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7 눈 을 들어 산 을 보아라 Top Answer Up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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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 by 다윗과 요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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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21:1-2 내가 눈을 들어
산을 바라보리라.
나의 도움은 어디서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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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에게서 오는구나. | 현대인의 성경 (KLB) | 지금 성경 앱 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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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들어 산을 보라 (시 121:1~8) :: 말씀 속에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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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들어 산을 보라 (시 1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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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들어 산을 보라 (시 121:1~8) :: 말씀 속에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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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나타99 :: 시편121:1-8 <눈을 들어 산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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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나타99 :: 시편121:1-8  <눈을 들어 산을 보라>” style=”width:100%”><figcaption>마라나타99 :: 시편121:1-8  <눈을 들어 산을 보라></figcaption></fig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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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들어 산을 보아라 – 보광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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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들어 산을 보아라 - 보광중앙교회
눈을 들어 산을 보아라 – 보광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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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들어 산을 보라 (시 121:1-8) – 목회자료 – 기독교 멀티미디어 사역자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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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들어 산을 보라 (시 121:1-8) - 목회자료 - 기독교 멀티미디어 사역자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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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들어 산을 보라 (시편1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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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들어 산을 보라 (시편1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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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들어 산을 보라 (시 121:1~8)

제목 : 눈을 들어 산을 보라 (피종진 목사님)

[시편 121편 1절~8절]

1절 –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2절 –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3절 –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4절 –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5절 –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6절 –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7절 –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8절 –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할렐루야!

사람이 무엇을 보게 되는 것은 관심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 보는 내용에 따라 그 사람의 사상의 흐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항상 보는 사람은 아름다운 것, 선한 것, 착한 것, 겸손한 것, 의로운 것, 영광스러운 것, 빛나는 것을 봄으로 그 마음속에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사는 사람이고, 악한 것, 더러운 것, 속이는 것, 거짓된 것, 교만한 것, 남을 해치고, 저주하는 것을 바라보고 따르는 사람들은 그 마음이 어둡다는 증거이고 악한 성품을 지닌 것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눈을 들어 산을 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산은 항상 시온 산을 상징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관념으로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성산(聖山)을 의미합니다. 즉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은 시내산,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제사드린 모리아산, 엘리야의 제단에 하나님께서 불로 임한 갈멜산 등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산을 보라’는 것은 하나님 중심으로 마음을 기울이고 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눈을 들어 산을 보라’는 어떤 의미인지 성경 말씀을 통해 상고하면서 볼 수 있는 영의 눈이 열려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첫째, 눈을 들어 도우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환난, 고난, 역경, 슬픔, 괴로움, 위험, 원통함, 억울함, 비참하고 불쌍한 많은 것들을 바라보면서 삽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의 눈을 떠서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또한 그런 삶이 있는 자만이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시 121:2)라고 말씀하셨고,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시 46:1)고 하셨으며,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시 62:1,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되시는 하나님(시33:20)만을 바라보고 의지하며 믿음으로 전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른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각자 개인주의에 빠지고 자기에게 유익되는 일이면 공의와 정의에서 돌아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어제도 오늘도 영원토록 동일하시고 영원토록 변치 않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여러분 마음속에 평안을 주고 기쁨을 주실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간절히 바라본다는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길이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것은 이 세상에서 최고의 안전을 보장받음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둘째, 눈을 들어 내 사명지(使命地)를 바라보라는 말씀입니다.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요 4:35)아멘.

추수할 때가 되었어도 농부가 밭에 관심이 없으면 곡식이 썩어지고 열매를 거두지 못합니다.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은 사명을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항상 내 사명이 무엇이고, 사명지가 어디인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날마다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는 도와주시고, 역사하시고, 그 길을 인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달란트대로 다양하게 사명을 주셨고, 각자 자기 사명의 길을 걷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사명지를 발견하고 그 길에 생명을 걸고 나갈 때 하나님의 보좌가 움직이고, 천군천사가 움직이고, 그 사명에 승리자가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십니다.

자기 사명지에 대해 관심 있어야 합니다.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정성을 다하고, 마음과 뜻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십니다.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엡 1;8) 아멘.

