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9 부처 의 깨달음 The 44 New Ans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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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깨달음은 실제 무엇이었고 어떻게 얻으셨을까? | 화이트레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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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은 무엇을 깨달으셨나요?” – 스님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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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부처님은 무엇을 깨달으셨나요?” – 스님의하루 정토회 성지순례단은 보드가야 대탑 관리측에 요청하여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보리수 아래 자리잡았습니다. 커다란 보리수 그늘 아래 450명이 … 2020.1.7 인도성지순례 5일째(보드가야)법륜스님,즉문즉설,스님의 주례사,정토회,백일출가,불교대학,정토불교대학,깨달음의 장,나눔의 장,명상수련,불교,환경,통일,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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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은 무엇을 깨달으셨나요?” - 스님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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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의 시작은 부처님 깨달음 < 박희승의 禪, 세상과 만나다 < 지난연재보기 < 기사본문 - 현대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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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의 시작은 부처님 깨달음 < 박희승의 禪, 세상과 만나다 < 지난연재보기 < 기사본문 - 현대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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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의 시작은 부처님 깨달음 < 박희승의 禪, 세상과 만나다 < 지난연재보기 < 기사본문 - 현대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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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의 시작은 부처님 깨달음 < 박희승의 禪, 세상과 만나다 < 지난연재보기 < 기사본문 - 현대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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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순간, 붓다가 바라본 새벽별 어떻게 생겼나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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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깨달음의 순간, 붓다가 바라본 새벽별 어떻게 생겼나 | 중앙일보 백성호의 현문우답 – 붓다를 만나다 (16) …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성취한 장소인 인도 보드가야 사원의 보리수. 새벽인데도 보리수 앞에서 좌선하는 … 악마는 보리수 아래에 앉은 싯다르타를 공격했다. ‘내 안의 고집’ 때문에 남북이 나뉘고, ‘내 안의 담벼락’ 때문에 동서가 갈림을 말이다. 2600년 전에 싯다르타는 이 보리수 아래서, 이런 각도로 하늘을 바라보며, 저런 밝기로 반짝이는 새벽별을 봤구나. – 새벽별,붓다가,담벼락 이쪽,새벽별 때문,담벼락 저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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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1 여객선

2 서승만

3 라온고

4 복어독 살인미수

5 이준석

6 민희진

7 김성태

8 한강 사진

9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10 김건희 논문

김건희 때린 ‘국민대 저승사자’…개그맨 서승만이었다 무슨일

승려들 강남 한복판 집단폭행…오물 붓고 머리 찍어내렸다

여친과 싸우다 150만원 명품백에 오줌싼 ‘찌질남’의 최후

정유라 내 생활비 1억이라 떠들더니…배신자 이준석 쉴곳 없다

사람 죽는데 철없다아직 중학생…논쟁 부른 정동원 사진

# 새벽별

# 붓다가

# 담벼락 이쪽

# 새벽별 때문

# 담벼락 저쪽

아아·따아·아라·따라…커피 타입으로 본 나의 리더십 유형은

2022 올해의 시계를 만나다

위기의 화력발전소 수소・암모니아가 구원투수!

근로기준법 개정 후 사장님들 하소연

침대 회사가 왜 삼겹살 수세미를 팔지

로마를 담은 보석 이야기

깨달음의 순간, 붓다가 바라본 새벽별 어떻게 생겼나 | 중앙일보
깨달음의 순간, 붓다가 바라본 새벽별 어떻게 생겼나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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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붓다의 깨달음 < 임승택의 초기불교순례 < 이전 연재모음 < 지난연재 < 기사본문 - 법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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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5. 붓다의 깨달음 < 임승택의 초기불교순례 < 이전 연재모음 < 지난연재 < 기사본문 - 법보신문 붓다는 과연 무엇을 깨달았을까. 우리는 불교를 깨달음의 종교라고 말한다. 또한 불교는 붓다의 가르침에 따라 깨달음을 실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에 의해 오늘날에까지 ... 붓다는 과연 무엇을 깨달았을까. 우리는 불교를 깨달음의 종교라고 말한다. 또한 불교는 붓다의 가르침에 따라 깨달음을 실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에 의해 오늘날에까지 전해져 내려왔다. 그렇다면 깨달음이란 도대체 무엇을 가리키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이 분명할 때 올바른 실천에 전념할 수 있다. 물론 깨달음의 문제를 놓고서 입으로만 왈가왈부하는 태도는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깨달음이 무엇인지조차 모른다면 바른 실천이란 아예 존재할 수 없다. 붓다는 스스로의 깨달음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점진적 과정으로 언급한다. “비구들이여, 나는 완전한 지혜(aññā)의 성취가 단번에 이루어진다고 말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그와 반대로 점차적으로 배우고 점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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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붓다의 깨달음 < 임승택의 초기불교순례 < 이전 연재모음 < 지난연재 < 기사본문 - 법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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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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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석가모니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부다가야의 보리수 밑에서 선정을 수행하여 35세에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고 부처(Buddha, 佛陀)가 되었다. 이후 인도의 여러 지방을 편력하며, 포교와 교화에 힘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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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칭[편집]

생애[편집]

사상[편집]

제자[편집]

다른 이름(10호)[편집]

힌두교에서의 관점[편집]

대중 문화[편집]

같이 보기[편집]

주해[편집]

각주[편집]

참고 자료[편집]

석가모니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석가모니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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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입문 – 부처님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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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불교입문 – 부처님의 생애 불교의 시작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깨달음과 가르침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석가모니라는 명칭은 ‘석가족 출신의 성자(聖者)’라는 의미이며, 부처님은 ‘진리를 깨달은 … 능인선원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본 페이지는 XHTML-1.0-Strict DTD를 준수하고, 웹 콘텐츠(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제작) 지침 1.0 W3C 권고안을 최대한 준수하였습니다.불교, 능인, 능인선원, 능인선원카페, 능인불교대학, 지광, 지광스님, Nungin Sun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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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입문 - 부처님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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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은 무엇을 깨달으셨나요?”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정토회 성지순례단과 함께 부처님께서 6년 고행을 마치고 목욕을 하다가 쓰러지셨던 네이란자라강을 건너 수자타의 공양을 받고 건강을 회복한 후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셨던 보드가야를 순례했습니다.

부처님이 걸으셨던 바로 그 길을 따라

성지순례단은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새벽예불을 드린 후 수자타아카데미 정문 앞에서 보드가야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오늘부터는 A,B팀 450여명이 함께 순례를 합니다.

아직 사방이 깜깜했습니다. 손전등을 하나씩 들고 줄을 지어서 걷기 시작했습니다. 부처님께서 고행을 마치고 걸어가신 바로 그 길입니다.

스님은 순례객들에게 조용히, 먼지가 나지 않도록 신발을 끌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아직 마을 사람들이 자고 있을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한 마을을 지날 때마다 수자타아카데미 부속 유치원도 볼 수 있었습니다. 한참 동안 마을을 따라서 걷자 모래 사장처럼 보이는 네이란자라 강이 저 멀리 보였습니다.

네이란자라강은 건기라 물이 거의 말랐지만 물이 흐르는 구간이 있었습니다. 신발을 벗고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고 강을 건넜습니다.

“시원하다!”

