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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키아 작품 속엔 왜 왕관이 많을까?
바스키아 작품 속엔 왜 왕관이 많을까?


거리에 일생을 담다, 장 미쉘 바스키아 – 프럼에이 AC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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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거리에 일생을 담다, 장 미쉘 바스키아 – 프럼에이 ACTICLES Updating 그래피티(Graffiti)는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벽에 낙서처럼 그린 그림이다. 긁다, 긁어서 새기다라는 뜻을 가진 이탈리아어 Graffito가 어원이다. 그래피티는 고대 동굴 벽화나 이집트의 유적까지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지만, 거리의 예술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다. 미국 추상표현주의 거장인 사이 톰블리(Cy Twombly, 1928~2011)는 휘갈겨 쓴 낙서처럼 보이는 캘리그래픽적 양식을 선보였고, 잭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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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일생을 담다, 장 미쉘 바스키아 - 프럼에이 AC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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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셸 바스키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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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편집]

미디어[편집]

각주[편집]

장미셸 바스키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장미셸 바스키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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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미셸 바스키아 Jean-Michel Basquiat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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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미셸 바스키아 Jean-Michel Basquiat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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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닷컴, No 1 그림쇼핑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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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닷컴, No 1 그림쇼핑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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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미쉘 바스키아, 제임스 딘이거나 피카소이거나 | 롯데호텔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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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아트] 1980년대 예술계를 뒤흔든 진짜 힙스터 <장 미쉘 바스키아 · 거리, 영웅, 예술> : 교육 : 사회 : 뉴스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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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아트] 1980년대 예술계를 뒤흔든 진짜 힙스터 <장 미쉘 바스키아 · 거리, 영웅, 예술> : 교육 : 사회 : 뉴스 : 한겨레” style=”width:100%”><figcaption>[모두의 아트] 1980년대 예술계를 뒤흔든 진짜 힙스터 <장 미쉘 바스키아 · 거리, 영웅, 예술> : 교육 : 사회 : 뉴스 : 한겨레</figcaption></fig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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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아티스트 장 미쉘 바스키아의 에너지와 열정, 섬세함과 고독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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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천재 아티스트 장 미쉘 바스키아의 에너지와 열정, 섬세함과 고독까지 Updating 거리의 예술가, 반항기 가득한 천재 아티스트 장 미쉘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 1960-1988). 바스키아만큼 천재성으로 똘똘 뭉친 아티스트가 또 있을까. 한 번도 정식으로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어떤 아티스트보다 재능이 있었고 뛰어났던 장 미쉘 바스키아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대규모 회고전 장 미쉘 바스키아 거리, 영웅, 예술이 열린다.장 미쉘 바스키아Photo ⓒDmitri Kasterine. All Rights Reserved. Artwork ⓒ Estate of Jean-Michel Basquiat. Licensed by Artestar, New York장 미쉘 바스키아는 자유분방한 붓질로 어린아이의 그림 같은 이미지를 그리며 그 안에서 뛰어난 조형감각과 색채감각을 선보였다. 바스키아하면 반항아 이미지에, 대부분 붓으로 무심하게 그린 듯한 왕관 이미지와 공룡 이미지가 떠올릴 테지만, 그의 작품세계는 훨씬 넓었고 그 의미는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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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아티스트 장 미쉘 바스키아의 에너지와 열정, 섬세함과 고독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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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27세로 압축해 살다간 바스키아 1조원대 작품들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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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예술을 27세로 압축해 살다간 바스키아 1조원대 작품들 | 중앙일보 Updating 미국 화가 장 미셸 바스키아(1960~ 1988)가 남긴 말들이다. 미술품 경매 최고가인 파블로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의 기록 1억794만 달러(2025억원)를 넘어서진 못했지만, 1980년대 이후 작품 중 1억 달러를 넘은 첫 작품이자, 미국 작가 작품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장 미셸 바스키아·거리, 영웅, 예술’ 전이 8일 – 장 미셸 바스키아,미국 화가,바스키아,롯데뮤지엄,바스키아 회고전,거리,영웅,예술,예술가 바스키아,바스키아 전시,세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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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1 이준석

