으로 봐서 최근에 손 본 게 틀림없다. 왜 흙을 털고 들어가야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내부가 너무 깨끗했다.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이 사무실 앞에 줄을 섰다. 오면서 못 봤던 사람들인데, 언제 이렇게 온 것일까?
론세스바예스 공립 알베르게는 체계적으로 운영되는 듯했다. 봉사자들이 성심을 다해 친절을 베풀었다. 자신이 맡은 알에 최선을 다했다. 순례자들은 등록을 위해 선 줄이 사무실 입구까지 늘어섰다. 일단 배낭은 한쪽 구석에 내려놓았다. 비옷과 스틱도 벗어서 배낭 곁에 두었다. 비 오고 추운 날, 피레네 산을 넘어온 사람들! 지붕 있는 실내 복도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좋은지! 은은한 주홍 불빛, 줄을 선 사람들의 표정 속에 비바람을 헤치고 온 흔적이 엿보인다. 줄을 서 있는 동안, 그 험한 관문을 넘어온 뿌듯함이 스쳤다. 이곳이 단지 아득하기만 해서 일까? 전투를 끝낸 기사들의 모습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었다.
어느 나라에서 왔니?
어디에서 출발했어?
피레네 넘을 때, 비 많이 왔니?
줄을 서면서 순례자들끼리 눈인사를 건네기도 하고, 앞 뒤 사람들과 짧은 대화를 했다. 봉사자들이 등록을 위해서 여권을 준비하라고 했다. 생장 순례자 사무실에서 발급받은 순례자 여권(크레덴시알)을 꺼내 들었다. 그러자 봉사자가 다시 말해준다. 리얼 여권도 꺼내놓으란다. 아, 모두 뒤적뒤적 안쪽 주머니에 잘 보관한 국적이 쓰인 여권을 꺼내 든다. 기다리는 동안, 봉사자들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는 순례자들이 많았다. 봉사자들은 친절한 미소로 일일이 다 대답을 해주었다. 질문이라야 별로 급한 내용도 아니었다. 줄 서서 무료하느니 얘기나 하자 싶은 것들이었다. 그저 여기에 얼마나 많은 순례자들이 오냐, 당신은 봉사를 언제부터 했냐, 정도의 질문들이랄까. 지대가 주는 에너지 때문인지, 등록 전부터 차분한 분위기에 마음이 평온해진다.
앞쪽이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 사무실이다.
이제 네다섯 명 남았다.
봉사자가 종이에 뭔가를 기록하라고 한다. 근데 스페인어인지, 불어인지, 모르는 말이 한가득이라 당황했다. 세 다리 건너에 서있던 한국 아저씨 역시 난감하던 차였는지, 어디선가 적어왔다며 메모지를 펼쳐서 비슷한 글자를 때려 맞히고 있었다. 나는 그걸 또 베꼈다. 그러자, 내 앞에 있던 남자가 나를 보면서 의아해한다.
“당신, 영어 하잖아요?”
“네? 보세요. 영어가 아니잖아!‘
“위에 글자 말고 그 아래를 보세요!”
그러고 보니, 문장 아래에 같은 내용의 문장이 여러 나라 말로 한 줄씩 있었다. 어렵지 않은 영어문장! 당황해서 전혀 영어처럼 안 보였던 것이다. 눈을 부릅뜨고 봤을 때도 모르는 문장으로 보였는데, 희한했다. 고객님이 당황하신 거지!
“하하하. 정말 영어가 있네요!”
그러자 한국 아저씨들도 당황하니까 안 보였다며 놀라워했다. 역시 누구나 긴장하면 어리바리 해지나 보다.
드디어 내 차례다.
한국에서 미리 인터넷으로 예약을 해야만 묵을 수 있는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
나는 예약 번호를 봉사자에게 보여줬다. 봉사자는 나이 지긋한 분들이었다. 엄마 미소로 나를 환영했다.
“반가워요! 저녁이랑 아침은 어떻게 하실래요?”
“아, 그것도 지금 말해야 하나요?”
“네, 지금 말해주세요.”
나는 두리번거렸다. 메뉴에 따라 식당이 달라지는 듯했다. 나는 보통 사람들이 신청한다는 것을 신청했다.
“저녁만 신청해도 되죠?”
“그럼요.”
봉사자들 대부분은 나이를 먹었지만 무척 친절한 미소로 일을 했다. 무엇보다 지성미 물씬 풍기는 평온한 미소를 지녔다. 나이 들면 가지고 싶은 그 미소, 그들처럼 나도 잘 늙어가고 있나?
왼쪽 출입구는 자판기와 전자레인지를 갖춘 큰 휴게실, 작은 도서관, 엘리베이터와 세탁실로 가는 계단들이 있다.
봉사자의 안내로 등산화는 입구 쪽에 있는 별실에 벗어 보관했다. 스틱도 함께 두었다. 내부에 자판기와 간단 간식을 먹을 수 있는 테이블들이 놓여 있는 곳도 보았다. 정말 깨끗했다. 불빛은 왜 이리 은은하고 고풍스러운지! 정말 매혹적이었다. 이제 침대로 가서 배낭을 내려놓고, 샤워를 하고 밥을 먹으러 가면 되겠지? 계단으로 올라가야 있다는 숙소 방으로 올라가면서 안면 있는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런데 막 위층으로 올라가다가 보니 아, 내가 잊은 게 있었다. 생장에서 미리 이곳으로 보낸 내 큰 배낭, 동키로 보낸 내 배낭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니! 이틀 동안 물과 비옷, 스틱만 들고 다녔더니, 큰 배낭에 대해 아예 잊은 것이다. 바리바리 꼭 필요해서 없으면 큰일 날 듯 무게 오버하며 가져온 배낭을 잊다니! 정말 필요한 게 들어있는 게 맞나? 아쉽지 않은 거 같은데?
짐은 자기 인생관과 닮았다고 한다.
한국에서부터 남보다 무거웠던 짐,
버리지 못한 짐을 찾으러 나서야 했다.
나이 지긋한 봉사자에게 물으니, 별도의 보관 창고로 따라오라고 했다. 사무실 안에 보관 중인 배낭은 오늘 보내온 배낭이라고 했다. 아마 내가 어제 오기로 했다가 하루 미루어서 별도의 창고로 간 것 같다. 지붕 없는 마당을 가로질러 별채로 들어갔다. 커다란 나무 문을 덜커덩 열고, 불을 켜주었다. 저 안 쪽 창고 선반에 배낭들이 놓여 있었다.
“여기에서 찾아봐요!”
별도로 표식 없이 놓아둔 것인지, 내가 직접 찾아야만 했다.
눈에 딱 들어오지 않았다. 아직 배낭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보이지 않았다. 조마조마했다. 내 짐이 없으면 어쩌지? 내가 짐을 잘못 보냈으면? 아니면 중간에 없어진 거 아니야? 동키를 처음 보내는 거라 그 짧은 시간에 괜한 걱정이 쏟아졌다. 그러다 문득, 내가 레인커버를 씌워서 보낸 게 생각났다. 레인커버 색을 떠올리자, 그제야 내 배낭이 눈에 들어왔다.
“휴, 찾았다.”
내 긴장이 좀 우스웠을 텐데, 봉사자는 말없이 나를 기다려주더니, 다행이라며 고개를 끄덕여 줬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짐을 찾아가서 찾는 게 어렵지 않았을 텐데, 멍하니 눈 앞에 있는 배낭을 못 찾는 나를 어찌 그리 이해해준단 말인가. 그가 유쾌한 웃음으로 선반에 있던 내 배낭을 자신의 어깨에 메 본다.
“와우! 이거 너무 무거운데? 무거워!”
그가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입구까지 메고 가더니만, 문을 열면서부터 내게 배낭을 건넸다. 네 인생은 너의 것! 네 가방은 네가 짊어져야지! 배낭이 너무 무거우면 조금 덜어야 하지 않겠니?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눈빛! 당연하죠! 내 배낭은 내가 짊어져요. 짐은 언젠가 덜 거예요. 언젠가!
