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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하기 좋은 글] 연금술사 속 글귀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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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 하기 좋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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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하기 좋은 글] 연금술사 속 글귀 모음
자꾸만 헤메이거나 어디선가 스멀스멀 두려움이 올라올 때 필사하기 좋은 연금술사 글귀들. 쓰고 또 쓰면서 다시 현재를 잘 살아내겠다 다짐하게 된다. ‘가장 어두운 시간은 바로 해 뜨기 직전’이다.
연금술사 필사
[1]친구를 사귀는 일은 여행의 큰 즐거움이었다. 늘 새로운 친구들과의 새로운 만남. 하지만 그렇게 만난 친구들과 며칠씩 함께 지낼 필요는 없었다. 항상 똑같은 사람들하고만 있으면 ㅡ산티아고가 신학교에 있을 때 그랬던 것처러므 그들은 우리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해버린다. 그렇게 되고 나면, 그들은 우리 삶을 변화시키려 든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이 바라는 대로 바뀌지 않으면 불만스러워한다. 사람들에겐 인생에 대한 나름의 분명한 기준들이 있기 때문이다.
[2]“이 세상에는 위대한 진실이 하나 있어. 무언가를 온 마음을 다해 원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거야.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은 곧 우주의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때문이지.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는 게 이 땅에서 자네가 맡은 임무라네.”
[3]“난 음식을 먹는 동안엔 먹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소. 걸어야 할 땐 걷는 것, 그게 다지. 만일 내가 싸워야 하는 날이 온다면, 그게 언제가 됐든 남들처럼 싸우다 미련 없이 죽을 거요. 난 지금 과거를 사는 것도 미래를 사는 것도 아니니까. 내겐 오직 현재만이 있고, 현재만이 내 유일한 관심거리요. 만약 당신이 영원히 현재에 머무를 수만 있다면 당신은 진정 행복한 사람일게요. 그럼 당신은 사막에도 생명이 존재하며 하늘에는 무수한 별들이 있다는 사실을, 전사들이 전투를 벌이는 것은 그 전투 속에 바로 인간의 생명과 연관된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거요. 생명은 성대한 잔치며 크나큰 축제요. 생명은 우리가 살고 있는 오직 이 순간에만 영원하기 때문이오.”
[4]“그대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게. 그대의 마음이 모든 것을 알테니. 그대의 마음은 만물의 정기에서 태어났고, 언젠가는 만물의 정기 속으로 되돌아갈 것이니.”
[5]“자아의 신화를 사는 자는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알고 있다네. 꿈을 이루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오직 하나,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일세.”
[6]“자, 이제는 때가 된 것 같으니 이야기해주지. 들어보게나.
누군가 꿈을 이루기에 앞서, 만물의 정기는 언제나 그 사람이 그 동안의 여정에서 배운 모든 것들을 시험해보고 싶어하지. 만물의 정기가 그런 시험을 하는 것은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네. 그건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것 말고도, 만물의 정기를 향해 가면서 배운 가르침 또한 정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일세. 대부분의 사람들이 포기하고 마는 것도 바로 그 순간이지. 사막의 언어로 말하면 ‘사람들은 오아시스의 야자나무들이 지평선에 보일 때 목말라 죽는다’는 게지.
무언가를 찾아나서는 도전은 언제나 ‘초심자의 행운’으로 시작되고, 반드시 ‘가혹한 시험’으로 끝을 맺는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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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하기 좋은 짧은 글/시 모음(v.16.05.01.)