정신이 번쩍 듭니다. 부처님께서는 야윈 몸으로 여기까지 걸어오기도 힘들었을 것 같은데 이렇게 차가운 물에 몸을 씻었을까요. 이 강 어딘가에서 쓰러지는 부처님의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강을 건너는 사이 붉은 해가 떠올랐습니다. 네이란자라강을 건너오자 허물어진 탑터가 나타났습니다.

스님은 이곳이 바로 부처님께서 쓰러진 곳에 세워진 탑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스님의 설명이 없었다면 알아보기 힘든 모습이었습니다. 논두렁 한 가운데에 위치해 있는데다가 많이 훼손되어 있었습니다.

스님은 탑을 바라보며 부처님이 쓰러지셨을 당시와 수자타가 공양을 올린 정황을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6년 간의 고행을 마치고 전정각산에서 야윈 몸을 이끌고 출발하셨어요. 우리도 오늘 새벽에 전정각산에서 출발을 했잖아요. 부처님은 시신을 덮었던 분소의(糞掃衣)를 하나 주워서 입으시고, 우리가 온 이 길을 따라 이 강에 이르셨습니다.

얼른 생각하면 산에서 내려오자마자 우리가 처음 강을 만난 지점에서 목욕을 하셨을 것 같은데, 그러지 않고 왜 강의 건너편까지 오셨는지가 저는 항상 의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산 위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면 우리가 서있는 쪽이 지대가 낮아서 건기에는 물이 이쪽으로 흐르고, 우기가 되면 반대편까지 다 물에 잠기게 됩니다. 그래서 우기에는 백사장까지 다 강물이 차오르니까 강이 바다처럼 넓게 보입니다.

이런 정황을 고려할 때 부처님께서 쓰러지셨던 때는 건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건기라고 해도 지금보다 더 늦은 시기는 아니었을 거예요. 지금보다 늦으면 물이 말라버리니까요. 경전에는 부처님께서 강에서 목욕을 하다가 쓰러지셔서 물에 떠내려갔다고 하니까 물의 양이 지금 우리가 건넌 물 정도이거나, 그보다 조금 더 많아야겠죠. 방금 우리가 건너온 물의 양 정도는 사람이 떠내려갈 정도는 아니잖아요. 그러니 그보다 조금 더 물이 많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곳 강가에 이르러 분소의를 빨아서 강변에 널어놓고 목욕을 하셨는데, 워낙 허기가 져서 기운이 없다 보니 그만 물에 빠져 떠내려가셨습니다. 허기가 질 때 목욕을 하면 현기증이 나잖아요. 그렇게 물에 떠내려가다가 나뭇가지를 잡고 기어올랐어요.

부처님이 쓰러지신 곳에 세운 탑

그런데 인도에서는 모든 사물에 신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경전에는 ’아사나 나무 신이 가지를 드리워서 부처님을 건져 올렸다’ 이렇게 인도식으로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저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강가에 아사나 나무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 가지를 잡고 기어 올라와서 이곳 강가에 쓰러져 계셨습니다. 그것을 기념해서 지금 여러분이 있는 곳에 탑을 쌓았던 겁니다. 강물 위에는 탑을 쌓을 수 없으니까 강 언덕 위에 탑을 쌓아서 부처님이 쓰러진 곳을 기념했습니다.”

스님의 설명을 듣고 경전 독송을 하니 그 때의 모습이 다시 그림 그리듯이 머릿속에 펼쳐졌습니다. 독송을 마치고 한 사람이 겨우 걸을만한 좁은 길을 줄지어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토회가 명상 센터를 짓기 위해 구입해 놓은 공터에 도착했습니다. 공터에 들어서니 풀이 말끔히 베어져 있었습니다. 수자타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이 순례객들이 방문하기 전에 풀을 베어놓았다고 합니다.

명상센터 부지에서 다함께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조별로 모여서 어제 싸놓은 도시락을 먹었습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스님은 부처님께서 우루벨라 가섭 3형제를 교화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보드가야를 가는 길에 수자타 공양터와 우루벨라 교화터, 수자타 탑터를 지나가는데, 그 때마다 설명을 하면 대중이 모이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미리 이 곳에서 설명을 했습니다.

명상센터 부지를 나오자 대문 앞에는 스님으로부터 사탕을 받고자 많은 아이들이 긴 줄로 앉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미리 준비한 사탕을 법사님들에게 나눠주도록 하고 먼저 걸어갔습니다.

다음은 부처님이 수자타의 공양을 받은 곳에 세워진 탑을 향해 걸었습니다. 조금 더 걸으니 무덤 같이 생긴 작은 탑터가 보였습니다.

스님은 이곳이 부처님이 수자타로부터 공양을 받으셨던 곳이라고 알려주고 먼저 탑을 향해 삼배를 했습니다. 탑터를 바라보고 반야심경을 한편 독송했습니다. 2천 6백년 전 수자타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우루벨라 가섭이 수행했다고 하는 곳을 지나 아주 웅장한 규모로 세워진 수자타의 공양을 기념한 탑 앞에 도착했습니다.

탑 앞에는 ‘아미타부, 아미타부’를 외치며 구걸하는 노인과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돈을 줄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애매한 표정으로 순례자들은 탑으로 들어섰습니다.

순례단은 탑을 한 바퀴 돌면서 석가모니불 정근을 했습니다. 탑의 규모가 워낙 커서 한 참을 돌아야 했습니다.

드디어 순례단은 보드가야로 향하는 긴 다리를 만났습니다. 여기까지 2만 보 가까이를 걸었습니다.

“다리 아파요? 이렇게 걸어야 순례죠.”(웃음)

강 건너 편에는 높이 우뚝 솟은 대탑이 한 눈에 보였습니다. 부처님은 대탑이 세워진 바로 그곳에서 마지막 49일 동안의 정진 끝에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4시간을 걸어 보드가야 대탑에 도착했습니다. 보드가야 대탑은 부처님이 성도하신 자리에 아쇼카 왕이 세운 불탑으로 ‘Maha Bodhi Stupa마하보디 수투파’라고도 합니다. 불교가 쇠퇴하자 힌두절이 되었는데 미얀마 왕이 거금을 주고 관리 권한을 얻어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고 합니다.

보드가야대탑에는 각국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스님과 순례자들은 가사를 수하고 조용히 석가모니불을 외며 보리수까지 한 줄로 걸어갔습니다.

정토회 성지순례단은 보드가야 대탑 관리측에 요청하여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보리수 아래 자리잡았습니다. 커다란 보리수 그늘 아래 450명이 너끈히 앉을 수 있었습니다.

450명이 모두 자리를 잡자 마음을 모아 예불을 올렸습니다. 예불을 마친 후 스님은 부처님께서 성도하기 전후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깨달음을 얻기 전과 후, 98일 동안 일어난 일

“부처님께서는 수자타의 공양을 받으시고 건강을 회복하셨습니다.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하시고, 네이란자라 강을 건너서 이곳 보리수 나무 아래에 오셔서, 목동으로부터 길상초 한아름을 얻어 나무 아래에 깔고, 동편을 향해 앉으셨습니다.

‘내가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겠다.’

