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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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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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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를 가르치시다(마 69-15; 77-11)

예수와 바알세불(마 1222-30 43-45; 막 320-27)

복이 있는 자

악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마 1238-42; 막 812)

눈은 몸의 등불(마 515; 622-23)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마 231-36; 막 1238-40; 눅 204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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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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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를 가르치시다(마 69-15; 77-11)

예수와 바알세불(마 1222-30 43-45; 막 320-27)

복이 있는 자

악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마 1238-42; 막 812)

눈은 몸의 등불(마 515; 622-23)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마 231-36; 막 1238-40; 눅 204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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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1 KLB – 기도 – 하루는 예수님이 어떤 – Bible Gate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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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1 KLB - 기도 - 하루는 예수님이 어떤 - Bible Gate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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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8(금) “누가복음 11:27-36” / 작성: 정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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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8(금) “누가복음 11:27-36” / 작성: 정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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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1장 주석 – 누가복음 – 예사랑 성경 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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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1장 주석 - 누가복음 - 예사랑 성경 연구회
누가복음 11장 주석 – 누가복음 – 예사랑 성경 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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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1장 강해설교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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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말씀묵상. 2월 25일. 누가복음 11장. > 매일말씀묵상 | 하늘품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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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1장 2-4절 말씀 묵상 [김연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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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누가복음 11장 2-4절 말씀 묵상 [김연희 목사] 우리는 소망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의 본질로 회복되어지며, 기도대로 드려지는 삶이 되기를 함께 소원합니다. 그리하여 주심 … 묵상 & 기도, 독자광장, 복음뉴스, BogEum News제목 :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본문 : 누가복음 11:2-4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3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4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 지 마시옵소서 하라’ 우리가 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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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1장 2-4절 말씀 묵상 [김연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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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6 겉과 속 (누가복음 11장 37-54절) – 코너스톤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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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6 겉과 속 (누가복음 11장 37-54절) – 코너스톤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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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1

기도를 가르치시다(마 6:9-15; 7:7-11) 1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3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4 우리가 우리에게 1)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하라 5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 달라 6 내 벗이 여행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7 그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9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10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11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2)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12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예수와 바알세불(마 12:22-30, 43-45; 막 3:20-27) 14 예수께서 한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시니 귀신이 나가매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는지라 무리들이 놀랍게 여겼으나 15 그 중에 더러는 말하기를 그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고 16 또 더러는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3)표적을 구하니 17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 18 너희 말이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만일 사탄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19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 재판관이 되리라 20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4)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21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 22 더 강한 자가 와서 그를 굴복시킬 때에는 그가 믿던 무장을 빼앗고 그의 5)재물을 나누느니라 23 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24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25 가서 보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26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복이 있는 자 27 이 말씀을 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이르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 하니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악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마 12:38-42; 막 8:12) 29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3)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3)표적 밖에는 보일 3)표적이 없나니 30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3)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 31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32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눈은 몸의 등불(마 5:15; 6:22-23) 33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움 속에나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34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6)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35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36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빛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하시니라

2020/05/08(금) “누가복음 11:27-36” / 작성: 정한조

본문 누가복음 11:27-36

찬송가 84장 ‘온 세상이 캄캄하여’

복이 있는 자(27-28절)

오늘 본문은 3가지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복이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와 표적을 구하는 악한 세대에 대해서, 몸의 등불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27-28절이 진정으로 복이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 말씀을 하실 때에’로 시작됩니다.

‘이 말씀’은 14-26절의 ‘바알세불 논쟁’입니다. 말을 하지 못하는 귀신이 들려서 말을 하지 못했던 한 사람을 예수님께서 그 귀신을 쫓아내심으로 고쳐 주셨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들(바리새인들, 서기관들)이 말하기를 예수께서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서 귀신을 쫓아낸 것이라고 비아냥거렸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사탄이 갈라져서 서로 싸우면, 사탄의 나라가 어떻게 건재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리새인 중에는 귀신을 쫓아내는 사역을 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느냐? 그렇다면 그들은 누구를 힘입어 그 일을 하는 것이냐고 되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정문일침을 가하는 말씀에 감격한 한 여인이 이렇게 외쳤습니다.

(27) 이 말씀을 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이르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 하니

이 여인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대하시는 예수님만 바라본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까지 보았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는 어머니를 축복하는 것을 통해서 자녀들을 축복했습니다. 자녀들은 그 어머니의 돌봄과 헌신이 없이는 바르게 자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가 메시아를 낳고 기른, 복이 있는 사람, 복의 사람의 된 것은 저절로 이루어진 일이 아니었습니다. 마리아가 철저하게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목적으로 삼고 살아간 결과로 그러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마리아가 가브리엘 천사의 방문을 통해서 남편을 통하지 않고 잉태하게 될 것이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처음에 마리아는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라고 반문했습니다. 하지만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라고 고백하므로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온전히 의탁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낳고서 사는 동안 내내 사람들로부터 “글쎄, 남편도 없이 아기를 낳았데?”라는 말을 들어야 했을 것이고, 경멸의 눈초리, 곱지 않은 시선을 온몸으로 받아야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가 성령님을 통한 잉태를 수용하겠다고 고백하는 것은 평생 고난의 터널과 눈물의 골짜기를 걸어갈 것에 대한 결단과도 같았습니다.

또한 헤롯대왕의 ‘아기들을 찾아 죽이라’는 명령을 피하여, 마리아는 애굽으로 피난을 가서 거기서 헤롯대왕이 죽을 때까지 지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구약에 예언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것이 되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예수님께서 12살이 되었을 때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성전으로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예수님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다시 성전으로 되돌아가 아들을 찾았을 때, 예수님께서는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눅 2:4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리아는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두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 모든 말씀을 마음에 두었다’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말씀을 간직하고 지켰다는 의미입니다.

또 예수님의 공생애 중 첫 표적이었던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실 때도, 마리아는 철저하게 아들이자, 주님인 예수님을 신뢰하였습니다. 그 잔치에서 흥을 돋게 하는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마리아는 예수님께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말했고, 예수님은 나와 상관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라고 말했습니다. 마리아는 아들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에 절대적인 능력이 있음을 굳게 믿었던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도 그 곁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는 다른 제자들과 함께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며, 약속하신 성령님이 임하시기를 기다렸습니다. 아들 예수님의 어머니에서, 아들 예수님의 제자, 아니 구주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제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부터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실 때까지 고통을 깊이 감수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부터 승천하실 때까지 함께 한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이자, 주님이신 예수님과 그 말씀에 자신의 온 생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복을 받은 사람, 복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한 여인의 감격스러운 고백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우리도 마리아처럼 진정한 복을 받은 사람, 복의 사람의 되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과 신앙을 악한 세력과 세속적 가치관이 염탐하지 못하게 하고,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삶과 우리의 믿음을 채울 때, 우리는 날이 갈수록 복된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악한 세대가 구한 표적(29-32절)

29-32절은 표적을 구하는 악한 세대를 향한 예수님의 탄식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29)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사시던 때를 ‘악한 세대’라고 정의하셨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지금 21세기를 살고 계신다면, 이 시대를 무엇이라고 정의하시겠습니까? 물질만능주의가 판을 치고, 쾌락이 최상의 가치관 중의 하나로 자리를 잡은 대한민국 한복판에 서신다면 무엇이라 말씀하실까요? 그뿐만 아니라 신문의 정치면, 경제면, 사회면, 교육면, 문화면 등을 보시면 어떤 표정을 지으실까요? 무엇보다도 세속적 가치관에 물들어 있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보시면 무엇이라고 말씀하실까요? 이 시대를 ‘인류 역사상 가장 악한 시대’라고 규정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당시를 ‘악한 세대’라고 규정하셨던 것은 사람들이 표적을 구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누군가가 가창력이 좋은 가수에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당신 노래 한번 해보시오.”라고 하면, 그 가수는 노래는커녕 몹시 언짢아할 것입니다. 그 가수가 백번 양보해서 노래했고, 아주 잘 불렀습니다. 그랬더니, “한 곡 더 해보시오.”라고 말한다면, 더 나아가 잘 못 부르는 노래가 나올 때까지 요구하거나, 목이 쉬어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부르라고 하는 것은 그 가수의 인격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요구하는 것은 그 가수는 노래를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께 표적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들이 표적을 요구했던 것은 주님을 그리스도로 믿기 위해서가 아니라 부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표적을 요구하는 사람에게 보여줄 것은 ‘요나의 표적’밖에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나의 표적’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요나 선지자가 3일 동안 큰 물고기 배 속에 있었던 것과 같이 당신께서도 3일 동안 무덤 속에 있는 것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30-32)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 선지자의 말을 듣고 회개했고, 남방의 여왕은 솔로몬의 말을 듣고 그 지혜에 머리를 숙이고 돌아갔는데, 요나 선지자를 거기로 보내고, 솔로몬에게 지혜를 준 성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함을 안타까워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표적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요나 선지자의 이야기를 하신 것은 3일의 물고기 배 속과 3일의 무덤 속이라는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요나 선지자에게는 소명, 즉 니느웨 사람들에게 들려줄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 말씀이 니느웨 사람들을 회개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요나 선지자가 물고기 배 속에 있다가 3일 만에 나온 것이 표적이 아니라, 바로 요나 자신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은 아무리 잔혹한 사람들도 사랑하시는 분이시며,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원하시는 분이심을 보여주는 표적이 되었습니다.