1
말하자면 모든 시작은
단지 ‘계속’의 연속일 뿐,
사건이 기록된 책은
언제나 중간부터 펼쳐져있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첫눈에 반한 사랑 중
2
사랑하는 이여,
상처 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 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김종해, 그대 앞에 봄이 있다 중
3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정현종, 방문객 중
4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밤 너무 신나고 근사해요
내 마음에도 생전 처음 보는
환한 달이 떠오르고
산아래 작은 마을이 그려집니다
간절한 이 그리움들을,
사무쳐오는 이 연정들을
달빛에 실어
당신께 보냅니다
세상에,
강변에 달이 곱다고
전화를 다 주시다니요
흐르는 물 어디쯤 눈부시게 부서지는 소리
문득 들려옵니다
김용택,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5
우리는 하나의 징후다, 더는 아무 의미도
더는 아무 고뇌도 아니다 우리는 그리고 우리는
거의 잃어버렸다.
낯선 땅에서 언어를
횔덜린,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
6
저녁은 하나의 ‘간주곡’이다.
밤은 아직 기다려야 하고 낮은 이미 아니다.
바로 나비들이 죽는 시간이다.
다만, 슈만의 저녁이 진짜 저녁인 경우는 거의 없다.
바로 캄캄해지는 것이 아니라,
열매가 떨어지듯 완수된 하루의 무게 아래서
모든 것이 서서히 저무는 그런 순간이다.
머지않아 다가올 밤을,
죄 없이 여행자의 적이 되는 밤을 부르는 불분명한 박명이다.
미셸 슈나이더, 슈만, 내면의 풍경 중
7
낮은곳에 있고 싶었다
낮은곳이라면 지상의 그 어디라도 좋다
찰랑찰랑 고여들 네 사랑을
온 몸으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한 방울도 헛되이
새어나가지 않게 할 수만 있다면
그래, 내가
낮은 곳에 있겠다는 건
너를 위해 나를 온전히 비우겠다는 뜻이다
나의 존재마저 너에게 흠뻑 주고 싶다는 뜻이다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이정하, 낮은 곳으로
8
만약의 세계 지도
변하는 하늘 처럼
매일 변하는 땅의 모습이
만약의 세계 지도
거기에선 일기 예보를 듣는 것처럼
지도 예보 소식에 귀 기울여야 한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지도를 공부하고
어른들은 집에 바퀴를 단다
세상 사람 모두가 유목민이 된다
이번 계절엔 너와 내가 사는 곳이 다가와
나란해질 것
나는 풍경에 맞춰 옷을 입고 집을 떠난다
가방 속엔 너와 내가 함께할 세상
만약의 세계 지도가 반듯하게 접혀 있다
배수연, 만약의 세계 지도
9
우리 차나 한 잔 합시다.
오후의 햇살이 대숲을 화사하게 비추고,
샘물은 기쁨에 들떠 흐르고,
탕관에서 솔잎 사이로 부는 산들바람 소리가 들려온다.
아, 덧없는 것을 꿈꿨던 어리석음과 사물의 아름다움 속에서 서성거립시다.
오카쿠라 톈신, 차의 책 중
10
꿈에 문을 열고 꽃밭을 기웃거렸다
꽃밭을 노니는 꿈을 꾸면
마음에 둔 정인과 이별한다던데
아
그래서 오늘 만난 그에게서
휘파람 소리가 났는가 보다
김경미, 꽃씨, 하나
11
이 세상 정들 것 없어 병에 정듭니다
가엾은 등불 마음의 살들은 저리도 여려 나 그 살을 세상의 접면에 대고 몸이 상합니다 몸이 상할 때 마음은 저 혼자 버려지고 버려진 마음이 너무 많아 이 세상 모든 길들은 위독합니다 위독한 길을 따라 속수무책의 몸이여 버려진 마음들이 켜놓은 세상의 등불은 아프고 대책없습니다
정든 병이 켜놓은 세상의 등불은 어둑어둑 대책없습니다
허수경, 정든 병
12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나 킥킥……, 당신을 부릅니다 단풍의 손바닥, 은행의 두 갈래 그리고 합침 저 개망초의 시름, 밟힌 풀의 흙으로 돌아감 당신……, 킥킥거리며 세월에 대해 혹은 사랑과 상처, 상처의 몸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그대라는 자연의 달과 별……, 킥킥거리며 당신이라고……,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 기대 마음의 무덤에 나 벌초하러 진설 음식도 없이 맨 술 한 병 차고 병자처럼, 그러나 치병과 환후는 각각 따로인 것을 킥킥 당신 이쁜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 무를 수도 없는 참혹…… 그러나 킥킥 당신
허수경, 혼자 가는 먼 집
13
내 몸에 줄줄이 달린 선을 뽑는다
뭣보다 먼저 핸드폰을 던져두고
시계도 풀어놓고
승용차 따윈 물론 세워둔다
태양에 꽂은 전선만 남겨 두고
배낭 하나로 집을 나선다
훌훌 씨방 떠난 풀씨처럼
이제 어디에 닿을지 모른다
줄을 벗어 났으니
광막한 공간이 나를 품어줄 것이다.
