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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화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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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예쁘게하는사람이좋더라 –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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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예쁘게 하는 사람들 특징 : 네이트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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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화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
내 말투는 리액션 좋은 수간호사 화법
‘수간호사 화법’. 누군가 내 말투를 보고 묘사한 단어였다. 내 직업은 간호사와는 거리가 멀다. 다만, 나도 모르게 어르신들 이야기에 맞장구를 잘 치는 버릇이 있다. 물론 상대가 좋아하는 분이거나 음…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는 분일 때. 이를테면, 집주인.
몇 년 전인가 집주인 아주머니가 은근슬쩍 나의 집에 새로 바꾼 싱크대 모델을 참고하려 한다며 낯선 아주머니를 집에 데리고 왔는데, 알고 보니 이 아주머니는 중매쟁이였고 그 주 주말 정오께 “아줌마랑 한강 산책 겸 잠깐 좀 걷자.”며 데려간 곳이 친구 분댁인 적이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 집 주방 식탁, 내 앞에는 토끼 모양으로 깎은 사과와 그 집 큰 아들이 있었다.
여하튼 오지랖 넓은 집주인 아주머니와 리액션이 좋았던 세입자 아가씨의 에피소드는 그걸로 끝났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말투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수간호사 화법이 과연 뭘까? 손위 어른이어도 약간 반말 존댓말 섞어서 “진지 다 잡수셨어?” “이런 거 잘 못 하시잖아?” 이것은 존대인가 하대인가? 싶게 친근하게 챙겨주는 화법인 것 같다. 그러면서 가끔은 위엄도 있고. 나이가 조금 들어보니, 지킬 선은 지키며 이렇게 막 대해주는 어린 친구를 좋아하는 마음이 이해가 간다. ‘나, 너무 깍듯하게 대하지 말아 줘. 그렇게 어르신 취급 말아줘~’ 이런 마음. 요즘 나는 60대 어른한테도 막 대한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예요. 어차피 가는 건 순서 없어요.” 듣는 어른, 표정이 밝아진다.
인품의 향기가 묻어나는 예쁜 말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이 많이 필요한 세상이다. 정말이지 이 달은 쏟아져 나오는 뉴스만으로도 심신이 지치고 위로가 필요했다. 파헤칠수록 더 자극적인 이야기뿐인 버닝썬 사태와 강원도 산불과 내년 총선을 앞두고 존재감을 키우려 막말배틀하는 여의도 인사들과 충격적인 사회 범죄 소식들…
그런데 그 와중에도 반짝반짝 보석 같은 한 마디 말이 귀에 쏙쏙 박히는 순간이 있었다. 말이라는 게 참 그렇다. 돈 하나 안 드는 일이다. 그런데도 괜스레 더 고맙고 정가고 미남미녀로 보이는 사람이 있다. 말로 인해 인품까지 올라갈 수도 있다. 언품(言品)이라는 키워드로 언급되는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좋은 예다.
농가의 피해가 컸던 강원도 산불 뉴스를 볼 때였다. 이재민 대피소를 찾은 총리가 고혈압과 만성질환 의약품 지원 계획과 “시골 사는 사람들은 멀리 가면 안되잖아요.”라고 농민들 마음을 헤아려가며 임시 거처며 볍씨, 농기구 지원까지 구체적인 지원 방안을 설명하던 장면은 뭐, 이미 전 국민이 감탄하며 보았을 거다. 그 따스운 화면에서도 내 귀에 갑자기 톡 튀어 들어온 말 한마디는 이거였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그렇게 하길 잘하신 거예요. 괜히 거기 들어가셨다가 더 다쳐. 못 써요. 잘하신 거예요, 잘하신 거예요.”
걸레 하나도 못 건지고 나왔다며 짝짝이 양말을 신고 있던 아주머니를 향해 이 총리가 한 말이었다.
잘했어요, 참 잘했어요.
