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자세
마음과 목숨과 뜻과 성품을 다하여 어떠한 모양으로든지 사랑하며 기도하는 것을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제사를 엎드려서 분향하라, 엎드려서 10분간을 절하라. 불교에서와 같이 1천 번을 절하라, 삼보 일배 하라고 명하였다면 엎드려 절하면서 딴 생각을 할 것이요 1천 번을 절하면서 허리 아파 죽겠다며 하나님을 원망 할 것입니다.하나님은 어떠하든 형식을 떠난 참 마음을 원하심으로 우리가 어떻게 기도하던지 자세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우리 자신이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좋은 자세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좋은 자세를 선택하여 기도하는 것은 더 좋은 일입니다.특별히 내 육신을 하나님께 복종시키는 자세를 하면서 하나님께 기도를 한다면 하나님이 더 기뻐 기도를 받으실 것입니다. 다니엘서 6장 10절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기도의 사람 다니엘은 노인이 되어서도 하루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하여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사무엘 상 1장 12절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동하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오랫동안 입술을 움직이면서 작은 소리로 기도를 하였습니다. 시편 94편 9절 “귀를 지으신 자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자가 보지 아니하시랴” 하나님은 어떠한 모양으로 기도를 하여도 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다 들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의 선배들의 좋은 기도의 자세를 본받아서 나도 그렇게 기도를 하는 것은 더욱 좋은 일로 생각합니다. 1. 엎드려 기도함 열왕기 상 18장 42절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 가니라 엘리야가 걸멜 산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엘리야는 얼굴을 무릎 사이에까지 들어가도록 엎드려 기도하는 선지자였습니다.한번 기도하는 것도 아니고 일곱 번을 기도 할 때 하나님은 엘리야의 기도를 듣고 3년6개월의 한발을 그치게 하고 비를 내리어 주시었습니다. 엎드려 기도를 하는 것은 대부분 간절한 소망을 아뢸 때에 이러한 기도의 모습으로 기도를 합니다. 욥기 1장 20절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욥이 자식과 재물을 순식간에 잃어버린 그러한 급박한 경황입니다. 간절함이 말할 수 없는 이때에 엎드려서 기도를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6장 39절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예수님께서 골고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모습은 땅에다 얼굴을 대고 엎드려서 아버지께 피와 땀을 쏟는 간절한 기도를 하시었습니다.땅에 얼굴을 대고 기도함은 옷도 더러워지고 얼굴도 더러워지지만 그보다도 더 중요한 간절하고 급박한 일이 있기 때문에 인간이 표현 할 수 있는 최대의 겸손의 표시로서 하는 기도입니다.땅에 얼굴을 대고 엎드려 하는 기도는 간절한 뜻, 급박한 상황일 때에 하는 기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나의 최대의 겸손의 표시를 하나님께 나타내면서 하는 기도입니다.엘리야, 욥, 예수님이 하신 기도입니다. 2. 무릎을 꿇고 기도함 사도행전 7장 60절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무릎을 꿇고 크게 소리질러 하는 기도는 주로 기도의 용사들이 하는 기도입니다. 첫 순교자 스데반도 순교를 당하는 순간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기도를 하였습니다. 에베소서 3장 15절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사도 바울도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는 기도의 용사입니다.베드로도 다비다가 죽었을 때 다비다를 살 리가 위하여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사도행전 9장 36절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어 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가로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이와 같이 엎드려 기도하는 것이나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일은 모두 하나님께 겸손을 표시하면서 간절한 소망을 아뢸 때에 하나님을 향하여 하는 기도의 모습입니다.대부분의 능력 있는 기도의 종들은 이러한 기도의 모습으로 오랜 세월을 하나님께 기도하여 능력을 받았습니다.우리도 간절한 소망, 급박한 일을 당할 때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겸손히 기도하는 모습으로 간절히 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3. 앉아서 기도함 열왕기 하 20장 2절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앉아서 기도하는 모습은 현대의 교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기도의 자세입니다. 이 기도의 자세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육신을 복종시키는 자세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자세는 오랫동안 기도를 계속 할 수 있는 자세입니다.육신의 가장 평안한 자세이므로 평소 때의 기도로는 좋은 자세이지만 급박한 상황 일 때에나 간절한 소망이 있을 때에 자기 육신을 복종시키는 자세가 없음으로 고려하여 볼일입니다.안아서 기도하는 자세로 회개 할 때에 많이 이런 자세를 취한 것을 성경에서 보게 됩니다. 욥기서 42장 6절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요나서 3장 6절 “그 소문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으리라” 마태복음 11장 21절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회개는 한두 시간에 끝나는 것이 아님으로 오랜 시간 동안 회개를 하여야 함으로 앉아서 회개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회개 할 때에는 서서 기도할 자격이 없고, 또 죄가 많은 자임으로 기도의 용사가 아님으로 엎드리거나 꿇어서도 못합니다.죄인이 회개하는 기도의 자세입니다.