조향미, 탈선
14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기형도, 빈 집
15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도종환, 담쟁이
16
버려야 할 물건이 많다
집 앞은 이미 버려진 물건들로 가득하다
죽은 사람의 물건을 버리고 나면 보낼 수 있다
죽지 않았으면 죽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나를 내다 버리고 오는 사람의 마음도 이해할 것만 같다
한밤중 누군가 버리고 싶다
한밤중 누군가 다시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다
창밖 가로등 아래
밤새 부스럭거리는 소리
강성은, 기일
17
생생한 꽃들일수록 슬쩍 한 귀퉁이를
손톱으로 상처내본다, 피 흘리는지 본다
가짜를 사랑하긴
싫다 어디든 손톱을 대본다
햇빛들 목련꽃만큼씩 떨어지는 날 당신이
손톱 열 개
똑똑 발톱 열 개마저 깎아준다
가끔씩 입속 혀로 거친 발톱결 적셔주면서
신에게 사과했다
김경미, 생화
18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19
의사의 처방은 항상 속을 따뜻이 하라는 것이다
전기담요를 먹을까요
달걀 비린내 나는 뜨건 백열등이라도 먹을까요
장미무늬 양초와 끓어넘치는 주전자를 함께 먹거나
홧홧한 박하나 겨자를 얹으면 좀 더 빠를까요
손 닿지 않는 그 안을 어찌 뜨겁게 달굴까요
차라리 개미를 믿지, 개미 지나간 길의 온기를 믿지
사람이건 꽃이건 비단 견직물처럼 매끄러워
미덥지 않았다
책상이나 서랍만이 더러 눈물을 보여주었다
저녁 불빛들로 들판의 겨울 한 낮들 덥혀질 때마다
실은 얼마나 따뜻하고 싶었는지
끝내 말할 수 없었다
김경미, 해명
20
봄의 정원으로 오라
이 곳에 꽃과 술과 촛불이 있으니
만일 당신이 오지 않는다면
이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만일 당신이 온다면
이것들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는가
잘랄루딘 루미, 봄의 정원으로 오라
21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나태주, 멀리서 빈다
22
그대,
천막을 기울이면 별을 녹인 물이 내 구두 속으로 흘러들었습니다
오소리가 나의 흰 드레스 자락에 불을 붙였고
타는 불과 흐르는 물을 가로질러 그대가 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우리가 나누는 말들이 서커스단 코끼리의 발아래서 놀았고
나는 사자의 이빨에 줄무늬를 그렸습니다
스스로 누군가를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무거워서
우리는 일부러 하품을 크게 했지만
한 번도 서커스 단원들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매일 커다란 단지에 눈물을 쏟고 코끼리 여물을 삶았습니다
뜨거운 김을 쐬어 눈알을 씻으면
천막 밖으로 아직은 너그러운 바람과
누구도 보지 못한 짐승의 냄새
손바닥이 따뜻한 당신의 휘파람과
그래도 가끔씩은
우리를 대신해 그네에 오르는 별들이 녹으면서
싸르락 싸르락 반짝였습니다
배수연, 우리들의 서커스
23
하늘의 창문들 열려 있고
영혼, 밤으로부터 풀려났다,
폭풍우, 우리 땅을 압도해
대화를, 언어를 삼켜버렸다
수많은 과도한 언어를, 그리하여
그 잔해가 굴러다닌다
이 시각까지.
