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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에 읽는 가족의 시 –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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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금요일에 읽는 가족의 시 – YES24 북이십일,북21,book21,요즘에는 시를 테마에 따라서 묶어 펴내는 경우가 많다. 다른 어떤 테마보다 온가족이 함께 가족에 대한 시를 읽고 가족에 대해 … 한국 대표시인이 선사하는 감동의 시 50편오늘밤 내 가족에게 차려주고 싶은 따뜻한 시 밥상!『금요일에 읽는 가족의 시』는 25년간 문화부에서 문학 이야기를 취재해온 김태훈 기자가 가족을 소재로 한 한국 현대시 50편을 소개하고, 시에 얽힌 뒷이야기를 감상으로 …금요일에 읽는 가족의 시,국립중앙도서관사서추천,김태훈 편저, arte(아르테), 9788950963484, 89509634859788950963484,8950963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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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시 모음 -김용화
딸에게
너는
지상에서 가장 쓸쓸한 사내에게 날아온 천상의
선녀가
하룻밤 잠자리에 떨어뜨리고 간 한 떨기의 꽃
딸 시집보내고
신발장에 벗어놓은 네 조그만 구두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베란다에 적막하게 걸려 있던 이쁜
네 팬티들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하늘에서 하얀 눈 내린다
먼지처럼
허공을 떠돌다
조금씩 내려서 쌓인다
늙은 아내, 빈 둥지를
지키고 앉아
시집간 딸 걱정할 만큼만 눈이 내린다
세월 속에서
눈이 와서 마을이 박속처럼 화안한 날
고향에 돌아와서 밥을 먹는다
80을 바라보는 엄마가 해준 흰 쌀밥 먹는다
90을 코앞에 둔 아버지가
50이 넘은 아들 밥 먹는 모습 지켜보다
귀 밑에 흰 머리 하나를 뽑아 준다
눈꽃이 전설처럼 피어나는 동화 속 마을에서
비 오다가 갠 날
젊은 엄마가 옥양목 앞치마
반듯하게 매고
부엌에서 손님 맞을 준비하고
있을 것 같은,
젊은 아버지가 원추리꽃 꺾어
소 귓등에 꽂아주고
무지개 뜬 산길 넘어
소 앞세우고 돌아올 것 같은,
가족사진
계급장도 없는 훈병 모자 눌러쓴
삼십 중반 아버지가
세 살짜리 고추를 안고
박꽃처럼 환하다
할머니랑 엄마랑
광시, 청양, 부여 백마강을 배 타고 건너 꼬박
이틀 만에 당도한 논산훈련소
스물다섯 분꽃 같은 엄마는
내외를 하는지
다소곳이 고갤 숙인 채
새촘한 표정,
무슨 생각 저리도 골똘한 것일까
사진 밖에 서 있는
할머니 환한 얼굴도, 내 눈에는 환하다
그 여름
홍수로 깊어진 대흥내를 건너
한낮의 뙤약볕 속을
열무단 이고 늙은 노새처럼 걸어오시는
할머니, 낮은 어깨엔
여치 풀무치 기름챙이도 함께 붙어왔다
소낙비에 전 베적삼에선 눅눅한 쉰내가 피어났다
보릿짚 후둑이며 아궁이 불 지피면
부뚜막에 쪼그리고 앉아 할머니
수제비를 뜨셨다
해꽃은 꺾여 시드는데
쇠품팔러 간 엄마는 돌아오지 않고
아버지의 짐 자전거
한평생 버겁던 짐 다 내려놓고
타이어도 튜브도
안장도 짐받이도 떨어져 나간 채
고향 집 앵매기 집 짓는 헛간
구석에 처박혀
예산장- 홍성장- 삽다리장-
새벽안개 가르며 씽씽