4. 일어서서 기도함. 마가복음 11장 25절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셨더라” 누가복음 18장 13절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바리새인과 세리는 따로 서서 기도를 하였습니다.서서 기도함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입었음을 감사하는 기도를 할 때에 서서 기도를 합니다. 어찌하여 주님은 같이 서서 기도한 바리새인은 책망하고 세리의 기도는 받으셨을까요?바리새인은 당당히 자기는 서서 기도할 자격이 있는 자라고 여기면서 자랑하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누가복음 18장 11절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바리새인은 당당히 서서 기도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왜 주님의 책망을 받으셨는가요? 이는 바리새인은 기도로 사람의 높임을 받으려고 한 기도이지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마음의 기도를 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세리는 서서 기도할 자격이 없지만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으로 기도를 하였기 때문에, 주위 은혜로 서서 기도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지만 서서 기도합니다. 하면서 가슴을 치면서 간절한 마음과 통회의 마음으로 기도를 하였기 때문에 예수님이 받으시고 칭찬하여 주신 것입니다.우리가 분명히 알 것은 기도는 사람이 들으라고 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사람이 들으라고 교회에서 공중 기도를 할 때가 있습니다. 특히 싸움이 있는 교회에서는 장로는 대표 기도 할 때에 목사를 헐뜯는 기도를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거리낌없이 언제고 일어서서 기도할 수 있는 은혜가 있음을 보게 됩니다.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입은 자가 서서 기도 할 수 있는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감사하며 용서하며 회개하며 겸손하게 하나님께 진정으로 기도하는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바리새인 같은 외식으로, 사람 들으라고 하는 기도는 받으시지 않는 하나님이심을 알고 우리는 간절한 마음, 감사한 마음으로 담대히 서서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5. 두 손을 들고 기도함 출애굽기 17장 11절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손을 들고 기도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축복의 기도를 할 때에, 마귀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구할 때에 하는 기도입니다.두 손을 들고 기도하는 것은 승리의 앞날을 내다보면서 두 손을 들고 찬양함을 바라보면서 승리의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시편 28편 2절 “내가 주의 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여 악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구할 때에 두 손을 들고 하는 기도이고 제사장이 백성들을 축복 할 때에 두 손을 들고 축복하는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민수기 6장 22절 – 27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정리 : 기도는 어떠한 자세가 중요하기보다는 간절함과 진실함이 있는 기도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의 용사가 되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기도를 열심히 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기도의 자세는 반드시 이렇게 하라는 말은 없지만 대개 성경에 믿음의 선배들이 이런 경우에 이렇게 한 것을 참고삼아 우리도 선배들의 본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외적인 자세 기도의 외적인 자세는 정해진 것이 아니지만, 기도를 돕기 위해서 외적 자세도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기도의 자세는 무릎을 꿇고 하는 것을 비롯해서 서서 하는 자세, 걸어다니며 하는 자세, 편히 앉아서 하는 자세, 그리고 때로는 누워서 하는 자세도 있습니다. 이 중에서 어떤 것이 반드시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대략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무릎을 꿇고 하는 기도