예수님도 단지 죽으셨다가 3일 만에 살아나신 사건 자체만 표적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 자신이 표적이 되셨는데, 주님을 믿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죽음 이후에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표적을 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보여주는 ‘표적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욕망과 이기심, 세속적 가치관을 이루기 위해서 표적을 구하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을 자기 힘으로 삼지 않습니다. 또 표적을 구하는 믿음은 하나님을 자신의 종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과 같고, 하나님의 지혜보다 자신의 지혜를 더 의존하는 것과 같습니다.

눈은 몸의 등불(33-36절)

33-36절은 눈을 등불에 비유하여 진리인 복음을 밝히 볼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33)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움 속에나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고대에는 불을 켜는 도구가 아주 귀했습니다. 부싯돌을 이용하기도 하고, 두 나무를 서로 문지르기도 했습니다. 켠 불을 유지하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고, 불을 꺼뜨리는 것을 수치로 여길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외출할 때도 불이 꺼지지 않도록 불씨를 최소한으로 하여 밀실 안이나, 됫박 속에 두곤 했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그것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불을 켜서 어쩔 수 없을 때 밀실이나 됫박 속에 두기도 하지만, 그것이 불을 켜는 목적이 아니라 켠 불은 등잔대 위에 두어서 집을 들어오는 사람이 그 불빛의 도움을 받아서 생활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34)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우리 신체 중에서 ‘눈’을 강조합니다. 우리 속담에 눈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말씀에서 말하는 ‘눈’은 주님과 주님의 말씀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가치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눈-진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르면 인생이 밝을 것이고, 나쁘면 인생이 어두움에 있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특히 ‘성하다’는 ‘좋은’, ‘분명한’, ‘순전한’ 등의 뜻이 있는데, 본래 항해할 때 쓰던 용어였습니다. ‘한 목적지’, ‘한 방향’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이 주님과 주님의 말씀을 향해 ‘한 목적지’, ‘한 방향’을 가지면, 날이 갈수록 우리의 삶은 밝아지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마무리가 됩니다.

(35-36)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빛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하시니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평생 말씀으로 더불어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실재이신 예수님을 보면서도 애써 부인하고, 외면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초점을 맞추며 보기를 원했던 것은 표면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지만 실상은 조상 때부터 내려온 전통과 자신들의 생각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말씀에 초점을 맞추며 살겠다고 고백하기에 오늘 이 자리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혹시 우리의 삶은 어둡지 않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의 힘으로 삼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초점을 맞추고 살면,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가정이, 우리의 일터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면, 그곳이 하나님의 나라가 됩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하나님의 나라가 되고, 주님의 빛으로 가득하기를 축복합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의 가르침에 감동한 한 여인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복되도다”라고 했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으로 진정한 복의 사람, 복의 통로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우리가 표적을 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셔서, 우리의 삶이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표적, 하나님의 통로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무엇보다도 우리를 빛이 되게 하셔서 세상의 빛으로 살아가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잊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우리가 세속적인 가치관이 아니라 하나님을 힘으로 삼고 살아가게 하시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온전히 인정함으로, 우리의 삶이 작은 하나님의 나라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은 복이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킴으로 누리게 된 복은 무엇이었습니까?

2. 사람들의 본성은 주님께 늘 표적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표적을 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표적이 되는 사람’입니다. 당신의 삶에서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로 이루어졌다.”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는 일은 무엇입니까? 그 일로 어떤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십니까?

3. 예수님께서는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의 삶 가운데 가장 밝은 곳은 어디입니까? 반대로 가장 어두운 곳은 어디입니까? 그 어두운 곳을 어떻게 밝게 하실 수 있겠습니까?

4. 삶 속에 하나님의 다스림을 인정하므로, 자신의 매일 매일을 하나님의 나라로 가꾸어 가며,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힘으로 삼기 위하여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작성 : 정한조)

누가복음 11장 주석

누가복음 제 11장

=====11:1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 마태복음의 경우 ‘주의 기도’는 산상 수훈에 포

함되어 있어 적어도 그 장소는 어느 산 위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누가는 다

소 모호한 표현인 ‘한 곳에서’로 이야기의 서두를 삼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

수께서 기도하고 있었다는 사실인데(3:21;6:12), 이렇게 기도하시는 예수의 모습은 제

자들로 하여금 기도에 대한 열심을 지니게 하는 하나의 중요한 동기가 되었음에 틀림

없다.

요한이…가르쳐 주옵소서 – 복음서 안에서 제자들이 기도를 가르쳐 달라서 요청하

는 것은 이 곳이 유일한 경우이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기도하는 것을 보자 요한이 그

의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준것이 생각나 자기들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한

다. 당시 어떤 종교 공동체(宗敎共同體)에서 지도자들이 기도를 가르치는 일은 일반적

인 것이었다. 랍비들은 자기의 제자들에게 기도문을 만들어 준 일이 있었고(Farrar,

Plummer), 또한 일반 유대인들도 정시에 일정한 형태의 기도문으로 기도를 하였다(행

10:3,9). 이러한 상황에서 제자들은 예수를 중심으로 하는 그들의 공동체를 특징 지워

줄 수 있는 기도를 원했던 것이다(Jeremias).

=====11:2

이렇게 하라 –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요청에 즉각적으로 응답하신다. 본문을 영원

불변의 기도형으로 생각해서 마치 주문(呪文)을 외듯이 반복하라는 말씀으로 받아서는

안될 것이며, 기도가 담고 있어야 할 최소한의 내용과 그 기도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

이어야 하는 가에 대한 하나의 모범을 제시하는 것으로 이해함이 마땅하다. 그것은 예

수께서 ‘이것을'(what) 기도하라 하신 것이 아니라 ‘이렇게'(how) 기도하라 하신 것에

서도 잘 드러난다.

아버지여 – 이 호칭은 예수께서 기도하실 때 사용했던 것으로 하나님과 예수의 관

계가 마치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처럼 다정하고 친밀한 것임을 나타낸다(10:21 주석 참

조). 이제 예수는 제자들도 그런 의미에서 이 칭호를 사용하라고 하신다. 이는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과 새롭게 갖게되는 관계가 어떠한 것인가를 말해

준다(요 20:17;롬 8:14-17). 한편 평행 본문인 마태복음에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

지여”(마 6:9)로 되어 있어 형식에 있어서 더 세련되고 완벽한 형태를 보여 주고 있

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 이 부분은 마태복음과 일치한다(마 6:9). 성경

에서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과 존재 자체를 표현한 것이니만큼 여기서 ‘이름’은 하나

님 자신을 뜻한다. 결국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하나의 기원(祈願)이자 경외심에서 기인하는 하나님께 대

한 찬양이기도 하다. 또한 본 구절의 표현이 수동태로 되어 있는 것은 하나님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높인다는 의미가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 드리

겠다는 신앙의 표시이자 하나의 서약이라고 할 수 있다(레 22:32;시 79:9;사

8:13;29:23). 동시에 이 기원은 기도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모독하고 거역하

여 하나님 앞에서 죄악을 범하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예배

(worship)하며 영광을 돌릴 수 있는 형편을 허락해 달라고 하는 간구이기도 하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가 지배하는 나라가 임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이 높이어 지는 것에 상응하는 인간에 대한 축복이다. 이것은 아직 완성

되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종말론적 성취를 대망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

라가 사단의 통치의 종식(終熄)을 뜻한다는 의미에서 이 나라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에

의해 이미 성취되기 시작한 것이다(9:1;10:17). 따라서 본문의 말씀도 성도들이 단지

미래에 성취될 종말론적 하나님의 나라만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현재적 삶에서 하나님

의 뜻이 개인과 사회 속에서 구체적으로 성취되어지는 것을 바라며, 또한 실제로 경험

하며 살게 해달라는 간구로 보아야 한다.

=====11:3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두 번째 부분은 개인적인 필요를

구하는 내용이다. 본문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일용할'(* , 에피우

시온)이라는 형용사의 해석이 난해하다는 것이다. 이 말은 여기에서만 사용되었기 때

문에 다른 곳에서 사용된 범례(凡例)를 참고할 수도 없으며 그 의미도 여러가지로 해

석된다. (1)’내일을 위한’이란 의미. 그러나 문맥상 ‘내일’이 아니라 현재의 필요를

요청하는데 초점이 있는만큼 이 해석은 저녁에 기도하는 경우에만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이 단어가 종말론적이고 영적인 의미로 해석된다면 ‘내일’은 종말론적 완

성의 때를 가리키며 ‘양식’은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에서 먹을 영적인 양식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마태복음에 기록된 ‘오늘날'(6:11)은 그 미래의 양식을 ‘오늘’ 허락

해 달라는 간구로 이해할 수도 있다(Liefeld). (2)’필요한’ 또는 ‘충분한’이라는 의

미. 이렇게 되면 본문은 “날마다 충분한 양식을 주옵시고”가 되어 비교적 자연스러운

문장이 된다. 예수 당시의 날품팔이 노동자들에게 있어 매일 매일 필요한 양식을 공급

받는다는 것은 매우 절실하고 중요한 일이었으며(마 20:1-5),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날 때 매일 매일 필요한 양식을 하나님께로부터 얻었다는 사실은(출 16:4;신 8:9)

이 신앙의 근거가 된다. 육체적인 양식이든 영적인 양식이든 그것을 공급하시는 분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이심을 믿는 신앙은 매우 중요하다.