주님께서는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의 자리로, 하나님의 사명자가 되기 위해 불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명을 위해 살 때는 힘들어도, 고난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시기 때문에 마음에 위로와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명을 위해 태어났다.’라고 고백하는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사람위에 사람 없고 사람아래 사람 없다.’ 라는 말이 있지만 하나님의 사명을 위해 사는 사람은 귀한 것이고, 그 맡겨진 사명에 달란트의 비유에서와 같이 사명을 위해 이윤을 남기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각자 맡겨진 사명지에서 이윤을 남기는 사명자가 되길 축원합니다.

「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게 마음을 두라」 (잠 27:23) 아멘.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사 60;2) 아멘.

이 세상은 점점 어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유럽이나 아메리카 아시아까지 신앙이 흔들리고 영적인 것을 잃어버리고 신앙에 뿌리가 내리지 않고 있습니다. 기도의 불이 꺼지고 전도의 열정은 없어지고 영적인 것은 모두 사라지고 혼탁한 세상으로 물들어 가고 있습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벧전 4:7) 아멘.

주님께서는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깨어나고 한국교회와 모든 세계 교회가 깨어나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께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시 107:10,11) 아멘.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의 신앙의 뿌리가 내려지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사 6:8)라고 외친 이사야가 되십시다.

셋째, 눈을 들어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고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21) 아멘.

인간의 뜻과 하나님의 뜻은 구별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영원히 동일하시고 변치 않는 알파와 오메가의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2) 아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그 뜻을 따라가야 합니다. 요즈음 동성연애 차별금지법등 성경 말씀에 반대로 도전해 오는 세력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 땅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에 절대 순종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 모두 눈을 들어 헛된 것을 바라보지 말고 도우시는 하나님만 바라보며, 맡겨진 사명지를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며, 하나님의 뜻을 똑바로 바라보며 믿음으로 전진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그곳에 함께 하시고, 영원토록 승리하게 하시며 존귀와 영광을, 권세와 축복으로 세세토록 함께하실 줄 믿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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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들어 산을 보라 (시 121:1-8)

눈을 들어 산을 보라 (시 121:1-8)

내 용

유대 나라 사람들은 남자인 경우에 12살이 되면 의무적으로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와야 합니다. 예수님도 12살 되던 해에 부모님을 따라서 유월절 행사를 위해 예루살렘에 갔다 오시는 기록이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그냥 갔다 오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부르면서 갑니다. 시편 120편에서 134편까지는 “순례자의 노래”라고 하는데 예루살렘 성전을 올라갈 때 부르는 노래로서 각 성경장마다 위에 보면 제목이 붙여져 있습니다.

시편 121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고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어떤 성경장은 다윗의 시로, 어떤 성경장은 솔로몬의 시로 되어 있는데 모든 가사가 과거 자신들 민족사에 있었던 하나님의 은혜를 기록하는 가사로 되어 있었습니다. 포로 생활 가운데서 자유가 주어졌던 것을 기억하면서 “여호와께서 시온에 포로를 돌리실 때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때 우리의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의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하면서 마치 오페라 곡조 있는 시를 읽으면서 올라가는 시입니다. 아마 예루살렘에 갔다 오신 분들은 경험이 있으셨을 것입니다. 여행하는 사람들이 외국 사람들이라도 버스에서 안내하는 사람이 언제나 시키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보이기 시작하면 다 같이 따라하라고 하면서 “샬롬! 예루살렘!” 큰 소리로 외치라고 하면서 들어갑니다. 이 말은 “예루살렘이여! 평화가 있을지어다.” 축복하는 것입니다. 여행을 다 마치고 예루살렘을 떠날 때도 똑같이 합니다. 예루살렘이 시야에서 가리어질 때 손을 흔들면서 “샬롬! 예루살렘!” 외치면서 예루살렘을 빠져나갑니다.

오늘 시편 121편은 하나님의 보호를 찬양하는 노래인데 세 대목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1~2절은 과거에 있었던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하고 3~6절까지는 현재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하고 7~8절은 미래에 있을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는 시로 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이러한 노래는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굉장한 삶의 철학이 주어져 있습니다. 여기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하였습니다. 왜 산을 쳐다보라고 하였는가? 산이 무엇인가? 산은 두 가지 중요한 역사를 말하는 의미로 쓰인 것입니다. 하나는 예루살렘 성전이 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거기서 산은 곧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예루살렘 성전 모리아 산을 바라보라.”라는 뜻입니다. 또 하나는 그들의 역사에서 인간의 능력으로 도저히 가능하지 아니했던 고난에서 구원받은 역사 경험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경험들이 모두 다 산에서 되어졌습니다. 모리아 산을 생각해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던 산입니다. 바로 그 자리에 예루살렘 성전이 건축된 것입니다. 하나님도 이 아브라함에 대한 택한 백성의 결정을 모리아 산에서 하셨습니다.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노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눈을 들어서 하나님의 음성을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들려주었던 그 산을 바라보라. 하나님이 거기 계시느니라.” 이렇게 의미하는 것입니다.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바로 그 하나님에게서로다.” 거기 보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라고 했는데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그리고 인간을 첫 번째 살게 해주신 장소가 산이었습니다. 에덴동산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최초의 인간 축복을 내려주신 그 산을 바라보라.” 이 시편 성경이 지어진 때는 다윗, 솔로몬 이후입니다.