무릎을 꿇고 하는 기도는 보통 속죄나 경건하고 겸허한 마음가짐을 가지게 한다. 그러므로 간절한 청원기도를 할 때는 이 자세가 좋겠다. 서서 하는 기도
서서 하는 기도는 대중이 함께 하는 교회의 공적인 기도나 잠시 묵상하는 경우에 사용되며 무릎을 꿇기가 어려운 경우에도 사용된다. 걸어다니며 하는 기도
걸어다니면서 기도하는 모습은 순례자들이나 수도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데, 걸어다니는 중에도 기도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출퇴근길이나 산책을 할 때, 또는 외출을 할 때 묵주기도나 화살기도를 하면서 걷는 것은 아주 좋은 기도의 자세라고 할 수 있다. 앉아서 하는 기도
요즘은 편한 자세로 앉아서 하는 기도에 대해 많이 연구되어 있고 권장하고 있다. 그것은 불편한 자세 때문에 기도에 분심이 들기보다는 편히 앉아서 잡념 없이 기도에 몰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양반다리 자세, 또는 의자나 방석을 깔고 편히 앉아서 하는 기도도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누워서 하는 기도
몸이 불편하거나 피곤한 상태에서는 누워서 기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누워있는 자세로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을 죄송스럽게 생각하기도 하지만, 환자의 경우 앉아 있기가 힘이 들어서 기도를 못하는 것보다는 편히 누워서 여유있게 기도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 또한 잠자리에 들어서 마지막으로 하니님을 만나는 마음으로 기도를 한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 특히 무서운 꿈에 시달리는 자녀들에게 기도를 하면서 잠을 청하도록 하는 것은 교육상으로도 매우 좋다. 우리는 기도를 하여야 합니다. 깨어서 기도하여야 합니다. 믿음, 소망, 사랑의 기도를 하고, 깨어서 쉬지 말고 기도를 하면서, 다른 사람을 위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간절히 열심히 사랑의 기도를 하는, 믿음의 기도를 하는, 소망의 기도를 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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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자세
Q: 기도드리는 자세에 대해 질문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방에서 조용하게 납작 엎드려 무릎 꿇고 작은 목소리를 내어 기도를 드리는데요. 입술로 시인하라는 성경구절을 얼핏 봤던 것 같아서 마음속으로 기도 드려도 상관없나요? 속 시원한 답변부탁을 드립니다. 목사님~
A : 말씀하신 구절이 시17:1에서 나옵니다만 진실하게 기도하라는 내용이 중심을 이룹니다. “여호와여 의의 호소를 들으소서 나의 울부짖음에 주의하소서 거짓되지 아니한 입술에서 나오는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기도는 소리나 눈을 감는 것 같은 자세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가짐입니다. 거짓 없이 가식 없는 기도를 하나님은 원하고 계십니다. 솔직하고 정직한 기도가 중요합니다. 말을 하던 마음으로 하던 중요하지 않습니다. 속으로 하는, 말을 하지 않고 마음으로만 하는 기도는 잡념이 생기고 분심이 생기기 쉽습니다.
저도 말을 하지 않고 기도하다가 잡념이 생기면 자신만 알아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아주 작게 기도합니다. 주의할 점은 옆 사람이 들을 만한 소리를 내면 좋지 않다는 것이지요, 바리새인적인 기도가 되거나 타인의 기도를 방해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는 큰소리로 기도하여도 됩니다. 심지어 골방에서는 방언기도를 하여도 됩니다.
운전 중에는 눈을 뜨고 말을 하면서 기도합니다. 버스나 전철에서도 기도합니다. 회사에서 업무를 시작하기 전 또는 업무 중에서도 기도합니다. 기도의 자세는 무릎을 꿇을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자신이 죄인이거나 잘못을 뉘우칠 때는 무릎기도도 좋습니다. 그러나 힘이 들어서 오래하지 못합니다. 기도를 오래하는 분들은 대개 양반다리를 하고 앉습니다.