내달리던
푸른 시절, 푸른 날들 추억하다가
장꽝에
감꽃 구르는 소리…
가슴 허무는
아버지의 짐 자전거
모과
못생긴 모과 하나
방안 가득
눈물 같은 향을 내더니
썩어가며 더욱 깊어지누나
암꽃처럼 피어나는
반점
그대,
누워서도
성한 우리를 걱정하시더니
아름다운 일요일
일요일이면 아내는 교회로 가고 난
늦잠을 잔다
잠을 깨도 그냥 누워서 생각을 한다
하늘나라에서 천사 옷 걸친 아내는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할까
지금쯤 믿음 없는 남편 위해
성경책 위에 얼굴을 묻고 있을 시간,
싸늘하게 식은 찬밥 앞에서
난 또 한 덩이 찬밥이 된다
아름다운 일요일, 그래 난 참 행복해-
아내
눈길만 마주치고 살자며
첫날밤
잠도 안 자고
창밖에 별만 쳐다보던 그 여자
아들 군대 보내 놓고
오늘은
밥도 안 하며
먼 산만 바라보는 저 여자
꼬마시인
엄마- 달님이가 자꾸 나를 쳐다봐
괜찮아, 우리 애기 예뻐서 그래
엄마- 달님이가 나를 따라와
괜찮아, 우리 애기 함께 놀자고 그래
엄마, 엄마- 달님이 물에 빠지려 해
울지 마, 달님이는 옷이 젖지 않아
세 살짜리 꼬마가 달밤
엄마 등에 업혀 소래포구를 건너간다
귀가
인제는 가리, 은하 강 푸른 물결
하얀 쪽배 타고
청보리밭 사잇길 우마차 타고
필릴리- 필릴리-
하루 반나절 들어가면
우물가에 흰 닭이 울고
저녁연기 하늘로 긴 머리 풀어 올리는
탱자꽃 달밤에 화안한 그 집,
흰 무명 저고리 어머니가
아랫목에 더운밥 묻어 놓고
밤마다 젖은 눈 깜박이는 곳으로
마중
비가 오는 날마다
할머니는
삼거리까지 마중을 나오셨다
세시차가 있고
다음은
다섯 시 반이었다
헌 우산은 쓰고
새 우산은 접고
세시차에 안 오면 다음 차가 올 때까지
비에 젖어,
해오라기처럼 서 계시었다
아버지는 힘이 세다
아버지는 힘이 세다
세상 누구보다도 힘이 세다
손수레에 연탄재를 가득 싣고
가파른 언덕길도 쉬지 않고 오른다
꼭두새벽 어둠을 딛고 일어나
국방색 작업복에 노란 조끼를 입고
통장 아저씨를 만나도
반장 아줌마를 만나도
허리 굽혀 먼저 인사를 하고
이 세상 구석구석
못쓰게 된 물건들을 주워 모아
세상 밖으로 끌어다 버린다
나를 키워
힘센 사람 만들고 싶은 아버지,
아버지가 끌고 가는 높다란 산 위에
아침마다 붉은 해가 솟아오른다
가장의 밤
잠든 아내 이불 끌어다
미운 발
덮어주는 일
딸 자는 방 살짝 들어가
지폐 한 장
찔러주는 일
아들놈 우산 갖다주고
책가방
들어주는 일
창밖 밤비 소리 들으며
쓴술
삼키는 일
그 시절
종점에서도 한참을 걸어야 닿는 변두리의 변두리
내 새끼들 잠들어 있는 연탄 냄새 다정한 집에는
방안 가득 하얀 기저귀가 마르고
젖살 포동한 갓난애기 배냇짓하며 나비잠을 잤다
날개옷 잃어버린 가련한 천사는
전설 속에 갇혀
날아가지 못하고
밤 되면 수지웁게 하늘 같은 지아비를 맞아들였다
아버지
지난겨울 온 세상이 하얀 눈 속에 묻힌 날,
아버지는 호올로 세상을 떠났다
대학병원, 요양병원 수차례 전전하다
끝끝내 고향 집에 내려가 보지 못하고
요양병원 집중치료실에서
거인처럼, 차력사처럼, 온몸에 바늘을 꼽고
고무호스 주렁주렁 늘어뜨린 채
이승의 마지막 끈을 놓아 버렸다
생전 아버지는 개미 한 마리 밟지 않으려고
고갤 숙이고 땅만 보고 다녔다
짐 자전거를 많이 끌어
왼쪽 어깨는 주저앉고 오른쪽은 솟아올랐다
영하 18도 살뚱맞은 추위 속에
하늘은 연사흘째 사카린 같은 눈을 뿌렸다
적막하디적막한 새벽 한 시-
비보를 받고 달려간 요양병원 집중치료실
하얀 칸막이가 쳐진 시트 위에 반듯이 누워
아버지는 단 한마디 말이 없고
고향에서 올라온 홍시 하나, 머리맡에
빨간 조등을 밝히고
아버지의 마지막 밤을 꺼질 듯 비춰주고 있었다
장구미 고모
아버지 상을 치르고, 친정 조카가 보고 싶다는