‘이분도 수간호사 화법이시네.’ 사람이 목숨을 건져놓고 나면 놓친 재산이 아쉬운 법. 그러면서도 누군가에게 ‘그만해서 다행’이라는 말도 듣고 싶은 게 사람이고. 더 나쁠 수도 있었다는 걸 심각하게 상기시킬 필요는 없다. 잘했다고, 큰 일 앞에서도 제일 잘했다고 인정해주면 된다. 이재민 대피소 안은 바닥에 앉아 사람 대 사람으로 대하는 자리이다 보니 ‘~요잉’하는 사투리와 친근하게 팔을 톡톡 다독이는 제스처까지 정말이지 친절한 이장 아저씨 다름 아니었다. 사실 나라의 큰 이장이긴 하다.
저렇게 친근하게도 말에 인품을 담을 수 있구나. 향을 감싼 종이에서는 향내가 난다더니. 저분은 시골 분들의 근심이 뭔지 알고 위로할 줄 아는구나. 연륜에서 나오는 말의 힘에 감동했다.
칭찬에 재능 있는 ‘말투 훈남훈녀’
실제로 사람이 올바르고 마음이 따뜻하다면 말 또한 그런 게 당연하다. 그럴 때 흔히 우린 “잘 배운 느낌이 난다.”라고 표현하곤 한다. 말은 누군가를 보면서 배우니까. MBC에브리원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라는 프로그램을 보다가 그런 순간이 있었다. 태국에서 온 타차라라는 청년이 서른 즈음되는 친구들 세 명을 초대해 겨울 여행을 즐기는 방송 편이었는데, 여름나라에서 온 이들에게 스키가 쉬울 리 없었다. 처음 타본 스키에 바로 적응하고 다음에도 또 겨울에 와서 타겠다는 똔이라는 친구가 있었던 반면, 체력이 약하고 서툴어 종일 넘어지기만 했던 나뷘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그가 “난 스키에 소질이 없는 것 같아.”라고 풀 죽은 목소리로 말하자 타차라는 한껏 웃으며 칭찬해줬다.
“나뷘, 넘어질 때 멋있었어. 거의 전문가처럼 넘어지던데?!”
아이고, 쏘 스윗~. 친구가 기죽을까 봐 작은 부분을 찾아 칭찬해주는 모습에서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그에게 똑같이 으쌰으쌰 해줬을 무수한 장면이 보였다. 본인이 그런 시선을 받아봤으니 칭찬할 곳이 보이고 그런 말을 들어봤으니 계산 없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다. 스튜디오에 앉아있는 그의 얼굴이 갑자기 더 잘생겨 보이는 것은 말투 훈남 효과? ㅎㅎ
한국말도 잘하지만 무엇보다 친구를 위하는 예쁜 말을 잘하는 태국 청년, 타차라. 기술이 아닌 배려심에서 나오는 말투훈남.
증권회사에서 근무하며 고객 대면 업무가 많았던 내 친구는 “나는 이제 누구라도 칭찬할 수 있어. 엄마의 미모를 칭찬하거나 아니면 같이 온 어린 딸이 예쁘다고 칭찬하거나 그도 아니면 딸이 꽂고 온 머리핀을 칭찬하거나. 어떤 상황에도 칭찬거리를 찾을 수 있어.”라고 한 적이 있다. 물론 100% 기술적인 말이거나 입에 발린 칭찬이면 곤란하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서 나오는 칭찬은 크든 작든 언제나 상대를 기쁘게 한다.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은 ‘고맙다’ ‘미안하다’를 잘하는 사람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일수록 평상시 ‘고맙다’ ‘미안하다’는 표현을 잘한다. 상대도 당연히 알겠지 싶은 마음 또는 습관이 안 되어서 입에서 잘 안 나오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개는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이 작은 것에 고맙다거나 미안하다는 서두와 끝인사를 잘한다. 예를 들어, “초대손님 수가 한정된 자리인데 저를 이렇게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리를 도와드리지 못하고 가서 죄송해요. 오늘 즐거운 시간 만들어주셔서 감사해요.”라고 꼭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나는 사람이 있다.