횔덜린, 가장 가까운 최선
24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너는 몰라도 된다.
너를 좋아하는 마음은
오롯이 나의 것이요,
나의 그리움은
나 혼자만의 것으로도 차고 넘치니까
나는 이제 너 없이도 너를 좋아할 수 있다.
나태주, 내가 너를
25
눈을 깜박이는 것마저
숨을 쉬는 것마저
힘들 때가 있었다
때로 저무는 시간을 바라보고 앉아
자살을 꿈꾸곤 했다
한때는 내가 나를 버리는 것이
내가 남을 버리는 것보다
덜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무가 흙 위에 쓰러지듯
그렇게 쓰러지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당신 앞에
한 그루 나무처럼 서 있다
류시화, 자살
26
어느
이름모를 거리에서
예고없이
그대와 마주치고 싶다
그대가
처음
내 안의 들어왔을 때의
그 예고없음처럼
구명주, 헛된 바람
27
역사를하노라고 땅을파다가 커다란돌을하나 끄집어 내어놓고보니 도무 지어디인가 본듯한생각이들게 모양이생겼는데 목도들이 그것을메고나가더니 어디다갖다버리고온모양이길래 쫓아나가보니 위험하기짝이없는 큰길가더라.
그날밤에 한소나기하였으니 필시그돌이깨끗이씻겼을터인데 그이튿날가보니까 변괴로다 간데온데없더라. 어떤돌이와서 그돌을업어갔을까 나는참이런처량한생각에서아래와같은작문을지었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수없소이다. 내차례에 못올사랑인줄은 알면서도 나혼자는 꾸준히생각하리라. 자그러면 내내어여쁘소서”
어떤돌이 내얼굴을 물끄러미 치어다보는것만같아서 이런시는그만찢어버리고싶더라
이상, 이런 시
28
누가 다정하면 죽을 것 같았다
장미꽃나무 너무 다정할 때 그러하듯이
저녁 일몰 유독 다정할 때
유독 그러하듯이
뭘 잘못했는지,
다정이 나를 죽일 것만 같았다
김경미, 다정이 나를
29
비를 맞으며 걷는 사람에겐 우산보다
함께 걸어 줄 누군가가 필요한 것임을.
울고 있는 사람에겐 손수건 한 장보다
기대어 울 수 있는 한 가슴이
더욱 필요한 것임을.
그대를 만나고서부터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대여, 지금 어디 있는가.
보고 싶다 보고 싶다
말도 못 할 만큼
그대가 그립습니다.