고모를 뵈러
신양면 황계리 노인 요양원을 찾았다
-아버지가 저 전달에……
말문을 열려는 순간 고모는 빨간 목젖을 떨며
어린아이처럼 목을 놓았다
89살 먹은 동생이 91살 오빠
비보를 접하자
오빠를 부르며 부르며 송아지처럼 머리를 부딪쳐 울었다
할머니가 다섯 살 난 딸을
삽다리 제재소 집 애 보는 아이로
주고 온 날 그 밤에도
모녀는 다른 지붕 아래서 저렇게 울었을 것이다
밤 되면 호랑이가 찾아와 무섭다며
정신 줄 놓으시는 고모
지금도,
눈 쌓인 봉수산 쳐다보며 그 밤 생각하시는 걸까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날 밤
밤새
큰손주 이름 부르셨단다
할머니-
지후가 오는 날
지후가 온다, 강남제비 앞장세우고
지후가 돌아온다
꼭두서니 빛으로 동터오는 새벽
창밖 미루나무 참새 떼 모여 앉아
햇살을 굴리며 쪼으며
조잘거린다, 재잘거린다, 쪼잘거린다
백일도 갓 지난 것이
살에서 오이풀 내 나는 어린것이
먼 경상도 영천 외가에 가 있다
일 년 만에 돌아오는 날이다
꼬까옷도 사놓고 방 청소도 해 놓고
얼굴에 뭔가 찍어 발라도 보며
어린 손님 맞이할 준비로
집안이 온통 어린아이처럼 들떠 있다
희고 자그만 깡충거미 한 마리
천정에서 사뿐-
탁자 위 나비란 잎새에 내려앉는다
혜준이
내 딸의 젖을 물고 곤하게 잠든 아가야
녹두 알 같은 아가야
지구에서 먼먼 안드로메다 성운 어디쯤
세 필 조랑말이 이끄는
작은 별자리에서 떨어져 나온 아가야
메밀대처럼 여린 늬 에밀 지켜주려고
길동무 하나 없이
멀고 험한 길 찾아오느라 참 고생도 많이 했구나
그렇다고, 그렇다고,
잠에서 막 깨어나 눈물 글썽이며
아직 세상에 나오지 못한 천상의 아가들
메시지라도 전하려는 듯
통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의 말
옹알거리며
진땀을 빼고 있는
요놈-
밤낮 즤 에밀 파먹어 통통 살이 올랐구나
고비사막으로 떠난 낙타
할머니 등에는 항상 혹이 붙어 있었다
고비처럼 굽은 할머니,
코를 벌룽거리며 날숨을 내쉴 때마다
고비사막 바람 소리가 났다
터벅터벅 마실 갔다 돌아올 때나
눈꺼풀 껌벅이며 꾸벅잠 잘 때도 악착같이
달라붙어 있던 혹,
혹이 점점 자라 버거워질 때가 되면
절로 꼭지가 떨어져 나가고
예쁘고 자그만 새 혹이 알살을 드러낸 채
자라나고 있었다
우리 칠 남매는 낙타 등에서 떨어져 나왔다
마지막 혹이 떨어져 나오고
늙은 낙타는
시름시름 앓다 다리를 끄을며
고비사막으로 떠났다
은하의 별들이 폭우처럼 쏟아져 내리는 밤이었다
할머니와 엄마 사이에서
수리봉 허릿길을 숨차게 넘어서야
상리 고모집이었다
할머니 손잡고 할딱대며
고갯마루 오르다 보면
마음은 하릴없이 엄마 쪽에 가 있었다
할머니를 따라갈지
엄마한테 돌아갈지
마음을 저울질하다 보면 어느새
고모집이었다
잠자리에 누워서도
할머니 힘없는 젖꼭지만 만지작거리다
밤을 환히 밝혔다
날이 밝자 아침밥도 안 먹고
할머니를 졸라댔다
내 유년은 그랬다, 기울기가 같았다
<가정의 달 특집 시 모음>
<가정의 달 특집 시 모음> 이기철의 ‘네 켤레의 신발’ 외
+ 네 켤레의 신발
오늘 저 나직한 지붕 아래서
코와 눈매가 닮은 식구들이 모여 앉아 저녁을 먹는 시간은
얼마나 따뜻한가
늘 만져서 반짝이는 찻잔, 잘 닦은 마룻바닥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소리 내는 창문 안에서
이제 스무 해를 함께 산 부부가 식탁에 앉아
안나 카레리나를 이야기하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누가 긴 휘파람으로 불어왔는지, 커튼 안까지 달려온 별빛으로
이마까지 덮은 아들의 머리카락 수를 헬 수 있는
밤은 얼마나 아늑한가