격동기 역사가 끝나고 왕국 건설이 이루어져서 모든 사람이 안전하고 평안한 생활을 누릴 수 있었던 그 때에 이런 성경이 쓰였습니다. 그들이 격동기 출애굽 과정에서 혼란스러웠을 때 그들이 살아갈 수 있는 어떤 제도적 법 제도를 하나님이 모세에게 십계명이라고 주셨습니다. 그것을 기초로 율법이 주어져서 그들은 평화로운 법 제도와 정착이 되어서 그들의 행복의 조건이 이루어졌는데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도 산에서 주어졌습니다. 시내 산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에게 나타나신 그 산을 바라보라.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아니하냐?” 그런 뜻입니다.

구약 시대 야훼 신앙이 결정적으로 타격을 입은 때가 있었습니다. 엘리야 시대입니다. 아합왕이 정책적으로 이웃나라 공주 이세벨을 왕비로 맞아들인 것이 민족 고난의 불행의 시작이 되어서 야훼 신앙을 다 소멸시켜 버리고 바알 신앙을 전국에 장려한 정부 차원의 정책 때문에 유대 나라 사람들이 정신사가 다 망가져서 하나님을 믿던 사람들이 모두 바알 앞에 무릎을 꿇고 바알 신당에 모여서 바알 제사를 드렸습니다. 제사장들까지 죽을까봐 꼼짝 못하고 다 그렇게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목사들이 무당 집에 가서 굿하고 있는 것과 똑같아 진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야의 기도문에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 나만 남았습니다. 다 바알에게 굴복하고 나 혼자 남았습니다.” 그렇게 기도하지 않습니까? 바로 그때 갈멜산 사건이 생겼습니다. “바알 지도자 450명과 엘리야가 바로 그 산꼭대기에서 자신들이 믿는 신에 대한 불태우기가 벌어져서 엘리야의 기도에 의해서 제단은 모두 불에 탔고 바알 지도자들은 전멸당해 죽음으로 말미암아 꺼져가는 야훼 신앙이 다시 불씨를 당겼던 영적 힘이 되살아난 그 산을 바라보라.

하나님이 그렇게 계시지 아니하냐? 왜 낙심하고 있느냐?” 그런 뜻입니다. 지금 시편 121편의 상황은 어떤 사람이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어떤 고난스러운 일이 생긴 것입니다. 이 사람은 그 고난을 해결하기 위해서 세상을 열심히 둘러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자신이 바라볼 수 있는 이 평면의 세계에는 아무도 자신을 도울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낙심하고 좌절했습니다.

“아! 가련하다. 내 인생이여.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라고 했는데 그는 세상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한 가닥 희망의 눈을 떠서 위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거기에 정말 자신을 구원해줄 여호와가 계심을 발견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들은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이렇게 “샬롬”을 외치는가? 자신들이 살아온 역사의 모든 과정이 문맥의 발달이라든가 문화의 향상이라든가 정치과정의 발전이나 경제 부흥 때문에 살아남은 민족이 절대 아닙니다. 유대 민족의 생존이란 하나님의 산에서 이루어진 기적 때문에 살아온 신앙 고백적 노래인 것입니다.

지금 세상은 물리학에 있어서 4차원 세계의 발견이 큰 과학의 관심거리가 되어 있습니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가 발표한 힉스 입자 때문에 4차원 세계의 정복이 눈앞에 왔다고 과학계는 흥분하고 있습니다. 이 힉스 입자는 우주 탄생의 출발 비밀을 인간에게 제공해 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은 옛날부터 끊임없이 궁금증을 가지고 진리 탐구를 해왔습니다. 이 우주가 도대체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는지 그 원천적인 힘을 알아내려고 노력했습니다.