2 중국발

3 민희진

4 시진핑

5 자승 전 총무원장

6 중국

7 서승만

8 한강 사진

9 신천지

10 오늘의  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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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Z4보다 얇다 자랑한 샤오미 폴더폰…액정 펼치자 ‘벌러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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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익 찍으니 희로애락 찍히더라 71세 친구의 특별한 사진

[이은주의 아트&디자인] 이토록 현대적인 분청사기

서울 자문밖 주민들의 별난 야심 세상에 둘도 없는 아트밸리 만들 것

청각 장애인 아티스트 크리스틴 선 킴의 사운드 작품 미국 스미소니언 미술관으로

’70대 청년’이 100세 시대 후배들에게서예가 하석 박원규

모네의 정원을 쓰레기장으로뱅크시의 이 그림이 75억원

공공 화장실도 이렇게 달라진다…’거장’ 안도 다다오의 마법

# 장 미셸 바스키아

# 미국 화가

# 바스키아

# 롯데뮤지엄

# 바스키아 회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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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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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가 바스키아

# 바스키아 전시

# 세이모

아아·따아·아라·따라…커피 타입으로 본 나의 리더십 유형은

2022 올해의 시계를 만나다

위기의 화력발전소 수소・암모니아가 구원투수!

근로기준법 개정 후 사장님들 하소연

침대 회사가 왜 삼겹살 수세미를 팔지

로마를 담은 보석 이야기

예술을 27세로 압축해 살다간 바스키아 1조원대 작품들 | 중앙일보
예술을 27세로 압축해 살다간 바스키아 1조원대 작품들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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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미쉘 바스키아’의 작품 해독하기 – 오픈에디션

Q. 작품보다 작가의 삶을 향한 관심과 영향력이 꾸준히 지속되는 아티스트는?

수년간 예술계와 패션계, 미술 애호가들의 한결같던 ‘앤디워홀’ 이란 대답은 어느새 과거의 것이 되고 바통을 이어 받은 아티스트가 있다. 그 중 몇 가지 사실 만으로도 더 흥미가 유발되는 팩트들.

세상을 떠난지 30년. 20대 후반에 작고했으며 활동한 8년여 기간 중 총 2500여개 작품을 남긴, 최고로 인기 있고 비싼 작가. 바로 장 미쉘 바스키아 jean-michel basquiat 다.

패션아이템과의 협업은 물론 올해 초 천억원대에 원작이 팔리며 사망 후 몸값을 최고로 경신한 그이기에, 그의 작품이 왜 좋은 것인지 구구히 설명하는 일은 다소 인위적으로 느껴진다. 수십 페이지를 훌쩍 넘기는 그에 관한 글과 동영상으로 이루어진 웹페이지, 현학적 미술용어들로 나열된 글들도 영 읽히질 않는다. 그렇기에 나는 바스키아를 향한 분석도 뒤로 하고 내 취향에 잘 맞는지 아닌지도 걷어내고 사심 없이 그의 작품을 살펴보기로 했다. 그러던 와중 상징으로 채워진듯 보이는 그것들. 난해한 암호처럼 보이는 바로 그것들은 과연 무엇일까. 나의 이 단순한 호기심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그의 작품 속 몇 가지 기호와 텍스트에 접근해 보는 실천으로 이어졌다.

1. 왕관

그의 그림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왕관 Crown 모양이다. 특정 아티스트 그리고 흑인들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된 이 왕관 모형은 훗날 왕관만을 그려 넣는 것 외에 점차 본인의 서명 대신 사용했을 정도로 소유권과 권위를 나타내는 ‘도장’ 과 다름 없는 부분이 되었다.

– 주관적으로 바라본 시선에선 야망 ambition 의 상징처럼 다가온다. 존중보다 조금 더 나간 느낌의 야심과 자신감.

2. 사람 이름

바스키아는 특정 아티스트를 향한 존경과 친애를 직접적으로 담았다. 아티스트의 이름을 명시하거나 그 아티스트의 창작물 제목을 적기도 하며, 왕관을 씌워주는 방식으로 표현했다.

위 이미지 상 왼쪽부터 차례로, 색소폰 연주자 찰리파커 Charlie Parker, 권투선수 무하마디 알리 Muhammad Ali, 복싱선수 슈거 레이 로빈슨 sugar ray robinson 가 바로 그 대상이다. (첫번째 이미지 상 ‘Now’s the time’ 은 찰리파커의 곡 제목, PRKR은 찰리파커의 약어이며, 무하마디 알리의 본명이 Cassius Clay다.) 이들과 바스키아의 공통점이자 연결고리가 또 하나 있다. 바로 ‘흑인’ 이라는 것.