이렇게 크게 다짐을 하시고, 선정에 들었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점점 선정이 깊어졌습니다. 마지막 7주째에 이르러서 모든 욕구와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졌습니다. 49일 간의 정진 끝에 동쪽에서 샛별이 반짝이는 모습을 보면서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깨달음을 얻은 후에 첫 번째 일주일 동안은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깨달음의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두 번째 주에는 자리를 옮겨서 자신이 앉았던 보리수 나무를 가만히 응시하면서 일주일을 보내셨습니다. 세 번째 주에는 보리수 나무 주위에서 걷기 명상을 하셨습니다. 네 번째 주에는 가만히 앉아 있으니까 온 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는 방광을 했습니다.

다섯 번째 주에는 한 바라문이 지나가다가 ‘무엇이 세상에서 제일 고귀한 것입니까?’ 하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바라문이 듣고 싶었던 대답은 ‘부모님 양쪽으로 7대에 걸쳐서 브라만의 피를 물려 받은 사람이 가장 고귀하다’ 하는 대답이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마음이 청정한 자가 가장 고귀하다’ 이렇게 대답했고, 그러자 바라문이 ‘흥!’ 이러면서 지나가 버렸습니다. (모두 웃음)

여섯 번째 주에는 비가 엄청나게 쏟아져서 이곳이 전부 물에 잠겼습니다. 이 때 무차린다 용왕이 부처님을 보호해 주었습니다. 머리가 일곱 개가 달린 큰 뱀이 부처님을 보호하는 모양이 그것을 상징합니다. 일곱 번째 주에는 이곳을 지나가던 상인이 복을 빌면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습니다. 부처님은 성도하기 전 49일 동안 식사를 안 했고, 성도 후 49일 동안에도 식사를 안 한 상태였습니다. 짧게는 91일 동안, 길게는 98일 동안 식사를 안 한 겁니다. 이것은 사람이 100일 정도는 아무것도 안 먹고도 살 수 있다는 것을 말해요. 그래서 저도 이것을 실험해 보려고 70일 동안 단식을 해봤습니다. 결국 옆에서 사람들이 말려서 그만두긴 했는데, 100일 동안 단식해도 죽지는 않을 것 같았어요.

이렇게 경전에 나오는 내용을 스스로 체험해보고 검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경전에는 부처님이 고행할 때 숨을 쉬지 않으니까 머리가 깨지는 것 같았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저는 젊은 시절에 고문을 당하면서 그것을 경험해 봤어요. 얼굴에 수건을 씌워놓고 물을 부으면 숨을 못 쉬거든요. 그때 가슴이 벌럭벌럭 하다가 머리가 깨지는 것 같았어요. 이렇게 경전에 나오는 묘사는 그것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렇게 표현하지 못할 만큼 굉장히 사실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성도 후 7주가 지난 후 이 좋은 법을 세상에 나누어주려고 했는데, 이 좋은 법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 스승은 이미 돌아가신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함께 고행했던 다섯 친구를 찾아 사르나트로 가셨습니다. 이런 성도 전후의 정황을 경전으로 읽어보겠습니다.”

경전을 독송하고 함께 정진을 했습니다.

“이 곳에서 부처님의 깨달음을 생각하면서 정진을 하겠습니다. 다들 피곤해서 전 세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꾸벅꾸벅 졸겠네요.”(모두 웃음)

35분 동안 명상을 하고 108배 절을 했습니다.

다함께 정진을 마치고 자유롭게 정진을 하거나 대탑 주위를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대탑 주위에는 성도 후 부처님께서 7주간 머무셨던 장소에 표지판이 세워져있었습니다.

보드가야 대탑에는 오체투지를 하는 티벳 불교도인들이 많았고 사람들마다 기도하는 방식도 다양했습니다. 형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저마다 정성스러운 마음이 베어 나왔습니다.

보드가야대탑에서 수자타아카데미로 돌아가는 길에 가야산을 들렀습니다. 부처님께서 이 산위에 서서 전정각산에서 고행을 하리라 마음먹은 곳이자 천명의 제자들에게 ‘불의 설법’을 한 곳입니다. 새벽부터 지금까지 걸어서인지 가야산을 오르는데 다리가 아프고 숨이 찼습니다.

산 위에 오르자 흐릿하지만 건너편 전정각산의 윤곽이 보였습니다. 대중이 산에 다 오르자 스님은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인도에 처음 왔을 때는 전정각산(前正覺山)이란 이름밖에 몰랐어요. 그래서 인도 젊은이한테 전정각산으로 가는 길을 물어볼 때 ‘마운틴(mountain), 마운틴’ 그랬어요. 유영굴(留影窟)을 영어나 인도말로 뭐라고 하는지 몰라서 그렇게 말했더니 이곳 가야산으로 데려다 줬어요. 그래서 이 산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쫙 돌아봤지만 동굴은 없었어요.

숙소에 돌아가서 전정각산을 다녀왔다고 했더니 사람들이 어디 다녀왔냐고 물어요. 설명을 했더니 거기는 전정각산이 아니고 브람조니(Bramyoni), 즉 가야산(伽揶山)이래요. 그래서 첫번째로 인도에 왔을 때는 전정각산을 못 봤습니다. (모두 웃음)

두 번째로 인도에 왔을 때는 여행사를 따라왔더니 아예 전정각산 쪽으로는 안 갔어요. 인도에 세 번째로 왔을 때에야 겨우 보드가야에서 걸어서 전정각산에 가볼 수 있었습니다. 그때 동네 사람들을 처음 만났고, 애들이 구걸하는 모습도 보았고, 이곳에 학교가 필요하다고 해서 수자타 아카데미를 짓게 됐습니다.

우리가 올라온 이 산이 경전에 나오는 가야산입니다. 상두산(象頭山)이라고도 해요. 저쪽이 라즈길(Rajgir, 王舍城)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라즈길에서 여기로 오셔서 가야 시내에서 탁발을 하신 뒤 이 산의 꼭대기에 올라가서 주위를 둘러보셨어요. 저 앞에 강이 보이죠? 지금은 안개가 껴서 잘 안 보이지만 저 강 건너편이 전정각산입니다. 여기서 전정각산의 모습을 보고 ‘저기에 가서 수행하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하셔서 강을 건너가셨다고 합니다. 이 산 아래쪽으로는 가야 가섭을 교화한 자리가 있습니다.”

부처님을 떠올리며 반야심경을 독송하고 산을 내려왔습니다.

순례단은 보드가야 대탑과 가야산의 일정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수자타아카데미로 돌아왔습니다. 학교에 도착해서 B팀은 일정상 하지 못한 마을 방문을 하고 A팀은 먼저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저녁은 라면이었습니다.

매일 쌀밥에 비슷한 밑반찬을 먹다가 라면을 먹으니 무척 맛있었습니다. 저녁 예불을 드리고, 지바카 병원 2층 홀에 모여 법문을 들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이렇게 질문을 하면 대답을 하실 수 있어요?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셨다고 하는데, 그 깨달음의 내용이 무엇일까요?

부처님은 당시에 수행하던 사람들과 달리 새로운 길인 중도(中道)를 발견했다고 하는데, 중도가 정확하게 무엇일까요?

부처님이 다른 사람을 깨우치고 대중을 교화할 때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인 사성제(四聖諦)로 다른 사람을 깨우쳤다고 하는데, 사성제가 정확하게 무엇일까요?