75리터가 아니다. 7s 사이즈! 많이 담기지 는 않았지만, 돌덩이처럼 꽉 채워 다녔다. 순례길 내내 나와 함께 한 내 삶의 무게!
배정받은 침대 번호를 찾아 이리저리 헤맸다. 번호가 끝나더니, 어디에서 이어지는지 안 보였다. 다시 입구 쪽까지 둘러보는데, 입구 계단 간이 의자에 누군가 앉아있다가 벌떡 일어났다.
“침대 번호가 어떻게 돼요?”
아, 여기도 봉사자가 있구나! 난 번호가 적힌 종이를 보여줬다. 그녀는 단번에 “알아요!”하며 앞장서 걸었다. 오, 숙련된 봉사자군! 그녀는 날씬한 중년이었다. 짧은 언발란스 파마머리가 세련되어 보였고, 미소도 아름다웠다. 그녀가 드디어 내 침대를 찾아주었다.
앗, 이게 뭔가? 왜 2층이지? 왜지?
미리 예약한 사람들은 1층 침대이라던데? 웬 2층? 그것도 화장실 입구 쪽 마지막 라인이었다. 살짝 당황했지만 침대를 찾아준 그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그녀는 뿌듯함 때문인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내 아래층에는 한국 아저씨가 있었다. 일찌감치 도착한 듯 침낭도 다 깔아놓고 빨래 보따리를 챙기고 있었다.
“일찍 도착하셨나 봐요. 1층이시네요. 전 2층이네요.”
“예약을 안 하셨나요?”
“했어요. 늦게 예약해서 밀린 건가 봐요.”
“그런가 보네요. 저는 미리 했거든요.”
나를 안타까워하던 그가 침대 옆에 있는 사물함을 안내해주었다. 돈을 넣어야 문이 열린다며 동전까지 내게 주었다. 나중에 갚겠다고 해도 그는 한사코 받지 않겠다고 했다. 신세 지지 않으려는 마음에 나중에 동전을 바꿔서 줬는데, 그도 나도 몰라서 떤 유난이었다. 보관함을 열면 다시 1유로가 나오는 구조였기에 나중에 돌려주고 돌려받으면 됐는데 말이다.
동전인데 뭘 돌려주냐는 분의 마음은 한국식 마음이다. 마치 우리나라 100원이나 500원 정도로 생각하게 되는데, 1유로가 1,300원이다. 나중에 체감이 될 때는 1유로도 우스운 건 아니게 된다. 한국인들은 동전 정도 베푸는 걸 대단하다고 여기지 않겠지만 그 마음도 큰 것이다. 나도 나중에 동전이 무거워서 없애겠다며 자판기에서 50센트 커피를 마구 뽑아서 한국 친구들과 나눠 마셨는데, 그게 싼 게 아니었다. 순례길에서 친구들에게 커피 한 잔 주는 게 아깝다는 게 아니다. 자판기 커피를 700원~ 800원으로 뽑아 먹을 일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내 머리는 한국식 기준으로 자판기 커피 300원 정도로 인식했었는지, 그곳에서는 카페에서 1 유로면 커피를 마실 수 있는데 굳이 자판기에서 50센트 넣고 커피를 마실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물가에 적응하고, 그 물가에 따라 뇌가 적응하는 데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배낭을 풀어서 짐을 꾸라다가 보니, 봉사자라 여긴 그녀가 내 옆 칸 2층 침대를 가리킨다.
“이건 내 침대예요!”
“어? 당신 봉사자 아니었어요?”
“아닌데요? 나도 순례자예요!”
그녀가 내게 베푼 열정을 하마터면 봉사자의 친절 정도로 여길 뻔했다. 그녀가 나와 같은 순례자임을 알고 그녀를 껴안아줬다.
“고마워요! 당신의 친절에 감동했어요.”
그녀의 이름은 메디!
메디는 네덜란드 출신이지만 현재 독일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무슨 일을 하냐고 물으니 비밀이란다. 나중에 알려주겠다고 하는데, 별로 궁금하진 않았다. 혹시, 핵이라도 개발하냐는 우스갯소리를 건넬까 싶다가 말았다. 어쩌면 국제적으로 할 농담은 아니라는 생각! 나에 대해서는 다 물어놓고, 자기는 왜 비밀이지? 알려진 사람인가? 안타깝게도 난 외국인은 잘 구분을 못한다. 우리가 잘 접하는 할리우드 유명인들도 손에 꼽히는 정도일 뿐, 유럽권은 아예 모른다고 해야겠지? 어쨌든 모델처럼 잘 가꾼 모습을 보니, 노출이 되는 사람인가 싶었지만, 그녀가 어떤 일을 하는지 별로 중요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이 길에서 잠깐 만나는 사람인데, 정치인이면 어떨 것이며 코미디언이면 어떨 것인가!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내 인생에서 극적 변화를 줄 것도 아닌데 말이다. 어차피 배낭여행을 하면서 깨달은 게 있지 않은가. 여행에서 만난 연은 그리 오래가지 않거나 깊이 가지 않거나 단단하지 않다는 것을!
여행지에서 만났던 풋풋한 마음을 일상에서 가끔 추억으로 만나는 건 좋다. 하지만 일상 깊이 들어오면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이 다르게 보인다. 오죽하면 여행지에서 만난 이성을 일상에서 만나지 말라고 했겠는가. 에너지가 달라서 일 것이다. 물론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끼리 사랑을 이어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그때의 에너지를 유지하며 잘 이어왔을 것이다. 좋은 인연도 오래 유지될 수는 있다. 진심으로 함께 했던 추억이 행복했다면 그 인연들은 오래간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다른 여행지를 가면서 추억이 희석되기도 한다. 인연들을 모두 떠나보내면서 열정이 사라지는 것인지 모르겠다. 다른 말로 하면 상처 받지 않으려는 얄팍한 마음만 남겨두는 것일지도! 어차피 떠날 사람, 정 주지 않겠다는 다짐?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면 아직 젊은것이다. 사람에 대한 애정도 마찬가지이다. 이해관계를 떠나 누군가를 위해 친절을 베풀 수 있는 마음, 그게 바로 열정이고, 그게 바로 사랑이 아니겠는가.
메디는 나와 죽이 척척 맞았다.
여전히 봉사자 포스로 나에게 화장실부터 세탁실, 식사 시간과 식당 등을 안내하고 있었다. 내가 예약한 저녁 코스가 자신과 같은 식당에서 먹는 거라며 좋아했다. 난 그때까지 이게 왜 좋아할 일인지 몰랐는데, 여기서는 식당이 여러 개 있어서 메뉴에 따라서 나뉜다는 것이다.
“좋았어요. 우리가 갈 식당이 제일 맛있어요. 잘 고른 거예요. 이따가 같이 가요!”
“그래요? 좋지요! 알았어요.”
메디는 저녁 식사 때 다시 보자며 어딘가로 나갔다. 나는 꾸리다가 말았던 짐을 정리하느라 배낭을 복도 한쪽에 펼쳤다. 침대 사이는 좁았기에! 가부좌로 앉아서 짐을 꺼내다가 보니 오다가다 안면 있는 순례자들이 아는 척을 해왔다. 드디어 로만손 일행을 보게 됐다 개구쟁이 아저씨 마마드였다.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갑게 인사를 했다. 정이 많은 스타일이다.
“왔구나! 생각보다 일찍 왔네? 비가 많이 와서 걱정했는데, 무사히 잘 왔구나!”
“다른 분들은요?”
“응, 샤워하려 갔어. 로만손은 저기 있네!”
로만손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같은 층이지만, 그들은 초입 쪽에 침대가 있는 것이다.
“힘들었죠? 잘 왔어요.”
“네, 고마워요. 당신들이 어제 오리손에서 나를 멈추게 하지 않았다면 나는 오늘 여기 없었을 거예요.”
마마드가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오늘 일행들과 저녁 식사를 같이 하자.”
“좋지요. P선생님은 제가 찾아볼게요. 이따가 뵙죠!”