=====11:4

용서하오니…사하여 주옵시고 – 여기서 ‘죄'(* , 하마르티아)는 아

람어 ‘호바'(hoba)를 번역한 것인데 이 말은 ‘빚’이라는 의미도 갖는다. 이에 근거하

건대 ‘죄’란 하나님께 ‘빚’ 또는 ‘부채’를 지는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죄를

범한 사람이란 하나님께 응분의 대가를 치뤄야 할 ‘채무’를 지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

빚을 탕감받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바 그것은 나에게 빚진 자

를 탕감해 주는 것이다. 그렇다고해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해주는 것이

하나님께 빚진 나의 채무를 필연적으로 탕감되도록 하는 담보는 아니다. 오히려 그것

은 하나님께 빚의 탕감을 조심스럽게 간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전제가 되는 것이다.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 여기서 ‘시험'(* , 페이라스모스)

은 ‘유혹'(temptation, NIV)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말의 의미

는 성도의 신앙을 꺾으려는 외적인 시련과 죄를 범할 수 있는 내적 유혹을 함축적으로

포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단 시험은 불가피한 것으로 여겨지므로 중요한 것은

그 시험을 견디어내는 것이다. 본문은 우리로 하여금 시험에 들게하는 주체가 하나님

인 것으로 오해의 여지를 남기나 약 1:1-15에 의하면 하나님은 결코 성도들을 시험에

빠지게 하시는 분이 아니다. 물론 때로는 그분의 선한 뜻을 펴시기 위해 시험을 허락

하기도 하지만(4:1-12;욥 1:12) 본문은 성도가 시험에 부딪쳤을 때 굴복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간구인 것이다. 이것은 마 6:13의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표현에서도

잘 드러난다. 한편 마태복음에는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

다 아멘”이라는 송영구가 있으나 권위있는 마태복음 사본 가운데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도 있어 이것이 본래적인(original)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 수 없다.

=====11:5

밤중에…내게 빌리라 – “너희 중에 누가”라는 양식으로 비유를 시작하고 있는데

이는 예수께서 자주 사용하신 형식이다(11절;12:25;14:28;15:4;17:7). 한 친구가 찾아

온 시각은 ‘밤중’이다. 7절에 의하면 이 시각은 제법 늦은 밤이었다. 왜냐하면 식구들

이 모두 잠 자리에 든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친구의 방문이 예의를 벗어나는

것임과 따라서 환영받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11:6

여행 중에…먹일 것이 없노라 – 이 친구가 밤중에 떡(bread,NIV)을 얻으러 다른

친구의 집으로 찾아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제시된다. 팔레스틴의 기후 조건 즉 낮의

찌는 더위를 고려하건대 밤에 여행하는 일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으므로 여행하는 친구

가 밤에 찾아 온 것은 충분히 있음직한 일이었다(마 2:9). 그런데 친구의 방문을 받은

이 사람은 공교롭게도 손님을 대접할 음식이 없었다. 이 친구에게 대접할 음식이 전혀

없었는지 아니면 조금은 있었으나 당시의 풍습상 손님에게 떡을 부족하게 대접하거나

먹다 남은 떡 조각으로 대접하는 것이 손님에 대한 모욕이었기 때문인지는 분명치 않

다. 아무튼 그는 떡을 필요로하는 여행중의 친구를 위해 가족이 모두 한 방에서 자야

하는 그리 넉넉하지 않은 친구의 집을 찾아간 것은 분명하다.

=====11:7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 아마 이 주인은 잠이 들었다가 친구가 부르는 소리에 깨

어나 다소 불쾌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친구의 방문을 환영하는 “친구여”라는 말

을 하지 않는 것이다(Manson). 실질적으로 이 집 주인이 괴롭게 생각했던 것은 떡을

주는 것보다는 첫째는 문이 이미 닫혀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식구들과 함께 자고 있는

데 일어나 움직이면 식구들이 깨어날 수 있다는 점에 대한 염려이다. 첫째 것이 문제

가 되는 까닭은 문을 잠그기 위해 문빗장을 걸었을 텐데 그것을 어두움 속에서 찾아

여는 것은 대단히 귀찮은 일이기 때문이다(Easton). 이집은 온 가족이 한 방 한 이부

자리 밑에서 잠을 자는 팔레스틴의 시골 농가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11:8

벗됨을 인하여…강청함을 인하여 – ‘강청'(boldness, NIV)함을 견디지 못해 필요

한 것을 준다. 여기서 ‘강청함'(* , 아나이데이안)은 부정접두어

‘아'(* )와 ‘부끄러움이 없음’을 뜻하는 ‘아이도스'(* )의 합성어로 체면

불구하고 간구하는 것을 가리킨다. 본문에는 두가지 교훈이 내포되어 있다. 첫째, 요

청에 즉각적으로 응하지 않으려 했던 집 주인과 하나님의 쾌히 주심을 대비함으로써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반드시 응답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주려는 것이고(9-13), 둘

째, 응답이 즉각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해도 계속해서 끈기를 가지고 기도해야 함을

가르친다(살전 5:17).

=====11:9

구하라…주실 것이요 – 본문의 ‘구하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이테이테'(*

)는 동등한 입장에서 구하는 ‘에로토'(* )와는 달리 아랫 사람이

윗 사람에게 구하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이 단어는 ‘기도’와 관련하여 많이 사용된다

(10:13;마 18:19;막 11:24;요 11:22;엡 3:20). 본문의 의미는 ‘받기 위해서는 구해야

한다’, ‘구하지 않고서는 받을 수 없다’로 이해할 수도 있고(Lagrange), ‘구하면 확실

히 받을 수 있다’로 해석할 수도 있다(Marshall). 그런데 후자의 의미는 다음절에서

분명히 드러난다고 볼 수 있기에 본절은 전자의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

다. 물론 여기에도 기도할 때 반드시 그 응답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가 함

축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찾으라…찾을 것이요 – 이 문구의 의미는 기도한 것을 얻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행

동으로 옮겨야 함을 말해주는 거일 수 있고, 또한 여기서 사용된 동사 ‘찾으라'(*

, 제테이테)의 성경적 용버버에 따라 하나님을 찾는 것을 뜻한다고 볼 수

도 있다(신 4:29;삼하 21:1;호 5:15;행 17:27).

두드리라…열릴 것이니 – 기도를 문을 두드리는 것에 비유한 예는 랍비들의 가르

침에도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기도를 함에 있어서 인내와 끈기를 가져야 함을 말해

주는 것이다. 한편 예레미아스(Jeremias)는 이 장면이 하늘의 잔치에 들어가기 위한

행동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하는데 전후 문맥상 다소 거리가 있다.

=====11:10

구하는…열릴 것이니라 – 본절은 앞의 말씀에 대해 재차 강조 하면서 하나님께 드

린 올바른 기도는 반드시 응답하신다는 확신을 고취시킨다(시 91:15;사 58:9;슥 13:9;

요 15:7). 본절에서 중요한 것은 기도자의 끈기와 인내보다는 하나님께서 필히 응답해

주신다는 ‘절대 신뢰’와 구한 것은 틀림없이 받는다는 ‘확신’이다.

=====11:11

생선을 달라하면…뱀을 주며 – 기도 응답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할 근거를 제시하

는 비유의 말씀이다. 세상의 어떤 아버지가 자식이 생선을 달라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줄 자가 있겠는가. 생선을 주거나 생선이 없다면 적어도 해로운 것을 주지는 않을 것

이다.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구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으로 주지 않을 리가

없을 것이다. 이것은 두 가지를 말해주는 데 첫째는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에게 어떤

형태로든 틀림없이 응답해 주신다는 것이고 둘째는 응답해 주시되 선한 것으로 주신다

는 사실이다.