양반다리도 좋습니다. 또 반드시 두 손을 모아서 기도할 필요도 없습니다. 손을 모으지 않아도 됩니다. 눈을 반드시 감고 기도할 필요도 없습니다. 성경에서는 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고 기도하는 장면이 많습니다. 눈을 뜨거나 감는 것이 기준이 아니라는 겁니다.
걸어가면서 밥을 먹으며 공부하면서 심지어는 잠자리에 누워서도 기도하는 겁니다. 저는 누워서 기도를 자주 합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 속으로 들어갑니다. 마치 어렸을 때 엄마가 내 준 무릎에 머리를 맡기고 말하다가 스르르 단잠에 들어가듯이.
때로는 말도 나오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너무 피곤하거나 괴로울 때는 ‘하나님!’ ‘아버지!’ ‘주님’만 외쳐도 됩니다. 슬플 때는 그냥 우는 겁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앞에서 그냥 우는 겁니다. 그게 기도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대화라고 하고 호흡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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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기도의 내용이 아니라, 기도하는 우리 몸의 자세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기도의 내용에 대한 관심에 비해, 기도하는 몸의 자세에 대한 관심은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마음과 몸은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서로를 규정하기에, 기도하는 몸의 자세는 기도의 내용과 마음 자세만큼이나 중요하고, 서로를 규정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전해지고 있는 기도의 자세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모세는 ‘땅에 엎드려 기도했고’(민 16,4), ‘손을 들고 기도했다’고 합니다(출 9,33) 다윗은 ‘무릎을 꿇어앉아서’(대상 17,16) 기도했고, ‘지성소를 바라보며, 두 손을 치켜들고’(시 28,2) 기도했습니다. 아삽도 ‘밤새도록 두 손 치켜들고 기도를 올렸고’(시 77,1-2), 솔로몬도 ‘서서 하늘을 바라보면서 두 팔을 들어서 펴고 기도했다’(왕상 8,22)는 것으로 보아 이스라엘 사람들의 기도 자세는 무릎을 꿇고, 두 손을 치켜들고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이었던 예수님도 유대 전통을 유지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기도하셨고’(막 14,35), ‘무릎을 꿇고’(눅 22,41), 때로는 ‘서서’(막 11,25) 기도하셨고, 손을 얹어서 기도해주시기도 했습니다(마 19,13). 베드로와 사도 바울도 ‘무릎을 꿇고’(행 9,40; 20,36; 21,5) 기도했고, 디모데에게도 ‘손을 들어 기도하라’고 권면한 것으로 보아(딤전 2,8), 무릎을 꿇고, 손을 들어 기도하는 것이 초대교회의 일반적인 관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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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자세로 먼저 얼굴을 땅에 대고 하는 기도 자세를 살펴보겠습니다. 이런 자세는 하나님의 엄청난 위엄 앞에서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는 태도입니다. 아브라함(창 17:3,17), 여호수아(수 7:6), 다니엘(단 8:17), 모세와 아론(민 16:22), 이스라엘 백성(왕상 18:39)도 주님 앞에서 그렇게 했습니다.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습니다.’(마 17:2,6). 하나님의 부재와 침묵에서 오는 절망 때문이었지요. 예수님의 모습이 변화 산에서 변했을 때, 제자들은 그 앞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습니다.’(마 17:2,6). 절망적인 하나님의 부재와 마찬가지로, 주님의 영광스러운 임재도 사람들에게 견딜 수 없는 공포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얼굴을 땅에 대고 하는 기도에서 기도하는 사람은 최대한 자신을 낮춥니다. 이 모습은 어머니의 자궁 속에 있는 태아의 자세와도 같습니다.