이런 내용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질문이 많은 겁니다. 자기는 아는 것 같지만 막상 남이 물으면 대답을 못해요.

부처님이 발견한 세상의 모순

부처님 당시에는 고행주의자와 쾌락주의자 두 부류가 있었습니다. 그럼 지금 종교인들은 고행주의자에 속할까요, 쾌락주의자에 속할까요?”

“고행주의자요.”

“아니에요. 쾌락주의자입니다. 여러분이 종교를 믿는 이유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함이잖아요. 엄밀히 말해 여러분은 쾌락주의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여기 2층에서 아무리 좋은 법문을 해도 1층에서 누가 ‘저 강의를 들으면 주식이 대박난다’, ‘저 사람이 말하는 곳에 부동산을 사면 대박난다’ 이런 평을 듣는 강의를 한다면 다들 1층으로 갈 겁니다. (모두 웃음)

부처님이 깨달으신 내용을 알기 위해서는 부처님이 태어나시고 자랄 때 사회적 배경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인도에는 바라문(婆羅門)이라는 주류와 출가사문(出家沙門)이라는 비주류가 있었습니다. 전통적으로 뿌자를 하면서 복을 빌어주는 사람을 바라문이라고 하고, 고행주의를 주장하면서 새로운 인생철학을 내세운 사람들을 출가사문이라고 해요. 경전을 읽으면 이런 말이 많이 나옵니다.

‘어떤 브라만도, 어떤 사문도 부처님보다 뛰어난 사람은 없다’

출가사문은 주어진 신분이 아니라 자신의 신분을 뛰어넘어 그 길을 선택해서 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출가사문에는 브라만 계급만 있는 것이 아니라, 왕족도 있고, 장자 계급도 있고, 평민 계급도 있고, 심지어 천민 계급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당시 인도 사회에서 비주류였어요. 주류인 브라만에 반대하는 주장을 했습니다.

왜 이런 비주류가 세상에 출현했을까요? 주류의 주장에 모순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어린 시절에 주류에 속했습니다. 신분도 한 나라의 태자였으니 상위 계급에 속했고, 어릴 때 자신을 가르친 교사도 주류의 가치관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농경제에 참여했다가 새가 벌레를 쪼아 먹는 모습을 보고 모순을 발견했습니다. 경전에서는 그 모순을 세 가지로 표현합니다.

첫째, 농부의 비참한 얼굴을 보고 왕궁의 행복이 농부의 비참함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둘째, 농부가 소를 모는 모습를 보고 농부의 농사짓는 편리함이 소의 고통에 기반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셋째, 새가 벌레를 쪼아먹는 모습을 보고 새의 생존이 벌레의 죽음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처님은 열두살 때 농경제에 참여했다가 처음으로 이런 모순을 보았어요. 그 모순에 대해 질문했을 때 스승도 부모도 아무 대답을 못했어요. 그래서 탐구를 시작했는데, 그래도 대화가 통했던 사람이 주류 사회가 아닌 비주류에 속했던 출가사문들이었습니다. 부처님은 주류에서 성장해서 세상에 모순을 느끼고 탐구를 하다가 비주류 사람들을 만난 거예요. 거기에서 뭔가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본인도 출가사문의 길을 가려고 했기 때문에 주류 사회의 강력한 저항을 받았습니다. 가장 강력하게 저항한 사람이 누구였을까요?

바로 부모입니다. 가장 강력한 주류 사회의 신봉자는 부모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부처의 길을 가는데 있어서 최고의 마왕은 부모입니다. 그래서 어릴 때는 부모가 최고의 은혜로운 사람이고, 성장해서는 부모가 최고의 방해자입니다. (모두 웃음)

불법이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더욱 공감이 가는 이유

부처님은 이곳 전정각산에 이르러서 자기 스스로 자기의 욕망을 극복하기 위해 극단적으로까지 몰고 가봤습니다. 이건 누구를 따라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것이었습니다. 부처님이 이렇게 극단적으로까지 고행을 몰고 갈 수 있었던 배경은 본인이 출가하기 전에 쾌락을 쫓아봤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싯다르타 태자를 부러워했습니다. 신분이나 건강이나 모든 것이 좋아 보여서 다들 ‘저런 사람은 무슨 걱정이 있겠냐’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본인은 번뇌가 많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의 가르침은 오늘날에 이르러서야 적기를 만난 것 같아요. 오늘날에는 여러분의 기본적인 생활이 싯다르타 태자처럼 보장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이 안 이루어져서 괴롭다고 아우성치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이제는 먹는 것이나 입는 것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은 별로 없잖아요. 어쩌면 다른 사람이 보면 ‘이 정도면 뭐가 걱정이냐’라고 할 형편입니다.

부처님은 이미 2,600여 년 전에 그런 조건에 처했고, 그런 조건에서 출발해서 인생 문제를 고민했습니다. 가난한 집에 태어났거나 억압 받고 자라다가 저항심을 갖고 도(道)를 구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오늘날의 현대인들, 그것도 지식인이거나 기본 생존에 문제가 없을 정도로 형편이 좀 되는 사람들이 접했을 때 공감이 많이 됩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처지가 부처님과 유사하기 때문이고, 부처님의 문제의식이 굉장히 합리적이기 때문입니다. 2,600년 전의 이야기에도 여러분이 공감할 수 있는 까닭은 여러분이 그 당시 수준으로는 왕자 수준으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고타마 싯다르타처럼 왕자 수준으로 살고 있는데도 괴로워하고 있잖아요. (모두 웃음)

쾌락도 아니고 고행도 아닌, 제3의 길

그 당시에 수행방법으로는 고행주의 외의 다른 길은 없었습니다. 쾌락주의는 길이 아니라고 본인이 확인했기 때문에 고행주의를 끝까지 밀어붙였습니다. 그것이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6년의 극단적인 고행을 한 끝에 고행상의 모습에 이르렀던 거예요. 고행의 끝까지 가 본 겁니다. 우리처럼 하다가 힘들다고 그만두었으면 미련이 남았을 텐데, 끝까지 밀어붙였습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는 곧 정각(正覺)을 이루겠다고 할 만큼 고행을 했습니다. 태자 시절에 사람들이 그를 부러워하면서 감탄했듯이, 이번에는 그가 고행하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감탄했어요. 그런데 정작 본인이 봤을 때는 해탈의 길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6년 고행의 끝자락에 자기의 수행과 삶을 돌아봅니다. 출가하기 전을 돌아봤더니 욕망을 따라갔고, 출가한 이후에는 고행을 하면서 욕망을 억제했어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가자며 내 팔을 잡아당기면, 끌려가거나, 아니면 안 가겠다고 버티겠죠. 둘 다 누군가가 나를 가자고 잡아당기는 데서 생기는 문제예요. 잡아당길 때 따라가든, 안 가겠다고 저항하든, 그것은 나로부터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으로부터 일어난 거예요. 따라가거나 저항하거나, 둘 다 잡아당기는 것에 대한 반응입니다.

명상을 할 때 다리가 아파서 ‘아야!’ 하고 다리를 펴는 것은 욕망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래도 죽비 칠 때까지 참아야지’ 하는 것은 욕망을 억제하는 거예요. 둘 다 욕망에 대한 반응입니다. 드러난 현상은 정반대이지만 뿌리는 하나입니다. 다시 말해 남이 나를 잡아당기는 것에 대한 나의 반응인 것입니다.