=====11:12

알을…전갈을 – 여기서 알은 떡, 마른 생선과 함께 유대지방의 정식으로 알려진

삶은 달걀을 말하며 전갈은 꼬리로 상대를 찔러 무감각하게 만드는 독을 가진 짐승이

다. 이 전갈(全蝎)은 성경에서 악하고 위험한 것의 상징으로 묘사되며(신 8:15;계

9:3,10), 몸을 구부리면 계란과 비슷한 모양이 된다. 한편 마태복음의 평행 본문에는

‘떡과 돌이’ 한 쌍을 이루며 서술되어 있어(마 7:9) 누가복음과 차이를 보인다.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 여기서 ‘악한'(* , 포네로스)이라는 형용사는

사람과 그 행위를 총체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3:19;6:45). 혹자는 이 표현이 바리새

파 사람들에게 쓰여졌다는 사례에 근거하여(마 12:34), 여기서도 이들에게 말씀하신

것으로 보기도 한다(Marshall). 또한 이 말씀이 인간 일반의 원죄를 지적하는 것이라

고 보는 견해도 있으나 둘 다 정확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설사 후자의 견해가 옳다

고 하더라도 본문의 말씀은 인간의 죄성을 드러내는 데 중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에 대비되는 하나님의 선하심(goodness)을 강조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이해해야

할 것이다.

천부께서…성령을 – 누가가 인간이 주는 ‘좋은 것’에 대해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성령’이라고 표현한 것은 인간의 것과 하나님의 것의 질적인 차이를 확연히 드러내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은총 가운데 최고의 선물인 성령이기 때

문이다(요 16:7). 성령은 모든 좋은 것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고전 12:4-11). 실제

로 오순절 이후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가장 귀한 선물 곧 복음의 물결이 온 세계에

로 확산되어갔다. 한편 마샬(Marshall)의 견해대로 마태의 ‘좋은 것’이라는 표현이 영

적인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면(롬 10:15;히 9:11;10:1) 누가와 마태는 결국 같은 의미

의 말을 하고 있는 셈이 된다.

=====11:14

한 벙어리 귀신 – 평행 본문인 마가복음는 귀신 축출에 관한 기사가 없고(막

3:22), 마태복음(마 12:22)에 의하면 이 귀신은 그 사람을 벙어리가 되게 했을 뿐 아

니라 눈까지 멀게 했다. 귀신을 좇아내는 과정은 일체 언급되고 있지 않으며 단지 예

수께서 귀신을 쫓아 내고 그 사람이 온전해졌다는 기사(奇事)만 간략하게 서술함으로

써 이어지는 바알세불 논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마태복음에 의하면 사람들은 깜짝

놀라 예수가 다윗의 자손이 아닌가고 묻는 모습이 나온다(마 12:23).

=====11:15

그 중에 더러는 –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보고 일단의 무리들이 긍정적인

의미에서 기이히 여기고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은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내었다. 마태에

의하면 이들은 바리새인들이라고 되어 있고(마 12:24), 마가에 의하면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이라고 되어 있다(막 3:22). 서기관의 대다수는 바리새인이었으므로

사실상 마태와 누가의 기록은 일치한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귀신의 왕 바알세불 – 바알세불이 귀신의 왕이라고 불리어지게 된 기원과 ‘바알세

불’이라는 이름 자체의 의미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밝혀진 바가 없이 다만 여러가지 해

석들이 있을 뿐이다. 일반적으로 이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왕하 1:2에 근거하여 ‘바

알’이 에그론(Ekron)에서 숭배되던 우상인 ‘바알세붑'(Baal-Zebub)으로부터 유래했다

고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한편 이 이름의 의미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해석이 있는데

공동 번역의 ‘베엘제불'(Beelzebull)에서 ‘Beel’은 ‘Baal’ 즉 ‘주’라는 의미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며 뒷 부분인 ‘Zebull’의 의미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해석이 있다. (1)

‘집’, ‘높은 곳’을 뜻한다고 보면(왕상 8:13;사 63:15) ‘거주의 주’ 또는 ‘높은 곳의

주’가 된다(Foerster). (2)발음이 유사한 ‘똥’이라는 의미의 Zebel로 보면 ‘똥의 왕’

의 된다(Hendriksen). (3)이를 ‘파리’로 해석하여 ‘파리의 주’로 보는 견해도 있다

(Bengel, Tyndale). 이 가운데 비교적 많이 인용되는 것은 (1)의 설명이다. 아무튼 본

문을 통해 분명해지는 것은 유대인들(좁게는 교권자들)이, 예수가 귀신을 좇아낸 사건

자체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를 정당하게 평가한 것

이 아니라 자기들의 무능력을 은폐(隱蔽)하기 위하여 진리를 매도하려 했던 것이다.

=====11:16

시험하여…표적을 구하니 – 마가는 여기서도 적대자들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있으

나 마태에 의하면 이들은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마

12:38). 이들은 예수가 다윗의 자손(마 12:23), 즉 메시야로서의 사역을 담당할 자격

이 있는지를 증명해 보이라고 요구하였다. 이러한 요구는 귀신 축출 사건을 신적 권위

의 증거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귀신을 축출하는 것이 신적 권위를

나타내주는 것으로 인정되지 않을 만큼 흔한 일이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예수에게 더

무리한 요구를 하여 궁지로 몰아 넣으려는 의도 때문인지 분명치 않으나 후자일 가능

성이 농후하다. 이들이 말하는 ‘하늘로서 오는 표적'(a sign from heaven, NIV)에 대

해서는 엘리야처럼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게 하는 것과 같은류의 이적을 요구한 것이라

고 추측할 수 있다(왕상 18:1).

=====11:17

아시고(* , 디아노에마타) – 이는 ‘깊이 생각하다’, ‘구분하

다’의 의미를 갖는 ‘디아노에오'(* )에서 나온 말로 의도나 목적을 간파

하였다는 의미이다.

스스로 분쟁하는…무너지느니라 – 예수께서는 자기를 비방하는 자들의 이야기가

전혀 논리에 맞지 않음을 지적한다. 자중지란(自中之亂)을 일으켜 온전하게 남아있을

수 있는 나라나 집은 없다. 이 단순하고도 명료한 비유 앞에 적대자들의 논리는 산산

이 깨어지고 마는 것이다.

=====11:18

사단이 스스로 분쟁하면 – 앞절에서는 진리에 대한 일반 놀리로 이끌어 내었는데

여기서는 그 일반 논리를 특수한 문제에 적용시키고 있다. 나라와 집이 그러하듯이 사

단도 자기들 끼리 싸우면 그 나라가 바로 설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따라서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낸 것은 바알세불을 힘입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을 입은 것

이며, 싸움은 사단의 세력과 하나님의 나라 사이에만 있을 뿐이다(고후 10:4).

=====11:19

너희 아들들은…재판관이 되리라 – 적대자들의 비방에 대한 예수의 반대 논리는

매우 철저하며 집요하다. 이제는 적대자들 자신의 태도가 얼마나 논리적 모순을 범하

고 있는지를 파헤치고 있는 것이다. 만약 그들이 예수의 귀신 축출 행위(逐出行爲)를

사단의 힘입은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동일하게 그들의 추종자들의 귀신 축출 행위

에 대해서도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며 그것은 곧 자기들 스스로를 부정하고 악마화하는

꼴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그들의 재판

관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아들들'(followers, NIV)로 번역된 ‘휘오스'(* )

는 ‘추종자’, ‘제자’의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며(히 12:5;벧전 5:13), 예수 당

시에는 귀신을 쫓아내는 일이 그리 희귀한 것은 아니었다(행 19:13).

=====11:20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 여기서 ‘손’으로 번역된 ‘다크튈로스'(* )

는 ‘손가락’으로 번역하는 것이 정확하며(46절) 이는 하나님 자신을 가리키는 구약적

표현이다(출 8:19;31:18;신 9:10). 그러나 더 흔하게는 ‘하나님의 손’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다(출 7:4,5;9:3,15). 한편 마 12:28에는 ‘하나님의 성령’이라고 기록되어 있

다. 예수의 삶의 초기부터 성령께서 함께하셨다는 의미에서(3:22;4:1,18) 마태의 서술

도 적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구약에 있어서 ‘하나님의 손’과 ‘하나님의 영’

이 의미상 거의 동일하였다고 할 때(대상 28:12,19) 누가와 마태는 같은 이야기를 하

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해서 바알세불의 힘을 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는 적대자들의 비

방은 완전하게 부정되며 예수는 오로지 하나님의 권능을 힘입었다는 사실이 선언되었

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임하였느니라 – 예수의 말씀은 단지 적대자들의 비방을 반

박하는데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하나의 놀라운 사실을 선포하고 있다. 그것은 예수께

서 귀신을 쫓아낸 사건은 단순한 하나의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이 임재함을 말

해주는 것이며 따라서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보여주는 증거라는 사실이다. 여

기서 “임하였느니라”로 번역된 ‘에프다센'(* )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

는 논의의 여지가 있다. 이 동사의 의미는 ‘앞서 오다’의 뜻도 있고(살전 4:15), ‘방

금 도착했다’, ‘도달한다’는 뜻도 있다(Lenski). 이 동사의 의미를 미래적인 것으로

해석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곧 너희에게 임할 것이다’, 또는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다가왔다’는 뜻이 되고 현재적인 의미로 보면, 하나님의 나라가 아직 완성된 것은 아

니지만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실현되기 시작했다는 의미가 된다. 여기서는

후자의 해석이 더 타당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그것은 귀신이 쫓겨나는 사건이 미래

적인 것이 아니라 현재적인 것이라면 적어도 그 순간 하나님의 권세가 사단의 권세를

물리쳤음을 뜻한다. 또한 이것이 사단의 지배하에 있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지배가 시

작되었음을 증거해주는 것이라면, 여기에서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의 선취(先取)를

보게 된다는 해석은 가능하다. 이 견해를 지지해주는 더 결정적인 단서는 ‘너희에게’

라는 표현이다. 이 표현은 분명히 지금 예수 앞에 있는 청중들을 가리키는 것이지 미

래의 청중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11:21

강한 자가…안전하되 – 전통적으로 본문의 ‘강한 자'(a strong man, NIV)는 사단

으로 설명되어져 왔다. 그리고 ‘집’은 사단의 지배아래 있는 세상을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Lenski). 한편 사단이 지키고 있는 ‘소유’에 대해서는 사단의 지배

아래 있는 사람을 가리킬 수도 있고, 사람이 하나님과 교제하여 갖추어야 할 소중한

가치들을 빼앗은 것을 가리킬 수도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사단을 제압할 수 있을

만큼 더 강한 자가 없었기 때문에 그의 소유는 안전하게 유지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 강한 자’가 와서 그의 안전을 파괴할 것이다.