물이나 불이나 흙이나 공기로 어울려 만들어져 있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하고 있다가 원자를 발견한 후에 인간은 원자탄을 만드는 기술을 가지게 되었고, 전자를 발견한 후에는 온갖 전자 제품이 발명된 것입니다. 이제 4차원 세계로 가게 되면 인간이 지구를 만드는 능력을 소유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흥분하고 있는 것입니다. 원리만 알아내면 이것이 다 그렇게 이루어진 것이니까 거기에서 다시 기초하면 이런 것도 만들어낼 수 있겠다며 흥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웠던 대로 인간은 제일 처음에 이 지구가 네모반듯하게 생겨서 가고 또 가면 맨 끝에는 끝이 없는 낭떠러지에 떨어진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2차원의 세계가 되었을 때 인간들은 평면에 줄 하나를 그어놓을 수 있는 지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줄을 따라서 끝없이 갔다가도 제자리에 돌아올 수 있는 지혜를 얻어냈습니다. 그 다음에 2차원의 세계에 가니까 줄을 가로, 세로 그어놓고 온 세상을 마음대로 다녀도 제자리에 돌아올 수 있는 능력이 생겼습니다.

지금 우리가 예배드리는 이 장소를 북위 몇도, 동경 몇 도라고 하는 두 줄로 표시하면 금방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3차원의 세계가 되니까 공간 지배가 가능해져서 달나라도 갔다가 제자리로 돌아올 수가 있는 능력이 생겼습니다. 4차원이 되면 어떤 세상이 될는지 상상도 힘든 세상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은 어떤가? 이미 4차원의 세계를 우리들에게 얼마든지 성경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해를 멈추게 했다는 말이 성경에 나옵니다.

저는 휴스턴 텍사스에서 목회를 했는데 거기에 나사라고 하는 우주 과학 기지가 있어서 제가 여러 번 견학을 갔습니다. 거기 근무하는 과학자 집사님 한 분이 교인들에게 나사 프로젝트에 대해서 세미나를 열었는데 그 분이 이상한 말 한마디를 하시는 바람에 교인들이 매우 혼란하기도 하고 은혜를 받기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구의 나이를 컴퓨터로 추적해 올라가면 아주 순조로운 흐름을 역추적할 수가 있는데 어느 지점에 가서 걸린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해도 거기 가면 반드시 시간이 멈추는 데가 한군데 나오는데 도저히 이것이 해결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는 그 분야에서 일을 하다가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연구하고 또 연구하다가 마침내 “누가 믿거나 말거나 나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우리 전체 교인들에게 세미나를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호수아 때 해가 멈춘 시간입니다.” 이렇게 그분이 결론을 내리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듣는 사람들은 ‘우리가 과학자가 아니니까 잘 모르겠는데 흥분하기도 하고 혼란하기도 하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아주 힘을 주어서 말씀하시는 겁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물 위를 걸어가셨다고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4차원의 세계에서는 가능합니다. 제자들이 무서워서 문을 잠그고 있었는데 예수님은 부활을 해서 소리 없이 문을 열어 드리지 않았는데 그 방에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공간지배입니다. 4차원의 세계는 가능합니다. 수박을 공중에 띄워놓고 잘라서 그냥 공중에 띄워놓고 먹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구약 성경 창세기에 에녹은 죽지 않고 하나님이 데려가셨다고 했습니다.

대기권 안에 있는 사람이 떨어지게 되어있지 어떻게 올라갈 수가 있겠습니까? 4차원이 되면 그것도 가능해집니다. 므두셀라는 969세까지 살았다고 성경에 있지 않습니까? 4차원이 되면 그것도 가능해집니다. 엘리야도 승천했고 예수님도 구름 속으로 사라지면서 시야에서 가리어졌다고 성경에 분명히 나와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대기권 안에서 절대로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4차원의 세계에 가면 그것도 가능해집니다. 4차원이 되면 죽을 사람을 DNA로 살려내는 작업도 가능하게 되는 과학적 원리 때문에 흥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돌아가셨다 부활하셨지 않습니까? 또, 썩어서 부패하고 냄새나는 나사로를 무덤에서 살려내셨습니다. 인간이 가고 싶어 하는 모든 세계를 예수님은 벌써 2천 년 전에 다 행하셨습니다. 4차원의 세계에 가면 제가 지금 69살인데 19살 같이 될 수도 있단 말입니다.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앞으로 무슨 세상이 올 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1천 년 전, 2천 년 전에 오늘날의 세상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지금 우리가 상상도 못하는 세계가 온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이미 다 지나간 사건이란 말입니다. 성경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4차원 세계의 기록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십시오. 물고기 2마리에 보리떡 5개로 어떻게 5천명이 먹을 수 있습니까? 절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신학에서는 영적 4차원이라는 말을 씁니다. “너희는 눈을 들어 산을 보라. 하나님은 무엇이나 가능하시니 그는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시로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지혜를 바로 영적 4차원의 줄을 하나님께 그으라. 그리고 그 줄을 잡고 살아라.” 이런 뜻이 오늘 성경 말씀의 중심입니다.