상대가 나를 잡아당기는 것에 내가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자유의 길입니다. 이것은 그 당시에는 누구도 생각해보지 못한 길이었어요. 이것이 중도(中道)라는 거예요. 중도는 쾌락도 아니고 고행도 아닙니다. 쾌락과 고행의 뿌리는 모두 욕망이예요. 그런데 중도는 다만 욕구를 욕구인 줄 알아차릴 뿐, 욕구를 따라가려고 하지도 않고 저항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해보면 잘 안 돼요. 우리는 통증이 생기면 참거나 풀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다만 통증을 통증이라고 안다’ 이렇게 되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맛이 입에 딱 맞으면 먹으려고 하고, 맛이 입에 딱 안 맞으면 뱉으려고 합니다. ‘다만 신맛을 신맛으로 안다’ 이렇게 되기가 어렵습니다.

이 중도가 바로 제3의 길, 알아차림입니다. 부처님은 양쪽을 다 가본 뒤에야 이 제3의 길인 ‘알아차림’을 발견해내신 거예요.

우리가 보통 말하는 윤회(輪廻)는 사람이 죽어서 또 태어나는 것을 뜻하죠. 이런 뜻을 가진 윤회는 인도의 전통 사상입니다. 부처님이 말한 윤회는 고(苦)와 락(樂)이 끊임없이 바뀌는 것을 뜻합니다. 욕망이 충족되면 즐거움이 일어나고, 욕망이 충족이 안 되면 괴로움이 일어나는 것이 반복되는 것을 윤회라고 합니다. 그래서 ‘고락에서 벗어났다’라는 말은 윤회의 사슬을 끊었다는 뜻입니다.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져 버리니까 윤회의 고리가 끊어져버린 거예요. 이렇게 되면 고(苦)도 사라지지만 락(樂)도 함께 사라지는 거예요. 그것이 해탈(解脫)입니다.

그러니 고(苦)는 물론이고, 락(樂)이라는 것도 껍데기만 다를 뿐 곧 고(苦)입니다. 이것을 경전에서는 ‘잘 채색된 항아리에 똥을 담아둔 것과 같다’라는 표현으로 나옵니다. 잘 채색된 아름다운 항아리는 즐거움(樂)을 상징하고, 그 속에 똥이 들었다는 것은 괴로움(苦)을 상징합니다. 즉, 락(樂)이 곧 고(苦)라는 뜻입니다.

아름다운 젊은 세 여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니 노파로 변해버렸다는 표현도 나옵니다. 젊은 여인이 락(樂)을 상징한다면 노파는 고(苦)를 상징합니다. 젊은 여인이 노파로 바뀌었다는 것은 락(樂)의 본질이 고(苦)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뜻입니다.

고집멸도(苦集滅道)에서 고성제(苦聖諦)를 안다는 것은 ‘인생은 괴로운 것이다’, ‘인생은 무상하다’ 이런 뜻이 아닙니다. 낙이 곧 고임을 알아야 고성제를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야사가 단번에 깨달을 수 있었던 이유는 어제 저녁에 낙이던 것이 오늘 새벽에 고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미 고성제를 체험했기 때문에 단박에 법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겁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법문을 듣고 고행을 해도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고(苦)를 버리고 락(樂)만 얻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성지순례를 와서 죽어라고 고생하는 이유도 나중에 락(樂)을 얻고 싶어서잖아요. (모두 웃음)

이에 대해 경전에는 다양한 비유가 나옵니다. 쥐약의 비유도 나오고, 낚시밥의 비유도 나오고, 젊은 여자와 노파 얘기도 나오고, 공덕천(功德天)과 흑암천(黑暗天) 얘기도 나와요. 아름다운 여인이 찾아와서 ‘어서 들어오세요’ 하고 맞아들이니까 좀 있다가 못생긴 여인이 따라 들어오려고 했어요. ‘당신은 들어오지 마세요’ 하니까 못생긴 여인이 ‘우리는 자매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이 때 어리석은 자는 두 여인을 같이 받아들이고, 지혜로운 자는 둘 다 쫓아냅니다. 어리석은 자는 낙에 집착해서 고를 받아들인다는 것이고, 지혜로운 자는 고를 버리기 위해서 낙도 버린다는 뜻이에요. 즉 낙의 본질이 고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것만 고(苦)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세속에서 말하는 괴로움입니다. 고집멸도에서 고성제는 낙이 곧 고임을 꿰뚫어 아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첫 설법 내용이 낙이 고임을 깨닫는 겁니다.

중도라는 것은 그냥 ‘이것과 저것의 중간’이 아닙니다. 당시 인도에는 주류와 비주류라는 크게 두 가지 종류의 인생관이 있었습니다. 부처님은 그 둘의 모순을 보고 그것을 모두 뛰어넘은 새로운 길을 발견했기 때문에 ‘중도(中道)’, ‘제3의 길’이라고 표현하는 것뿐이지, 이것은 기존의 것과 전혀 다른 새 길이에요. 그래서 중도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세상은 이것 아니면 저것입니다. 실제로 여러분이 명상을 해봐도 중도를 행하기가 어렵습니다. 다리가 아픈 것을 참거나 풀거나, 이렇게 둘 중 하나에 치우치기 쉬워요. 욕망을 따르지도 않고, 억제하지도 않고, 편안한 가운데 다만 알아차리는 것이 중도입니다. 말은 쉽지만 실제로 해보면 잘 안 됩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한쪽으로 치우쳤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건물과 건물 사이에 줄을 매고 외줄타기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외줄타기를 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왼쪽으로도 기울지 말고, 오른쪽으로도 기울지 말고, 똑바로 가면 돼요. (모두 웃음)

그런데 줄에 올라가 보면 왼쪽으로 넘어지든, 오른쪽으로 넘어지든, 계속 넘어지게 되죠.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또 가능하다고 해서 쉽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꾸준히 정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이치를 깨치는 것은 단박에 할 수 있지만, 체험하는 데는 조금 연습이 필요합니다. 알아차림을 놓친다는 사실을 계속 알아차리는 가운데 놓치면 다시 하고, 놓치면 다시 하기를 반복하며 조금식 나아지는 것을 뜻합니다.

성지순례를 할 때도 ‘힘들다’, ‘기분 좋다’ 이렇게 반복만 하고 있으면, 죽을 때까지 해도 해탈하기가 어렵습니다. 힘든 가운데서 편안해지는 길을 찾아야 해요. 기분 좋은 가운데서 치우치지 않는 길을 찾아야 해요. 힘든 것을 참는 것은 성질내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남을 위해서는 좋은 일이에요. 그러나 자기는 스트레스를 받게 돼요. 그래서 성지순례를 마치고 집에 가면 ‘아이고, 이제 살았다!’ 이렇게 됩니다. (모두 웃음)

성지순례를 하면서 불편한 가운데 편안해지는 길을 찾아야 시간 들이고 돈 들여서 여기까지 온 값을 하는 겁니다. 그래야 집에 갔을 때 보름이나 집을 비웠다며 남편이나 아내가 성질을 팍팍 내도 생글생글 웃으면서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여보, 미안해. 혼자서 밥 해먹는다고 고생했지? 이제 내가 잘해줄게.’