이정하, 기대어 울 수 있는 한 가슴
30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그대만큼 나를 외롭게 한 이도 없다
이 생각을 하면 내가 꼭 울게 된다
그대만큼 나를 정직하게 해 준 이가 없었다
내 안을 비추는 그대는 제일로 영롱한 거울
그대의 깊이를 다 지나가면
글썽이는 눈매의 내가 있다
나의 시작이다
그대에게 매일 편지를 쓴다
한 귀절을 쓰면 한 귀절을 와서 읽는 그대
그래서 이 편지는 한 번도 부치지 않는다
김남조, 편지
31
가장 화려한 꽃이
가장 처참하게 진다
네 사랑을 보아라
네 사랑의 밀물진 꽃밭에
서서 보아라
절정에 이르렀던 날의 추억이
너를 더 아프게 하리라 칸나꽃밭
도종환, 칸나 꽃밭
32
나 하나 꽃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피고 내가 꽃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조동화, 나 하나 꽃피어
33
바다의 깊이를 재기 위해
바다로 내려간
소금인형처럼
당신의 깊이를 재기 위해
당신의 피속으로
뛰어든
나는
소금인형처럼
흔적도 없이
녹아 버렸네
류시화, 소금인형
34
그리하여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어느날
낡은 수첩 한구석에서 나는 이런 구절을 읽게 되리라
언젠가 너를 사랑한 적이 있다
그랬던가
너를 사랑해서 너를 그토록 사랑해서
너 없이 살아갈 세상을 상상할 수 조차 없어서
너를 사랑한 것을 기필코 먼 옛날의 일로 보내버려야만 했던 그 날이
나에게 있었던가
언젠가 너를 사랑한 적이 없다고 한사코 생각하는 내가
이토록 낯설게 마주한 나를
나만 다만 떠올릴 수 없어서
낡은 수첩 한 구석에 밀어넣은 그말을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그 말에 줄을 긋고 이렇게 새로 적어 넣는다
언젠가 너를 잊은 적이 있다
그런 나를 한 번도 사랑할 수 없었다
남진우, 언젠가 너를 사랑한 적이 있다
35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도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오르텅스 블루, 사막
36
새가 사나워지는 것은
내 피가 점점 뜨거워지기 때문이다
새가
하늘 높이 솟아오를수록
내 피는 조금씩 말라간다 이윽고
새가 시선을 끊어버린 채
허공 깊숙이 증발해 버리면
나는 내 피의 넝쿨 가득히
환한 죽음을 꽃피운다
남진우, 정오, 허공에 반짝이는 새 울음소리
37
일상의 과육이 해체되는 이 순간, 푸가의 골격에서 찾아지는 그런 힘.
그가 건반 위로 쓰러질 듯 몸을 숙인 모습을 보면,
그는 마치 자신과 음악 사이에서 더 이상 피아노가 존재하지 않기를 바라며
피아노 속에 자신을 폐지시키고 융해시켜 버리려는 것 같다.
‘피아노 앞에 앉은 글렌 굴드’ 가 아니고,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인 것이다.
미셸 슈나이더,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중
38
“온전한 것들은 모두 이렇게 반쪽을 내버릴 수 있지.”
바위 위에 머리를 기대고 누운 외삼촌이 꿈틀거리는 반쪽짜리 낙지들을 쓰다듬으면서 문득 말했다.
“그렇게 해서 모든 사람들이 둔감해서 모르고 있는 자신들의 완전성에서 벗어 날 수 있는 거야.
나는 완전해. 그리고 내게는 모든 것들이 공기처럼 자연스럽고 막연하고 어리석어 보여.
나는 모든 것들을 볼 수 있다고 믿었는데 그건 껍질에 지나지 않았어.
우연히 네가 반쪽이 된다면 난 너를 축하하겠다.
얘야, 넌 온전한 두뇌들이 아는 일반적인 지식 외의 사실들을 알게 될 거야.
너는 너 자신과 세계의 반쪽을 잃어버리겠지만 나머지 반쪽은 더욱 깊고 값어치 있는 수천 가지 모습이 될 수 있지.
그리고 너는 모든 것을 반쪽으로 만들고 너의 이미지에 맞춰 파괴해 버리고 싶을거야.
아름다움과 지혜와 정당성은 바로 조각난 것들 속에만 있으니까.”
이탈로 칼비노, 반쪼가리 자작 중
39
그러자 착한 메다르도가 말했다.
“아, 파멜라. 이건 반쪽짜리 인간의 선이야. 세상 모든 사람들과 사물을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야.
사람이든 사물이든 각각 그들 나름대로 불완전하기 때문이지.
내가 성한 사람이었을 때 난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귀머거리처럼 움직였고 도처에 흩어진 고통과 상처들을 느낄 수 없었어.
성한 사람들이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도처에 있지.