어쩌면 전형적인 말들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렇게 대화의 인트로와 아웃트로가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본인 일에만 너무 집중해 바쁜 사람은 대화에도 여유와 배려가 생략되는 일이 많으니까.
어제는 커피를 배우는 강의실에서 참 예쁜 “죄송해요.”를 들었다. 몇 명이 쓰는 에스프레소 머신이 오류가 있어 강사 선생님에게 체크해달라 요청했다. 그녀는 몇 번을 테스트하느라 신경을 못 써, 그만 로스팅 기계에서 원두를 꺼낼 타이밍을 놓쳤다. 순식간에 강의실 안에 탄내가 가득~ “여러분, 너무 죄송해요. 냄새가 많이 나죠?ㅠㅠ” 그러자, 나이 들고 사회생활 경험 많은 아저씨, 아주머니 제쳐두고 발랄한 22살의 대학생이 1초도 안돼 바로 대답했다.
“아뇨. 저희가 죄송하죠. 저희 꺼 봐주시느라 그런 건데.”
그 순간 또 배웠다. 마음의 무게감을 확 덜어주는 말하기. ‘나이도 가장 어린 동생이 저렇게 금세 상대를 편안하게 해 주네.’ 따뜻하고 예쁘다. 이런 말을 들으면 겨울 코트를 입다가 봄옷을 입은 것처럼 마음이 훅 가벼워진다. 내가 직장에서 중대한 실수를 했을 때 “괜찮아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건 문제가 아니에요.”라고 말해준 팀장님이 있었다. 갑작스레 벌어진 위기상황이었고 워낙 이전에 큰 사건사고가 많았던지라 그런 말이 나올 수 있었지만, 나는 더 나이가 많고 더 사소한 사안에도 덜 관대한 상사를 많이 만나보았다.
진심 없이 예쁜 말만 하는 건 공허하다
말만 예쁘게 한다고 관계가 다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서로 예쁜 말만 많이 하던 필라테스 강사와의 카톡이 그랬다. 5개월여를 1:1로 운동을 했으니 가까워진 건 사실이었지만, 결혼을 앞둔 그녀가 청첩장을 줬을 때에야 실제 이름을 안 사이였다. 막상 결혼식 전날이 되자, 과연 내가 이 사람의 결혼식에 가서 축하할 만큼 가까운 사이가 맞나 싶었다. 달리 지인도 없고 아직도 핸드폰 번호를 모르는 사이인데? 먼길인데 축하하고 개운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게 될까? 결국 안 가기로 하고, 관계는 망치기 싫어 카톡으로 선물을 보낸 다음 다른 친구 결혼식과 겹쳤다고 둘러댔다. 그 후에도 일방적으로 시댁 건물에 새로 오픈한 센터 사진과 결혼식 영상을 다다다 투척하던 그녀와의 카톡 창에서 드디어 나는 내 잘못을 깨달았다. 마음이 그만큼 차지 않았는데 그걸 넘어 말로만 친한 척한 것이다. 요즘 같은 때 특히 많은 관계인 것 같다. SNS로만 친한 사이, 언제 한번 밥 먹자는 사이(그 ‘언제’는 결코 오지 않는다는 걸 서로 알지).
진심 없이 말만 예쁘게 하기보다는 건조하더라도 진심대로 대하는 게 낫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친소의 온도가 다르다면 그건 진정으로 소통하는 사이가 아니다.
나는 말만 예쁘게 하다 실패했다. 말은 마음이 모양이 되어 나온다.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에게는 예쁜 말이 있기 전에 예쁜 마음이 있다.
언제부턴가 일상의 순간순간 예쁜 말을 사금을 채취하듯 고르는 나는 한 마디 한 마디 발견할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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