시금치와 배추 반 단의 저녁 식사에 초대하고 싶은 사람의 전화번호를
마음으로 외는 시간이란 얼마나 넉넉한가
흙이 묻어도 정겨운, 함께 놓이면 그것이 곧 가족이고 식구인
네 켤레의 신발
(이기철·시인, 1943-)
+ 가정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文數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十九文半.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六文三의 코가 납짝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壁을 짜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十九文半.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十九文半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박목월·시인, 1916-1978)
+ 아버지의 마음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아버지의 동포(同胞)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아버지는 비록 영웅(英雄)이 될 수도 있지만…….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술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는다.
어린것들이 간직한 그 깨끗한 피로…….
(김현승·시인, 1913-1975)
+ 어머니는 가정의 정원사
늘 자식 걱정에
수심이 깊으시던 어머니 얼굴
생활에 여유가 생겨
삶의 고통이 잦아지기 시작했을 때
어머니의 얼굴과 손등엔 주름살이
허리도 구부정하게 되셨습니다
살기 힘든 세상일지라도
아들아! 잘 이겨내라
너만 믿는다
나의 아들아! 하시는 어머니
때로는 아무 말 하시지 않아도
어머니의 마음을 알 것만 같습니다
어머니의 아들이 시인이 되어
어머니의 사랑을 노래할 수 있으니
행복합니다
어머니는 자식을 키우시고 가꾸어 주시는
가정의 정원사이십니다
어머니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시기 바랍니다
(용혜원·목사 시인, 1952-)
+ 햇빛 좋은 날
엄마가 널어놓은
베란다 건조대 위의
촘촘한 빨래들.
아빠 와이셔츠 어깨에
내 런닝 팔이 슬며시 기대어 있고
형 티셔츠에 내 한쪽 양말이
마치 형 배 위에 올려놓고 자는
내 무엄한 발처럼 느긋이 얹혀있다.
엄마 반바지에 내가 묻혀놓은
파란 잉크펜 자국.
건조대 위에서
보송보송 마르는
촘촘한 빨래들.
빨래 마르는 것만 봐도 안다.
햇빛 좋은 날의
우리 가족.
(권영상·아동문학가, 1953-)
+ 식구
매일 함께 하는 식구들 얼굴에서
삼시 세끼 대하는 밥상머리에 둘러앉아
때마다 비슷한 변변치 않은 반찬에서
새로이 찾아내는 맛이 있다.
간장에 절인 깻잎 젓가락으로 잡는데
두 장이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아
다시금 놓자니 눈치가 보이고
한번에 먹자니 입 속이 먼저 짜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데
나머지 한 장을 떼어내어 주려고
젓가락 몇 쌍이 한꺼번에 달려든다.
이런 게 식구이겠거니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내 식구들의 얼굴이겠거니
(유병록·시인, 1982-)
+ 집
비바람 막아주는 지붕,
지붕을 받치고 있는 네 벽,
네 벽을 잡아주는 땅
그렇게 모여서 집이 됩니다.