=====11:22

더 강한 자가…이길 때 – 일반적으로 ‘더 강한 자’는 예수를 지시한다. 여기서

‘이길 때’가 구체적으로 어느 시점을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다음 몇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1)예수께서 공생애 활동을 시작하기 직전에 광야에서 사단의 시험을 이

긴 것을 뜻한다. (2)지금까지 예수께서 일으켰던 귀신 축출 사건들을 가리킨다(14

절;4:1-13;8:26-39;9:37-45). (3)앞으로 있을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온전히 성

취될 하나님의 승리를 가리킨다. 이 가운데 어느 것 하나가 옳다고 하기보다는 모든

것을 다 포괄하는 총체적인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무난하다고 본다.

믿던 무장을 빼앗고…재물을 나누느니라 – ‘믿던'(* , 에페포이

데이)은 ‘설득시키다’, ‘믿게하다’는 의미의 ‘페이도'(* ) 제2과거완료 능동

태로 ‘매우 유용하다고 신뢰하던’의 뜻이다. 무장(* , 파노플리안)

은 방패, 검, 창, 투구, 무릅받이, 흉배 등으로 완전 무장한 상태를 나타낸다. 사단이

아무리 강하고 완전한 무장을 하고 있더라도 예수는 사단을 궤멸시켜 그의 무장을 해

제하고 그의 소유를 빼앗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다. 이는 죄와 사망의

포로로 잡혀 있었던 사람들이 예수의 구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의와 새생명을 누리게

됨을 뜻한다(요 5:24). 바야흐로 인간을 약탈하던(9:39) 사단이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에 의해 도리어 약탈을 당하고 파멸의 종국을 맞게 되며 하나님의 나라의 권세가

지배하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 것이다.

=====11:23

함께 아니하는…모으지 아니하는 – 이 말씀은 매우 급박한 상황을 반영한다. 즉

예수와 사단과의 전쟁은 시작되었으며 이 전쟁에서 중립적인 자리는 없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예수의 편에 서든지 사단의 편에 서든지 결단해야 한다. 따라서 예수를 시험

하거나 비방하는 자는(15,16절) 반대하는 자요 사단의 편이요 성령의 훼방하는 자들인

것이다(마 12:31). 마찬가지로 함께 모으지 않는 자는 흩어놓는 자이다. 이것은 양떼

를 모으는 장면을 연상하게 하는데(요 10:12), 위급한 상황에서 양떼를 모으는 일에

목숨을 걸지 않는 자는 양떼를 죽이는 일에 협조하는 것이다. 혹자는 이 말씀이 9:50

의 말씀과 모순이 된다고 하나 그것은 문맥, 또는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문자적인 이

해에 얽매이는 데서 오는 오류이다(마 12:30 주석 참조). 9:50의 상황은 어떤 사람이

예수께 대해 중립적인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하셨고 또 하려고 하는 일을 그

가 행했던 것이고, 여기서는 선과 악, 진리와 반(反)진리가 싸우는 상황에서 중립지대

는 없으며 분명히 어느 한편에 서야 함을 말씀하신 것이다.

=====11:24

더러운 귀신이…돌아가리라 – 이는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을 체험하긴 했지만 그

속에 성령이 거하시지는 않는 경우이다. 다시말해서 귀신이 나간 이후 한동안 공백 상

태가 지속될 뿐 성령을 영접해 들이지 않음으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영적 파탄에 빠

지게 된 경우인 것이다. 도덕적 파국의 심각성은 26절의 ‘거하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토이고’가 ‘정착하다’, ‘영구히 거주하다’란 의미를 지니는 데서도 잘 나타난다.

=====11:25

소제(掃除)되고 수리되었거늘 – 본문의 평행 구절(마 12:44)에는 그 집이 ‘비고’라

는 표현이 더 첨가되어 있는데 이는 성령으로 채워져 있지 않음으로 결국 악령의 지배

를 받게 되리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영적 존재이므로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지 않으면 사단의 지배를 받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틴데일(Tyndale)은 본문

의 의미를 도덕적인 청소가 되어진 상태를 뜻하는 것으로 보아 헝클어졌던 마음이 정

리되고 그런 결과로 생활이 좋아진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11:26

더 악한 귀신 일곱을…거하니 – 집이 소제되고 수리됨으로 말미암아 예전에 거했

던 한 악령이 들어가기에는 저항력(抵沆力)이 강했다고 본다면 이 악령이 다른 일곱

귀신을 데려온 것이 이해가 된다. 여기 일곱 귀신은 막달라 마리아를 괴롭힌 일곱 귀

신을 연상 시키는데(8:2), 그 숫자도 엄청나게 불었거니와 그 악함이 전에 있던 한 귀

신보다 더 심하다는 묘사는 이 사람이 일곱 귀신이 들었을 때의 상태가 얼마나 극심하

였겠는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결국 이 지경에 이르게 된 이유는 악령이

나간 자리를 하나님의 선한 영으로 채우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악령이 축출된 자리

는 빈 공간으로 두어서는 안되며 반드시 그 자리에 하나님의 나라가 들어서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마샬(Marshall)은 이 이야기가 귀신만을 축출해 놓고 그 자리에

아무것도 채워주지 못함으로써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킨 유대인 귀신 축출자들에(19

절)에 대한 경고일 수 있다고 보는데, 이 이야기가 적대자들과의 논쟁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점에서 일리가 있는 해석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마태는 평행 구절에서

이 귀신들린 자가 바로 ‘이 악한 세대’ 즉 ‘유대인’ 들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 이유는

아마 세례 요한의 선포를 듣고 회개했던 유대 백성들이(마 3:1-6) 얼마 지나지 않아

더욱 완악해져 예수를 거역(마 12:24)했던 상황과 연관될 것이다(Hendriksen,

Lenski).

=====11:27

당신을 밴 태와…복이 있도소이다 – 엘리사벱이 예수를 수태한 마리아를 보고서

찬양한 내용과(1:42) 유사하며, 렌스키는 여기서 1:48의 예언이 성취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본문의 여인은 단순히 한 선생의 달변(達辯)에 감탄한 것이 아니라 예수의 가르

침 배후에 있는 신적인 권위를 발견한 듯하다. 본절의 의미는 “당신의 어머니는 하나

님의 특별한 축복(bless, NIV)을 받았음에 틀림없다”로 보면 될 것이다(Marshall).

=====11:28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 – 예수는 여인의 찬사에 대해서 아무런 평가를 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곧 당신의 어머니 마리아가 복되다는 이야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긍

정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데 견해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Lenski,

Tyndale). 그러니까 ‘오히려'(* , 메눈)는 여인의 이야기를 부정하거나 약

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뒤의 이야기, 즉 진정한 복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

에게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것은 예전에 하신 말씀으로서 진정한 의미에서

자신의 모친과 동생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라는 말씀과(8:21) 동일 선상

에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결국 하나님 앞에서 중요한 것은 혈육의 관계가 아니라

영적인 신실성의 문제 즉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전적인 순종과 헌신이라는 사실이 다

시 한 번 확인되는 것이다. 여기서 ‘지키는'(* , 퓔라쏜테스)은

‘파수하다’, ‘준수하다’는 의미의 ‘퓔라쏘'(* )의 현재 분사형으로 복있

는 사람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적으로 준수하는 것을 임무로 아는 사람임을 뜻한

다.

=====11:29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 마태는 ‘음란한’을 첨가하고 있는데(마 12:39), 구약 시

대에 이스라엘과 하나님과 관계를 부부 관계에 비유할 때(호 1:2) 이스라엘의 완악함

과 우상 숭배는 곧 음란으로 표현되었다. 유대인들의 표적(sign, NIV) 요구가 악한 것

으로 규정되는 까닭은 예수께서 전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이

며(Marshall), 또한 지금까지 예수께서 일으키신 여러 가지 이적적인 사건들(14,20

절;4:38-44;8:22-25;40-56)이 하나님의 권능을 밝히 드러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

을 아예 인정치 않으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1:30

요나가…인자도…그러하리라 – 요나가 바다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 동안 있다가

구원받은 것이 곧 예수의 죽음과 사흘 만의 부활을 예시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태의

평행 본문인 12:40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으며 9:22에 이은 또 하나의 수난 예고로 볼

수도 있다. 또한 이 말씀은 물고기 뱃속에서 나온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했을 때 회개 운동이 일어났듯이 예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실 때 사람들이

회개해야함을 촉구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회개치 않는 자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준엄

한 심판을 알리신 것이기도 하다.