둘째 자세는 손을 모으고, 눈을 감으며, 무릎을 꿇고 드리는 기도입니다. 이런 자세는 서방 교회의 기도 전통인데, 게르만 문명의 정치적 복종의 몸짓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신하는 군주를 보지 않기 위해 눈을 감아야 했고, 두 손을 모으는 것은 자신이 무장하지 않았으며 갑자기 공격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무릎을 꿇는 것은 엎드려 경배하는 것을 나타내는 겸손의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기 위해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고, 무릎을 꿇는 태도는, 조용히 우리 내면으로 들어가, 죄를 뉘우치는 자세를 취하면서, 우리의 무력함과 복종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성경의 전통에서 무릎을 꿇는 행위는 육체가 땅으로 가라앉고, 영혼은 하나님께 올라가는 것을 표현합니다.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시 95:6). 이런 몸짓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그리스도의 우주적 통치를 약속하는 것입니다: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빌립보서 2:10). 그러나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어 기도하는 자세는 하나님을 인간의 내면이나 가슴, 영혼 속에서 고독하게 추구하는 자세입니다.
▲ 기도에 대한 지식만큼 기도하는 자세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 ⓒGetty Image
셋째 자세는 머리를 높이 들고, 눈을 뜨고, 팔을 벌리고 하는 기도입니다(사진 6. 기도하는 성모). 이런 자세는 로마와 나폴리의 카타콤에 묘사되어 있는 초대교회 예배자들의 기도모습입니다. 이들은 똑바로 서서 머리를 들고 눈을 뜹니다. 그들의 팔은 위로 펼쳐지고, 손바닥은 위를 향해 벌려 있습니다. 이것은 큰 기대의 자세요, 사랑스럽게 수용하고 포용하려는 자세입니다. 이런 자세로 하나님을 향해 자신을 열어 놓은 사람은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똑바로 서서, 머리를 들고, 눈을 떠서 위를 쳐다봅니다. 높이 들어 올린 팔은 가슴을 활짝 열어 호흡하게 합니다. 초대교회 오순절 운동이 이런 기도하는 자세를 수용한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성령의 도래를 위해 이런 자세로 기도했고, 동방교회는 지금도 성령강림절에 이런 자세로 기도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마치 떠오르는 태양과 같이 똑바로 서 있는 사람들을 비추어 주며, 마치 빗물과 같이 메마른 땅을 적셔주고, 만물을 푸르고 풍성하게 하십니다(마 5:25).
마지막으로 춤으로 드리는 기도가 있습니다. 집단적인 하나님 체험은 ‘윤무’(輪舞)로 표현됩니다. 신을 기쁘게 하고, 신으로 인하여 기쁨을 누리려고 신 앞에서 춤을 추는 것은 모든 제의종교의 보편적 현상입니다.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으매,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추었다고 합니다(출 15:20).
모세가 금송아지를 파괴할 때까지 이스라엘 백성은 우상 주위에서 춤을 추었다고 합니다(출 32:19). 메시아적 구원 시대에 예레미야의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외치십니다.: ‘네가 다시 소고를 들고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춤추며 나오리라… 그 때에 처녀는 춤추며 즐거워하겠고(렘 31:4,13), 하나님은 소고와 춤으로 찬양을 받으십니다(시 150:4). 그런데 중세 초엽 이래로 교회의 기도가 노래로는 표현되었지만 춤으로는 표현되지 않았다는 것은 몸 언어가 약화되었음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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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자세는 이렇게 다양하고, 문화마다 다른 모습으로 변해왔습니다. 기도의 내용과 기도하는 상황에 따라 자세도 달라지겠지만, 결국 기도는 하나님께, 하나님과 함께 대화하는 것입니다. 어린이가 서서히 성장하면서 부모와 대화하는 법을 배우듯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사귐 안으로 성장해갑니다. 성장하면서 다양한 방법과 자세로 우리의 기도 모습도 변합니다. 그러나 어떤 자세로 우리가 기도하건, 우리가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을 때까지(눅 18:1), 신앙은 기도를 강화하고, 기도는 신앙을 강화합니다.
채수일 목사(경동교회)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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