그들은 싱글거리며 자리를 떴다. 나는 생각난 김에 내게 카톡으로 자신의 침대 위치를 알린 P선생님을 찾아봤다. 나와 층이 달랐다. 그곳도 2층 침대들이 놓인 곳이었다. 자리를 찾았지만, 침대 위에 짐만 있었다. 다시 내려와서 이따가 저녁 식사 때 보자는 카톡을 남겼다.
얼른 샤워부터 해야지 싶었다.
비에 젖은 빨래들도 주섬주섬 챙겼다. 그때 누군가 가방을 멘 채 내 앞에 섰다. 손에 번호표를 들고 내가 아까 침대를 찾느라 지었던 어리바리한 표정으로! 그 친구였다. 파리에서 봤던, 갓 제대한 청년!
“어허! 번호가 뭐요?”
내가 장난스럽게 말을 걸자, 그가 돌아보더니 반갑게 웃었다. 인사와 동시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여기 같은데 이상하네요?”
그가 가리킨 곳은 내 아래층 한국 아저씨 자리였다. 한가롭게 누워있다가 뭔 날벼락이냐 싶었는지, 벌떡 일어나 앉았다. 표정은 뭔 개소리? 였다.
한국 아저씨와 내가 동시에 일어나 청년의 번호표를 살폈다. 청년이 들고 있는 번호표와 아저씨의 침대 번호가 일치했다. 극장에서 자리가 중복될 때 먼저 자리 잡은 사람이 배 째라 하면 뒤늦게 온 사람이 매표소로 달려가야 하는 것이지! 콘서트장에서 중복된 자리 때문에 애 먹었던 때가 있었다. 주최 측에서 좌석을 중복으로 팔아먹었다. 연애하며 처음 갔던 콘서트였는데, 매표소 직원들과 실랑이 벌이며 불쾌했던 감정으로 콘서트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들은 좋은 추억을 엉망으로 만든 것에 일말의 책임도 지지 않았다. 무던한 그 사람 때문에 그냥 넘어간 일이지만, 아직도 내 뇌리에 콘서트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았다.
나의 오지랖이 발동했다.
한국 아저씨가 가지고 있던 번호표를 확인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숫자가 비슷하긴 해도 어째 명확하지 않았다.
“이게 글자체가 이상해서 숫자가 비슷한 것 같긴 한데, 좀 알아보셔야겠는데요?”
하지만 한국 아저씨는 자신의 번호표가 맞는데, 청년이 중복된 번호표를 잘못 받아왔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사무실 가서 다시 받아오라는 거였다. 순진해 보이던 청년은 아저씨의 번호표를 보더니 자신의 번호표가 확실하다고 여긴 듯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한국 아저씨가 마지못해 자기가 사무실로 내려가서 확인하고 오겠다고 했다. 한국 아저씨가 자리를 뜬 사이 청년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 않아도 비를 진탕 맞았는데 피곤한 데 이런 귀찮은 일까지 겹쳐서 지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와중에 내가 어떻게 자기보다 먼저 이곳에 도착했는지 궁금해했다. 나도 궁금했다. 나보다 먼저 간 청년이 느린 나보다 더 늦게 왔는지! 내가 지름길로 온 것도 아닌데 말이다.
“오실 때 비 안 왔어요?”
“비 왔지!”
사실 내가 올 때는 비가 미친 듯이 내리지 않았다. 중간에 그런 구간들도 있었지만, 거의 다 내려와서 비를 많이 맞았다. 나보다 뒤늦게 도착한 사람들이 중간 지대부터 비를 엄청 맞았다고 했다. 비옷이 소용없는 수준이라고 했다. 오늘 생장에서 출발해서 쉬지 않고 온 사람들이 나보다 뒤늦게 론세스에 도착한 것이다.
나는 청년과 한 두 번 만났다고 말을 편하게 하게 되었다. 꼰대라 말을 섞고 싶지 않다면 할 수 없지만, 청년은 사람에 대한 궁금함이 아직 많은 듯했다. 내가 짐을 챙기면서 오리손에서 묵게 된 사연을 짧게 말하자, 청년이 비옷을 걸어두라고 했다. 나는 미리 준비해 간 간이 옷걸이를 펼쳤다. 청년이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와우! 신의 한 수네요. 옷걸이까지 가지고 오시다니!”
눈빛이 순수한 청년이었다. 군대에서 사회에 나온 지 얼마 안 되어서인지 모든 게 신기한 듯했다. 어디서 본 눈빛이더라? 어디서 봤더라! 그때 떠오르는 얼굴! 배낭여행 때 봤던 얼굴, 까맣게 잊고 있던 얼굴이 떠오르다니!
인도 바라나시에서 봤던 청년! 기차 시간까지 서너 시간 남은 동안, 그는 체크 아웃을 하고 배낭을 내 숙소에 잠시 맡겼다. 그 와중에 화장실을 쓰겠다며 들어갔던 그가 웃으며 나왔다.
“고무장갑이 있네요? 배낭여행하면서 고무장갑 들고 다니는 사람 처음 봐요!”
배낭여행 베테랑이던 그가 놀라워해서 내가 더 놀랐던 때! 고무장갑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드물 때였나 보다. 나는 그때 머리를 긁적였던 것 같다. 가려워서인가, 민망해서인가, 여하튼 그랬다. 마더 테레사 집에서 봉사할 때 쓰려고 가지고 다니던 건데! 정작 꼴까따 마더 테레사의 집에는 딱 하루만 봉사 나가고 때려치웠다. 나는 그런 종류의 봉사가 안 맞는 사람이었다. 그저 최선을 다해 봉사하는 자들에 대한 경외감만 커졌다.
드디어 한국 아저씨가 나타났다.
“아, 이 번호가 이거네요. 저쪽 복도 중간 침대인데 2층이에요. 예약도 했는데 왜 그런지!”
그가 머리를 긁적였다. 머리가 가려워서일까, 무안해서일까. 나는 그가 무안하지 않게 오지랖을 발휘해서 서너 칸 옆에 있는 그의 침대를 확인했다. 2층이었다. 2층 침대는 예약과는 상관없는 듯했다. 오는 순서대로 그냥 주는 것인지! 3층은 단층 침대만 있다는데, 그 숙소 방은 어떻게 가는 건지, 아무도 모르는 눈치였다.
“화장실 앞보다는 아늑하네요!”
그게 위로가 되지는 못했는지, 한국 아저씨는 조금 의기소침한 표정이었다. 그가 사라지고, 그제야 자기 침대를 온전히 가지게 된 청년은 조금 편해진 얼굴이었다. 어쩌다 보니 나는 짐을 꾸리며 1층 청년과 마주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위치였다. 무슨 짐을 이리 오래 챙기는 건지 샤워를 일단 해야 하는데 지쳐서 그런지, 빨래터 아낙처럼 수다를 떨게 된다.
“세탁하실 거예요?”
“해야지! 같이 할까? 함께 하면 반값이니까!”
내가 주책인가? 나이 먹은 여자가 젊은 남정네와 빨래를 함께 하자는 게 이상하려나? 하지만 그는 오예! 하는 표정으로 빨래 주머니에 자기 빨래를 벌써 담으며 좋아라 했다. 역시 순례자 모드로 잘하고 있군! 돈을 줄이는 게 순례자에게 중요하지! 아까 한국 아저씨한테도 빨래를 같이 하네 마네 했던 터라, 셋이 같이 하자고 해야 하나 싶었다. 너무 격의 없는 건가? 외국 친구 들랑은 아무렇지 않은데, 한국 사람들과는 장유유서니, 남녀 칠 세 부동석이니, 맹자왈 공자왈이 머리를 스쳐 간다. 이런 고민을 한방에 날려준 건, 세탁실 봉사자였다. 내 빨래가 까였다. 내 세탁물이 많아서 따로 해야 한다는 것! 졸지에 혼자 빨래 값을 치르게 됐다. 그 남자 둘은 함께 하게 됐는데! 괜히 신나 했다. 하지만 빨래 양으로 까인 거니까, 인정!
지하 세탁실에서 로만손 일행을 봤다.
구석에 있는 손빨래 수돗가에서 직접 빨래를 하고 있었다. 이 모습이 순례자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하루하루 샤워처럼 빨래도 해야 하는 거다. 내가 로만손 곁에서 싱글거리며 인사를 건넸다.