창세기 15장을 보시면 아브라함은 아주 큰 낙심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왔는데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나쁜 일만 계속 생깁니다. 우선 그는 가나안 땅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서 비겁하게 자기 아내와 연극을 꾸미지 않습니까? 아주 치졸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사라야! 네가 예쁘니까 너를 빼앗아가기 위해서 남편인 나를 죽이고 너를 빼앗아 가면 어떡하느냐? 그러니 너는 나를 남편이라 하지 말고 오빠라고 해서 우리를 남매 관계로 알리자. 그게 여기서 살아남는 지혜다.” 그러지 않습니까?

요즘 젊은 부부들이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는 것은 아브라함이 원조니까 그런 줄 아시기 바랍니다. 요즘에는 다 빼앗길까봐 걱정이 되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든지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는 땅에 와서 먹을 것이나 많이 주어야 하는데 먹을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밥 얻어먹으려고 애굽까지 갔다가 바로 왕한테 정말 아내를 빼앗겼지 않습니까? 미인을 데리고 살면 항상 이런 신경을 써야 하니까 아내가 미인이 아닌 사람은 오늘 감사헌금을 많이 내고 가시기 바랍니다.

아내 빼앗긴 값으로 바로가 주는 양식을 늙은이가 혼자 앉아서 우질우질 먹고 앉아있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비참해 졌습니까? 그래서 아브라함은 화가 났습니다. “하나님이 뭐라 말인가? 하라는 대로 내가 다했는데….” 75세에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 아들을 준다고 했으면서 25년이 지나서 100세가 되었는데도 아무 소식이 없습니다. 그래서 불평했습니다.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시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우리 집의 종으로 살고 있던 이 엘리에셀이나 내가 양자로 삼아 상속자로 삼겠나이다.” 막 불평했습니다.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했으면 복을 주셔야지 이게 뭡니까?” 그때 하나님은 그 말을 듣고 나서 아브라함에게 무슨 일을 시키시는지 창세기 15장 5절을 보시면 아실 수 있습니다.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땅만 보지 말고 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 내가 있는 곳을 보라. 나는 거짓말하는 하나님이 아니니라. 내가 네게 말한 것은 다 이루어질 것이니라. 다만 성급한 너의 성격 때문에 네가 네 집안을 다 망쳤다. 내가 하라는 대로 참고 기다렸어야지.” 이렇게 하나님이 하늘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여러분!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고통당할 때 하나님의 임재가 어떻게 나타납니까?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보고 내려가서 부르짖는 우고를 내가 해결해 줄 것이다.” 이렇게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인간 역사에 참여하시겠다고 하는 선언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항상 “눈을 들어 산을 보라. 하나님이 계신 곳을 보라. 영적 4차원의 줄을 그어놓고 그 줄을 따라서 살도록 하라.” 하나님의 나에 대한 관심이 뭐라고 나옵니까? “그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하나님이 가만히 계신 것 같지만 아닙니다.

하나님은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아니하고 항상 나를 불꽃같은 눈으로 지키신다는 약속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느 때 어떤 고난을 놓고 기도드리면서 조용히 기다리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으로 하여금 일하게 하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출애굽 유대 민족의 결정적 위기로 홍해를 만나게 됩니다. 사람들이 막 아우성을 치면서 모세를 향해 원망하는 말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끌고 나와 여기서 죽게 만들었느냐? 애굽 사람 섬기면서 노예로 사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막 사람들이 원망해서 모세가 매 맞아 죽게 되었습니다. 그때 모세가 한 말 기억나십니까?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의 행하시는 구원을 보기만 하라.” 모세가 화가 나서 “잘난 체 하지 말고 가만히 좀 있어라. 뭘 그렇게 떠드느냐? 여기까지 온 것이 하나님의 큰 역사인데 하나님이 시켜서 했는데 하나님의 역사가 있을 터인데 뭐가 그렇게 야단들이냐? 조용히 좀 해라.” 그리고 뭐라고 합니까?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해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어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가만히 좀 보고 있어라.