따로 떨어지지 않고,
서로 마주보고 감싸 안아
한 집이 됩니다.
아늑한 집이 됩니다.
(강지인·아동문학가)
+ 둥근 우리 집
내 생일날
피자 한 판 시켰다.
열어보고
또 열어봐도
일하러 간
우리 아버지
아직 안 오신다.
형의 배가 꼬로록
나는 침이 꼴깍
그래도 보기만 하고 참는다.
다섯 조각
모두 모여야
피자 한 판
아버지 오셔야
다섯 식구
피자같이 둥글게 되지.
(안영선·아동문학가)
+ 가정·1
핏줄 하나로도
별이 되고
달이 되며
해가 되는
정 하나로도
울타리 되고
세계 되며
우주 되는
온기와
사랑과
행복이 새어나오는
신비한 궁전
(김지호·시인)
+ 가정
성년이 되면 마련하는 가정
남, 여 하나되어
일구는 사랑의 쉼터
가정 작은 단위 국가
엄연한 질서와 법이 있어
법 따라 사랑, 존경, 함께하는 쉼터
내일 위한 에너지 충전소
함께 손을 맞잡아
새롭게 만들어 가는 나눔의 안식처
배려하는 마음
효하고 우애하는 마음
훌륭한 가정에서 나오고
훌륭한 가정은
끝없는 노력과 위함과
무한한 인내로써 이룩되는 것
훌륭한 가정에
아름다운 새싹이 터고
무한한 사랑 웃음 피어나나니.
(박태강·시인, 1941-)
+ 가족
우리집 가족이라곤
1989년 나와 아내와
장모님과 조카딸 목영진 뿐입니다.
나는 나대로 원고료(原稿料)를 벌고
아내는 찻집 ‘귀천(歸天)’을 경영하고
조카딸 영진이는 한복제작으로
돈을 벌고
장모님은 나이 팔십인데도
정정하시고…
하느님이시여!
우리 가족에게 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천상병·시인, 1930-1993)
+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부엌에서 밥이 잦고 찌개가 끓는 동안
헐렁한 옷을 입고
아이들과 뒹굴며 장난을 치자
나는 벌 서듯 너무 밖으로만 돌았다
어떤 날은 일찍 돌아가는 게
세상에 지는 것 같아서
길에서 어두워지기를 기다렸고
또 어떤 날은 상처를 감추거나
눈물자국을 안 보이려고
온몸에 어둠을 바르고 돌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일찍 돌아가자
골목길 감나무에게 수고한다고 아는 체를 하고
언제나 바쁜 슈퍼집 아저씨에게도
이사 온 사람처럼 인사를 하자
오늘은 일찍 돌아가서
아내가 부엌에서 소금으로 간을 맞추듯
어둠이 세상 골고루 스며들면
불을 있는 대로 켜놓고
숟가락을 부딪치며 저녁을 먹자
(이상국·시인, 1946-)
+ 죽겠다 가족
마을 정자를 찾은 팔순 노모
지팡이에 끌려온 엉덩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히며 죽겠다 죽겠다
오십 후반 아들
애인 기다리듯 문짝에 두 눈 박아 놓고
가게세도 못 건진다며 죽겠다 죽겠다
삼십 초반 손자
벼룩시장 이 잡듯 뒤적이다
오라는 곳 없어 죽겠다 죽겠다
열살 먹은 증손자
책상에 영어몰입교육 책 펴놓고
뻣뻣한 혓바닥에 휘말려
죽겠다 죽겠다
데엥 데엥
소불알시계 열 두 시를 알리면
앞 다투어
배고파 죽겠다 죽겠다
점심 후 짬 내어
아들은 팔순 노모 팔다리 주무르고
손자는 아버지 등 두드려 준다
증손자 손자 어깨에 올라가
목청 큰 기마병 된다
이구동성 쏟아내는 말
좋아 죽겠다 죽겠다
(전정아·시인, 1973-)
+ 행복의 바다로
이 드넓은 세상에서
‘가족’이라는 이름의 한 배를 타고
세월의 파도를 함께 넘는
우리 어깨동무 네 사람
창숙, 진교, 민교
그리고 나.