이렇게 생글생글 웃어야 성지순례를 한 보람이 있는 거예요. 알았죠?”

“네!”

“부처님은 여기 오셔서 6년 동안 고행을 하면서 이 두 가지를 다 경험해보고, 어디에 모순이 있었는지 발견하고, 제3의 길을 찾아냈습니다. 그 새로운 길을 발견했기 때문에 전정각산에서 내려간 겁니다. 그래서 친구들이 비난하고 외면하는 것도 별로 신경 안 쓰고 목욕을 했고, 음식도 먹어서 건강을 회복하셨던 겁니다.”

1시간 30분 동안 법문을 듣고 순례자들은 ‘온갖 분별심은 다 내 업식이 짓는 상일 뿐입니다’는 명심문을 가지고 하루를 돌아보며 나누기를 했습니다.

내일은 부처님께서 1000명의 비구들과 함께 왕사성으로 가서 빔비사라 왕을 교화하고 설법을 하신 영축산, 죽림정사, 열반하신 후 500 아라한이 모여 경전을 결집한 칠엽굴, 불교가 번창하면서 세워진 나란다 대학 등이 있는 라즈길로 이동합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하겠습니다.

禪의 시작은 부처님 깨달음

육조 혜능대사 진영. 〈육조단경〉을 통해 선에 대해 알 수 있다.

禪이란 무엇인가?

선이라 하면, 흔히 조용히 앉아서 하는 참선을 떠올린다. 참선하면 좌선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렇지만, 선종의 바이블로 불리는 〈육조단경〉에는 ‘좌선’을 “일체 걸림이 없어서, 밖으로 모든 경계 위에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앉음(坐)이며, 안으로 본래 성품을 보아 어지럽지 않은 것이 선(禪)”이라 한다. 이를 보면, 좌선은 앉아서 하는 모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인류 문명사에서 선(禪)만큼 어려운 말도 없다. 선이란 무엇인가? 선은 말과 문자로는 표현할 수 없어 ‘언어도단(言語道斷)’이라 한다. 말의 길이 끊어진 것이라니…이 무슨 황당한 말인가?

하지만, 선은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금강산을 본 사람이 금강산을 보지 못한 사람에게 아무리 훌륭하고 멋진 말을 하더라도 금강산을 직접 본 것과는 천지 차이다. 이처럼 선은 말과 문자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러니 언어도단의 선을 글자와 말로 표현한다면 동쪽으로 가야 할 사람이 서쪽으로 가는 것과 같다.

그러나 선이 언어도단의 세계라 할지라도 말하지 않는다면 그 가치를 누가 알겠는가? 선에 대하여 무슨 말이라도 해야 그것이 좋은 줄 알듯이 달 찾는 이에게는 손가락이 필요한 법이다.

그런 뜻에서 선이 무엇인지 말해 보자. 먼저, 동아시아에 선을 처음 전한 분이 달마대사이다. 허나 안타깝게도 달마대사 어록으로 알려져 있는 것은 근거가 약하다. 더구나 선의 종지, 돈오의 입장에도 맞지 않은 부분이 많아 선사들은 일반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선종의 최고 어록은 6조 혜능대사의 〈육조단경〉이다. 선종의 교과서, 바이블이라 한다. 〈육조단경〉 전체가 선의 입장을 담고 있지만, 직접적으로 선(禪) 관련하여 두 가지 말이 나온다. ‘좌선’과 ‘선정’이다. 좌선은 앞서 말했듯이 앉아서 하는 참선이 아니다.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안정된 것이다. 선정(禪定)이란, “밖으로 모양을 떠남이 선(禪)이요 안으로 어지럽지 않음이 정(定)이다”라고 육조스님은 말한다. 즉, 선이란 마음이 내 밖의 모양에 머물거나 집착하지 않음을 말한다.

이 육조스님 말씀으로 선을 이해한 사람이 있다면 참 대단하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알쏭달쏭할 것이다. 그래서 선을 알기란 참으로 어렵다. 우리 초조 도의스님이 선을 말하자 ‘마구니말’이라 배척받은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선은 노장사상에 영향 받은 중국 조사불교?

불교계 일부에서 “선은 불교가 중국에 와서 노장사상과 만나 탄생했다”는 〈선의 황금시대〉와 같은 주장을 검증 없이 받아들여 그런 인식이 상당하다. 심지어 불교학자와 선의 전문가라는 분들도 그런 주장을 한다. 근래에는 ‘선불교’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였다. ‘선불교’라는 말은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처럼 새로운 흐름을 표현하는 용어로 사용하는 모양이나 과연 그런 개념이 합당한지 의문이다.

근래 남방에서 공부하고 온 분들이 ‘초기불교’라 표현하는 것도 의문이다. ‘초기경전’이라면 몰라도 초기불교란 부처님이나 부처님 직제자들이 가르침을 펴는 시대를 일컫는 말인데, 부처님이 열반하신지 2600년이나 지난 지금에서 ‘초기불교’라니? 초기경전이라 하는 것이 합당하다.

초기불교란 표현만큼이나 ‘선불교’도 의문이다. 선불교라는 표현은 혼란을 조장한다. 왜냐하면, 선도 불교 안의 한 사상이지, 불교를 떠나거나 선불교라는 또 다른 가치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굳이 강조한다면 불교 선, 또는 불교의 선사상이 좋을듯하다.

또 남방에서 공부하고 오신 분들이나 교학을 전공하신 분들이 더러 “선은 부처님 가르침에 없는 중국불교다”하거나 “선은 부처님 가르침이 아니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다.

이것도 오해다. 불교를 석가모니 부처님의 말씀만으로 고정시켜 보는 것은 부처님 가르침이 아니다. 〈금강경〉에 “내가 설한 바 법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곧 여래를 비방하는 것이다”라거나 “부처가 부처가 아니라 이름이 부처다”라고 까지 하셨다.

한 때 한국불교계에도 ‘대승비불설’이 전해져 혼란이 있었지만, 지금은 대승불교가 부파불교시대의 편향을 극복하여 부처님의 근본을 바로 세우는 운동으로 정리한다(물론 남방 상좌부승가에서는 부파불교시대의 전통으로 대승 경전을 부정하고 북방 불교의 승가를 부정하는 분들도 있다).

선(禪)도 부처님의 깨달음에서 기원한다. 선이란 부처님의 가르침이 시대 현실에 인연하여 나타난 사상이다. 동아시아 불교사에서 선의 시원은 달마대사로 보는 것에 특별한 이견은 없다. 달마대사가 전한 선은 6조 혜능대에 와서 완전히 정착되며 창조적인 특색이 나타나는데, 〈육조단경〉에 잘 드러나 있다. 보편적으로 부처님 말씀을 모은 것에 ‘경(經)’자를 붙이는데, 유일무이하게 부처님 제자, 그것도 1천년이 넘는 후대에 중국 혜능스님이 말한 어록에 ‘경’자를 붙여 예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비록 선이 중국 당나라시대에 출현하였다 하더라도 한반도 통일신라와 고려, 그리고 일본까지 한자문화권이었고, 당대 불교사상문화가 광범하게 공유되던 시대인바 선은 동아시아 불교의 특색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육조 혜능대사를 비롯하여 마조, 임제, 대혜, 고봉, 중봉 스님이나 우리나라 도의, 보조, 태고, 나옹, 서산 대사 이래 한국불교와 동아시아 어느 선사도 부처님을 교조로 받들었지 노자와 장자를 스승으로 받든 이는 한 분도 없다.