그렇게 잘난 체하고 나서고 떠들지 말라.” 이렇게 책망합니다. 그래서 가지고 있는 지팡이로 “하나님! 이 지경이 되었는데 어떻게 하시겠나이까?” “네 손에 든 것으로 바다를 쳐라.” 그래서 쳤더니 홍해가 갈라졌지 않습니까? 그래서 다 건너와서 다 구원받았습니다. 내가 가만히 있을 때도 하나님은 나를 위해서 싸우시고 전쟁을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어떤 때 우리가 답답해서 ‘왜 하나님이 가만히 계시는가?’ 이런 생각을 하는데 아닙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일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참지 못하고 성질이 급하고 가만히 있지 못하고 떠들고 잘난 체하고 “왜 이렇게 하느냐?” 원망하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다 망가졌습니다. “가만히 좀 있으라.”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여기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라고 했습니다. 열대 지방 사람들은 열병이나 일사병이 아주 큰 고난입니다. 너무 강렬한 태양빛이 건강을 해치는 자연 환경입니다. 그래서 열대 지방 사람일수록 살갗을 드러내지 않는 긴 옷을 입고 다닙니다. 그늘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머리에도 반듯이 터번이라고 하는 모자를 쓰고 다닙니다. 아무리 태양빛이 강해도 열대 지방에서는 그늘 속에만 들어가면 시원합니다.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조금만 그늘이라도 그늘만 있으면 삽니다. 그런데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햇볕의 방향을 차단해준다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가운데 내가 어떤 사람의 해택을 우리고 살면 누구의 그늘 밑에 있다고 말합니다. 아버지의 그늘 밑에 살기도 하고 친구의 그늘 밑에 있기도 하고 어떤 권세가의 그늘에 있기도 하고 부자의 그늘에 있기도 하고 그늘에서 산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가만히 있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라.” 이렇게 책망하는 것입니다.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라고 했습니다. 지금 사람들이 매일 햇볕을 맞으면서 상하지 않는 이유는 중간에 오존층이라고 하는 완충 역할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완충 역할이 되시나니” 이런 뜻입니다.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열대 지방은 이상 저온으로 밤이면 춥습니다.

기온의 차이 때문에 병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정리하셔야 합니다. “내가 오늘 이 시간까지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온 것은 내 인생 여정에 하나님이 나의 그늘이 되셨기 때문이다. 파란만장했던 광야의 험난한 행로가 하나님의 지켜주심 때문에 지금 내가 이렇게 예배드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결론을 내려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란을 면케 하시며 또 내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우리가 찬송가를 날마다 부르잖아요?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 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주시리. 험한 시험 물속에서 나를 건져주시고 노한 풍랑 지나도록 나를 숨겨주소서.” ‘주의 곁에 있을 때 맘이 든든하오니 주여 내가 살 동안 인도하여 주소서. 그렇게 살아라. 영적 4차원의 줄을 빨리 그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가능한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가 너의 도움이 될 것이다.’ 이렇게 강조하는 것입니다. 눈을 들어 산을 보라는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며 모든 삶의 갈 길을 정하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배워온 대로 인류의 역사는 내가 삶의 기초를 어디에다 두느냐에 따라서 자신의 삶이 결정되었습니다. 수많은 철학과 이데올로기가 등장했고 그때마다 영향을 받아서 오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학창시절에는 누구나 한번 다 철학자가 됩니다. 그래서 철학에 심취해서 ‘과연 인간의 삶의 진리가 어떤 것인가?’ 이렇게 생각을 하고 우리가 고민했지 않습니까? 벤담의 공리주의가 우리가 살 길인가? 독일의 낭만주의가 인류의 행복인가? 마르크스의 공산주의가 정말 유토피아인가? 니체의 허무주의와 키에르케고르의 실존주의, 루소의 자연주의,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 어느 길이 인간의 진리인가? 끝없는 방향제시가 있어왔는데 지금은 인류가 어디에 와있는가? 합리적 과학주의에 와있습니다. 과학이 아닌 것은 안 믿는 것입니다.