이따금 출렁이는 파도에
우리의 배가 기우뚱하더라도
우리의 작은 힘과 용기와 소망
하나로 모아
저 망망한 행복의 바다로
힘차게 노 저어 가요.
(정연복·시인, 1957-)
+ 이것 하나만으로도
나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나는 우리 가족을 언제라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하나가 나에게 얼마나 큰 기쁨인 줄
이제야 알았습니다.
나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나는 우리 가족과 언제라도 전화를 할 수 있습니다.
이 하나가 나에게 얼마나 큰 즐거움인 줄
이제야 알았습니다.
나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내가 우리 가족 중 한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면
곧 답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하나가 나에게 얼마나 큰 위로인 줄
이제야 알았습니다.
나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나는 우리 가족에게 언제라도 선물을 보낼 수
있습니다.
이 하나만으로도 내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 줄
이제야 알았습니다.
나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나는 우리 가족과 언제라도 같이 식사를 할 수
있습니다.
이 하나만으로도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 줄
이제야 알았습니다.
나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습니다.
나는 우리 가족에게 나의 아픔을 낱낱이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이 하나만으로도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 줄
이제야 알았습니다.
(정용철·시인)
+ 가정을 위한 기도
주님, 보소서
여기에 우리의 온 가족이 모여 있습니다
우리가 거처하는 이 장소를
우리를 일치시키는 사랑을
그리고 내일을 기다릴 수 있는 희망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건강과 음식과
그리고 우리의 생활을 즐겁게 만드는 맑은 하늘과
우리의 참된 벗들을 주신 주님
이 모든 것에 대해서 감사 드립니다
우리의 조그만 가정에
평화가 넘치게 하옵소서
마음 한 구석에 도사리고 있는
악한 생각을 말끔히 씻어주옵소서
모든 것에 인내할 수 있는
은총과 용기를 주옵소서
우리의 마음에 상처를 준 이들을 용서하고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주옵소서
우리 자신을 잊고 다른 이의 소홀함을
기꺼이 감내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우리에게 용기와 유쾌함과
조용한 마음을 주옵소서
하고자 하는
우리의 순수한 노력을 보시고
축복하여 주옵소서
앞으로 다가올 것들에
대항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시어
위험 중에서 용감하게
시련 중에서 항구하게
분노와 모든 변화 안에서 온화하게
그리고 죽음의 문에 이르러서도
서로 사랑하고 성실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금요일에 읽는 가족의 시
제게 금요일은 바빴던 한 주를 정리하고 휴일에 대한 기대로 마음 부자가 되는 날입니다. 모두의 마음이 넉넉해지는 이 날, 저녁 식탁에 둘러앉은 가족에게 일주 일 내내 바쁘다는 핑계로 전하지 못했던 사랑과 감사와 위로의 마음을 담은 시 한 편씩 읽어주면 어떨까요?
신달자 시인의 시 「여보! 비가 와요」에는 “안고 비비고 입술 대고 싶은 시시하고 말도 아닌 그 말들”이란 표현이 나옵니다. ‘가족은 어떤 사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이 시행으로 답을 대신하고 싶습니다. 일상의 시시한 말들로 삶의 이야기를 알콩달콩 만드는 사이가 바로 가족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가족은 평생 함께 살며 기쁜 일과 슬픈 일을 나눕니다. 그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수단이 바로 말이지요. 그것도 매일같이 반복하기 때문에 시시하고 말도 아닌 그 말들로 시간의 노를 저어 우리는 생의 바다를 건너갑니다. — p.5~6
아버지는 아들이 잠드는 것을 본 뒤 잠들 생각입니다. 그런데 아들도 같은 생각으로 버팁니다. 아버지가 자냐고 묻지만 대답을 할 수 없습니다. 자는 척 해야 아버지가 주무실 테니까요. 이 시의 재미가 이 아이러니에서 나옵니다. 아직 잠들지 않았으니 “아니요.”라고 해야 맞는데 “네.”라고 했습니다. “저도 잘 거니까 아버지도 빨리 주무세요.”라는 긴 문장을 한 마디로 줄여 그냥 “네.” 라고 합니다. “네.”라는 대답에는 아버지에 대한 배려가 담 겨 있습니다.