– 바스키아의 인터뷰를 살펴보면, ‘나는 흑인 아티스트가 아니다. 그냥 아티스트다.’ 라고 말한게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감이나 동시대 혹은 과거를 살았던 흑인 아티스트에 대한 연대의식과 존경심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3. 알파벳 A, 그리고 해골 형태

그의 그림 속 ‘AAAAA’ 형태로 등장하는 반복적인 이니셜은 뉴욕 브루클린에서 가장 흔히 들리는 앰뷸런스의 사이렌 소리와 바스키아의 첫 번째 흑인 영웅인 야구선수 행크 아론 Hank Aaron의 성 첫 글자의 의미도 포함된다. 해골 형태의 인물과 신체 부위들은 그가 여덟 살 때 교통사고로 입원했을 당시 어머니가 선물한 해부학 교과서 ‘그레이의 해부학 (Gray’s Anatomy)’의 영향을 받은 것.

– 어린시절에 머물러 있는듯한 순수함, 강박적이면서도 내면의 어두운 부분을 강렬히 호소하는 듯한 감정이 느껴진다.

4. 바스키아의 언어들

그의 작품을 ‘낙서’ 처럼 보이게 하는 것은 빼곡히 혹은 헐겁게 적어내려간 단어들이다. 그의 그림 속에 들어가 있는 단어들을 적어봤다.

alchemy, an evil cat, black soap, corpus, cotton, crime, crimée, crown, famous, hotel, king, left paw, liberty, loin, milk, pure, negro, cigar, nothing to be gained here, Olympics, Parker, police, PRKR, sangre, soap, sugar, teeth.

신비한 힘, 사악한 고양이, 검은 비누, 코퍼스, 면, 범죄, 왕관, 유명한, 호텔, 왕, 왼쪽 발, 자유, 둔부, 우유, 순수함, 흑인, 담배, 여기선 얻지 못할 것, 올림픽, 파커, 경찰, 피, 비누, 설탕, 치아.

– 단어들의 나열에서 오는 공통적인 감수성은 그의 유년기와 활동시기의 미국 상황 등을 총체적으로 드러내거나 그의 영혼 어딘가를 빙빙 돌며 그를 ‘놓아주지 않는’ 어떤 것들이다. 그는 어떠한 필터링도 거치지 않은 채 자신을 그대로 캔버스에 담았다.

작품 속 은유와 상징에 조금이라도 다가가기 위해 일차원적으로 해독한 위 내용은 생전 작가의 인터뷰, 각종 문헌과 글을 종합한 후 주관적 감상을 덧붙인 것이다. 이런 특성들을 알아가는동안 나 역시 전보다는 바스키아를 조금 더 좋아하게 되었음을 고백하고 싶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라는 시인의 어구가 때론 그림에도 통한다. 작가가 분방한 태도로 작업한 그림을 해독하고자 노력하는 사이 자연스레 그의 영혼이 감상자의 마음에 스미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소위 말하는 예술의 힘 power라는게 있다면 이런 것일까.

이런식으로 작가의 그림 속 기호들을 ‘해독’을 하는 방법과 과정은 작가에게 다가가는 일종의 노하우다.

물론 바스키아의 그림 속 몇 가지 기호와 문자들의 의미를 안 후에도 여전히 장님 코끼리 말하듯 막연하게 다가올 수 있다. 아니, 이런 해독 없이도 바스키아의 세계관에 흠뻑 매료된 사람들은 이미 많다. 혹자는 일일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특유의 거친 터치감과 저항정신이 느껴지는 무드가 취향저격이라고도 한다. 거기에 바스키아는 살아 생전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의 표현방식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사고 대중의 사랑을 받은 역사로 빛나는 인물이다. 당시 바스키아의 센세이셔널함이 여기에 있다면 오늘날 바스키아가 받는 사랑은 거듭 반복되는 그의 그림에 대한 해독과 접근에서 이유를 찾아볼 수 있겠다.