=====11:31

남방 여왕이…정죄하리니 – 여기에 언급된 ‘남방 여왕’은 왕상 10:1-13에 나오는

스바의 여왕(queen of Sheba, NIV)을 말하는데 스바는 남부 아라비아에 있는 오늘날의

예멘(Yemen)을 가리킨다. 이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무려 2천 킬로미터나

되는 먼 거리를 찾아왔다. 이는 성경의 표현에 의하면 땅 끝에서 온 것이다(마

12:42). 이 여왕의 열정에 비하면 유대인들의 태도는 너무도 완악한 것이었다. 그들은

솔로몬 보다 더 위대한 사람과 함께 살면서도 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예수는

자신을 솔로몬 보다 ‘더 큰 이’라고 한다. 결국 유대인들은 거리상 비교도 안될 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었고 그 인격의 위대함에 있어서도 솔로몬을 능가하는 예수와 접할

수 있는 귀한 은총 가운데 살면서도 모든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던 셈이다.

=====11:32

니느웨 사람들이…정죄하리니 – 같은 논리가 이번에는 니느웨 사람들과 유대인들

의 대조에 적용되고 있다.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창 10:11)로 그곳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극심한 죄악을 범하였다(욘 1:2).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요나

의 선포를 듣고 회개하였다(욘 3:5-10). 니느웨 사람들은 일개 선지자의 선포를 듣고

도 회개하였는데 유대인들은 요나보다 비교가 안될 만큼 위대하신 예수의 선포를 듣고

도 회개하지 않았다. 31-32에는 하나의 일관된 주제가 흐르고 있는데, 그것은 ‘이방인

의 구원 받음’과 ‘유대인의 구원 받지 못함’이 대비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방인과 유

대인의 구원 관계에 관해서는 마 8:1-17의 주제 강해를 참조하라.

=====11:33

누구든지…보게 하려 함이니라 – 본절의 의미는 두가지로 이해될 수 있다. (1)등

불이 예수를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 등불이 등경 위에 위치하여 주위를 밝게 비추는

일이 너무도 당연하듯이, 예수께서도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위치에서 항시 생명의 빛을

비추었으나 사람들이 그 빛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2)등불을 복음의 메시지로 간주

하는 견해. 예수의 말씀을 들은 자는 말씀의 빛을 다른 사람에게도 비춰주어야 하는

새로운 책임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11:34

몸의 등불은 눈 – 여기서 몸은 전체적인 인격을 뜻하나 등불에 비유된 눈은 진리를

분별하고 받아들이는 통로에 해당한다.

눈이 성하면…나쁘면 – ‘성하면'(* , 하플루스)의 본래적 의미는 ‘주

름이 없는’, ‘단순한’, ‘진실한’으로 영적 안목이 단순하고도 진실되게 진리에만 고정

되어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혹자는 이 단어에 ‘일편 단심’이라는 은유적 의미가 있다

고 보아 “온 몸이 밝을 것이요”를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눈이 건강해서 빛을 받아들

인다면 즉 영적인 눈이 일편 단심으로 복음의 빛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전 존재는 빛으

로 가득할 것이다.” 반면 ‘나쁜'(* , 포네로스) 눈은 그 시선이 약한 것

에 맞추어져 있으므로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 진리와 복음을 거부하는 눈이다.

=====11:35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 누가는 이 말씀을 하나의 권고 형식으

로 서술하고 있는데 비해 마태는 경고의 형식으로 기술하였다(마 6:2). “속에 있는

빛”에 관해서는 (1)하나님의 계시를 감지하는 내적 빛 곧 양심(Gilmore) 혹은 (2)청중

들이 스스로 빛이라고 여기는 것을 각각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이중 어떤 견

해를 취하든 본절은 본성적으로 진리를 거스리기 쉬운 인간의 무지함과 완악함에 대한

경종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에 비추어 볼 때 우리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께로 부터 받

은 선한 양심과 하나님께 대한 경건한 신앙이 무디어지지 않도록 경성해야 할 것이다.

=====11:36

온몸이 밝아…온전히 밝으리라 – 마태의 평행 본문에는 없는 것으로 누가만의 독

특한 결론이나, 그 의미가 분명치 않아 베자 사본, 고대 라틴역, 수리아역 등에서는

생략되어 있기도 하다. 앞의 내용을 반복하는 듯한 본절은 반복법이 사용되고 있다는

면이나 주제면에서 볼 때 엡 5:13,14와 유사하다. 본절의 의미는 34,35절에 비추어 볼

때 분명해지는 바 믿음의 신령한 눈을 뜨고 있는 자는 복음의 광채를 받아들일 뿐만

아니가 그 빛을 주위에까지 비추는 빛의 자녀다운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엡 5:8).

=====11:37

한 바리새인이…앉으셨더니 – 여기 한 바리새인이 예수를 식사에 초대한 것은 모

종의 적대 의식 또는 반감을 가지고 책잡기 위해 끌어들인 것은 아니었다고 짐작된다.

‘점심 잡수시기’에 사용된 동사 ‘아리스테세'(* )는 ‘먹다’는 의미의

‘아리스타오'(* )의 과거형으로 정확하게 말해서 이 말의 뜻은 하루의

첫번째 식사를 가리킨다. 보통의 상류층 유대인들도 평일에 하루 두 끼의 식사를 한

다. 한 번은 늦은 아침에 가볍게 하고(* , 아리스톤), 또 한 번은 늦은

오후에 하는 데 이 것이 주식사이다(* , 데이프논). 안식일에는 세 차

례의 식사를 하는데 예배가 끝난 후에 먹는 점심을 가장 잘 차린다. 이렇게 볼 때 예

수께서 초대받은 식사는 첫 식사라는 의미에서 ‘아침’이며(요 21:12,15), 시간상 점심

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앉으셨더니'(* , 아나퓨토)는 비스듬히

누워서 음식을 먹는 유대인들의 식사 자세를 묘사한 것이다.

=====11:38

손 씻지 아니하심을…이상히 – 막 7:2에는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었

다가 바리새인들과 부딪친 일이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예수 자신이 손을 씻지 않

고 식사에 임함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여기서 ‘씻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배티조'(*

)는 ‘담그다’, ‘적시다’의 의미로서 규례에 따라 식사전에 물 그릇에 손

을 담그는 것을 뜻한다. 이 행위는 당시 하나의 예의요 관습이었고, 단순히 위생상의

문제 뿐만 아니라 죄많은 세상과 접촉함으로 인해서 생기는 불결을 제거하기 위한 결

례(潔禮)였다. 아무튼 이 제의적(祭儀的) 식사 관습은 바리새인 뿐 아니라 일반 유대

인들도 철저히 지켰던 규범이었다(막 7:3-4). 따라서 이 유전을 무시한 예수의 행위는

그 바리새인에게 파격적인 것으로 다가왔다. 예수의 이러한 행위는 유대인들의 유전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것이 아니라 저들의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악습을 질책하기 위한 의

도적인 것이었다 할 수 있다.

=====11:39

겉은 깨끗이…속인즉 탐욕과 악독 – 예수는 ‘주'(* , 호 퀴리오스)

로서 말씀하시며, 그 대상은 예수를 식사에 초대한 바리새인을 넘어 전체 바리새인들

에게로 확대된다. 예수는 자신을 초청한 사람을 면전에 두고 매우 강한 어조로 그들의

위선을 비판하고 있는데 마태의 경우는 (마 23:25) ‘화 있을진저’라는 저주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들은 종교적인 거룩함을 보이려고 그릇의 겉을 닦듯이 철저히 예식

을 엄수함으로써 자신들의 외양을 포장하지만 그 속은 탐욕과 이기심으로 가득한 위선

자들이라는 것이다. 탐욕(* , 하르파게스)은 ‘채어가다’는 뜻의 ‘하르파

조'(* )에서 온 말로 ‘강탈’, ‘약탈’의 의미를 포함한다. 또한 ‘악독'(*

, 포네리아스)은 ‘악한 자’를 뜻하는 ‘포네로스'(* )에서

온 말이다. 이는 바리새인들이 겉으로는 종교적 순결성을 지닌 것처럼 보이나 그 중심

을 얼마나 욕심이 많고 악한 자들인가를 잘 표현해 주는 말이다.

=====11:40

어리석은 자들아 – 겉만 깨끗하게 포장을 하면 속의 추악함이 감추어 질 수 있으리

라고 생각했다면 그것이야말로 하나님 앞에서 용납될 수 없는 어리석은 짓임에 틀림없

는 일이다. 왜냐하면 창조자의 눈에는 피조물들이 모든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밖

에 없기 때문이다(마 10:26).