반쪼가리가 되었거나 뿌리가 뽑힌 존재는 나만이 아니야, 파멜라.
모든 사람들이 악으로 고통받는 걸 알게 될 거야.
그리고 그들을 치료하면서 너 자신도 치료할 수 있을 거야.”
이탈로 칼비노, 반쪼가리 자작 중
40
“우리는 항상 선한 것을 기대하지. 하지만 영혼이 착하든 악하든 간에,
우리를 찾아 이 언덕을 올라오는 사람이 전쟁에서 부상당한 불쌍한 사람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해도
우리는 매일 우리 도리에 따라 행동하고 우리 밭을 경작하면 되는 거야.”
이탈로 칼비노, 반쪼가리 자작 중
41
그렇게 테랄바에서의 나날들이 흘러갔다.
그리고 우리들의 감정은 색깔을 잃어버렸고 무감각해져버렸다.
비인간적인 사악함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비인간적인 덕성 사이에서 우리 자신을 상실한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탈로 칼비노, 반쪼가리 자작 중
42
나는 죽지 못하는 실망과 살지 못하는 복수, 이 속에서 호흡을 계속할 것이다.
나는 지금 희망한다. 그것은 살겠다는 희망도 죽겠다는 희망도 아무것도 아니다.
다만 이 무서운 기록을 다 써서 마치기 전에는 나의 그 최후에 내가 차지할 행운은 찾아와 주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다.
무서운 기록이다.
펜은 나의 최후의 칼이다.
이상, 십이월 십이일 중
43
반면에 나는 완전히 열정의 한가운데에 있으면서도 항상 부족함과 슬픔을 느꼈다.
때때로 한 인간은 자기 자신을 불완전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그가 젊기 때문이다.
이탈로 칼비노, 반쪼가리 자작 중
44
역사적인 현실이 우리에게 전해준 긴장은 곧 풀리게 된다.
오래전부터 우리는 죽은 물 위에서 항해를 하고 있다.
우리들이 맨 처음 현실을 이야기 할 때 우리는 역사적 현실에 대한 신뢰성이나 그 현실의 표정, 책임감, 에너지에 대한 신뢰성을 회복하려고 애썼지만 점점 더 힘을 잃어가기만 했다.
환상적인 소설을 통해 나는 현실의 표정, 에너지, 곧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것들에 활기를 주고 싶었다.
이탈로 칼비노
45
결말이 따뜻한 한 편의 소설 속
너와 내가 주인공이길 바랐지만
너의 행복과 슬픔, 그리고 일생을 읽는 동안
나는 등장하지 않았고
마지막 장을 덮을 때 까지
지문에 눈물만 뭍혀가며
말 없이 페이지를 넘길 뿐이었다.
소설 속 나의 이름은 고작
‘너를 앓으며 사랑했던 소년 1’ 이었다.
서덕준, 등장인물
46
누가 내게
“당신은 그를 얼마나 사랑하나요”
하고 묻는다면
나는외면하며 “손톱만큼요” 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돌아서서는
잘라내도 잘라내도 평생 자라나고야 마는
내 손톱을 보고 마음이 저려
펑펑 울지도 모른다
왕구슬, 손톱깎이
47
그렇게 해서 외삼촌은 사악하지도 선하지도 않은, 사악하면서도 선한 온전한 인간으로 되돌아왔다.
표면적으로는 반쪽이 되기 전과 달라진 점은 없었다.
그러나 그에겐 두 반쪽이 재결합된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아주 현명해질 수 있었다.
그는 행복한 생활을 했고, 많은 자녀를 두었으며 올바른 통치를 했다.
아마도 우리는 자작이 온전한 인간으로 돌아옴으로써 놀랄만큼 행복한 시대가 열리리라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세상이 아주 복잡해져서 온전한 자작 혼자서는 그것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탈로 칼비노, 반쪼가리 자작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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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늘어났다…ㅎㅎ 휴가나가서 써야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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