그냥 스쳐지나갈 수 없게 만드는 것, 한번 더 되돌아보게 만드는 마력. 바스키아가 의도했건 그렇지 않았건 그가 펼쳐놓은 영혼의 모습, 즉 빨갛고 노랗고 네모지고 세모난 것들은 이런식으로도 사랑받고 재해석 된다.

※ 본 게시물은 오픈에디션의 창작물로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장 미쉘 바스키아’ 오픈에디션 모두보기 ⊕

거리에 일생을 담다, 장 미쉘 바스키아

그래피티(Graffiti)는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벽에 낙서처럼 그린 그림이다. 긁다, 긁어서 새기다라는 뜻을 가진 이탈리아어 Graffito 가 어원이다. 그래피티는 고대 동굴 벽화나 이집트의 유적까지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지만, 거리의 예술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다. 미국 추상표현주의 거장인 사이 톰블리(Cy Twombly, 1928~2011)는 휘갈겨 쓴 낙서처럼 보이는 캘리그래픽적 양식을 선보였고,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1912~1956)도 낙서의 표현법에 관심을 보였다. 프랑스의 화가이자 조각가인 장 뒤뷔페(Jean Dubuffet) 또한 아웃사이더 아트로서 낙서 에 주목했다.

이러한 예술가들의 관심과 더불어 현대의 그래피티는 1960년대 말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탄생했다. 당시 필라델피아 지역에는 콘브레드(Cornbread)와 쿨 얼(Cool Earl)이라는 서명을 남긴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활동했고, 뉴욕 브롱크스 지역에서도 많은 흑인 아티스트들이 활동하기 시작했다.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속도감 있게 그려진 문자와 그림들은 유쾌하고 상상력 넘쳤지만, 도시 미관의 입장에서 보면 골칫거리였다.

그래피티가 도시 문제에서 현대미술로 인정받게 된 것은 바로 장 미쉘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 1960~1988)의 공이었다. 바스키아의 그래피티는 기존의 것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그는 자전적 이야기를 시로 쓰거나 다양한 기호를 덧붙여 그래피티를 그린 뒤 SAMOⓒ(세이모) 라는 문구를 남겼다. 당시 뉴욕 예술계에서는 세이모 가 누구인지에 관한 관심이 뜨거워졌고, 바스키아는 등장과 동시에 일약 스타로 떠오르게 된다. 그는 27세로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8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3천여 점의 작품을 남겼고, 2017년 미국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그의 <무제(Untitled)>(1982) 작품이 1억 1천50만 달러(약 1천 2백억 원)에 팔리는 등 미국 작가 작품 중 최고가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바스키아의 생애

장 미쉘 바스키아는 1960년 12월 22일 뉴욕 브루클린에서 아이티 출신의 아버지와 푸에르토리코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영어와 스페인을 구사한 어머니는 바스키아에게 두 언어를 가르치고, 바스키아와 함께 뉴욕의 여러 미술관을 다녔다. 1968년 바스키아는 차 사고로 비장을 심하게 다쳤는데, 입원 당시 어머니는 그에게 해부학의 고전인 『그레이의 해부학(Gray’s Anatomy)』을 선물했고, 바스키아는 책을 통해 인체의 구조에 매료되었다. 바스키아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뼈와 해골, 인체 그림은 이때 해부학책의 영향으로 추측된다.

장 미쉘 바스키아

[Photo : 작가 홈페이지]

바스키아가 7살 되던 해 부모가 이혼하게 되면서 아버지와 충돌이 잦아졌고, 그는 가출을 반복한다. 당시 친구인 알 디아즈(Al Diaz)를 만나 뉴욕 소호 거리를 누비며 곳곳에 스프레이로 흔해 빠진 낡은 것 이라는 뜻의 세이모(SAMO, Same Old Shit)에 저작권 기호를 붙인 SAMOⓒ라는 문구를 남긴다. 세이모라는 문구와 그래피티로 표현된 그들의 철학적 시가 주목을 받으면서 1980년 그룹 전시인 <타임 스퀘어 쇼(Times Square Show)>를 통해 호평을 받고, 바스키아는 1981년 라는 이름으로 첫 개인전을 열게 된다. 이후 PS1, 뉴욕현대미술관(MoMA) 등 다양한 공간에서 전시를 개최했으며, 이외에도 카셀 도큐멘타 7, 휘트니비엔날레 등에 참여하면서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거리, 영웅, 예술

바스키아의 대표작으로는 <기도하는 사람>(1984), <흑인>(1986), <피렌체>(1983), <천국>(1985), <재즈>(1986) 등을 꼽는다. 바스키아의 그림은 미국 뉴욕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의 주요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현재 롯데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장 미쉘 바스키아 – 거리, 영웅, 예술》(~2021. 2. 7.) 전시에서도 그의 원화 150점을 살펴볼 수 있다.