그 영향이 서구사회에 미치니까 젊은이들이 대량으로 교회를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교회도 과학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21세기에는 교회를 떠난 서구사회가 탕자의 모습으로 과연 돌아올 것인가? 언제 올 것인가? 이것이 교회의 관심거리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탕자가 거짓꼴이 되었을 때 비로소 자기 모습을 보았던 것처럼 교회를 떠난 사람들이 인류의 거짓꼴이 될 때 거기에서 회개하고 그때나 돌아오는 발걸음이 생길 것이다.’ “눈을 들어 산을 보니 도움 어디서 오나 천지 지은 주 하나님 나를 도와주시네. 나의 발이 실족 않게 주께 깨어 지키며 택한 백성 항상 지켜 길이 보호하시네.” 낙심할 일 생겼다고 믿음에서 떠나지 마시고 잘 참고 인내하십시오.

우리 가문은 오직 하나님만 섬기는 이 한 가지 힘으로 세상을 이기겠다고 생각하시고 굳세게 믿음을 하늘나라를 향하여 주를 보고 그 손을 잡고 살아가십시오. 어떤 핍박이 온다 하여도 굴복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자녀의 삶을 보존하시고 자녀들에게 철저한 가정 신앙 교육으로 일구어내 나가십시오. 하나님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의 손을 잡고 일하시도록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가정의 가훈을 정하십시오. 이것은 우리 가정의 십계명이라고 한번 여러분이 연구해서 쓰시고 자녀들에게 가르치십시오. 제가 몇 년 전에 예화로 사용한 적이 있습니다. 록펠러가 청년시절에 어머니가 마주 앉아서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록펠러야! 네 생각에 이 세상에서 너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되느냐?” “어머니입니다.” “맞다. 나도 내 어머니의 가장 진한 사랑을 받고 살았다. 그리고 너를 낳았다. 그러면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머니가 주는 말씀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그것은 진리입니다.” “그래! 나는 너에게 이 록펠러 가문의 십계명을 만들었으니 이것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라. 어머니의 신앙 교훈이다.” “어머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열 가지가 이렇습니다. “하나님을 친아버지보다 더 섬기라. 너의 영혼을 지도하는 목사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섬기라.

주일 예배는 본 교회에서 드리라. 오른쪽 주머니는 십일조 주머니로 하라. 아무도 원수를 만들지 마라. 아침에 목표를 정하고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를 반성하는 기도를 반드시 드려라. 아침마다 성경을 읽으라. 힘껏 남을 도우라. 예배 시간에는 항상 앞자리에 가서 앉아라.” 그랬더니 록펠러가 그대로 실천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어머니의 예언대로 되었지 않습니까? 어느 날 록펠러가 “하나님 아버지! 돈 많이 벌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머니는 “하나님이 그런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기도할까요?” “내게 세상에서 십일조 제일 많이 내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거라.” 그래서 그대로 된 것입니다. 세상에서 십일조 헌금 제일 많이 한 사람은 록펠러입니다. 지금까지 록펠러보다 헌금 더 많이 한 사람 없습니다. 혼자서 온 세계 교회 건축만 5천개를 했습니다. 뉴욕에 가시면 리버사이드 교회라고 있는데 그 당시에는 록펠러가 지은 그 교회가 미국에서 제일 좋았습니다. 제가 그 교회에서 목사 안수식을 하면서 설교한 적이 있는데 24층으로 얼마나 잘 지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이렇게 돈 많이 주셨으니 시민과 나누고 싶다고 해서 그 아들이 뉴욕시장을 할 때 뉴욕시민은 수도세를 안냈습니다. 혼자 다 냈습니다. 어머니의 신앙적 기도 가훈 십계명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도 그렇게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여호와의 하시는 일을 보라.” 여러분! 오늘 말씀이 여러분의 가정의 가훈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저희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나이다. 듣기만 하고 그치지 않게 하시고 실천할 수 있는 영적 용기를 주셔서 오늘부터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영적 4차원의 줄을 긋고 그 줄을 따라서 살아가는 아버지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눈을 들어 산을 보라 (시편121:1-8)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 121-1-2)

눈을 들어 산을 보라!

보통으로 우리들은 땅과 아래만 보기 쉽습니다. 더구나 현재의 우리 피난 생활은 땅만 보는 생활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 생활에 있어서는 눈을 드는 생활, 특별히 높은 산을 향하여 눈을 드는 생활이 필요합니다. 높은 산은, 높은 산봉우리는 하늘을 생각하게 합니다. 금강산 1만 2천 봉과 높은 산봉우리들은 하늘을 향하여 가리키는 손가락으로 생각됩니다.