특히, 서산대사는 “선은 부처님 마음이요, 교는 부처님 말씀”이라 하셨다. 더 나아가 ‘선은 중국 조사불교’라 폄하하며 한국불교가 왜 중국불교를 따라가느냐고 하는 분들도 있다. 그런 논리라면 부처님은 인도 사람인데 왜 인도불교를 배우느냐는 반론도 가능하니 불교를 모르는 주장이다.

불교는 예수교나 유교처럼 인류 보편 종교이다. 민족과 인종, 국가와 지역, 계급을 초월하여 인류 보편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것이 불교다.

같은 이치에서 불교의 선도 인류 보편의 가르침인 불교에 뿌리를 두고 있지, 동아시아에서 출현하였다고 지역에 한정된 가르침이 아닌 것이다.

불교란 무엇인가?

선이란 부처님 가르침에서 인연한 것이니 불교를 모르면 선도 알 수가 없다. 그러니 선을 바르게 알려면 불교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불교란 무엇인가?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부처는 누구인가? 깨달은 분이다.

인도 말로 ‘붓다(buddha)’라 하는데, ‘깨어난 자’라는 뜻이다. 누구든지 깨치면 부처라 하니 붓다는 고유 명사가 아니라 보통 명사다.

그럼 부처는 무엇을 깨쳤는가? 이것이 문제다. 부처가 깨어난 자, 깨달은 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무엇을 깨달았는가? 깨달음이 무엇인가?하는 문제에 대해선 이견이 적지 않다. 그러니 부처님의 깨달음을 알려면 말씀인 경전을 봐야 한다. 그런데, 불교의 경전은 8만4천이라 할 정도로 방대하고, 또한 너무나 다양한 말씀을 하여 공부가 쉽지 않은 것이 문제다. 더구나 경전을 전하는 언어도 팔리어, 산스크리트어, 한문, 한글 등등 너무나 다양하고, 또한 남방과 북방으로 전하는 경전의 가지 수와 내용도 상당히 다른 것도 있다.

성철스님도 이런 문제의식을 가졌던 것 같다. 1967년 해인총림 동안거에서 행한 〈백일법문〉은 “불교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시작한다. 이를 근거로 불교란 무엇인가를 정리해 보자.

〈초전법륜경〉의 중도대선언

부처님이 깨치고 처음 설한 것을 초전법륜이라 하여 불교사에선 가장 중요한 설법으로 평가한다. 깨치고 첫 설법이니만큼 방대한 불교 사상에서도 그렇다. 남방불교 일부에서는 초전법륜경을 외우게 한다고 들었다.

이 초전법륜을 기록한 경전은 남전 팔리어 〈마하박가(율장)〉와 〈쌍윳다니까야〉, 한역(漢譯) 〈율장〉과 〈아함경〉에도 보인다. 내용은 비슷하나 〈마하박가〉의 기록이 가장 자세하다. 이 경전에 의하면, 부처님은 깨친 뒤고 오비구를 찾아가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쾌락과 고행의 양 극단을 버리고 중도를 깨달았다. 이 중도는 눈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며, 고요함과 높은 지혜와 바른 깨달음과 열반으로 인도한다. 중도란 무엇인가? 여덟 가지 바른 길(八正道)이니,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생각, 바른 삼매이다. 그리고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가 있으니, 괴로움과 괴로움이 일어남과 괴로움의 소멸과 괴로움이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 ‘나의 해탈은 확고부동하다. 이제 더 이상의 다시 태어남은 없다’ ”

부처님의 이 말씀을 성철스님은 ‘중도대선언’이라 한다. 부처님은 이 중도를 깨침으로 생로병사의 괴로움에서 영원히 해탈하여 ‘불사(不死)의 문’을 열었다고 선언한다. 부처님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속박된 생로병사의 괴로움을 영원히 해탈하는 중도를 발견하고 우리 인류에게 처음으로 알려주신 것이다.

부처님은 이 〈초전법륜경〉에서 생사의 괴로움에서 영원한 해탈을 선언하셨는데, 그것은 바로 중도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중도는 곧 팔정도이고 사성제인데, 누구든지 이 중도를 깨치면 생사의 괴로움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있다고 하셨다.

초전법륜 당시 부처님께 직접 이 중도 법문을 들은 교진여(남방에서는 꼰단냐)는 그 자리에서 돈오(頓悟)하여 부처님 이후 첫 깨달음을 성취하고 인가를 받는다. 나머지 네 비구도 차례로 깨치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니 이것이 불교의 출발이다.

깨달음의 순간, 붓다가 바라본 새벽별 어떻게 생겼나

백성호의 현문우답 – 붓다를 만나다 (16)

악마는 보리수 아래에 앉은 싯다르타를 공격했다. 폭풍과 불, 바위와 칼을 마구 휘둘렀다.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악마가 일으킨 폭풍은 싯다르타의 옷깃조차 흔들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다. 쏟아지는 폭우에도 싯다르타의 몸은 젖지 않았다. 날아오던 바위와 불덩어리는 꽃이 되었고, 진흙더미는 향(香)으로 변했다.

왜 그랬을까. 싯다르타의 수행이 담벼락을 허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늘 ‘내가 세운 담벼락’이 있다. 담벼락 이쪽은 좋은 것, 저쪽은 나쁜 것이다. 이쪽은 아군이고 저쪽은 적군, 이쪽은 선(善)이고 저쪽은 악(惡)이다. 한 마디로 내게 좋으면 선(善)이고, 내게 나쁘면 악(惡)이다. 그런 담벼락을 누구나 품고 있다. 그 담벼락이 하나둘 모여서 에고가 된다.

싯다르타, 깨달음의 붓다가 되다

악마의 폭우에도 몸이 젖지 않아

선과 악 나누는 ‘담벼락’ 허물어

보리수에서 바라본 붓다의 새벽별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가 되다

바람이 불었다. 나는 싯다르타가 앉았던 보리수 앞으로 갔다. 하늘을 덮는 잎들이 파랬다. 그 앞에 앉았다. 눈을 감았다. ‘싯다르타의 고민은 생로병사였다. 거기서 피어나는 삶의 고통이었다. 그건 정말 피할 수 없는 고통일까.’ 이 물음을 풀고자 싯다르타는 출가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고통은 언제 어디서나 피어난다. 그 출처가 사람이든, 일이든, 세상이든 말이다. 내가 세운 잣대에서 어긋나는 순간, 한 치의 오차 없이 고통이 올라온다. 싯다르타는 그걸 깊이 이해했다. ‘내 안의 고집’ 때문에 남북이 나뉘고, ‘내 안의 담벼락’ 때문에 동서가 갈림을 말이다.

악마가 쏟아낸 불과 창과 폭우도 그랬다. 그건 담벼락 저쪽에서 날아오는 것들이었다. 담벼락이 있어야 불도 있고, 창도 있고, 폭우도 있고, 그리고 악마도 존재한다. 그럼 담벼락을 허물면 어찌 될까. 모두 소멸하고 만다. 가령 동독과 서독을 나누는 담벼락이 있다. 담벼락이 사라지면 어찌 될까. 서독도 없어지고, 동독도 없어진다. 대신 그 자리에는 통일 독일만 남는다. 더는 동서로 갈리지 않는 독일이다.