장 미쉘 바스키아, <뉴욕, 뉴욕(New York, New York)>, Acrylic, oil stick, spray paint, silver spray paint, and paper collage on canvas, 128.3×226.1cm, 1981

[Photo : 롯데뮤지엄]

전시작 중 1981년에 그려진 <뉴욕, 뉴욕(New York, New York)>은 바스키아 초기작품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바스키아는 아크릴, 오일 스틱, 스프레이 페인트, 종이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텍스트와 드로잉을 자유롭게 구사한다.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바스키아가 문자를 쓰고 지운 흔적이 보이는데, 그 자체가 작품을 구성한다. 텍스트와 드로잉을 한 화면 안에 배치하는 작업 방식은 미국의 소설가 윌리엄 버로스(William Burroughs, 1914~1997)의 글씨를 쓰고, 지우고, 재배열하는 컷 업(Cut-up) 기법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텍스트와 드로잉의 조합을 통해 뉴욕 풍경을 묘사하고 자신의 내면을 표현했다.

“나는 더 잘 볼 수 있게 하려고 단어들에 선을 그어 지워버린다.”

– 장 미쉘 바스키아

장 미쉘 바스키아, <잡 애널리시스(Job Analysis)>, acrylic and oilstick on canvas, 141.5×187.5cm, 1983

[Photo : 크리스티]

바스키아의 <잡 애널리시스(Job Analysis)>는 만화적 요소가 들어있는 작품이다. 당시 미국 사회는 할리우드 영화가 인기를 끌고 텔레비전이 각 가정에 보급되었으며, 영화와 만화가 매스미디어를 통해 전파된 시기였다. 바스키아는 어린 시절 만화가가 되길 원했다라고 말한 것처럼, 만화를 숭배하며 자신의 작품에 만화적 요소를 다양하게 등장시켰다. <잡 애널리시스>에서는 워너 브라더스의 <루니툰>에 나오는 포키(Porky) 캐릭터를 그렸으며, 이처럼 바스키아는 만화와 대중매체 이미지를 차용하면서 자신의 그림을 문화적 기호로써 표현했다. 그는 또한 이 작품에서 만화 제작사인 UPA 프로덕션 로고를 작품 하단에 배치하고, 작품 곳곳에 만화와 관련된 텍스트를 넣기도 했다.

장 미쉘 바스키아, <무제, 옐로우 타르 앤 페더즈(Untitled, Yellow Tar and Feathers)>,

Acrylic, oil stick, crayon, paper collage, and feathers on joined wood panels, 245.1×229.2cm, 1982

[Photo : 롯데뮤지엄]

<무제, 옐로우 타르 앤 페더즈>는 바스키아가 LA 가고시안 갤러리에서 열린 첫 개인전에서 선보인 그림이다. 이 작품은 기법적 측면과 내용적 측면으로 나눠서 살펴볼 수 있다. 먼저 기법적 측면으로, 바스키아는 이 작품에서 제록스, 콜라주, 아상블라주 등의 기법을 사용한다. 다른 작품에 붙여 재사용하는 제록스 기법은 자신이 창조한 이미지를 무한 반복할 수 있는 방식이자 반복된 도상들을 각인시키는 바스키아만의 독특한 전략이다. 또 이미지들을 오려 붙이는 콜라주, 냉장고, 문짝, 창문틀 등 일상용품이나 폐품을 사용하여 작품을 제작하는 아상블라주 기법은 2차원 평면의 캔버스를 3차원 공간으로 확장한다.