창조주는 사람들이 땅만 보는 고로 높은 산을 지어서 하늘을 생각게 하였습니다. 우리들이 높은 산을 바라보고 푸른 하늘을 볼 때에 속세를 떠나 복잡한 마음과 생각이 사라지고 깨끗하고 시원한 마음, 거룩한 마음과 생각을 품을 수 있습니다. 높은 산을 통하여 푸른 하늘을 바라볼 때에 그 다음에 일어나는 생각은『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입니다. 개인 생활이나 가정 생활, 국가, 사회 생활에서 내 도움이 어디서 올꼬? 38선이 막히고 이리 저리로 헤매는 우리들은 우리의 도움이 어디고 올꼬 하고 탄식하는 자마다 눈을 들어 산을 바라봅시다. 산을 볼 때에, 높은 하늘을 볼 때에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지식과 계획과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지라도 천지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도와줄 수 있습니다. 여기 땅 위에 사는 짐승을 보면 어떤 짐승은 땅 속에서만 삽니다. 혹시 땅 위에 나왔다가도 곧 들어갑니다. 두더지 같은 것입니다. 또 어떤 동물은 땅 위에서만 삽니다. 그러나 어떤 동물, 새나 독수리는 집을 지어도 높은 나무에 짓고 높은 공중에서 날아다닙니다. 우리 인간도 지금 이북에서는 땅 속에서 삽니다. 세계의 여러 곳에 흩어져서 땅 속에서 사는 인간도 많지만, 오늘날은 문명이 발달되어서 공중을 날고 공중에서 생활합니다. 우리의 심령도 본능과 정욕대로 땅 속의 어두운 데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도덕과 의무에서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본능대로 살게 지음을 받은 것이 아니고, 우리 인생은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참된 생활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눈을 들어 높은 산을 보고 하나님을 알고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과 거룩하게 교통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산을 볼 때에 한 가지 기억되는 것은 산은 부동불변(不動不變)이라는 점입니다. 인생은 변하고 사상과 행동은 변하나, 산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로마 제국과 바벨론 제국을 찾을 수 없지만 높은 산은 그대로 있습니다. 한니발을 만날 수 없지만, 한니발이 넘은 알프스산은 여전히 있습니다. 산은 변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의 시온산은 유대인의 마음속에 영원히 변치 않는 산으로 보여줍니다.

사람의 사랑은 변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없습니다. 사람의 공의는 변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변함없습니다. 사람의 옅은 생각과 모든 생활은 변하나, 하나님은 변함없습니다. 우리를 도와주시는 사랑과 능력은 시온산이 변치 않는 것 같이 우리를 변함없이 지켜줍니다. 앞 바다의 물결은 천파만파로 변하나, 이 구덕산은 영원히 변치 않습니다. 산에는 구름이 모여 비가 내립니다. 산에는 호수와 강이 생깁니다. 유럽의 알프스 산에서는 라인강과 다늅 강이 흐르고, 미국의 미시시피강은 러키산에서 흐르고 성경이 요단강은 헐몬산에서 흐르고 있습니다. 산에는 비가 내리고 높은 산에는 강의 샘물이 솟아 수천 리를 내려가서 들과 나무를 기름지게 하고 곡식을 거두게 합니다. 시내 산에서 율법이 내려오고 그 율법에서 유대 나라와 민족을 길렀으며, 시온산과 갈보리 산에서 은혜의 강이 솟아나서 수천 년의 역사를 내려오며 기갈한 인간을 구원하고 생명을 주는 기독교라는 강이 시온산에서 시작된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높은 산에서 모세와 예수님의 얼굴이 천사와 같이 변하였습니다. 높은 산은 은혜 받는 곳입니다. 우리도 산에 올라와서 회개하고 몸과 마음을 온전히 바치면 모세, 엘리야가 받은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산에 올라왔다가 헛되이 내려가지 맙시다. 그리스도의 하늘의 음성을 듣고 내려갑시다.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내 생활을 돌보며 이제 무슨 말을 하는가 고요히 듣고 내려갑시다. 죄악의 마음을 씻고 깨끗한 심령을 가지고 내려갑시다.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1953년 5월 3일·부산 구덕산 야외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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