흔히 동시는 아이들이 읽는 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떤 동시는 어른이 되고 자식을 두어야 비로소 온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네.”라는 대답 속에 깃든 부자간의 사랑을 어찌 아이가 알 수 있겠습니까.
사랑을 경험하는 것과 그 사랑을 깨닫는 것 사이에 긴 시차가 존재하는 게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인 것 같습니다. — p.22
사랑은 이해를 전제로 하지 않습니다. 철학자 김형석 전 연세대 교수는 “어머니는 내가 하는 철학을 이해하지 못하고 나는 어머니가 말씀하시는 장바구니물가를 모른다.”고 어느 책에 썼습니다. 그래도 모자가 서로 사랑하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해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므로 인정하고 받아들입니다. — p.105
제 몸에도 어머니의 사랑이 만든 작은 상처가 있습니다. 제가 젖먹이였을 때, 어머니는 아들을 품에 안고 어루만지다가 실수로 이마와 머리카락 사이를 살짝 긁었답니다. 손톱 끝에 피부가 아주 조금 벗겨졌는데 그게 아물면서 흉터로 남았습니다.
머리카락 바로 아래에 있던 흉터는 조금씩 아래로 내려가 지금은 눈썹 위에 있습니다. 어머니는 가끔 이 흉터를 가리키시며 “이 상처는 왜 없어지지 않는지 모르겠다.”라고 하십니다.
마마 자국처럼 파인 그 상처를 제 어머니도 미안해하신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흉터가 지워지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그것은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에 어머니와 나 사이에 있었던 작은 사건을 새긴 인연의 불주사이기 때문입니다. — p.111
저도 어떤 괴로움이 우리 가족에게 닥친다면 그것이 혼자서 짊어지는 등짐이 아니라 함께 맞는 비와 같기를 바랍니다. 그 비를 맞으며 어려움을 나눠서 지고 희망도 함께 꿈꾸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천수호 시인은 말을 부려 시 읽는 맛을 살리는 재능을 타고났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의 시는 소리 내어 읽을 때 제맛이 납니다. 이 시에서는 ‘촉’이 그런 역할을 합니다. 한번 소리 내어 읽어보세요. 산문시인데도 독특한 운율감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요. — p.136
지식은 머리로 기억하지만 정은 마음이 기억합니다. 제 피부는 할머니 등에 업혔을 때의 온기를 일찌감치 잊었지만 그때 제 마음을 데운 할머니의 사랑 육아법은 손주를 정을 나눌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셨습니다. 두 할머니는 제 마음에 마르지 않는 샘을 파셨습니다. 훗날 손주를 보게 되면 그 샘에서 정을 길어 듬뿍 나눠줄 생각입니다. — p.191
신은 어쩌면 그런 경지를 모르고 사는 우리를 측은히 여겨 가족을 만들어주셨나 봅니다. 가족이 있기 때문에 저처럼 속된 사람도 베풀고 희생하는 거룩한 기쁨을 조금은 맛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내 삶에 선물처럼 와준 가족에게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사랑이 가족 밖으로도 넘쳐나 우리 이웃과도 나눌 수 있다면 세상이 조금 더 밝고 아름다워지겠지요. 그런데 그렇게 살기가 참으로 어렵고 용기가 나지 않아 부끄럽습니다. 그저, 내 가족을 위해 남을 짓밟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그러고 보니 가족은 제게 염치와 겸손을 가르치는 스승이기도 하군요. 올해는 더욱 정성스레 섬겨야 하겠습니다. — p.259
시인은 행복하게 살고 싶으면 행복을 연습하라고 권합니다.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행복을 경험해보라는 거지요. 그렇게 행복을 연습해두면 훗날 어려움이 닥쳐도 행복했던 경험이 백신처럼 힘을 발휘합니다. 희망과 용기라는 면역 물질이 분비돼 가족을 지킵니다. 반면 서로 원망하고 비난하고 폭력을 일삼는 가족은 고난이 닥쳤을 때 그냥 뿔뿔이 흩어지고 맙니다. 행복을 연습해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p.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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