<무제, 옐로우 타르 앤 페더즈>는 내용으로도 흥미로운 작품이다. 바스키아 재단의 이사로 재직 중인 큐레이터 리처드 마샬(Richard Marshall)은 바스키아의 작품 주제를 여덟 가지 범주로 나누는데, 자전적 이야기, 흑인 영웅, 만화책, 해부학, 낙서, 금전적 가치, 인종주의, 죽음이 그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흑인 영웅과 인종주의의 주제가 드러난다. 여러 패널을 이어붙인 이 작품은 크게 상단부와 하단부로 나누어진다. 먼저 작품의 상단부에서는 검은색 왕관을 쓴 젊은 유색 인종 영웅이 등장하고, 정의의 저울을 들고 있는 사람과 천사의 모습도 눈에 띈다. 작품의 하단부에는 붉은색의 강렬한 터치가 눈에 띄는데, 새의 공격을 당한 잔인한 모습을 극대화하여 표현했다. 바스키아는 작품을 통해 인종차별을 당하는 유색인종의 현실을 보여주고자 했다. 결과적으로는 이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진정한 영웅이 된다는 서사를 담고 있다.

장 미쉘 바스키아, <더 필드 넥스트 투 디 아더 로드(The Field Next to the Other Road)>, acrylic, enamel spray paint, oilstick, metallic paint and ink on canvas, 220.9×401.3 cm, 1981

바스키아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히는 <더 필드 넥스트 투 디 아더 로드(The Field Next to the Other Road)>는 소비 자본주의를 비판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뼈가 고스란히 드러난 인간이 소를 끌고 가는 모습을 그렸다. 앙상한 인간과 끌려가는 소가 대비적으로 표현돼 있어 강렬한 인상을 준다. 바스키아는 인간이 동물을 점유하고 독점하는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했다. 지구가 인류세로 접어들며 기후 변화 문제에 대한 위기의식이 높아지는 현재 시점에서 다시금 곱씹어 볼 만한 작품이다.

앤디 워홀과의 만남과 죽음

바스키아의 생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1987)이다. 바스키아는 1982년 처음으로 워홀을 만났고, 그와 예술적 교감을 나누며 다양한 공동 작업을 진행했다. 워홀이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작업을 하면 바스키아가 그 위에 드로잉과 텍스트를 덧입혀 작품을 완성하는 방식이었다. 바스키아가 미술계의 관심을 끌기 위해 워홀과의 공동 작업에 나선 것도 있었겠지만, 미국 회화와 아프리칸-아메리칸 문화유산을 중복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라는 분석도 있다. 미국 회화의 유산에 그의 정통성을 덧입혀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해낸 것이다.

장 미쉘 바스키아·앤디 워홀, <무제, 두 마리의 개(Untitled, Two dogs)>, acrylic and silkscreen ink on canvas, 203.2×269.2 cm, 1984

[Photo : 롯데뮤지엄]

하지만 바스키아에게 예술적 동지이자 아버지와 같은 버팀목이었던 워홀이 수술 후유증으로 사망하자 바스키아는 큰 충격에 휩싸인다. 1987~1988년 사이 그의 작품을 보면 붕대를 두르고 눈을 지워 버린 두상이나, 뼈대와 내장기관이 보이지 않는 인물 이미지들이 등장한다. 그의 후기 작품에는 환멸과 패배의 메시지가 드러나며, 자기 죽음을 예견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결국 그는 마약 남용으로 27세의 짧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바스키아의 삶과 예술

1980년대 서구 미술에서는 기존의 모더니즘에 반발하여 포스트모더니즘 경향과 해체주의, 절충주의, 다원주의 등이 나타났다. 당시 신표현주의나 트랜스 아방가르드로 분류되는 예술가들은 개인적 감정의 표현을 중시하는 뉴 페인팅(New Painting)으로 나아갔다. 뉴 페인팅은 거대한 캔버스에 거친 붓질과 원색의 색채를 사용하고, 폭력, 죽음, 성(性), 꿈, 신화 등의 도상을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등장한 비주류의 흑인 화가 바스키아는 뉴 페인팅의 방식으로 인종주의에 대해 저항하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창조했다.

“나는 작업 중에 예술을 생각하지 않는다. 삶에 관해 생각할 뿐이다.”