“빨래까지 하려니 피곤하겠어요?”
로만손 빙그레 웃었다.
“괜찮아요. 세탁기를 이용할 정도 양은 아니니까요. 이 정도는 손빨래하면 되는데요. 뭘!”
그는 노인들을 위해서 순례길을 가고 있는 것일까? 정말 순례자 모드로 가고 있는 것 같았다.
“저녁 식사 때 봐요.”
로만손의 미소, 참 좋다. 저런 미소를 지닌 사람이라면? 내가 뭔 생각을 하는 거지? 나는 얼른 정신을 차리고 세탁실에서 나왔다.
사무실이 있는 층에는 간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자판기와 전자레인지가 있었다. 식당 테이블과 의자가 넉넉히 놓여서 그곳에서 먹고 싶은 음식을 데워 먹기 좋았다. 그 옆으로 작은 도서관도 있었다. 한국 책도 한 두권 있었지만, 무거워서 패스다.
복도에 테이블이 놓여있는데, 버릴 물건을 놓은 곳이었다. 나는 휴대용 커피포트를 발견했다. 정말 가볍고 휴대하기 좋은 사이즈였다. 이건 욕심이 났다. 품에 안고 일단 식당에 앉았다. 정말 가지고 싶은 것인데, 무슨 생각인 거니! 넌 지금 버려야 해! 있는 것도 버리고 가야 한다고. 근데 뭐? 또 가져가? 이게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하니? 누군가 내 옆에서 이런 말을 해주기라도 하듯 나는 혼자 혼나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커피 포트는 테이블에 놓았다. 그리고 어린 왕자 한국판 동화책을 손에 들었다. 여기서 그냥 읽다가 두고 가야 한다. 모처럼 만난 한글로 된 책, 그것도 동화책, 철학이 담긴 책이니 좋았다. 커피포트처럼 한동안 품고 있다가 두고 가야지!
필요한 분 가져가세요, 코너! 다르게 말하자면, 필요 없는 것 내려두세요, 코너이다. 피레네를 넘고 나서야 두고 가는 짐들!
저녁시간에 맞춰 메디가 왔다.
“준비됐어?”
“그래, 가자 가자, 배 고프다!”
영어는 존댓말이 없다. 그저 정중하냐의 차이지만, 메디와 나는 벌써 친구처럼 편하게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편의상 머릿속에서 친구처럼 반말로 대화를 하는 중이었다. 계단을 내려가다가 파레네 중턱에서 만난 브라질 여인 마기를 만났다.
“와우~! 마기! 같이 밥 먹으러 가자!”
날은 이제 어두침침해졌다. 비가 내린 턱에 두꺼운 옷을 꺼내 입었다. 마당에서 마기와 함께 메디랑 기념사진을 찍었다. 내가 마음껏 개그맨 포즈로 모델처럼 자세를 취하자 마가와 메디가 깔깔 거리며 웃었다. 처음에 얌전하다 싶더니만, 이제 자기들도 마당에서 멋진 포즈로 서있는 게 아닌가. 함께 빙그르르 돌면서 기념사진을 마쳤다. 이제 정말 배가 고파서 밥을 먹어야 했다. 아까 미사를 드리고 싶었는데, 시간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 못 들어갔다. 그저 밥이라도 제대로 먹어야 영적 허기를 채울까 싶었다. 아직 식당 문이 열리려면 더 있어야 했지만, 미리 가서 줄을 서자고 했다. 그런데 마기는 식당이 달랐다. 안타깝지만 밥을 먹고 다시 만나기로 했다.
성당도, 식당도, 모두 이 내부 마당을 거쳐 간다.
메디와 나는 앞 쪽에서 서있었다.
드디어 밥 먹기 전에 P선생님을 만났다. 그런데 P선생님 역시 식당이 달랐다. 대부분 같은 식당일 거라고 하더니만 나뉘게 됐다. 하필 로만손 일행과 P선생님이 같은 식당이 아니었다. 로만손 일행은 나와 같은 식당이었다. P선생님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 내가 그런 것도 아닌데, 괜히 미안했다. 식당에 들어서자 둥근 테이블 여기저기에 사람들이 나뉘어 앉기 시작했다. 메디는 제일 구석 자리로 가자고 했다. 저렇게 구석까지 할 정도 구석자리! 로만손 일행과 메디랑 같이 앉아야지 싶었는데, 테이블 당 4명만 앉게 되어있었다. 난감했다. 오리손에서 자리를 맡지 못한 일이 또 재현되었다.
로만손 일행 중 마마드가 먼저 식당에 들어섰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에게 고민하는 표정을 날렸다. 의자 수가 맞지 않아서 어쩌나 싶었다. 그때 누군가가 우리 테이블에 들어섰다. 로만손 일행도 뒤늦게 식당에 들어서서 근처 적당한 테이블에 앉았다. 그들이 들어섰을 때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테이블을 차지하기 시작했기에 오리손 때처럼 나는 그들과 합석할 자리도 마련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이제 그들은 나에게 별 기대를 하지 않은 듯했다. 내가 의도적으로 자신들을 피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오리손에서 묵으라고 권했을 때도 온전히 나를 위해서 그들이 권했다는 것을 안다. 내가 P선생님이 내게 함께 묵자고 해도 나는 그냥 가겠다고 우겼다. 상황을 보다가 한 보 후퇴한 듯하던 그들이 조심스럽게 오리손에 묵는 게 좋다고 했을 때 내 눈치를 봤다.
내가 그들과 더 친해지지 못한 것은 순전히 나의 닫힌 마음 때문이었다. 나는 그들이 정말 고맙고, 정말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했다. 나의 천사라고 생각했지만, P선생님이 그들에게 바짝 붙어서 멀찍이 떨어진 것도 있었다. 함께 어울리며 다닐 정서적 교류가 없었다. 나는 무엇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사람들에게 조금 질려있는 상태였다. 역시 나의 선입견이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호감으로 질문을 던지는 사람도 있는데, 너무 밀어낸 것도 있었다. 무엇보다 피레네를 넘을 때는 끊임없이 불만을 터뜨리는 그녀에게 화딱지가 나서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가! 가란 말이야! 말은 안 했지만 내 표정에서 그걸 느꼈을지 모르겠다. 내 눈치를 보는 건 느꼈다. 원래 나라면 반성 모드로 그녀에게 잘 대해주려고 애썼을지 모르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틈을 주면 나를 쥐려고 할 것 같았기에! 로만손과도 친해지고 싶었지만, 그러려면 P선생님과 함께 해야 했다. 나는 그냥 홀가분함을 택했다.
우리 테이블로 온 사람들은 누구인가?
뜻밖에도 외국 여성과 한국 남자이 왔다. 외국 여성은 긴 머리에 짧은 앞머리를 한 소녀 취향의 여인이었다. 표정도 순진한 소녀처럼 지었지만 신선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어쩐지 옆에 있는 한국 남자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를 무척 신경 쓰는 얼굴이었다. 이 테이블로 온 건 그녀의 선택인 듯했다. 그들은 언뜻 보기에 커플 비슷한 분위기였다. 여성의 나이가 월등하게 많았지만 남자는 많아야 30대 초반 정도? 그는 나를 보자마자 똥 씹은 표정이었다. 아놔~! 하필 한국 여자가 있는 테이블이야~! 왜 여기에 앉아야 하냐고~! 커플 여자를 원망하듯 보는 한국 남자! 어물쩡거리며 내 눈을 피했다. 나도 표정으로 응수했다. 야, 나도 불편해. 나도 썩 보고 싶지 않은 장면 본 것 같다, 야! 어린 녀석이 왜 늙은 여자한테 붙어서 그래? 뭘 바라는데? 나는 이리저리 시선을 피하다가 태연한 척 인사를 건넸지만 그의 방어적 태도에 거부감 비슷한 것이 생겼다.
식사와 함께 나오는 와인, 순례길 내내 와인은 물보다 더 친근하게 따라다녔다. 나에게는 그림의 와인일 뿐!