=====11:41

그 안에 있는 것 – 이에 관하여 여러 해석이 있다. (1)잔과 접시 속에 있는 것, 곧

호화 음식으로 봄. 그러면 그 의미는 “호화로운 잔치를 벌이지 말고 그 식물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라”, “잔 속에 있는 것을 구제물로 주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하리

라”(NEB)가 된다. (2)이를 부사적 대격으로 해석하여 “마음으로부터 자선을 베풀라”의

뜻으로 본다(N.Turner). (3)”네가 모아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즉시 너의 소유물

이 깨끗해 질것이다”(J.Knox). (4)누가가 기록한 ‘구제하라’는 아람어 ‘깨끗이 하다’

(dakki)를 ‘자선을 베풀다'(zakki)로 오역한 것이라는 해석(Wellhausen). 이러한 세가

지 해석들은 각각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갖고 있으며 39절과의 연관성에 비추어 볼 때

(2)의 견해가 가장 합당해 보인다. 왜냐하면 바리새인들은 그 마음에 탐욕과 악독이

가득할 뿐 아니라 그러한 마음의 필연적인 결과로 부정한 재물을 축적했음에 틀림없

다. 이렇게 볼 때 그들에게 요청되는 것은 탐욕과 악독을 버리고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심으로 부정한 재물을 모두 되돌려주는 것이며, 더 나아가 ‘구제’라는 말에 적합하

게 자신들이 정당하게 모은 것에 대해서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마음의

깨끗함을 스스로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11:42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 – 여기서부터는 ‘화 있을진저’로 시작해서 여섯

가지의 화(禍)가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에게 선포되는데, 이 문구에는 ‘저주’ 또는 ‘복

수’의 의미라기보다는 ‘탄식’의 뜻이 들어 있다(10:13).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의 근본정신을 사장(死藏)시킨 채 그 형식에만 집착함으로써 성스러운 하나님의

율법을 박재화시킨 바리새인들의 형식주의를 신랄하게 바판하고 있다. 본래 구약의 율

법은 곡식, 포도주, 기름과 같은 주요 농산물과 가축에 대한 십일조를 규정하고 있다

(레 27:30-33;신 14:22-29). 물론 여기에는 땅 위에서 소출하는 모든 것이라는 개념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랍비적 규범은 십일조를 아주 사소한 것까지 세

분화하였는데, 심지어는 땔 나무까지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고 요구한다(Mishna). 이런

것 자체가 벌써 바리새인들의 형식주의와 맹목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서는 바리새

인들이 바친 십일조의 세 항목이 열거되고 있는데, ‘박하'(* , 헤두오

스몬)는 정원에서 재배하는 식물로 그 향기가 좋으며, ‘운향'(* , 폐가

논)은 회록색의 잎과 노란 꽃을 가진 식물이다. 마태의 평행 본문에는(23:23) ‘회향’

(* , 아네돈)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이논드 향료(anethum graveolens)를

가리킨다. 마지막 항목인 ‘채소'(* , 라카논)는 어떤 특정한 종류를 가

리키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총칭으로서의 채소를 뜻한다. 마태는 누가와 달리 특정

한 종류인 ‘근채'(* , 퀴미논)로 기록하고 있다.

공의와…사랑은 버리는도다 – 형식적 율법을 준수함에 있어서는 규정 이상으로 열

성적이며 철저했던 바리새인들은 정작 가장 중요한 율법의 정신을 탈색시켜 버렸다.

여기서 ‘공의'(* , 크리시스)는 ‘정의’, ‘의로움’의 뜻으로 사회 정의와

관련된 말이며(Easton), 따라서 바리새인들이 가난한 사람들과 불의에 억압당하는 사

람들에 대해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사랑'(* , 아가페)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보이신 사랑’에 근거하여 마음과 목숨과 힘, 그리고 뜻을 다해

하가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그런 사랑을 가리킨다(10:27).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이러한 공의와 사랑을 버렸던 것이다. ‘버리다'(*

, 파레르케스데)는 ‘비켜나다’, ‘간과하다’의 의미로 이들의 행위가 중요한 핵

심을 비켜가면서 형식만을 추구하는 것이었음을 가리킨다.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아니하여야 – 예수게서 그들의 철저한 율법 준수를

부정하신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이 철저하게 형식을 지키는 만큼 그 율법의 정신에

대해서도 철저해야 한다는 것이다. 후자가 간과되거나 무시된 채 전자만이 지켜질 때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혹자는 정결법의 규절을 파기하신 예수께서(38절) 율법의

준수를 말하는 것이 모순이 아닌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 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예수를

맹목적 율법 파괴자로 오해하는 데서 오는 그릇된 문제 제기이다. 왜냐하면 (1)예수께

서는 율법 자체를 파괴하거나 반대하시지 않고(16:17), (2)결코 예수는 정신이 결여된

율법 준수를 인정하지 않으셨으며 또한 (3)을 법이 규정하지도 않은 유전적(遺傳的)

규범을 거부하는 것과 정당한 목적을 가진 십일조를 인정하는 것은 전혀 모순되지 않

기 때문이다.

=====11:43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 – 이번에는 바리새인들의 교만과 명예

욕이 지적된다. 첫째로 지적되는 것은 교권적 교만으로, 그들은 공식적 예배 종교 교

육 담당 기관인 회당에서 늘상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했다. 마태의 평행 본문에는

(23:6) 이들이 잔치에서도 상석에 앉는 것을 좋아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높은

자리'(* , 프로토카데드리아)는 ‘가장 높은 자리'(the most

important seats, NIV)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 종교 지도자들로서의 바리새인들이 회

당의 상석에 앉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철저하게

비판받아야 하는 것은 그들이 맡은 바 종교적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것 보다는 특권

적 우월 의식(優越意式)이나 교만한 과시욕에 몰두하는 일에 더 큰 관심을 보였던 점

이다. 둘째로 지적되는 것은 세속적 명예욕으로 그들은 시장에서 인사 받는 것을 자신

들의 특별한 존재성을 확인받는것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그들에게 먼저

인사하는 것은 단순한 문안 인사의 차원을 넘어 존경의 표시였다. 그들은 종교 지도자

들로서 당연히 존경의 인사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으례히 존경을

받아야 한다는 착각에서 깨어나 자신들의 내면과 행위가 진정으로 하나님과 사람들 앞

에서 바른 것인지를 점검해 봤어야 했던 것이다.

=====11:44

평토장(平土葬)한 무덤 – 바리새인들에 대한 세번째 화(禍)는 그들의 본질적 모습

에 관한 것이다. 즉 그들은 평토장한 무덤과 같아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억울한 부

정을 범하게 만드는 악한 존재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율법에 의하면 무덤에 닿으면 칠

일간 부정하게 되는데 평토장한 무덤 같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라도 닿으면 부정하게

되기 때문이다(민 19:16). 본절에서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부패하고 썩은 무덤이라는

사실을 은폐하여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부지 중에 부정한 죄를 범하게 하는 자들로 비

판되고 있다. 이에 비해 마태의 평행 본문에서는(23:27) 조금 다른 각도에서 서술되고

있다. 즉 거기서는 바리새인들이 회칠한 무덤 즉 속에는 죽음과 부패함이 있으나 겉은

아름답게 치장하는 자들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본문은 그들의 은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고 마태복음에서는 그들의 외부적인 치장에 비판의 초점이 맞

추어져 있는 것이다.

=====11:45

한 율법사가…모욕하심이니이다 – 여기서부터는 비판의 대상이 바리새인에서 율법

사로 바뀌어진다. 마태복음의 경우 이 두 그룹을 따로 언급하지 않고 함께 싸잡아 바

난하고 있다(마 23:13,27,29). 여기서 율법사는 일명 서기관(scribe)으로 불리기도 하

는데(막 12:28), 유대교의 전문적인 율법 해석자나 율법 교사들을 가리킨다. 본문은

예수를 초청한 바리새인의 집에 율법사도 함께 있었음을 말해주는데(37절) 이 율법사

는 바리새인들에 대한 예수의 비판을 듣고 있던 중 마치 도둑이 제 발저린다는 격으로

찔림을 받았던 것 같다. 사실 율법사의 대부분은 바리새인이었으므로 그가 그렇게 받

아들인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여튼 이 율법사는 “우리까지 모욕하심이니이

다”는 불만을 드러냄으로써 바리새인들에게 대한 비판이 자기들에게도 해당된다는 점

을 간접적으로 인정한 것이 되고 말았다. 한편 그가 교만으로 가득차 예수의 비판을

‘모욕'(insult, NIV)으로 받아들인 것은 예수의 비판을 근거 없고 정당성을 갖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보았음을 뜻한다. 이에 예수께서는 율법사들의 죄악성을 낱낱이 파헤치는

것이다.