– 장 미쉘 바스키아

바스키아의 작품은 자신의 일생을 그대로 담았다는 데 의의가 있다. 그의 작품을 보면 그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누구를 만나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가 드러난다. 사회적 편견과 인종 차별에 저항하는 에너지를 담아 거리 예술을 현대미술로 확장한 바스키아. 비록 그의 생은 짧았지만, 그가 남긴 작품에 대한 여운은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바스키아의 삶은 작품 그 자체가 되었다.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장미셸 바스키아(프랑스어: Jean-Michel Basquiat, 1960년 12월 22일 ~ 1988년 8월 12일)는 미국에서 태어난 작가이자 그라피티 예술가이다. 아버지가 아이티계, 어머니가 푸에르토리코계다. 그는 1970년대 뉴욕에서 그라피티 그룹 SAMO의 일원으로 처음 이름을 날렸다. 이후 사이 톰블리, 장 뒤뷔페 등의 영향을 받은 1980년대 신표현주의와 원초주의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뒀으나, 헤로인 과다복용으로 1988년 8월 27세에 요절했다.

바스키아의 작품은 ‘암시적인 이분법'(부와 가난, 통합과 분리, 내면과 외면 등)에 초점을 맞추었다.[1] 그는 시와 그림의 전유를 통해 이미지와 텍스트, 추상과 형체, 역사적 정보와 현대 비평을 긴밀히 결합시켰다.[2] 또한 바스키아는 작품에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담음으로써 “개인에 대한 진실을 더욱 심오하게”[1] 하면서 사회에 뿌리박힌 권력 구조와 인종차별주의를 공격하고자 하였다. 그의 시는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과 계급 투쟁에 대한 지지를 매우 직접적으로 드러냈다.[2]

생애 [ 편집 ]

장미셸 바스키아는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사남매의 둘째로 태어났다. 밑으로 여동생 리잔(Lisane, 1964년생)와 자닌(Jeanine, 1967년생)이 있었다. 아버지 제라르 바스키아(Gerard Basquiat, 1930 – 2013.7.7)는 아이티 포르토프랭스 출신이었고, 어머니 마틸데 안드라데스(Matilda Andrades, 1934.7.28 – 2008.11.17)는 푸에르토리코계 미국인으로 브루클린 출신이었다.

어머니는 바스키아에게 맨해튼의 미술관에 같이 가고 브루클린의 미술관의 어린이 회원으로 등록시킴으로써 예술에 관한 관심을 불어넣어 주었다. 바스키아는 4살 때 이미 읽고 쓰는 법을 배운 조숙한 아이였고 천부적인 재능의 예술가였다. 그의 선생님이자 예술가였던 호세 마차도(Jose Machado)는 그의 예술적 능력을 알아보았고 어머니는 아들의 예술적 재능을 더욱 격려하였다. 11살 때, 바스키아는 프랑스어, 스페인어, 영어를 유창하게 말하고 읽고 쓸 수 있었다. 1968년 9월, 바스키아가 8살이 되던 해에 길거리에서 놀다가 차에 치어 팔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고, 결국 비장절제술을 받았다. 회복될 동안 어머니는 가져다 준 그레이 해부학 책을 읽었는데, 이 책은 그가 미래에 예술적으로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될 것을 증명하였다. 부모님은 그 해에 이혼하였고 자신과 동생들은 아버지 밑에서 키워졌다. 가족은 브루클린 보럼 힐에서 5년 동안 살았고 1974년 푸에르토리코 산후안으로 이사하였지만 2년 후 다시 뉴욕으로 돌아왔다.

그가 13살이 되던 해 어머니 마틸데는 정신병원에 가게 되었고 이후 그녀는 병원을 전전하며 여생을 보냈다. 15살이 되던 해, 바스키아는 집을 나와 톰프킨스 스퀘어 공원의 벤치에서 잠을 잤고, 한 주 만에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10학년 때, 에드워드 머로 고등학교(Edward R. Murrow High School)에서 중퇴하였다. 고등학교를 중퇴했다는 이유로 아버지 제라르는 아들을 집에서 내쫓았고 바스키아는 브루클린에서 친구와 함께 머물렀다. 그러는 동안 티셔츠와 손수 만든 우표로 자급자족하였는데, 이는 그의 예술적 삶의 시작이었다.

미디어 [ 편집 ]

1996년 그의 생애를 다룬 영화 바스키아가 만들어졌다. 바스키아 역은 제프리 라이트가 연기했다.

각주 [ 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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