메디는 원래부터 만나기로 한 사람처럼 그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까무잡잡한 사람은 호주에서 일을 하다가 순례길로 들어섰다고 했다. 그의 커플 여인은 호주인이었다. 말하다 보니, 순례길 초입에서 만난 것이지 원래부터 알거나 특별한 관계는 아닌 듯했다. 아무래도 호주 여성이 그에게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앞으로 그와 함께 순례길을 걷게 되는 것처럼 말을 했다. 순례길 파트너를 만났다고 여긴 것이다. 그녀는 오리손에서 묵었고, 그때 이 남자는 오리손에 없었다. 그렇다면 오리손에서 론세스까지 오는 동안 정도에 만난 것인데? 아니면 여기 론세스 도착해서 만났을 수 있다. 어떻게 짧은 시간에 저런 사랑에 빠진 표정이 나올까. 오리엔탈리즘, 신비로움을 가지고 동양 남자를 대하는 느낌인가? 남자가 가무잡잡한 피부가 서양 여자들에게 섹시한 동양 남자로 인식될 수 있겠다 싶었다. 남자 얼굴이 많이 탔다. 피서 갔다 온 얼굴처럼!
생선 스테이크를 시켰더니 정직하게 생선이 딱 나왔다.
내가 생선을 그렇게 무서워한 적은 처음이었다. 맛은 괜찮았다. 식사를 하며 옆 테이블에 한국 사람들이 있어서 인사를 나눴다. 그거 맛있냐, 먹어봤냐, 먹어봐라 한국인들이 주고받는 오지랖! 30대 이상은 가능하다. 내 테이블에 있는 한국 남자는 그들과도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그는 일단 한국 사람이 싫은 눈치였다. 나는 한국인이 싫어요! 얼굴이 써붙인 듯했다. 그는 영어 연습을 위해 서양인들과 대화하기만 원하는 듯했다. 한국 사람은 대놓고 싫어하는 모습! 나중에 그를 다시 만났을 때 그것이 내 생각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무슨 상처를 받은 것일까?
튀겨진 것도 아니고, 생선이 너무 정직하게 나와서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식사 시간이 의외로 즐거웠다. 식사를 끝내고 나는 로만손 테이블로 갔다. 함께 하지 못한 아쉬운 마음에 사진을 찍자고 했다. 메디가 놀란 눈으로 이들을 어떻게 아냐고 했다. 자신도 이들과 인사를 나눴던 모양이다. 내가 식당에서 그들을 처음 봤다고 여긴 것인지! 로만손 일행은 지쳐서인지, 술을 마셔서인지, 조금 가라앉은 표정이었다. 혹시 내가 테이블을 안 맡았다고 섭섭해하는 중인가? 내가 자기들을 좋아하지 않아서 피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소심 모드! 그런데 자기들끼리도 별 대화가 없다. 나는 메디에게 그들이 나에게 친절을 베푼 일을 설명했다. 그리고 그들에게도 다시 한번 감사를 전하며 자리를 떴다.
메디와 나는 밖으로 나왔다. 나는 한가롭게 알베르게 주변을 둘러보고 싶었다. 메디는 내일 아침도 같이 먹자고 하는데, 나는 내일 예약을 하지 않았다. 메디는 아침 식사도 훌륭한데, 왜 안 했냐고 한다. 사실 식단은 다른 곳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맛이 좋다고 했다. 후회가 됐지만, 어쩔 수 없는 일! 메디는 어딜 좀 가보겠다며 숙소에서 보자고 했다. 그녀는 왠지 바빴다. 마당을 걸어가는데, 마기가 어느새 식사를 마치고 나왔다. 우리는 함께 주변을 돌아봤다. 그러다가 숙소 복도 불빛이 예뻐서 사진을 찍자고 했다. 안쪽에 자판기가 있고 테이블이 있는 휴게실, 작은 도서관과 쉼터도 가보았다. 밤이 되니, 주홍 불빛이 더 아늑하게 비쳤다. 유럽식 건물을 리모델링해서인지, 더 신비로웠다. 마기는 내 스타일을 파악한 듯 우스꽝스러운 표정과 몸짓으로 포즈를 취하기 시작했다. 아직 저녁식사에서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 때문에 복도에 사람들이 없었다. 우린 아이들처럼 신나게 사진을 찍었다.
저녁을 먹고 침대로 돌아와 보니, 그 많던 침대에 사람들이 꽉 들이찼다. 이를 닦고 어쩌고 하는데, 한국인 단체 손님들이 언제 들어왔는지 왁자지껄 했다. 수련회 느낌이었다. 너무 대놓고 한국말로 떠들어서 조금 민망했다. 이런 정도의 소음은 실례일 텐데, 왜 그러나 싶었다. 어디선가 들었다. 한국인들이 순례길을 노 매너로 알려졌다고! 그래서 한국인끼리 아는 척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어쩌면 식당에서 봤던 한국 남자도 그런 이유 때문에 한국인들을 경계하기 시작했을까? 사람이 귀할 때라면 반가웠울 테지만, 차고 넘치는 한국 사람들! 그리고 아직 초입이라 한국 사람들이 그리운 때도 아닐 것이다.
메디가 양치까지 끝내고 2층 침대에 오른다. 예쁜 슬립을 입었다. 나이에 맞지 않은 조금 야한 옷이다. 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 저리 짧은 슬립을 입고 2층 침대를 오르다니! 메디를 몰랐다면 눈살을 찌푸렸을지 모르겠다. 꼰대스런 눈길을 잠시 보내면서도 나이를 먹어도 자신을 젊게 가꾸려는 메디의 열정에 감탄을 했다. 건너편 2층 침대에서 메디는 책을 읽고, 나는 가수면 상태로 누워 있었다. 사람이 많아도 아늑하고 좋았다. 코 고는 사람만 없다면 아주 좋은 밤이 될 것 같았다. 복도 끝이라고 해도 내부 온도가 높아서인지 참 따뜻했다. 화장실이 가까워서 걱정했지만 현대식이라 깨끗했다. 오히려 중간에 화장실에 가기에 좋을 것이다. 발이 삐끗해서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2층 침대에 오르내릴 때도 문제없었다. 그래, 이 정도면 훌륭하다. 나의 까미노! 내일 다시 시작이다.
<론세스바예스에 관련된 전해지는 이야기>
-한국 산티아고 순례자 협회 자료 참조-
전설 1.
전투가 있던 날, 아군과 적군의 시신이 엉켜있었다. 함께 매장을 해야 할 판이라서 구분할 수 있는 증표가 절실했다. 기도를 하자 시신의 입에서 장미가 피어났다. 이를 기준으로 분리해 매장했다는 전설! 이게 바로 로시스 바예(Rosis Valle; 장미의 계곡) 뜻을 지닌 론세스바예스 지명의 기원이라고 한다.
전설 2.
야고보 성인 기적이 처음으로 일어난 시사 골짜기! 기사들이 순례를 떠났다. 어려움이 닥쳐도 포기하지 말고, 서로 돕자는 맹세를 했지만 정작 기사가 병에 걸리자 그를 두고 모두 떠났다. 오히려 맹세를 하지 않은 기사 하나가 남아 그를 돌봐주었다. 그러다가 시사 골짜기에서 모든 기사가 죽게 되었다. 남은 기사들이 죄책감과 두려움에 떨 때 누군가 말을 타고 와서 두 순례 기사를 말에 태워 산티아고 데 꼼뽀스뗄라로 데려갔다. 그가 바로 사도 야고보였다. 순례를 계속하려면 회개해야 한다는 말을 전했다 한다.
전설 3.
론세스바예스의 성모 발견 전설, 10세기경, 목동들이 밤에 가축을 돌볼 때였다. 뿔이 환하게 빛나는 사슴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호기심 많은 목동들은 두려움을 떨치고 사슴을 뒤쫓아 갔다. 사슴이 걸음을 멈춘 채 땅을 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을 파보란 듯 목동들을 쳐다보다가 사라졌다. 목동들은 힘을 모아 땅을 팠다. 땅 속에 모셔져 있는 성모 마리아 상을 발견! 이후 이곳에 성당이 세워지고, 발견된 성모상은 현재 건물 안에 모셔져 있다고 한다.