선도 그렇고, 악도 그렇다. 둘은 담벼락 때문에 존재한다. 담벼락을 허물면 둘 다 사라진다. 그리스도교에서는 그걸 ‘선악과 이전으로 돌아간다’고 표현한다. 선악과를 따먹기 이전의 아담과 이브로 말이다. 신이 인간을 창조할 때 불어넣었다는 ‘신의 속성’‘하느님 나라의 속성’으로 돌아감을 뜻한다. 그래서 예수는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라”고 누누이 강조했다. 왜 그랬을까. 나와 이웃, 나와 원수를 가르는 ‘내 안의 담벼락’을 허물라는 말이다. 그게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자기 십자가’다.

보드가야의 사원에 밤이 깊었다. 나는 일단 숙소로 갔다. 숙소 바깥은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리는 시골 분위기였다. 싯다르타는 새벽별을 보면서 깨달았다고 한다. 나는 궁금했다. 과연 어떻게 생겼을까. 싯다르타가 앉았던 보리수 아래로 가면 그 새벽별을 볼 수 있을까. 2600년 전에 싯다르타가 봤던 그 새벽별을 지금도 볼 수 있을까. 그 별은 어느 쪽으로 뜰까. 얼마만 한 밝기로, 얼마만 한 크기로 반짝이고 있을까.

새벽 5시였다. 나는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10분 정도 차를 타고 다시 금강좌의 보리수로 갔다. 이곳은 ‘불교 8대 성지’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곳으로 꼽힌다. 붓다가 깨달음을 성취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아직 새벽인데도 정문 앞에는 순례객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중이었다. 티베트에서 온 라마승, 스리랑카에서 온 순례객, 태국에서 온 수행자들, 금발에 푸른 눈을 한 서양인 부디스트들도 꽤 보였다.

그들의 눈에서는 간절함이 읽혔다. 우리가 품는 고민과 싯다르타가 품었던 고민은 다르지 않다.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일.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삶의 여정에서 피어나는 고통. 거기로부터 자유롭고, 그래서 지혜롭게 사는 길. 다들 그걸 찾는다. 그래서 이곳으로 왔다. 붓다가 몸소 걸어갔던 그 길에서 희미한 발자국이라도 찾기 위해서였다.

마침내 정문이 열렸다. 순례객들은 자신의 신을 벗어서 신발 주머니에 넣었다. 성지 안에서는 맨발로 다녀야 했다. 남방 불교의 전통이다. 보드가야 성지에는 높다란 대탑이 세워져 있었다. 대탑 주위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순례객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수행을 하고 있었다. 티베트의 승려들은 온몸을 땅바닥에 엎드리며 끊임없이 절을 하는 오체투지를 했다. 이마에서는 땀이 줄줄 흘렀다. 스리랑카의 순례객들은 줄지어 앉아 경전을 외고 있었다. 대탑 둘레의 크고 작은 탑들 사이에서 숱한 사람이 명상에 잠겨 있었다. 이처럼 보리수와 대탑 일대는 하나의 거대한 수행처였다.

대탑 주위를 한 바퀴 돈 뒤 나는 보리수 아래로 갔다. 아직 어둑어둑했다.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이리저리 찬찬히 살폈다. 별이 하나 보였다. 하늘을 향해 펼쳐진 보리수의 가지 옆으로 뜬 별. 새벽하늘에 남아 있는 단 하나의 별이었다. 나는 가슴이 뛰었다. ‘저 별이구나. 2600년 전에 싯다르타는 이 보리수 아래서, 이런 각도로 하늘을 바라보며, 저런 밝기로 반짝이는 새벽별을 봤구나. 바로 그 순간에 싯다르타는 자신을 온전히 허물고 우주와 하나가 되었구나.’

나는 카메라를 꺼내서 사진을 찍었다. 아직 어두워 잘 보이진 않았다. 그래도 숨은그림찾기처럼 자세히 보면 모래알처럼 반짝이는 새벽별이 사진에서 보였다. 감회가 새로웠다. 7년 전에 인도를 찾았을 때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보드가야의 보리수 위로 반짝이는 새벽별을 찾아볼 생각조차 못 했다.

혹자는 “싯다르타가 새벽별 때문에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붓다 이후에 깨달음을 얻은 선지식들도 ‘각자의 순간’이 있었다. 누구는 방 문고리를 잡을 때 깨닫고, 누구는 그릇 깨지는 소리를 듣고 깨닫고, 누구는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며 깨달았다. 그렇다고 문고리 때문에, 그릇 때문에, 화장실 때문에 깨달음이 온 건 아니다. 깨닫는 순간에 그들이 그걸 하고 있었을 뿐이다. 싯다르타도 마찬가지다. 새벽별 때문에 깨달은 게 아니라, 깨닫는 순간에 새벽별을 보고 있었을 따름이다.

그렇다면 싯다르타가 봤던 진정한 새벽별은 무엇일까. 깨달음의 문을 연 그만의 새벽별은 대체 무엇일까. 깊은 명상 속에서, 치열한 수행 속에서 싯다르타가 겨냥했던 표적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그게 담벼락이라 본다. 나와 사람과 세상과 우주에 대한 착각의 담벼락이다. 싯다르타는 그걸 허물었다.

담벼락이 무너진 세상은 달리 보인다. 그는 우리가 ‘있는 것(色)’이라 철석같이 믿는 걸 ‘없는 것(空)’이라 했다. 또 우리가 ‘없는 것(空)’이라 여기는 걸 ‘있는 것(色)’이라 했다. 그렇게 뚫린 눈으로 본 세상을 한 마디로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 함축했다. 거기에는 ‘붓다(Buddha)의 눈’이 담겨 있다.

참 오묘하다. ‘붓다의 눈’에 다가갈수록 우리의 어깨가 가벼워진다. 죽을 때까지 내 가슴에 돌덩어리로 박혀서 절대 빠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과거의 상처’가 녹아내린다. 왜 그럴까. 그게 돌덩어리(色)인 줄 알았는데, 붓다의 눈을 통해서 보니 돌 모양의 비눗방울(空)에 불과함을 깨닫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두려움이 없어진다. 그리고 용기가 생긴다. 『숫타니파타』의 유명한 구절처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가 된다.

사자는 왜 소리에 놀라지 않을까. 야수의 왕이라서 그럴까. 덩치가 커서 그럴까. 아니면 턱과 이빨이 강해서 그럴까. 아니다. 사자가 소리에 놀라지 않는 까닭은 단 하나다. 세상의 모든 소리(色)가 실은 비어있음(空)을 알기 때문이다(色卽是空). 비어서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라 ‘빈 채로 작용함(空卽是色)’을 알기 때문이다.

싯다르타는 29세 때 카필라 왕국을 떠났다. 머리를 깎고 온갖 시행착오를 거치며 6년 고행을 했다. 그 끝자락에서 싯다르타는 내 안의 담벼락을 온전히 허물고 우주와 하나가 됐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 붓다가 됐다. 싯다르타의 나이 35세였다.

보드가야(인도)=글·사진 백성호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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