=====11:46

지기 어려운 짐을…대지 않는도다 – 여기서 말하는 ‘지기 어려운 짐’이란 율법 자

체가 아니라 율법과 장로들의 유전에 대한 율법사들의 해석을 말하는데, 이들은 사실

상 자신들의 해석을 율법 자체보다 우월한 것으로까지 여겼다. 그런데 이들의 해석은

지나치게 세분화 되어 있고 복잡하여(모세의 율법을 제외하고도 613조에 달하는 규범

이 있었다) 일반 백성들이 일일이 암기하여 지키기란 대단히 어려운 것이었다. 저들은

이런 부담(burden)을 백성들에게 강요하면서도 자기들은 지키지 않았던 것이다(마

23:3).

=====11:47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는도다 – 이들은 선지자들이 그들의 조상으로부터 죽임을 당

하여 묻힌 무덤을 다시 쌓고 비석을 세워 선지자들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처럼 선전하

지만(마 23:29,30) 그것은 자신들의 악함을 은폐하기 위한 위선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

다. 이들은 죽은 선지자를 기념하면서 살아있는 선지자를 죽이는 모순된 자들이며

(9:9;마 14:3-12), 앞으로 그들은 지금까지 하나님이 보내신 모든 선지자를 합한 것

보다도 더 위대한 한 선지자를 죽일 것이다(23:18,21,23).

=====11:48

너희는 쌓으니 – 47절과 마 23:29에서처럼 무덤을 장식한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으

나 그 보다는 역설적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여진다. 그 의미는 (1)”너희

조상들은 선지자를 죽이고 너희는 그들의 죽음을 확인한다. 즉 조상들의 악행을 완성

한다”(Manson, Schweizer). (2)”너희는 선지자들을 죽이고 그 전하는 말씀을 거부한

너희 조상들 보다 결코 나을 것이 없다. 너희들은 죽은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지만

여전히 살아있는 선지자들의 이야기는 듣지 않는다(O.Michel, Schulz). 결국 여기서도

계속 지적되는 것은 외적인 경건과 대조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거역이다.

=====11:49

하나님의 지혜 – 이 문구에 대한 용례는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으며 이 문구에 대

한 학자들의 해석도 각양 각색이다. 학자들의 제 해석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

“내가 선지자와 사도들을…핍박하리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 유대 묵시문학서 중 하나

의 이름이라고 본다(Bultmann). 그러나 이런 제목의 책은 발견된 적은 없다. (2)하나

님의 ‘지혜'(God in his wisdon. NIV)는 예수 자신을 표현한 것이라고 본다(Tatian,

Geldenhuys). 바울이 예수를 하나님의 지혜(wisdon from God, NIV)라고 말한 적은 있

으나(고전 1:30), 예수께서 자신을 그렇게 표현한 경우는 없다. (3)구약을 가리킨다고

이해한다(Godet). (4)예수께서 과거에 하셨던 말씀들로 본다(Meyer). (5)예수의 지혜

속에 있는 하나님 즉 그의 예지와 신적 섭리 안에 있는 하나님을 의미한다고 본다

(Lenski). (6)’하나님이 그의 지혜로’의 의미로 본다(Creed, Manson, Danker). (7)구

약과 유대교에서 지혜를 인격화하는 것과 관련하여 “신적 지혜”로 이해한다

(U.Wilckens, Schulz). 지혜가 인격화되는 예를 보면 잠 1:20-33에서는 인간에게 말을

하며, 7:35에서는 그 자녀들에 관해 언급한다. 이러한 제 견해들 가운데 (6)과 (7)의

견해가 비교적 타당하다고 보여진다.

=====11:50

모든 선지자의 피 – 앞서간 세대들이 저지른 과오는 후대 사람들이 교훈으로 삼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그것은 하나의 기회이고 은총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

려 주어진 기회와 은총을 저버릴 때에는 전(前) 세대들로부터 누적된 심판을 받게된

다. 바로 예수 세대의 유대인들이 이런 상황을 자초하고 있었다(47-48). 전 세대들의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악을 더하는 세대들에게 가해질 형벌의 중함과 엄격함

에 대해서는 성경에도 여러 차례 기록이 되어 있다(잠 29:1;렘 7:16;겔 14:14). 한편

본문의 ‘모든 선지자’에 대해서 마태는 ‘의인'(* , 디카이온)으로 표현

하고 있는데 이는 ‘아벧’을 언급함에 있어서 ‘선지자’라는 표현이 적합하지 않았을 것

이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있다(Marshall). 그러나 본문에서도 ‘선지자’라는 칭호에 초

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운 종들의 죽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므로 그

의미는 동일하다.

=====11:51

아벧의 피…사가랴의 피 – 이것은 유대인들의 성경 분류법상 처음 책인 창세기로

부터 마지막 책인 역대기하에 이르기 까지의 의로운 첫번째 죽음과(창 4:8) 마지막 죽

음(대하 24:20-22)을 표현한 것이다. 아벧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림으로

‘의로운 자’로 칭함을 받았으나 그의 형 가인에게 죽임을 당했고 사가랴는 백성들의

우상 숭배를 비판하다 죽임을 당한 의인이었다. 한편 마태는 사가랴가 바라갸의 아들

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마 23:35), 이는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사가랴(스가랴)로

(대하 24:20) 기록하고 잇는 본문과 차이를 보인다. 이 차이에 대해 마샬(Marshall)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마태는 여호야다의 아들과 예언서 스가랴의 기록자인 ‘바라갸’

의 아들 스가랴를 혼동하고 있거나 아니면 마태가 기록하고 있는 바라갸의 아들 스가

랴도 동일하게 살해당했다는 전승이 있거나 했을 것이다. 다른 한편 여기서 언급되는

스가랴는 A.D.67년 헤롯당에 의해 성전에서 죽임을 당한 바라이스의 아들 스가랴로 보

는 견해도 있는데 이럴 경우 선지자의 죽음은 예루살렘 멸망 직전까지의 전(全) 유대

역사 속에서 계속되는 셈이며 예루살렘의 멸망도 피의 대가로 지불된 하나님의 심판으

로 이해될 수 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담당하리라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는 매우 강한 결

의의 표현으로 그 속에는 예수의 신적인 권위가 내포되어 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A.D. 70년경 예루살렘이 처참하게 파멸됨으로써 과연 그 세대는 피의 대가를 담당하였

다.

=====11:52

지식의 열쇠 – 선지자들을 죽이는 것은 살인 행위 자체로도 악한 것이지만 더 악한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는 것을 차단시켜 버리는 행위임을 밝혀지고 있다.

사실상 율법사(律法士)들은 하나님과 성경에 대한 지식을 독점하고 있어서 마치 천국

문의 열쇠를 독점하고 있는 것과 같았으며 그들은 그 열쇠를 가지고 백성들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율법에서

형식만을 남겨둔 채 정신을 사장시켜 버리는 행위나 인간적인 전통에 맹종하여 결과적

으로 사람들에게 견디기 어려운 집을 부과하는 그들의 행위는 말 그대로 진리의 문,

천국의 문을 잠가 버리고 자신을 물론 다른 사람들조차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행위였

다. 이런 행위는 평토장한 무덤과 같이 다른 사람들이 부지 중에 부정을 범하게 만드

는 행위(44절) 이상의 것으로 저주를 받아 마땅하다.

=====11:53

거기서 – ‘거기’란 예수를 초청한 바리새인의 집을 가리킨다. 예수께서는 바리새인

과 율법사들의 위선과 몽매함을 준엄하게 비판하신 후에 그 집에서 나오고 있다. 식사

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그런 상황에서라면 식사가 제대로 되었을 리가 없다.

맹렬히 달라붙어…힐문하고 – ‘맹렬히'(* , 데이노스)는 ‘두렵게’,

‘무섭게’의 의미로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이 얼마나 결한 감정의 상태로 까지 흥분되어

있는가를 말해준다. ‘달라붙어'(* , 에네케인)는 ‘몹시 분노하다’ ‘누구

에게 분노를 품다’의 의미이다. 이 역시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이 예수의 비판을 겸허하

게 받아들여 회개하기는 커녕 도리어, 자기들의 잘못을 비판(批判)하는 선지자들을 죽

인 조상들처럼 예수를 해치려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11:54

잡고자 하여…지키더라 – 이 표현들은 사냥에서 사용되는 것들로 적대자들의 증오

의 정도가 얼마나 심하며 집요한 것인가를 말해준다. ‘잡고자 하여'(*

, 데류사이)는 ‘쫓다’, ‘사냥에서 잡다’의 의미를 가지며, ‘지키더라'(*

, 에네드류온테스)는 ‘-안에’를 뜻하는 ‘엔'(* )과 ‘자리’를 뜻하는

‘헤드라'(* )의 합성어로 사냥감을 포획(捕獲)하기 위해서 매복해 있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저들은 지금까지 행한(39-52절) 예수의 비판에 대해 아무런 반론을 제기

하지 못했다. 그것은 예수의 비판이 정당했기 대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를 공격할

허점을 찾기 위해 정당하지 못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명분도 없는 일을 위해 이성

을 잃고 광분하는 모습은 종교 지도자들로서의 품위를 완전히 상실한 모습이며 짐승이

나 잡아먹고 사는 추한 모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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