어둠 속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떠보니 랜턴불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방을 비추고 있었다. 짐을 챙기는 소리도 들렸다. 불빛과 소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둘씩 멀어져 갔다. 그들은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순례길을 향해 떠났다.
곧 날이 밝아오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미 반 이상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슬슬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짐을 챙겨 한명씩 나가는 동안 오히려 천천히 움직였다. 빨리 가는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지금 이순간 과정 하나하나를 제대로 느끼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어제 함께 왔던 순례자들도 나갈 준비를 마쳤다. 씨익 웃으면서 인사를 하고 먼저 보냈다. 그렇게 하나둘씩 떠나고 방안에는 나와 외국인 커플이 남아 있었다. 보아하니 이 커플은 빨리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니 프랑스에서 왔다고 했다. 그쪽에서 뭐라고 얘기를 계속 했는데, 사실 잘 알아듣지는 못했다. 고개를 몇번 끄덕이며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도 이제 출발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밍그적거리는 프랑스 커플과 인사를 나누고 숙소를 나왔다.
생장의 아침은 짙은 안개로 뒤덮여 있었다. 이렇게 짙은 안개를 최근에 본 적이 있었던가 생각하면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어제 봤던 마을의 건물들이 희미하게 보였고 안개와 어우러진 모습이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이윽고 마을을 빠져나가는 입구에 도착했다. 순례자들은 다 떠났는지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고요한 분위기 속에 이제 순례길을 시작한다는 설렘이 마음을 감싸왔다.
입구에는 문이 하나 서 있었다. 이제 이 문을 나서면 산티아고 순례길이 시작된다.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 <3>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나는 마을에는 대부분 알베르게(순례자 숙소)가 있다. 마을의 규모에 따라 알베르게의 수와 위치도 다양하다. 어느 정도 큰 마을에 머물게 될 때는 알베르게가 마을 중심에 있고, 그런 경우 알베르게와 순례길의 출발위치가 꽤 떨어져 있기도 하다. 미리 출발하는 장소를 봐두지 않으면 마을에서 헤매는 경우도 생긴다. 이를 대비해 전날 쉬면서 미리 출발위치를 확인해두는 것이 좋다. 다른 순례자들이 출발할 때 같이 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간밤에 잠을 설쳤지만 기분만은 상쾌했다. 길을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이 가볍기만 했다. 짙게 끼어 있던 안개도 서서히 거치면서 주변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가다가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늦게 출발했기는 했지만 한참을 걸어도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지금 걷고 있는 길도 차도였고, 간간히 차들만 지나갈 뿐이었다. 지나가는 차들을 바라보며 가고 있는데 한 운전자는 손을 들며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아 여기는 차도 순례자들을 반갑게 맞아주는구나!
여전히 찜찜한 마음으로 걷다가 문득 아까 마을을 나설때 갈림길이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가는 길을 확인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길을 잘못 들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가는 길이 맞을 수도 있겠지만 내 마음은 얼른 돌아가라고 하고 있었다.
그렇게 발길을 돌려 갈림길이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 순례자 사무실에서 줬던 안내지도를 꺼내고 주변 이정표를 살펴보다가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처음에 들어선 길은 아마 차들이 다니는 길이었던거 같았는데, 표시가 양쪽에 다 되어있어 헷갈렸던 거였다. 비록 잠깐 길을 잘못 들기는 했지만 이제라도 제대로 길을 찾아서 안심이 되었다.
한번 더 길이 맞는지 확인한 후 다시 걷기 시작했다. 곧 산으로 이어지는 오르막이 나왔고 제대로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출발 전에 봤던 순례길의 첫날 일정은 피레네 산맥을 가로지르는 코스였다. 산으로 향하는 오르막을 보니 이제 진짜 순례길을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다른 순례자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걷을 수 있게 나 있는 길이 보이면서 더는 불안하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길을 따라 가기만 하면 됐다.
오르막은 계속 이어졌고 시간이 지나면서 짐을 채운 배낭의 무게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눈앞에 펼쳐져 있는 풍경들은 그 무게를 잊게 했다. 파아란 하늘 아래 산과 언덕, 나무들이 어우려져 있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그 모습에 취해 자꾸 발걸음이 멈췄다. 하늘의 푸른빛과 자연의 초록빛이 어우러진 모습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걸으면서 시시각각 변해가는 풍경을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한시간쯤 걸었을까. 커다란 건물이 보이기 시작하고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곳은 순례자들이 잠깐 쉬면서 요기도 할 수 있는 장소였다. 나중에 안 거지만 이곳은 오리손 알베르게라고 미리 예약을 통해서 이용할 수 있는 숙소가 있었다. 그래서 이 곳에서 자고 순례길을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순례길의 첫 휴식지에는 미리 출발했던 순례자들이 여기저기에서 쉬거나 음식을 먹고 있었다. 카페 안에는 간단한 음식과 음료를 팔고 있었다. 나도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했다. 배가 고프지는 않아서 가져온 물통에 물만 받아마셨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까 걸어오면서 봤던 풍경들과 또다른 모습을 바라보며 눈과 마음이 힐링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제 다시 출발할 시간이었다. 잠깐 쉬다가 다시 배낭을 매니 그 무게가 확 느껴졌다. 그래도 잘 쉰 덕분인지 그 무게감도 기분 좋게 느끼며 걷기 시작했다.
휴식장소를 지나면서 오르막의 경사는 점점 높아지기 시작했다. 눈앞의 풍경도 아까와는 다른 모습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넓은 들판이 나오고 한쪽에는 소들이, 다른 한쪽에는 양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그리고 길을 안내해주는 표지판도 보이기 시작했다.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 <4>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순례자들의 길안내를 담당하고 있는 많은 표지판은 순례길의 트레이드마크. 표지판이 있기에 순례자들은 길을 잃을 염려없이 안심하고 순례길을 걸을 수 있게 된다. 보통 표지판은 노란색 색깔의 화살표로 되어 있는데, 그 외에도 길마다 마을마다 다양한 형태의 표지판을 볼 수가 있다.
이제는 내 앞뒤로 걷고 있는 순례자들도 볼 수 있었다. 순례자들은 혼자 또는 무리지어 같은 길 위에서 걷고 있었다. 그들을 아는 것도 아니고 옆에서 같이 걷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들과 함께 한다는 일체감이 들었다. 혼자 걸어도 혼자 걷는 것 같지 않은 느낌이랄까. 점점 오르막은 높아지고 걷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힘이 조금씩 들었지만 마음만은 줄곧 평화로웠다.
프랑스와 스페인의 경계를 이루는 피레네 산맥은 역시 듣던 대로 만만치 않은 곳이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오르막과 한낮에 쏟아지는 태양의 열기는 순례자들을 점점 지치게 만들었다. 중간중간 쉬면서 배낭도 내려놓고 수분도 보충하면서 페이스를 조절을 하면서 순례길을 이어나갔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언덕길 오르막에 숲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는 오르막이 끝나고 평지가 이어졌다. 양쪽에 늘어서있는 나무들이 햇볕을 막아줘 시원하게 걸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 숲길을 걷다가 빗장으로 된 간이문이 보였고 그 문을 열고 나가자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건물이 보이자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것은 피레네 산맥을 무사히 건너 스페인으로 건너왔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기도 했다.
그렇게 첫 순례길을 마치고 도착한 곳은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 피레네 산맥에 둘러싸여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는 이 곳에 오늘의 숙소가 있었다. 론세스바예스는 수도원과 여러 성당이 자리 잡은 역사적인 곳으로 수도원 안에 알베르게가 있다. 알베르게의 규모가 굉장히 커서 산티아고 순례길에 있는 알베르게 중 가장 큰 축에 속했다.
숙소가 있는 수도원에 다가가니 이미 씻고 나왔는지 가벼운 복장으로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수도원으로 들어가 순례자 여권을 보여줬다. 안내자가 여권에 도장을 찍어주면서 자리를 배정해주고 위치를 알려줬다. 처음 찍게 된 도장이 신기해 잠시 구경하고 짐을 챙겨 숙소로 들어갔다.
숙소는 굉장히 넓었고 2층 침대가 멀리까지 이어져있었다. 새로 단장한지 얼마 안되어 깔끔한 침대와 샤워시설을 이용할 수 있었다. 배정된 침대 주변에는 이미 도착한 순례자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처음 보는 그들과 약간은 어색하지만 그래도 웃으면서 인사를 나눴다. 올라!
짐을 풀고 샤워를 한 후 잠시 휴식을 취하고 수도원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도원 안에는 순례자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물건을 팔고 있었고, 하나하나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수도원 옆에 있는 성당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모여서 기도를 드리는 건가 생각하며 잠시 둘러보고 나왔다.
내가 성당에서 본 것은 알고 보니 순례자를 위한 미사였다. 이 미사를 통해 사제가 순례자의 안전과 평화를 기원하며 순례자들의 손을 잡아주고 축복을 건네준다고 하였다. 사전에 그런 것을 모르고 와서 그냥 지나친 것이 아쉬움으로 남기도 했다. 산티아고 순례길 중에는 평소 접하지 못하는 것들을 만나게 되기도 한다. 잘 모를 때는 일단 참여해보는 게 좋을 수 있다. 쉽게 경험해보지 못하는 소중한 추억이 될 수도 있으니까.
구경을 마치고 수도원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식당에서 다른 순례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다. 순례자들을 위한 코스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스프와 빵을 비롯해 다양한 음식들을 맛볼 수 있었다. 원형의 식탁에 둘러앉아 다른 순례자들과 먹게 되었다. 여러 나라의 언어들이 뒤섞여 있는 식탁의 풍경이 생소하고 신기했다.
한 순례자가 갑자기 내게 국적을 묻더니 ‘안녕하세요’를 우리말로 뭐라고 하는지 물었다. 그래서 알려줬더니 매우 신기해하는게 아닌가. 사실 그 반응이 그닥 탐탁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왜였을까? 그 사람의 표정과 반응에서 우리 말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저녁을 먹고 숙소로 들어오니 일찌감치 누워 있는 사람도 있었고 다른 순례자들과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주변정리를 마치고 나니 어느덧 시간은 10시가 되었고, 알베르게의 불은 하나둘 꺼지기 시작했다.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 <5>
순례자들이 이용하는 알베르게는 정해진 몇가지 규칙이 있다. 우선 소등 시간. 소등시간이 되면 다들 자리에 눕거나 볼일이 있는 경우 조용하게 움직이게 된다. 알베르게를 떠나야 하는 시간도 정해져 있다. 순례자들이 머문 알베르게를 청소하고 다음 순례자들을 맞을 준비를 하다보니 그렇게 운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보통 아침 8시, 늦어도 9시까지는 알베르게를 떠나야 한다.
공립 알베르게의 경우에는 많은 사람들이 머물다보니 이 규정이 엄격하게 지켜진다. 사립의 경우에는 알베르게마다 차이는 있지만 소등이나 체크아웃 시간이 좀 더 자유로운 편이다.
이렇게 산티아고 순례길의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생장을 출발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론세스바예스로 오는 첫 일정은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이 길을 통해 보고 듣고 느끼며 마주친 모든 것들이 힘들었던 순간들도 좋은 기억으로 만들어 주었다.
첫날부터 느낀 순례길의 매력에 내일은 어떤 길을 걷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제1일 : 생장 피에드포르~론세스바예스(26.3km),8시간 30분
2019년 9월 19일
나폴레옹 루트라 불리는 피레네 산맥을 넘는 날이었다.
론세스바예스까지는 26킬로가 조금 넘는데,순례길에서 가장 힘든 구간으로 손꼽는다.
13킬로 떨어진 곳에 오리손 알베르게가 있긴 하지만,수용인원이 워낙 적어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숙박이 어렵다.
론세스바예스까지는 무조건 가야만 했다.
새벽 6시 40분에 알베르게를 나왔다.
까미노길을 미리 알아두지 않아 배낭멘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따라가면 될 줄 알았는데,어두운 새벽길 위엔 아무도 없었다.
잠시 헤맨끝에 성문을 나와 다리를 건너며 몇몇의 순례객들을 만났다.
안개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우의를 쓸 정도는 아니라 레인커버만 씌우고 그냥 걸었다.
산자락을 발아래 두며 계속해서 올라야 하는 길이었다.
습한데다 땀까지 섞여 연신 얼굴을 닦아냈다.
저 푸른 위에 그림같은 풍경들을 바라보며 한걸음 한걸음씩 이어갔다.
그러면서 피레네산맥의 탁 트인 풍광들을 보고싶어 하늘이 맑아지기만을 기도했다.
참 예쁜 길이었지만,여유를 부리며 걸을 시간은 없었다.
가야할 거리가 만만치 않았다.
완만한 포장길이었지만,조금씩 고도를 높혀야 하는 길이었기에 숨이 계속 턱에 걸려 있었다.
스틱도 없이 참 여유롭게 잘 걷는 외국인 순례객..
내 갈길이 바빠 사진을 찍고는 이름도 못물어봤다.
피레네산맥 넘는 구간이 힘든 구간인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정말 힘들었다.
흙길로 된 오르막은 끝도 없이 계속 이어졌다.
거기에 시차적응도 안되었고,피로도 미처 다 풀지 못한 상태라 더욱 몸뚱아리가 무거웠다.
눈앞에 보이는 풍광으로 위로받으며 묵묵히 걸었다.
제법 고도가 높아졌다.
저 아래 힘겹게 올라오는 순례객들이 까마득하게 보였다.
산아래 그림도 화폭이 점점 넓어져 시원스러웠다.
다행히 안개비는 더이상 오지 않았다.
힘을 내요,세뇨리따 리~~~
배낭무게를 줄이느라 물은 500m하나만 넣었었는데,턱없이 부족했다.
고맙게도 물을 보충할 수 있는 식수대가 나와 벌컥벌컥 한병을 다 마시고,다시 채워넣었다.
가기전엔 물갈이하면 큰일이니 물은 꼭 생수를 사먹으려고 했었다.
하지만,그 생각은 하룻만에 바뀌었다.
식수대를 만나면 무조건 물을 보충했고,나중엔 개수대 물은 물론이고 화장실 물까지 벌컥벌컥 마셔댔다.
다 환경에 적응하게 되어 있었는지,아무 탈이 없었다.
2시간 반만에 한 템포 쉬어갈 수 있는 오리손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안개로 휩싸여 사진에서 봤던 그 아담하고 예쁜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몸이 축축해 세요도 찍고 몸도 녹일겸 안으로 들어갔다.
바욘에서 함께 기차를 탔던 영훈이를 만나 카페 꼰 레체를 주문해 빵이랑 함께 요기를 했다.
추워서 그랬는지,우유 들어간 따끈한 커피가 그만이었다.
화장실은 남녀가 함께 쓰는 곳,딱 하나뿐이라서 한참을 기다려 볼일을 봤다.
기다리며 일본에서 온 요오스케와 인사를 나눴다.
순례길에서 일본인은 아주 드물었다.동양인 중에는 한국인이 가장 많았고,그 다음으로는 대만인이 많았다.
드넓은 초원위로는
양이며 말들이 뛰놀고 있었다.
딸랑딸랑 소리가 들리면 양이나 말몰이를 하는구나~하고 생각하면 되었다.
그래서 까미노길 위엔 언제나 쿰쿰한 냄새는 물론이고 말똥이 정말 많았다.
노란 화살표를 잘 찾는것 못지 않게 말똥을 잘 피해 걷는것도 까미노길의 아주 중요한 요령이었다.
돌무덤이나 십자가는 까미노에서 자주 눈에 띄었는데,새벽길에 지날땐 조금 으스스할때도 있었다.
마을을 벗어날땐 꼭 공동묘지도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져 그냥 까미노의 일부려니~했다.
참내..내가 배낭을 메고 여기까지 올줄이야~~
아무리 곱씹어봐도 신기하기만 했다.
무턱대고 오고 싶은 마음에 6개월전에 비행기티켓을 끊고나서는 어찌나 겁나고 두려웠는지..
가끔 악몽도 꾸었다.
아무런 준비도 안했는데,맨몸으로 비행기를 타기도 했고,또 어느날은 여권을 잃어버려 꺽꺽대며 우는 꿈을 꾸기도 했었다.
이렇게 현실이 되어 까미노길 위에 있지만,가끔은 실감이 안나기도 했다.
아무리 혼자걷는 길이라지만,혼자 걷는다는건 상상할 수 없었다.
언니만큼 훌륭한 길동무는 없었다.
어느날,할 이야기가 있다며 도봉산역 커피점으로 불러내 `나,올 가을에 산티아고 갈꺼예요~`
첫마디는 이렇게 내뱉고는 그 다음은 `언니 안가면 나 혼자서는 못가요~같이 가주세요~`라는 속마음 대신에 `언니 안가면 나 혼자서라도 갈꺼야~`이랬다.
아,진짜..나라는 사람은 정말 웃기는 짬뽕이었다..ㅎㅎ
누구는 열심히 걷고,누구는 등대고 누워있고…
열심히 걷는 바로 저 우리우리한 뒤태의 주인공은 영훈이었다.
마지막 산티아고까지 함께 걸을 줄은 저때만해도 몰랐었다.
영훈이가 만들어준 특급 스파게티를 먹게 될 줄은 저때만해도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냥 지나가는 인연이려니~했었다.
안개속에서 오아시스를 만났다.
바로 푸드트럭이었는데,음료며 과일들을 팔고 있었다.
바나나와 오렌지쥬스로 요기를 좀 했다.
스페인어를 썼더니 아주 좋아했다.별것도 없었다.
그냥 `도스 쑤모 데 나랑하 뽀르파보르!`이러면 끝이었다.
노란화살표와 함께 까미노의 시그날이 되었던 신발..
이런 모습을 까미노길 위에서 아주 많이 볼 수 있었다.
날이 개기 시작했다.
산아래 풍경도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고된걸음끝에 받는 선물이구나~했다.
큰 교훈하나를 얻었다.
무조건 앞사람만 따라가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 있다는것과 노란색 시그날을 잘 살펴야 한다는 것,두가지였다.
바닥에 써있는 숫자만 보고 무작정 따라가는게 아니었다.
가다보니 자전거가 다니는 길이었다.
우리말고도 열명 넘게 알바를 한 셈이었는데,누구랄것도 없이 그냥 앞사람만 보고 따라갔다는것이었다.
왔던 길을 다시 걷는다는건 큰 곤혹이었다.
맥이 빠져 다리힘이 풀려 막 후달거렸을 정도였다.
다시 까미노길을 찾고나니 햇살은 따가워지고,하늘은 점점 파래졌다.
안개는 점점 걷히기 시작하더니,산자락마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오르막이 너무 힘들어 기절하기 일보직전이었다.
언덕에 올라서자마자 배낭을 내려놓을 수 밖에 없었는데,산자락이 예술이었다.
만약 알바를 안했더라면 못봤을 풍경이라 생각하니,신은 참 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된 걸음끝에 이런 달콤함을 주셨으니 말이다.
산자락을 빙글빙글 돌며 걷는 길이 이어졌다.
산그림은 마치 스위스의 알프스 자락처럼 보였다.
구름까지 얹혀져 있으니 그림이 따로 없었다.
언제 끝날지 모를 길이 계속 이어졌다.
너무 힘드니 점점 멋진 풍광으로도 큰 위로가 되지 못했다.
롤랑의 샘을 만났다.
누구랄것도 없이 다 쉬어간다.
나도 남은 물을 다 마시고 다시 또 보충했다.
드디어 프랑스 국경을 넘는 순간이었다.
나바라 주에 들어섰다는 표지석 하나로 스페인으로 진입했음을 알려주었다.
샤프란이라는 꽃들이 인사했다.
빠에야에 들어가는 그 노란색 향신료의 정체가 바로 이 샤프란인데,조금이라도 높은 지역이다 싶으면 어김없이 피어있었다.
지나가는 한국인 순례객한테 꽃이름을 알려주니 샤프란이란 섬유유연제 이야기를 했다.
지금은 폐허가 된 국경초소를 지나고도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은 끝이 없었는데,
햇살이 따가워서 더 곤혹스러웠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눈부셨다.
하지만 그 햇살의 고마움을 알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렸다.
정상에 오르기 전,한차례 숨을 고르고..
마침내 안부에 닿았다.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자니,외국인 순례객이 뭐라뭐라 그랬다.
갑자기 쫄아서 못알아듣고 우물쭈물하고 있으니,그 옆에 앉아있던 한국학생이 해석해주는데, `사진찍었으니 모델료를 달라`~는 뜻이었다.
알고 봤더니,레오네오란 그 브라질 순례객이었는데,그 때가 인연의 시작이었다.
첫 만남때도 참 위트있고 유쾌한 사람이었다.
레푀더 안부에서 조금 내려가니 길이 두갈래를 갈라졌다.
경사진길 4.1km,완만한길 5.6킬로..
선택의 기로에서 언니랑 나는 조금이라도 걸음수를 줄여보겠다고 경사진 길을 택했다.
급하게 내려오는 길 양옆으로는 키 큰 나무들이 빼곡하게 늘어져 있었다.
대부분 순례객들이 완만한 길을 택했는지,한동안 우리말고 딱 한사람만 있을뿐,아무도 없었다.
노란색 화살표는 그 어디라도 그려져 있었다.
바닥은 물론이고,담벼락,신호등,그리고 나무까지..
더러는 알베르게 표시까지 노란색으로 표시되어 있어 주의해야했다.
500m가 남았다는 이정표를 지나고 숲을 벗어나자마자.마지막 철문을 통과하며 드디어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했다.
곧바로 오른편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공립알베르게로 갔다.
시내를 가려면 왼쪽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2킬로 이상을 가야만 했다.
알베르게는 180명넘게 수용하는 대규모 알베르게였는데,
사람들이 많아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만했다.접수처말고도 따로 안내만해주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차례가 와서 접수하고 여권과 순례자여권을 차례로 보여주니 세요를 찍어주었다.
그 다음엔 침대를 지정받고,저녁과 아침까지 신청해서 24유로를 냈다.
안내하시는 분이 침대까지 안내해 줬는데,아예 다른 건물이라 건물 밖으로 나가 방으로 안내했다.
18명이 한방을 쓰는데,침대는 다 2층침대였다.
화장실과 샤워실은 남녀구분없이 썼다.
불편한 잠자리,그리고 거친 음식에 익숙해져야함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아울러 눈치도 빨라야 한다는것..
그래야 샤워실에서 줄을 안서고 쓸 수 있고,식사시간도 놓치지 않는다.
건조대를 쓰려면 빨래도 잽싸게 해야 쓸 수 있다.
늑장부리다가는 빨래 널 공간도 없다.
세탁기나 건조기를 쓸 때도 마찬가지다.밧데리 충전할때도 그렇다.
알베르게는 더 심하다.
선착순으로 침대를 배정하니 먼저 도착해야 2층으로 올라가는 불편이 없다.
안그럼 문지방이나 배드버그가 나올법한 어두컴컴한 침대를 배정받아 밤새 찜찜함을 감수해야한다.
공급은 부족하고 수요는 넘쳐나니,재빠르게 선점하는거야말로 살 길이다.
순례길은 생존경쟁의 현장이었다~~~
침대배정을 받으며 식권을 받았는데,제대로 살피지 않아 엉뚱한 식당을 갔다가 다시 찾아간 레스토랑은 분위기가 참 좋았다.
순례자메뉴였는데,한테이블에 10명이 앉아 푸짐한 식사를 했다.
빵이며 수프,우유,과일등이 식전에 나왔고,두번째요리는 닭고기를 시켰다.
식탁 위에 있는 와인을 서로 따라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내 바로 옆에는 프랑스인이었는데,영어도 스페인어도 서로 잘 통하지 않아 그냥 단어들의 조합으로 대화했다.
그리고 한국인 순례객 두분도 있었는데,나중에 알고보니 처남 매부 사이였다.
처음엔 데면데면했는데,자꾸 만나다보니 정이 들어 길 위에서 만나면 멀리서도 반가워하며 인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